<조회수 24에서 몇글자 수정이 제대로 되지 않아 다시 올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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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의 가을 나들이로 32명이 참가한 가운데 태안 일대를 돌아보았다.
11월 1일 오전 8시 정각까지 32명이 모두 여유있게 모여
8시 5분쯤 도착한 금성관광버스에 승차, 태안으로 향했으며, 안
흥항 유람선을 시작으로 백화산 등산까지
애초에 계획했던 대략 일정시간과 거의 비슷하게 진행되었다.
계획된 일정을 마친 다음 귀로에는 당진에서 심훈 선생의 '상록수 기념관 (필경사)'에 들러
이모저모를 살펴본 다음
심영보 본가를 찾아가 어머님께 인사를 올렸으며,
이어 서해대교 근처의 먹쇠민물장어집에서 회식후 귀경, 9시 반경 양재역에서 해산했다.
<참가> 고홍석1 김국호2 김기호1 김연수1 박영오2 박완배1 심영보2
양구하2 오인식2 윤정건2 이길홍2 이영섭2 이인2 이창성2
전영도1 정우택1 하정용1 한영상1 허명래2 홍경훈2 (32명)
<대략 경과>
처음에 들른 서해대교 행담도 휴게소에서는 잘 정비된 여러 시설들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
도투락의 홍보팀장이 편승하여 블루베리 홍보가 있었고 몇명은 몇개월 치 씩을 주문한 것 같으며
소주에 섞어 마실 6개 인지의 블루베리 팩을 선물로 받았다.
재미있는 것은 행담도에서부터 이 홍보팀장의 승용차가 버스를 뒤따라 오다가
홍보를 마치고 버스에서 하차하자 바로 그 승용차로 옮겨타는 방식의 기동홍보.
그래도 다행인 것이 이 상품의 가치를 알고 이용해온 동기가 있어 어느 정도 홍보가 성공했다는 점.
행담도 휴게소에서 시간을 절약해 안흥외항 유람선 매표소 앞에는 예정보다 30분쯤 미리 도착했다.
인터넷에서 잠깐 본 안흥성을 잠깐 가볼까 알아보니 왕복시간이 30분 이상이라 포기하고
안흥외항 부두를 구경했다.
태안반도 서쪽 끝의 육지가 안흥인데, 이 안흥 앞의 신진도가 신진대교라는 다리로 연결되고
신진도의 기존 항구가 확장 또는 정비되었는지 항구 규모는 상당히 큰 편이다.
이에 따라 예전부터 안흥에 있던 항구는 '안흥내항',
신진도의 큰 항구는 '안흥외항'으로 부르는 것으로 보인다.
(이 안흥외항을 네이버인가 다음의 지도에서는 '신진도항'이라 표기해 좀 헷갈린 적이 있다)
안흥외항은 어항으로서의 역할이 큰 것으로 보이며, 신형 멸치배들과 운반선이 많았다.
예전에는 멸치를 권현망 이란 어법의 소형어선단으로 잡았고
이 권형망 선단은 4~5 척의 소형 어선들이 작업배, 불배, 운반선 등으로 나뉘어
잡은 몇치를 불배에서 끓는물에 데친 다음 운반선에 옮기는 식으로 조업했다.
자세히 들어보지 못해 확실하지 않지만, 요즘은 배 한 척이 어획과 처리를 다 하고
전문적인 운반선을 이용해 항구로 운송하는 방식으로 바뀐 것으로 짐작되었다
(종사자에게 직접 들어볼 시간이 없어 추측).
이 '데친 멸치'(또는 '반건조 멸치')를 육상으로 옮겨 완전히 말린 것이 건조 멸치 상품이 되는데
이영섭이 이 데친 멸치를 부두의 멸치 배에서 조금 얻어 주어 두세 명이 맛을 보았더니
담백하고 부드러운 것이 건조멸치보다 훨씬 좋았다.
이 데친 (반건조) 멸치를 약간만 가미하거나 조리하여 상품화하면
고단백 저지방 영양식으로 노년층이나 미용식을 찾는 여성층에 제법 팔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번데기도 통조림 상품이 되어 제법 팔리는데, 외국인들이 꼽은 한국의 이상 야릇한 식품중
첫번째 자리를 차지했다는 보도를 본 적이 있다.
