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에서 배우는 삶의 태도 /최선희
음식이 한 사람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얼마 전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흑백 요리사를 보면서 나는 이런 질문을 하게 되었다. 셰프들이 보여주는 진지함과 겸손, 그리고 자신이 지켜온 원칙을 가지고, 오감이 즐거운 음식들을 보여주었다. 식재료를 다루는 그들의 손짓, 몸짓에 함께 긴장이 되었다. 몰입하는 그들의 모습은 아름다웠고 만들어 낸 음식들은 맛과 멋을 지닌 예술 작품처럼 여겨졌다.
그중 가장 오랜 여운을 남긴 사람은 선재 스님이었다. 스님의 음식에 소스들을 더하기보다 덜어내는 방식으로 완성했다. 재료가 가진 향과 질감을 최대한 살려 그 본연의 맛을 살려내는 음식이었다. 심사위원이 극찬했던 잣국수 한 그릇은 화면 밖의 사람들까지 군침을 돌게 했고, 사람을 대하는 그분의 마음까지 고스란히 느껴져, 음식을 만드는 일은 한 사람의 인생이 담겨있다는 것을 배우는 시간되었다.
‘음식은 사랑입니다’라는 말처럼 아이들의 어린 시절, 내가 만든 음식은 그 안에 무엇을 담으려고 했을까?라는 질문을 해보았다. 우리 집 밥상은 사랑으로 준비했지만 그 안에는 긴장이 있었다. 남편과 함께 식사를 하는 날이면 더욱 그랬다. 마트에 가면 원산지와 함량이라고 적힌 부분까지 꼼꼼히 읽어가며 식자재의 구성 성분들을 확인했고, 어떤 첨가물이 들어있는지 따졌기 때문이다.
가족 나들이를 가는 날이면 일찍 일어나 김밥에 과일 도시락까지 챙겼다. 가는 길에는 유기농 매장에 들러 아이들이 먹고 싶은 것을 골라 담게 했다. 밖에 나가면 어디서 무엇을 먹어야 할지 망설이는 남편과, 눈에 보이는 대로 먹고 싶어 하는 아이들 사이에서 갈등을 줄이는 나름의 방법이었다. 이렇게 먹을 것을 선별하고 제약하는 부모의 통제 안에서 좋은 식습관이 만들어진다고 믿었다. 또한 그것이 중요한 부모 역할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극성도 아이들이 학교 급식을 먹기 시작하면서 점점 부모의 영역 밖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 아이들은 친구들과 편의점을 드나들었고, 배달 앱으로 야식을 주문하는 일이 자연스러운 시간이 되었다. 특히 대학에 들어가 집을 떠난 아들은 마치 오래 눌려 있던 억압에 대한 보상이라도 받으려는 듯 음식을 먹어 댔다. 어느 사이에 몸무게가 20킬로 넘게 늘어났다. 남편도 나도 속상한 마음에 잔소리로 쏟아냈지만, 그것이 생활이 되어버렸고,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지만 습관을 바꾸는 것은 쉽지가 않았다.
마음은 답답했고 우리가 놓친 것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어릴 적 입맛이 평생을 간다'는 말은 어디까지가 진실인지 묻고 싶었다. 돌아켜 보면 우리는 좋은 식재료를 골라 먹이는 일에만 너무 많은 힘을 쏟았다. 정작 아이들은 왜 그런 음식을 먹어야 하는지, 자기 몸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는데도 부모의 강한 의지로 그것이 가능하다고 믿었던 것이다.
입맛은 강요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찾아가는 것이라 생각하게 되었다. 자신의 생각과 경험을 통해 함께 그것도 자라나야 하는 것이었다. 부모는 아이가 시행착오 없이 꽃길만은 걷기 바라지만, 넘어져 봐야 비로소 그것이 내 것이 된다. 음식 또한 마찬가지였다. 몸이 무거워져서 오는 불편함을 경험하고, 건강의 위험 신호도 느끼면서 다시 다양한 시도와 선택을 통해 자기 몸에 맞는 음식을 찾아간다는 사실이다. 선재 스님 역시 먹는 일을 소홀히 하면서 일만 하다가 온 간경화로 시한부 진단을 받았고 그것을 치료하는 과정을 통해 음식에 대한 마음가짐이 달라졌다는 말씀을 하셨다.
다행히 아들은 직장 생활을 시작하면서 조금씩 자신의 식습관을 조절하기 시작했다. 탄수화물과 배달음식을 줄이고 몸을 다시 가볍게 만들었다. 그것은 부모의 간섭이 아닌 스스로의 선택과 절제로 얻어 것이라 더욱 의미가 있었다. 이 일로 나는 부모의 사랑은 아이가 아닌 나를 통제하면서 기다려주는 것이라는 말을 다시 새기게 되었다. 내가 알고 있는 답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자기 삶의 답을 찾아갈 수 있도록 말이다.
딸의 생일날, 선물로 공지영 작가의' 딸에게 주는 레시피'라는 책을 선물했다. 엄마가 딸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 속에 음식 이야기를, 몸이 지칠 때는 어떤 국을 끓여 먹으면 좋은지, 마음이 허전할 때는 어떤 음식이 위로가 되는지 등에 대해 담겨있다. "이 책이 엄마 마음과 닮아서 너에게 보낸다. 살다가 마음이 지치는 날, 따뜻한 한 끼로 스스로를 잘 돌볼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짧은 편지를 동봉하며 자신만의 밥상을 만들어가길 바랬다.
선재 스님은 식재료를 고르고 음식을 만드는 과정은 단지 배고픔을 해결하는 일이 아니라, 자연과 우주 그리고 다른 생명을 받아들이는 일이라고 말씀하셨다. 그 말을 떠올릴 때마다 내가 만든 음식이 결국 내 삶의 태도와 닮아 있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후다닥 만들어 빠르게 먹어치우는 음식이 아니라 좀 더 시간을 두고 조리하고 예쁜 그릇에 담아내는 밥상이 그립다. 내 몸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계절 따라 달라지는 식재료로 밥상을 차리고, 자연의 흐름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음식을 만들어 보고 싶다. 그래서 엄마 냄새나는 된장국, 햇볕이 남아 있는 나물 반찬, 지친 어깨를 다독여 줄 영양죽 등 따뜻한 이야기가 담겨있고, 몸과 마음을 살리는 나만의 레시피가 많아졌으면 좋겠다.
첫댓글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아이들 대하는 마음가짐을 다시 반성해봅니다.
최선희 선생님! 멋지시네요. 글을 읽는 내내 반성했어요. 바쁘다는 이유로 아이들에게 제대로 해 주지 못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