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야'는 이탈리아의 3대 거장(펠리니, 안토니오니와 함께)으로 손꼽히는 루키노 비스콘티 감독의 57년도 작품입니다.
80년대 우리나라에 개봉되어 큰 흥행을 기록했던 테일러 핵포드 감독의 댄스영화 '백야'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작품이죠. 제목 '백야'는 주인공 남녀가 만나던 마지막 날 밤에 하얀 눈이 내리고, 이 눈내린 밤을 표현한 제목이죠. 원작은 러시아의 대 문호인 도스토예프스키의 단편소설입니다.
오스트리아 출신의 세계적인 여배우 '마리아 셀'이 등장한 작품입니다. 마리아 셀의 작품은 쉽게 보기 어렵습니다.
맥시밀리안 셀의 누나이기도 한 그녀는 '사랑과 죽음의 마지막 다리'로 칸영화제, '목로주점'으로 베니스영화제
여우상을 받기도 했던 명배우죠. 영어,독일어,이탈리아어, 불어 등 4개국어에 능통하여 다국적 배우로 활동했습니다. 우리나라에 알려진 작품으로는 '카라마조프의 형제' '교수목(Hanging Tree)' '여자의 일생' '고엽' 등이 있고, 목로
주점이 가장 많이 알려진 작품이죠. 글렌 포드와 공연한 '씨마론' 도 있었고, 슈퍼맨에서 슈퍼맨의 어머니 역으로
단역출연하기도 했습니다. 마리아 셀은 품위있는 스타일도 아니고, 관능적인 스타일도 아닙니다. 뭔가 친근감을
주고 약간의 백치미인듯한 웃음, 그리고 웃을 때 천진스럽게 환한 미소를 띄우는 독특한 외모로 진지하거나 무거운
느낌을 안주는 분위기죠. 백야 에서는 이런 마리아 셀의 분위기가 잘 나타났습니다.
밤에 우연히 만난 울고 있는 여인에게 작업을 걸기 시작하는 마르첼로 마스트로얀니.
이렇게 이 남자의 '헌팅'은 시작됩니다.
분위기도 잡아보고, 헌팅은 소기의 목적을 다룰 듯 합니다.
'집에 데려다 주겠소' '술 한잔 합시다' 남자들이 흔히 쓰는 상투적인
전법으로 접근하는 마르첼로 마스트로얀니. 연애기술엔 꽝인 남자로 나온다.
작업이 때론 통할 때도 있다.
굉장히 단순하고 간단한 스토리이며 지극히 한정된 공간에서 펼쳐지는 3일밤 동안의 이야기죠. 어떤 가난한 직장인
마리오(마르첼로 마스트로얀니)는 자신의 하숙집이 있는 이탈리아의 어느 거리에서 한밤중에 울고 있는 젊은 여인
나탈리아(마리아 셀)을 발견합니다. 호기심에 그녀를 따라가게 되고, 그녀의 사연을 듣게 되고, 연민과 애정을 반반씩
느끼며 그녀를 사랑하게 됩니다. 나탈리아는 할머니와 함께 살고 있는 처녀인데 자기 집에 잠시 하숙했던 중년의
남자(장 마레)를 사랑했었고, 그가 떠난고 1년뒤에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했는데 1년이 되고 밤에 매일 다리위에서
그를 기다리며 울고 있었던 것이죠.
이런 동화같은 이야기를 듣고 마리오는 바보 같은 기다림이라고 충고하지만, 마음 한편으로는 자신이 그 남자를
대신하여 나탈리아의 마음을 사로잡게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영화의 내용은 이런 두 남녀의 심야의 만남과
대화로 이끌어집니다. 감정을 종잡을 수 없는 여인, 웃었다가 울었다가, 마리오를 피해서 달아나기도 하고,
쫓아오기도 하고, 그에게 마음을 열듯 하다가 다시 옛 남자를 생각하며 슬퍼하고... 이런 나탈리아를 답답해
하면서도 마리오는 점점 그녀에게 빠져들어갑니다.
단 3일동안 펼쳐지는 두 남녀의 짧은 만남의 이야기는 마지막 날 하얀 눈이 내리면서 지저분하고 황량하게 느껴졌던
이탈리아 지방의 좁은 밤 거리를 아름답고 동화처럼 꾸며 줍니다. 꽤 심각한 특유의 스타일의 마르첼로 마스트로
얀니와 감정의 변화가 크고 속마음을 종잡기 어려운 마리아 셀의 적절한 조화가 단순하기 짝이 없는 영화의
지루함을 풀어줍니다. 두 남녀는 과연 사랑을 이룰 것인가? 아니면 마리아 셀이 기다리던 남자를 만날 것인가? 하얀 밤길을 뒤돌아서서 걸어가는 마르첼로 마스트로얀니의 모습이 무척이나 고독하게 느껴집니다. 가난하고
외로운 사람들의 만남과 사랑이야기죠. 영화의 90%는 밤에 벌어지는 이야기입니다. 낯선 남녀가 우연히 만나서
묘한 느낌으로 빠져들어가는 설정은 우리나라 영화인 '안개'와도 유사합니다.
술도 한잔 하면서 춤도 같이 추는 데 성공한 남자, 여기까지 진행되면 일단 70%는 작업에 성공한 것이다.
작업이 다 마무리되어 가는데 눈까지 내려주면 정말 금상첨화.
그러나 결국 작업에 실패하여 차이면 이렇게 쓸쓸한 뒷모습으로 걸어가는 고독한 남자가 된다.
쳐다보지 마라(Don't Look Now)에서도 유사한 풍경이 나왔지만 좁고 미로같은 도로와 운하, 다리 등이 얽혀진 이탈리아의 거리 모습은 이런 남녀의 방황과 숨바꼭질 같은 영화에 어울리는 배경이기도 합니다.
길에서 우연히 만나서 사랑을 하게 되는 경험은 사실 영화속에서는 쉽게 일어나도 실제 생활에서는 흔치 않는
이야기죠. 이런 것을 소위 옛말로 '헌팅'이라고 하죠. 이런 '헌팅'의 경험에서 '추억'을 간직하게 된 사람들은 얼마나
있을까요? 청춘이 가기전에 해 볼 만한 경험이라고 생각됩니다. 물론 대단히 아쉽게도 대부분의 '헌팅'을 시도하는 남자들은 그 날 밤 모텔에 데려가서 하룻밤 어떻게 해보는 것이 목적이지만. 백야는 가난한 어떤 하숙
하는 청년의 '헌팅의 추억'에 대한 영화입니다.1957년 베니스 영화제 은사자상 수상작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