반건조 멸치는 번데기보다 보기도 그럴듯하고, 먹기도 훨씬 편했다.
11시 30분에 안흥항 유람선에 올라 1시간 반에 걸쳐 불기도, 정족도, 가의도, 독립문 바위,
거북바위, 사자바위, 코바위, 관장수도 등을 둘러보았다.
이 유람선은 대략 주먹구구로 1천톤이 넘을 크기인데 2층, 1층, 바닥층 등 객실들의 배치가
상당히 짜임새 있는 구조여서 호감이 갔고, 또 엔진 소리도 조용해 마음에 들었다.
위에 열거한 섬과 기타 지역의 설명은 김국호의 리포트 사진과 함께 보는 것이 일목요연할테니
생략하고 이 '관장수도' 소개만 조금 해보자.
이 '관장수도'가 있는 해역이 바로 유명한 '안흥량'인데
안흥량은 고려시대부터 물살이 빨라 청자선 등이 많이 침몰한 곳이다.
이 위험한 안흥량을 우회하여 태안반도 안쪽을 경유, 경기도의 가로림만 인가로 빠지는
운하를 만들기 위해
여러 차례에 걸쳐 공사를 강행했으나 결국 포기하고만 역사를 다룬 다큐를
KBS1에서 본 적이 있다.
이 때 운하공사 하던 흔적이 바로 '굴포'이고 그 유적이 가까이 남아있다.
(인천공항 가는 길을 따라 오른쪽으로 보이던 '굴포천'은
현재 화곡동 서쪽 일대가 비가 많이 오면 자주 침수되어 피해가 컸으므로
이 물을 서해로 빼내기 위한 하천으로서 확장하고 운하를 만들려는 공사가 진행되어
가양동 일대의 한강까지 4km 정도 남겨둔 상태였다.
이러저러한 이유로 중단되었다가 한반도대운하 중의 경인운하 - 아라뱃길 등으로
성격이 바뀌었는데 전시행정 욕심 때문에 본래의 경인운하 취지, 즉 홍수 때 침수에
대비한 배수와 내친김에 조금 더 파내 한강에서 서해로 나가는 지름길 격의 수로로
이용해본다는 계획이 묻힌 것 같다.
애초의 부가적 목적에 따라 초보적이고 소박한 운하처럼 시험적으로 이용하면서
유용성이 어느 정도 입증되면 한강 깊숙이 여의도 잠실 등으로 까지 수로를 연장하는
점진적 방식이면 좋았을 것을
아라뱃길 운운하며 한강의 이곳 저곳에 나루터까지 한번에 왕창 예산을 투입해
요란하게 전시행정 하며 광을 내려다가 역풍만 맞고 있으니 장차 어찌될지...)
안흥외항에 돌아온 즉시 버스에 올라 만리포해수욕장으로 이동해 예약된 서해바다횟집에서
회를 겻들인 점심식사를 마쳤다.
두당 2만여원 짜리로서는 서울의 서민(실비) 횟집보다 별로 낫지 않은 듯한 느낌이 들기도했지만
관광지 자리값을 포함시키면 수긍이 된다.
만리포 해수욕장으로 내려가 백사장 안쪽의 고인 물에 발은 담그지 못하고 손만 담가본 다음
단체기념 사진을 찍고 버스로 올랐다.
(나중에 듣게 된 이야기로...허명래 부부가 옛날 데이트 시절 이 만리포에 왔었다고.)
만리포에서 떠난지 채 몇분도 안되어 천리포 수목원에 도착해 둘러보았는데
바다, 백사장, 작은 섬 등이 어울려 깊은 인상을 남겼다.
'천리포 수목원'은 인터넷에서 검색해보면 자세한 이야기가 나오므로
주변 이야기만 조금 하자.
이 태안반도 일대에는 수목원이 세 개 이상 있어 헷갈리기 쉽다.
내가 올해 5월 1일 들렀던 수목원은, 애초에 안내받기를 미국인이 만든 운운 해서
그런가 보다 하며 둘러보았고, 그곳의 가장 높은 언덕 위에있는 정자(안면정..)에서
단체 기념 사진도 찍었다.
그래서 이 천리포 수목원이 여러 지역에 이리저리 나누어져 있나보다 짐작하면서도
어딘지 이상해 가이드 아가씨에게 확인하니 이 지역에는 상이한 수목원이 여러 개 있다.
