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4일 그리스도 왕 대축일>
미명(未明)과 자유(自由)
한 해가 저물어 간다. 뻔한 물음이지만, “산다는 것은 뭘까?”, “우리는 어디로 가는 걸까?” 끝이 없는 ‘시작’이 없고, 목적지가 없는 ‘길’이 없을 것이다. 우리가 세상에 태어났다면, 그래서 우리의 인생이 시작했다면, 그 끝은 어떤 것일까?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나는 진리를 증언하려고 태어났으며, 진리를 증언하려고 세상에 왔다.”(요한 18,37ㄷ) 하신다. 진리는 우리 자신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것 같다. “깨닫는다.”라는 것은, 우리의 운명(運命)이 아닐까? 많은 사람이 ‘진리’를 깨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다.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조차 알지 못한 채 삶을 마감한다. 그래도 괜찮은 걸까? 각자 자기 선택이겠지만, 예수님께서는 진리를 위해 태어나시고, 증언하시려고 세상에 오셨다고 하신다.
‘그리스도 왕’이라고 할 때, 왕은 절대적인 ‘진리’, 참된 ‘길’, ‘생명’, ‘구원’의 의미를 표현한다. 모든 이가 그리스도의 치하(治下)에서 참된 삶을 살아가고, 참된 길을 가게 되며 구원에 이른다. 그래서 그리스도는 세상의 왕과 다르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진리’를 발견하고, 그 진리에서 참된 생명을 얻으며, 그리스도 안에서 ‘길’을 찾았다. 어떤 이는 세상에서 ‘진리’를 찾아 헤매고 세상의 가르침을 따를지 몰라도,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에게서 삶의 가르침을 배운다.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다 보니 예수님의 가르침 안에서 세상에 대한 이치도 깨닫게 되고, 진리를 발견하며, 자신의 길을 찾게 된다. 그러나 어떤 이는 자신의 욕구와 욕망을 채우기 위하여 신앙생활을 하기도 한다. 신앙이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 된 것이다. 하느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에서 우리는 ‘진리’를 발견하고 삶의 이치를 깨닫는다.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알게 되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그 길을 찾는다.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은 ‘사랑’이었다. 하느님 아버지께서 ‘사랑’이심을 우리에게 알려주셨다. 우리는 사랑의 신비를 깨우치며 살아가는 것이 우리가 진리에서 벗어나지 않는 참된 길임을 안다.
사람이 세상을 살아감에 있어서 ‘진리’를 깨닫고 옳고 그름에 대하여 잘 깨우친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과업이다. 왜냐하면 우리 뇌의 구조가 ‘명료성’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삶에서 명료하게 이해되지 않거나 해석되지 않으면 뇌는 그것을 처리하지 못하고 ‘암묵적 기억’ 또는 ‘몸의 기억’으로 그 모호성이 잔류(殘留)하게 된다. 사람의 뇌는 어떻게든 ‘최종 처리’를 하여 기억의 저장고에 정리할 때 비로소 마침표를 찍는다. 즉, 그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 따라서 ‘최종 처리’되지 않고 모호한 상태로 ‘몸의 기억’으로 남으면 ‘최종 처리’를 기다리며 우리를 붙잡는다. 즉, 우리는 그것에 얽매이게 된다. 그러므로 ‘진리’를 깨달아 ‘나와 너 그리고 세상’에 대하여 명료하게 된다는 것은 ‘자유’를 얻는다는 것과 같은 의미요, 참된 생명의 길을 가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이 ‘진리’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한다. ‘서로 사랑하라’라는 그분의 가르침에서 깨우치게 된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나’를 발견하고, 나의 ‘길’을 발견한다. 그분의 가르침은 ‘나’를 손상하지 않으시면서 ‘나’를 완성하신다. 우리는 그분 안에서 ‘나’에 대하여 더욱 잘 알게 되었고, 세상에 대하여 더욱 잘 알게 되었다. 이제 우리는 더는 헤매지 않아도 되었다. 그분 안에서 우리는 명료하게 됨으로써 자유를 얻는다. 진정 우리의 왕이 누구인지 알아보게 되었다.
많은 사람이 ‘진리’를 찾아 여기저기 떠돌며 헤맨다. 많은 사람이 ‘자기’를 찾아 세상을 방황한다. 그들은 ‘미명(未明)’에 갇혀있다. 우리도 한때는 미명(未明)에 갇혀있었으나, 우리는 그리스도의 빛으로 세상을 보게 되었다. 그리스도의 빛이 우리를 깨우치고 이끌어 주셨다. 그분의 빛으로 우리는 ‘나와 너 그리고 세상’을 보았다. 그분의 빛으로 우리는 진리를 보게 되었다. 우리는 그분 안에서 자유롭게 해방된 것이다. 그분에게는 어떤 ‘모호함’도 ‘암묵적인 것’도 없이 명료하다. 그것은 ‘사랑’이었다. ‘사랑’만이 우리가 모호함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이요, ‘사랑’만이 우리를 미명에서 구원해줄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진정한 왕이시다. 그리스도 왕께서는 세상의 모든 민족이 ‘사랑의 진리’를 깨달아 ‘구원’에 이르기를 바라신다. 모든 사람을 ‘초대하는 왕’이시다. 당신의 백성이 ‘진리’를 깨달아 참된 ‘자유’를 살아가기를 원하시는 왕이시다. 인류 역사 어느 시대의 통치자가 이러했던가? 그분은 어떤 사람도 차별하지 않으신다. 부자도 가난한 사람도, 지식인도 평범한 사람도 그분의 눈에는 ‘지혜로운 자’와 ‘어리석은 자’ 두 부류만 보일 뿐이다. ‘진리’를 배우며 깨우쳐가는 사람과 ‘자기 욕망’에 젖어 ‘그냥’ 살아가는 사람, 두 부류뿐이다. 세상에서 아무리 잘난 사람도, 명망가, 재산가, 학자라 할지라도 ‘자기를 아는 사람’과 ‘자기를 모르는 사람’ 두 부류뿐이다.
자기 자신도 모르면서 어찌 세상을 알고 하느님을 알겠는가? 자기 자신도 사랑할 줄 모르면서 어찌 이웃을 사랑할 수 있겠는가? 자기를 알지 못하면서 어찌 자기 십자가를 짊어지겠는가? 세상은 ‘너 자신을 알라!’ 했는데, 그것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찾았다. 많은 사람이 ‘길’을 찾는데, 그 길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찾았다. 세상에는 여기에 진리가 있다, 저기에 진리가 있다고 외치는 소리가 많지만, 정작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전해졌다. 생명과 구원이 사랑 안에 있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고,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이의 진정한 왕이시다. 그분께서 증언하시는 진리는 ‘전에도 지금도, 미래에도’ 주님을 따르는 모든 그리스도인을 다스리신다. 그리스도인의 깨달음과 삶이 그리스도에 의해 통치되고 있다. 그분의 통치는 현재 진행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