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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시편 37편23~40절
제목 : 선을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
시인은 의인의 한 평생을 관찰한 후, 그가 결코 버림당하지 않음을 발견합니다.
그는 젊은 세대를 향해 하나님을 바라며 잠잠히 믿음의 길을 걷기를 권면합니다.
1. 의인의 길 생명의 길(23~31절)
1) 의인은 넘어져도 여호와가 붙드심(23~24절)
(1) 사람의 길은 하나님께서 정하십니다(23절)
“[23] 여호와께서 사람의 걸음을 정하시고 그의 길을 기뻐하시나니 ”
사람의 걸음을 정하시고 - 여기에서 '정하신다 '는 말은 '명하신다', '세우신다' '적절하게 하신다', '지도하신다'는 뜻입니다.
즉 인간의 삶의 여정은 하나님의 안내와 통제 아래 있다는 의미입니다.
영역본들은 '사람' 앞에 '선한'을 삽입하여 선한 사람으로 읽고 있는데 이것은 히브리어 원문상에는 없는 것입니다.
즉, 원문대로 하면 '선한'을 생략하고 '사람'으로만 적고 있는 개역 성경이 옳습니다.
그러나 문맥이 의미하는 대상이 '선한' 경건한 의인'임이 분명함을 고려할 때 '선한'을 삽입한 영역본도 취할만합니다.
하나님은 의인의 인생 여정을 계속해서 지도, 인도하시며 곁길로 나가려고 할때 통제하기도 하십니다.
기뻐하시나니. - 이에 해당하는 원어는 '하페츠'로서 문자적인 뜻은 '유지하다','보존하다', '기울다' 등입니다.
이는 의인의 여정에 대한 여호와의 계속된 관심, 지도를 드러내는 표현입니다(Anderson).
(2) 하나님께서는 붙들어 주십니다(24절)
“[24] 그는 넘어지나 아주 엎드러지지 아니함은 여호와께서 그의 손으로 붙드심이로다 ”
넘어지나 - 이에 해당하는 원어 '이폴'의 원형 '나팔'은 문자적으로 '한번 넘어지다', '떨어지다', '내동댕이치다' '던지다'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이 말이 의미하는 바는 의인이 죄에 빠져든다는 것이 아니라 때때로 불행해지고 실망하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한편, 이 묘사는 여행하는 나그네가 때로 땅위에 넘어지는 모습, 즉 항상 성공적이지만은 않은 인생의 여정을 드러내 주지만 그 넘어짐이 아주 종국적 멸망은 아닙니다.
아주 엎드러지지 아니함은 - 원어의 문자적인 뜻은 '땅에 몸이 닿을 정도로 넘어지지는 않는다'입니다.
즉, 다시는 일어설 수 없을 정도로 완전히 넘어지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의인이 역경이나 고통으로부터 완전히 해방되는 것은 아니나 그 고통이나 역경이 의인의 종국적 멸망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145:14; 잠24:16 ; 미7:8).
왜냐하면, 여호와의 손이 그와 함께 언제나 계시기 때문입니다.
2) 의인이 받을 복(25~29절)
(1) 의인이 버림을 당하거나 걸식함이 없습니다(25절)
“[25] 내가 어려서부터 늙기까지 의인이 버림을 당하거나 그의 자손이 걸식함을 보지 못하였도다 ”
이제 나이가 든 성인(成人)인 시편 기자는 자신의 경험에 의존하여서 의인이 하나님께 버림을 받거나 그 자식이 구걸하는 것을 결코 보지 못했다고 확인하고 있습니다.
이 주장을 문자 그대로 절대적인 의미로 받아들여서는 안 되는데 그것은 본 시편 기자가 의인의 고통에 관한 언급을 많이 했었기 때문입니다(7, 12, 9, 19, 8, 32, 33, 7, 40절 참조).