즉 태안 반도 아래쪽에는 정주영 회장이 세운 수목원도 있고,
또 다른 카밀레 농원이라는 곳도 있다.
이 천리포 수목원을 세운 분은 미국인으로 한국에 귀화한 민병갈(Carl Ferris Miller) 선생.
1921년 미국에서 태어나 미해군 장교로 한국에 왔다가 주저앉아 한국은행에서 일하면서
1962년부터 부지를 매입, 1970년 부터 수목원 조성을 시작했다고.
전체면적은 17만평인데 현재 우리가 이번에 살펴본 밀러가든(1만 8천평)만 공개되어있다.
(고홍석은 젊은 시절 한국은행에 근무할 때 밀러 선생에게 부탁해 영문 서신의 교열을
몇 번 받은 적도 있다고 한다. 또 이인은 밀러가든 안의 민박시설인 '소사나무집'인지에
몇년전 가족과 함께 숙박했던 적이 있다고.)
천리포 수목원을 떠나 태안으로 들어온 버스는 곧바로 백화산에 올랐는데
태을암 입구에 주차한 다음 전원이 정상으로 향했다.
10여분 만에 정상에 서니 마침 시정이 좋아 멀리 여기저기 바다가 보였고
석양의 햇볕이 그럴듯하게 빛나 5월 1일에 왔을 때보다는 훨씬 더 감동적인 풍광이었다.
이미 차 안에서 당진 필경사 방문이 어느 정도 구체화되었으므로 시간절약을 위해
먼저 백화산 정상에 오른 다음 내려올 때 태을암의 태안마애삼존불(국보307호)를 살펴보았다.
시간을 몇 분이라도 아낄 수 있을까 하여 내려올 때는 포장도로가 아닌 산샛길을 이용했는데
바위 등이 가파른 곳이 몇군데 있어 체중이 좀 있거나 무릎이 약해진 회원들은
특공대 훈련에 가까운 어려움을 겪었다고.
그래도 이 나이에 특공대처럼 산샛길을 무사히 내려올 수 있었던 추억을 남겼으니 다행.
태안마애삼존불은 국보로 재지정 되었지만, 얼굴 부분이 많이 마모 훼손되어
문화재 애호가가 아닌 사람들에게는 관심을 크게 받지 못했다.
바쁘게 백화산에서 내려오고 태안을 벗어나 귀로에 오른 버스는 서해안고속도로를 따라
당진까지 온 다음 IC에서 2차선 국도로 들어서서 심훈 선생의 상록수 문학관(필경사)으로 향했다.
도착할 때쯤에는 거의 어두워졌지만 먼발치로 필경사를 볼 수 있었고 전시관 안에서
심영보 형님께 인사드린 다음 정지영상으로 심훈 선생의 일대기를 살펴보았으며
다시 버스에 올라 심영보의 고향집으로 이동해 심영보의 어머님께 인사를 올렸다.
이어 버스로 서해대교 못미친 곳에 위치한 먹쇠 민물장어집으로 이동해
거창한 저녁식사를 마친 다음 귀로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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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일 서해안 나들이 비용 지출 내용을 보고합니다 - 이 인 재무이사
수입
참가회비 1,120,000.-- (부부 12쌍 각 70,000, 씽글 7명 각 40,000 회장 제외)
회장협찬 1,000,000.-- (한영상 회장)
동기협찬 200,000.-- (정지건 부회장)
총수입(가) 2,320,000.--
지출
아침 간식 130,000.--
유람선료 416,000.-- (32명x13,000.--)
점심식대 800,000.-- (서해바다횟집)
천리포수목원 108,000.-- (20명 경로우대 각 3,000.- 여학생 12명 각 4,000.--)
금성관광버스 500,000.--
기사 수고비 100,000.--
호도과자 115,000.-- (19개 5천원씩, 2개 만원씩)
총지출(나) 2,169,000.--
잔액 (가-나) 151,000.-- (한영상회장 뜻에 따라 동기회 재무계좌로 입금 위계)
별도 지출 내역
먹쇠민물장어집 저녁식대(986,000) (심영보 486,000 한영상회장 500,000 분담)
------사진은 정리되는대로 몇장을 골라 4-사진실에 올릴 예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