그러므로 그가 지적하는바 핵심은, 경건한 의인은 하나님에 의하여 영원히 버림받지 않는다는 사실일 것입니다(잠 10:3).
*잠10:3“여호와께서 의인의 영혼은 주리지 않게 하시나 악인의 소욕은 물리치시느니라”
(2) 그의 자손이 복을 받습니다(26절)
“[26] 그는 종일토록 은혜를 베풀고 꾸어 주니 그의 자손이 복을 받는도다”
종일토록 - 의인의 한 성품을 암시하는 부사입니다.
은혜를 베풀고 꾸어 주니 - 의인은 번성할 뿐 아니라 그의 풍성함을 사용하는 방법을 알고 있는 자입니다(Kirkpstrick).
그의 경우, '꾸어 주는 일'은 사업의 수단이 아니라 빈핍한 자를 돕는 방편입니다.
한편, 히브리의 율법에 의하면 가난한 자에게 빌려준 돈에 대한 이자는 받지 않도록 되어 있습니다(출 22:25).
그의 자손이 복을 받는 도다 - '그의 자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제라'는 '열매 맺다'에서 유래한 한 용어로 '열매', '자손', '아이' 등을 뜻합니다.
그런데 흑자는 이를 '그의 팔'로 봅니다(Dahood).
본절에서 그의 팔이 복을 받는다는 것은 그의 팔이 축복이 된다는 것을 나타냅니다(Anderson).
즉, 이는 팔이 축복의 근원 및 그 중재 역할을 한다는 것입니다(슥 8:13).
*슥8:13“유다 족속아, 이스라엘 족속아, 너희가 이방인 가운데에서 저주가 되었었으나 이제는 내가 너희를 구원하여 너희가 복이 되게 하리니 두려워하지 말지니라 손을 견고히 할지니라”
(3) 의인의 복은 확실합니다(27절)
“[27]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라 그리하면 영원히 살리니 ”
악에서 떠나. - 본절 하반절의 축복이 임하게 되는 조건입니다.
문장 구조가 34:14과 매우 유사하다(잠 3:7).
*잠3:7“스스로 지혜롭게 여기지 말지어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악을 떠날지어다”
영원히 살리니. - 몇몇 주석가들은 본 구절 바로 뒤에 '이 땅에'(29절) 라는 말을 첨가하고 있는데 이것은 바른 의미 파악에 도움이 된다 하겠습니다.
여기서 본 시편 기자는 영원한 생명보다는 조상의 유산을 소유하는 의인의 후손들을 생각하고 있습니다(102:28).
*시102:28“주의 종들의 자손은 항상 안전히 거주하고 그의 후손은 주 앞에 굳게 서리이다 하였도다”
(4) 영원히 보호를 받습니다(28절)
“[28] 여호와께서 정의를 사랑하시고 그의 성도를 버리지 아니하심이로다 그들은 영원히 보호를 받으나 악인의 자손은 끊어지리로다 ”
여호와께서 정의를 사랑하시고. - 여호와께서는 공평히 행하시며 당신의 종들에게 동일한 행위를 요구하십니다.
문맥에 비추어 좀 더 부연 설명하면 하나님께서는 정직하고 의로운 자에게는 번영의 상을 내리시지만 악인은 그 땅에서 끊어 버리신다는 것입니다(33:5).
*시33:5“그는 공의와 정의를 사랑하심이여 세상에는 여호와의 인자하심이 충만하도다”
그의 성도 - (하시다우). 이에 해당하는 원형'하시드'는 '인자한', '경건한', '거룩한'이란 의미입니다.
그러기에 본 표현은 '그의 충성된 성도의'(30:4 ; 86:2)을 뜻한다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영원히 보호를 받으나 악인의 자손은 끊어지리로다. - 본 구절은 의미상으로 분명하게 의인과 악인을 대비시키고 있습니다.
따라서 어떤 학자들은 개역 성경의 '그들'을 '의인(the tighteous)으로 대치시
키고 있습니다.
그러나 원문이 그것을 분명히 생략하고 있기 때문에 비록 의미상으로는 그것이 옳다 해도 원문 그대로 놓아두고 수정하지 않는 것이 옳은 듯합니다.
(5) 의인이 땅을 차지합니다(29절)
“[29] 의인이 땅을 차지함이여 거기서 영원히 살리로다 ”
의인이 땅을 차지함이여. - '차지하다'에 해당하는 '야라쉬'는 '차지하다,''점유하다', '상속하다'란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의인을 상속자로 삼으신다는 것은 그들을 당신의 자녀로 취급하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자녀로 삼는 상속의 개념은 창 12장에서 일방적으로 아브라함을 그의 자녀로 삼으시고 그의 상속자로 인치심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3, 18, 27절 ; 창 12:1-4).
3) 지혜와 정의에 착념하는 여인(30~31절)
(1) 의인의 입은 지혜로우며 그의 혀는 정의를 말합니다(30절)
“[30] 의인의 입은 지혜로우며 그의 혀는 정의를 말하며 ”
의인의 입은 지혜로우며. - 이것은 의인의 말 속에서 드러나는 진지함, 정직함, 진실됨, 순결함, 그리고 태도의 친절성, 곧음 등을가리킵니다.
이와 같은 특성은 그가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땅 위에서 번영하고 장수하는 이유 중의 하나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가 이와 같은 모습을 드러낼 수 있는 이유는 여호와 경외에 바탕을 둔 바 하나님과 바른 관계성 속에서의 삶의 경험 때문입니다(잠 1:7, Anderson).
*잠1:7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거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
(2) 그의 마음에 하나님의 법이 있으니 실족함이 없습니다(31절)
“[31] 그의 마음에는 하나님의 법이 있으니 그의 걸음은 실족함이 없으리로다”
마음에는 하나님의 법이 있으니. - 이것은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 마음에 기록하여... "(렘 31:33 ; 겔 36:27 참조)라고 적고 있는 예레미야의 새 언약 기사를 상기시키는 표현입니다.
율법을 돌 위에 새기거나 두루마리 위에 기록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율법은 사람의 마음의 비에 새겨져야만 합니다.
그래서 그의 전 생애가 더 이상 자신의 마음의 완고함에 의해서 결정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율법에 의해서만 결정되어야 합니다(Anderson).
율법이 그 마음의 비에 새겨져 있는 사람, 그 사람을 우리는 하나님의 법을 사랑하고 그 법을 묵상하고 그 법대로 사는 사람이라고 일컫습니다(Barnes).
그의 걸음은 실족함이 없으리로다. - (로 티마드 아쉬라이우). 원어의 문자적인 뜻은 '그 가는 것이 미끄러지지 않으리라'는 것입니다.
의인의 여정(旅程)이 분명하고 곧으리라는 것과 넘어지지 않고 그 삶이 번영하고 행복할 것을 말합니다.
그 이유는 그가 자신의 법을 만들려고 애쓰지 않고 하나님과 그분의 법에 인도 받으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2. 악인과 의인의 결말(32~40절)
1) 멸망하는 악인의 세력과 땅을 차지하는 의인(32~36절)
(1) 악인은 의인을 엿보아 살해할 기회를 찾습니다(32절)
“[32] 악인이 의인을 엿보아 살해할 기회를 찾으나 ”
악인이 의인을 엿보아. - '엿보아'(초페)의 원형 '차파'는 '면밀히 관찰하다', '뚫어지게 쳐다보다', '먼 곳을 응시하다'로서 깊은 탐색의 의미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악인이 의인을 깊이 탐색하는 이유는 그의 범죄 행위의 완전성을 위해서일 것입니다.
즉, 악인이 의인의 소유를 빼앗을 목적으로 의인을 살해한 후(왕상 21:8-10)자신의 범법(犯法) 사실이 드러나지 않도록 음모의 과정에 있어서 신중을 기하기 위하여 의인을 깊이 탐색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본절에 분명히 나와 있지 않는 악인의 의인 살해 목적을 소유 획득이라고 보는 이유는 본 시편 전체가 반복적으로 땅의 소유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기 때문입니다(9, 11, 29, 34절).
한편, 12-5절에 이어 본절은 악인의 의인에 대한 핍박이 사실을 반복하고 있는데 여기서 우리는 악인의 의인 핍박이 성경에서 일반화된 사실임을 짐작할수 있습니다.
역사적으로도 이 사실은 선지자들, 사도들, 교회사 속의 많은 순교자들의 경우 그리고 주님의 경우를 통하여 진실로 입증되었습니다.
(2) 하나님은 의인을 악인의 손에 버려두지 않으십니다(33절)
“[33] 여호와는 그를 악인의 손에 버려 두지 아니하시고 재판 때에도 정죄하지 아니하시리로다 ”
여호와는 그를 악인의 손에 버려 두지 아니하시고. - 하나님께서는 악인이 목적을 성취하도록 의인을 그 세력 하에 두지 않고 구원하여 내신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본 시편 기자가 나타내고자 하는 바는 하나님께서 의인들을 악인의 악한 의도로부터 구원하는 사실이 금생(今生)에서도 실제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러한 사실이 현세에서 항상 이루어진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일반적인 경향입니다.
즉 신적(新的) 간섭 및 조정의 경향은 일반적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대체적으로 신적 간섭 및 조정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는 자들을 향한 유리한 덕목이 됩니다.
그것은 금생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의 특권입니다.
그런데 그것은 미래의 세상에서는 절대적이고 보편적인 사실, 진실이 될 것입니다.
의인은 모두 그리고 영원히 악인의 영향력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 있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Barnes).
재판 때에도 정죄하지 아니하시리로다. - 문자 그대로 의인이 판결을 받았을 때 그를 죄인으로 간주하지 않으신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두 가지 경우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그의 동료들에 의하여 의인에게 형(型)의 선고가 내려져서 그가 공적(公的)으로 죄인임이 인정되는 경우에도 하나님은 그를 죄인으로 인정하지 않으신다는 것이 좀 더 타당한데, 그것은 문맥의 분의기가 내세보다는 현세 지향 적이기 때문입니다.
(3) 하나님을 바라고 도를 지키라(34절)
“[34] 여호와를 바라고 그의 도를 지키라 그리하면 네가 땅을 차지하게 하실 것이라 악인이 끊어질 때에 네가 똑똑히 보리로다”
하나님께서 의인을 붙드시고 보호하시어 구원하시니 하나님만 바라고 그도를 지키라는 권면입니다.
여기 “바란다”는 말은 25:3, 5, 21, 27:14에서 “바란다”고 한 말과 본편 9절에서 “기대한다”고 한 말과 같은 말입니다.
“기다린다”는 뜻으로서 하나님을 대망하는 소망을 뜻합니다(25:3).
하나님을 소망하는 자는 하나님의 뜻을 따르고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죄를 짓지 않는다.
이러한 자에게는 또한 하나님께서 신실 되이 구원하여 주십니다.
그러므로 땅을 차지하게 하신다고 한 것입니다.
그러나 악인은 하나님께서 진노로 멸하시기 때문에 끊어지는데 그 끊어질 때에 네가 목도한다고 하였습니다.
악인의 끊어짐을 목격한다는 것은 그 멸망이 확실함과 불원 장래에 임한다근 뜻입니다.
죽기 전에 본다는 것은 의인의 긍극적 구원보다 악인의 멸망이 앞선다는 것이니 출애굽한 이스라엘이 따라 나온 애굽 군대의 멸망을 홍해를 건너자마자 목격하였으나(출14:30) 얼마나 속히 임하 것이었음을 그들은 목도한 것입니다.
(4) 악인의 형통은 일시적입니다(35~36절)
“[35] 내가 악인의 큰 세력을 본즉 그 본래의 땅에 서 있는 나무 잎이 무성함과 같으나 [36] 내가 지나갈 때에 그는 없어졌나니 내가 찾아도 발견하지 못하였도다”
큰 세력 - (아리츠). 원래의 의미는 '굉장한', '분발케 하는 힘'으로서 하나님이나(렘 20:11) 강한 열방들에 적용되었습니다(사 25:3).
그러나 이 용어는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기도 하는데 그럴 때에는 폭력, 맹렬함, 무법함, 폭정 등의 의미로 나타납니다(욥 15:20 ; 27:13 ; 사 13:11 ; 25:4,5).
한편, 여기서 이 단어는 '번영하고 강한 힘을 가진 자'를 말하나 그 영향력이 선을 베푸는 목적보다는 불의, 억압, 그리고 악을 시행할 목적으로 사용하는 악한자의 세력을 가리킵니다.
나무 잎이 무성함과 같으나 - 원어를 문자적으로 직역하면 '푸른 월계수 나무'입니다.
그러나 '월계수 나무'로 번역된 히브리어 '에즈라'가 문자 그대로의 월계수 나무인지는 원문상 분명하지 않습니다.
이 용어는 '자라'에서 유래했는데 그 뜻은 '일어나다' 혹은 '자라나다'입니다.
그리고 명사로 사용되면 '그 토지에서 자라난 나무'를 가리킵니다.
특히 명사로 그 의미가 쓰일 경우는 그 본토에서 자라난, 이곳저곳으로 한 번도 옮겨 다닌 적이 없는 나무를 가리킵니다.
그래서 이 나무는 본토인(외국인이 아닌)을 가리킬 수도 있습니다(레 16:29 ; 18:26).
여기 소개된 나무는 그 원래의 토양에 뿌리를 박고 있기 때문에 옮겨 다닌 나무보다 더욱 튼튼하고 큰 성장을 이를 나무입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이 단어가 사람에게 적용될 경우, 번영하고 힘이 강한 자를 가리킬 것입니다.
본절에서는 한 곳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모든 세력을 키우되 한 번도 좌절하거나 실패하지 않고 승승장구한 사람을 가리키는 것 같습니다.
그는 평지풍파(平地風波)나 실패가 없는 조용한 번성만을 이루어 왔기 때문에 모든 것이 안전하고 든든한 것으로 여길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의 종말은 다음절에서 시편 기자가 말하는 그런 식의 종말이 될 것입니다.
한편, 맛소라 본문(MT)을 수정한 70인역(lxx)을 따른 RSV, AV 등은 여기 '푸른 월계수 나무'를 '레바논의 백향목'으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평균 키가300미터 이상이며 고급 목재로 인기를 끄는 나무이기
때문에 힘과 영광의 상징으로 흔히 사용되는 점을 고려하여 이렇게 번역한 것은 문맥이 지시하는 의미와 비교할 때 인정해 줄 만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문을 수정했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는 받아들이기가 곤란합니다.
내가 지나갈 때에 그는 없어졌나니 - (와야보르에하네예이넨누). 직역하면 '그가 소멸되었다. 보라 '그가 소멸되었다. 보라 그가 없도다'입니다.
물론 본 구절이 가리키는 대상은 문법적으로 따지면 인간과 나무 두 경우에다 적용되지만 여기서는 인간을 가리킵니다.
여기서의 인간이란 악인을 가리키는데, 그의 경험과 영예로 미루어 볼 때 영원히 그 땅에서 살 줄 알았으나 결국 그는 죽어 사라져 버렸다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원문에 사용된 히브리어 '하네'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 어떤 일을 목격했을 때 사용하는 감탄사인데 이것은 여기에서 악인이 그 땅으로부터 분리된 사실을 강조하기 위하여 사용되었기 때문에 본절이 의도한 의미가 강하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찾아도 발견하지 못하였도다 - 악인이 완전히 소멸되었다는 사실을 확증하려는 목적으로 사용된 말입니다 (Barnes).
2) 악인들의 끊인 미래와 의인들의 구원(37~40절)
(1) 의인과 악인의 결국(37~38절)
. “[37] 온전한 사람을 살피고 정직한 자를 볼지어다 모든 화평한 자의 미래는 평안이로다 [38] 범죄자들은 함께 멸망하리니 악인의 미래는 끊어질 것이나 ”
화평한 자의 미래는 평안이로다 -'곁국 '(아하리트)은 '종말','끝'이라는 뜻입니다.
이 용어의 종말론적 성격은 73:17 ; 창 49:1 ; 민 23:10 ; 24:20; 사 2:2 ; 단 10:14 ; 미 4:1 등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또한 '평안'은 참신앙의 결과를 암시하는 데 자주 사용되는 용어입니다.
이 말은 하나님과의 화해, 그리고 그 분과의 우애, 하늘의 소망으로 야기되는 평온, 정돈됨, 행복 등을 가리키기도 해 참 평안의 의미를 잘 나타내 줍니다(요 14:27 ; 16:33 ; 롬 5:1 ; 8:6 ; 갈 5:22 ; 빌 4:7).
한편, 이 용어는 특별히혀 여기에서 신앙의 결과로서 죽을 때 조성되는 의인의 평온, 완전한 평화, 또한 영원한 평화가 있을 미래의 완전한 구원의 모습(상태)을 나타내 준다고 볼 수 있습니다(Barnes).
통상적으로 경건한 자는 소망과 하나님의 임종을 맞으며 그들은 죽음 너머의 영원한 행복을 맛보게 됩니다.
범죄자들은 함께 멸망하리니 -'함께'(야흐다우)의 문자적인 뜻은 '그들의 연합체, 공동체'입니다.
이것은 어떤 한 목적을 의하여 애쓰는 (신 25:11)동일한 한 장소(창 18:6), 혹은 한 시간(4:8)에 모인 하나로서의 전채(14:3)없다는 것입니다.
물론 본절은 그들이 동일한 한 장소에서 같은 시각에 똑같은 형태의 징벌을 받아 멸망한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분명히 밝히는 것은 악인은 동일하게 그 종국이 멸망이라는 사실입니다(Barnes).
악인의 미래 - 여기의 '미래'(아하리트)의 문자적인 뜻은 '끝'입니다.
끝이 끊어진다는 표현에 대한 해석으로는 '미래가 없다'(Weiser), '번영이 사라진다'(Anderson), '그 후손이 없다' 등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에 있어서 한 가문의 후손이 계속 이어지는 것이 큰 복이었고 따라서 그 후손 전체가 단절되는 것이 가장 큰 불행이었다는 사실을 미루어 볼 때, 세 번째 해석이 타당해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문맥의 종말론적 성격을 감안할 때 미래 세계, 즉 주님 재림 시대에 있어서 악인은 영원히 소망과 행복으로부터 단절된다는 의미로 보는 것이 바람직하다 하겠습니다.
(2) 하나님의 구원하심이 신실함(39~40절)
“[39] 의인들의 구원은 여호와로부터 오나니 그는 환난 때에 그들의 요새이시로다 [40] 여호와께서 그들을 도와 건지시되 악인들에게서 건져 구원하심은 그를 의지한 까닭이로다”
의인들의 구원은 여호와로부터 오나니. - 이 구절에 대한 해석에 있어서 그 강조점은 대체적으로 둘로 나누어집니다.
첫째, 악인은 끊어지는 반면 의인은 구원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즉, 악인의 끊어짐에 비교한 의인의 구원에 강조를 두는 것인데 이것은 시
편에서 자주 사용하는 대구법 중심의 해석입니다.
둘째, 의인의 구원 사실보다는 그 구원의 근원 및 주체가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에 강조를 두는 것입니다.
이것은 원문에 '여호와 앞에 출처, 기원을 나타내는 전치사 '메'가 사용되었다는 것과 이어서 그 구원의 출처되신 하나님에 대한 부연 설명이 있다는 것을 중시한 해석입니다.
문맥을 취하여도 무리는 없으며 이 두 해석 중 어느 해석을 위하여도 무리는 없으며 두 해석은 상호 보완적인 성격이 있으므로 둘 다를 취하여 사용해도 좋을 듯 싶습니다.
구원하심은 그를 의지한 까닭이로다. - '그를 의지한 까닭이로다'(키 하수보)의 뜻은 '그에게서 피할 곳을 찾았기 때문이다'입니다.
본 시편 기자는 여호와께서 당신에게 피난처를 구하려고 하는 자들을 도우시고 구원하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확증함으로써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시를 읽거나 듣는 이에게 오직 의의 길로 행하고 오직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만이 최선이라는 사실을 강력히 암시해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23,24절 사람의 걸음을 붙드시고 기뻐하시는 길로 인도하십니다.
그러므로 자기 길을 주께 의탁한 이들은 늘 안전하고 형통합니다.
역경을 만나 비틀거려도 주님이 붙들고 계시니 다시 일어날 수 있습니다.
인생의 험한 여정은 결코 홀로 감당할 수 없습니다.
세상 헛된 도움을 의지하면 실망만 커질 뿐입니다.
오직 주님을 인생의 든든한 동반자로 삼으십시오.
25-33절 정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은 성도가 악한 세상에 물들지 않고 세상을 정의로 물들이기를 바라십니다.
그러므로 ‘성도’(28절)의 소명은 하나님의 법을 마음에 새기고 정의를 실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악인의 손에서 보호하시고 영원히 땅을 차지하도록 복을 내려주십니다.
39,40절 환난 때에 의인을 구원하시고 보호하십니다.
의인의 삶에도 고난이 있습니다.
악한 자들은 의인이 평안히 살도록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의인의 곁에는 주님이 계십니다.
하나님이 그를 악인의 손에서 건지시고 피난처가 되시며, 요새가 되어 보호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결국에는 악인을 제거하심으로 의인을 온전한 평안으로 인도하실 것입니다(35-37절).
나(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25-28절 시인이 평생 살아오면서 관찰한 결론은 하나님이 의인을 결코 버리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의인의 삶은 화려하지 않고, 극적인 성공도 없습니다.
그저 적은 소유로 은혜를 베풀고 선을 행할 뿐이지만, 그들의 삶은 풍요롭고 평안합니다.
하나님이 의인을 이처럼 돌보신다는 사실을 깨달은 노년의 시인은 ‘젊은 세대’(23절, 사람)를 향해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라”고 권면합니다.
자녀들에게, 혹은 다음세대에 신앙의 선배로서 어떤 말을 남기고 싶습니까?
34-38절 시인은 악인의 결국을 똑똑히 보고, 의인의 삶을 살피라고 권면합니다.
악인의 형통만 잠시 볼 것이 아니라, 그들의 몰락도 눈여겨보라는 말입니다. 또 핍박당하는 의인만 보지 말고, 그들의 평생에 걸쳐 누리는 평안에 주목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보고 싶은 부분만 애써 보려 하지 않는다면, 악인과 의인의 평생을 통해 교훈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기도]
공동체-악인을 벌하시고 의인을 복 주시는 주님을 잠잠히 기다리며 선을 행하는 일상을 살게 하소서.
열방-아프리카 동부의 섬나라 코모로(Comoros)는 이상기온과 과도한 개발로 극심한 물 부족을 겪고 있다.
코모로 정부와 사회가 힘을 모아 물 부족 문제를 극복하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