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봄은 갑자기 피는 꽃처럼 피어났다 가버리는 바람같은 계절이라 화무십일홍 花無十一紅 같은 봄산길을 찻아 장성 시루봉 능선을 다녀왔다.
오늘도 산을 올라간다. 산에 오면 하는 일은 당연히 처음부터 올라가는 것이다.
언젠가 낚시를 가장 좋아하는 친한 친구가 나에게 물었다. 늘 듣는 바보같은 질문이었다. " 산에 왜가는데? 산에 가면 내려 올것인데 뭐하러 가는데? " 바보가 바보한테 하는 말은 늘 바보같은 말이다. 나도 남들이 보면 바보걑으니 잘살아는가 보다 한다. 불가에서 우리는 항상 중생 衆生 이라 한다. 중생이란 불가에서 부처의 구제대상이 되는 깨달음을 얻지 못한 사람이나 생명을 지닌 모든 존재라는 것이다. 바보는 무엇인지 모른지만 어리석고 못나게 구는 사람을 얕잡아 부르는 말이다. 언젠가 들어본 말중에 가장 흥미있는 말은' 바보는 행복하다.' 라는 말이다. 바보가 행복을 아는지 그것도 궁굼하지만 굳이 행복을 찻기나 하는지도 궁굼했다. 낚시 좋아하는 친구는 내가 하는 말을 언젠가 듣고 그런적도 있다고 했다. " 낚시는 뭐하러 가냐? 시장에 가면 고기 천지인데 그돈으로 좋은 고기 싸서 먹지! " 하였다. 언젠가 비싼돈을 들여서 낚시를 갔는데 정말 고기 한마리 잡지도 못하고 왔다고 했다. 그래서 근처 횟집에 가서 고기 몇마리 사가지고 집에 간적이 있다고 했다. 바보는 하는 짓이 늘 바보같다. 그것이 비보가 되어야 즐거운 일이다. 오늘도 바보같이 갔던 산을 처음부터 또 올라간다. 나보다 더 바보같은 사람도 있다. 허영호는 에베레스트 를 가장 많이 오른 한국인이다. 기장 존경하는 바보같은 산악인이다. 먼저간 동갑내기 이다.
어릴때 동네에는 항상 아이들이 놀리는 바보가 있었다. 항상 혼자서 나이가 들었지만 늘 웃고 다니고 누구의 집에서 사는지 시장안밖을 돌아다니다 어린 아이들의 놀림감이 되었다. 누구를 헤치거나 누구를
괴롭히거나 하지도 않고 뮐하는지 늘 그렇게 오고 갈뿐인데 그땐 온 동네 아이들이 많은 시절이라 늘 놀림감이 되었고 지나가는 어른들이 우리를 꾸짖어도 놀이의 대상이 되엤다. 그런데 항상 골목이나 어느곳에서 만나면 늘 웃음을 짓고 바라보는 눈빛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우리가 만든 하나의 울타리에 갇혀 사는 바보들 인지 알수가 없다. 그중에서 우리가 모르는 분야를 처음 개발한 사람은 이 모든 바보들을 따라 다니게 하는 세상에 산다.
우리가 정박아라든지 정신이상자리는 사람들은 우리가 모르는 분야에 사는지 모른다. 우리가 이는 것은 사차원이다. 오차원이나 육차원이나 그보다 더한 차원을 아는지 모른다. 언젠가 인도의 곱셈중에
십구단이 있다는 것을 알고 놀랜적이 있었다.
그런데, 구십 구단도 존재한다는 것이다.
돈을 벌려면 비보가 되어야 한다.돈을 벌려면 변함없이 한길만 가야한다. 다른 것을 할줄 모르고 오직 하나만 하면된다. 그러면 히나밖에 모르는 바보들이 그것에 길들여 지면 비슷한 바보들을 죽자 살자 그것에 빠져 데리고 온다. 나중에는 결국 그 덕분에 줄을 서고 심하면 이용하지도 못하는 처지가 되고 30 ᆢ40년이상 평생 다니고 있는 것이다.
나도 오래동안 고향에 사는 바보이다. 젊은 날 부터 가는 단골집만 다닌다. 가장 바보니까 그런가 보다 한다. 결혼 초에 모친 입맛에 삼십년 가까이 길들여 져서 바보가 하는 짓이
쉽게 바뀌지 않는 버릇으로 속앓이 아닌 속 앓이 하고 살았다. 참고로 배우자는 요리를 잘한다. 단지 바보같은 배우자 때문에 종종
신경을 거슬리지만 바보를 데리고 사는 이유로 많이 참는 것같다. 먹는 것이 제일인
인간들은 입맛에 길들여 지면 그것으로 평상을 바보되어 한곳밖에 갈줄 모르는 것이다. 그래서, 명품 술이나 커피나 와인이나
모든 것을 비싸도 먹고 사는 것이다. 하나 밖에 할줄 모르는 바보에게 늘 기대어 사는 바보가 가장 행복한 바보라는 주문을 평생을 하고 살고 대대로 물려주고 싶은 마음에 가족들을 동원하는 것이다. 요새는 자랑하는 짓을 할수있는 미디어로 난리치는 세상이니
바보들은 더욱 바보가 되는 것이다. 나중에 가지도 못하는 곳이나 되어도 좋아한다.
바보들이니 어쩔수 없다. 나도 자주 가는 단골집이 젊은 바보들 때문에 못가는 처지가 되어도 어쩔수 없다. 누가 뮈라해도 공돈을 하나 하나씩 주는 바보들이 바보들을 먹여 살린다. 대대로 어쩔수 없다. 바보들 이니까?
바보는 누가 가장 바보인가? 바보들은 바보니까 잘 모른다. 모두가 바보인데 바보를 알수 있는가? 한명의 똑 바른 사람이 있어면 바보들을 바보라 할수있나? 어렵다. 봉사나라 이야기 처럼 혼자 눈 떠있어면 병신소리 듣는다. 외눈 나라에서 두눈을 멀쩡히 뜨고 있어면 기형이다. 지구에서는 지나고 나면 모두가 바보인줄 아는 것이다.
물론 바보가 아니라 하는 이도 있지만 바보가 바보라고 하는 경우는 드물다. 뛰어난 알렉산더 대왕도 다오게네스를 찻아가서는
"필요한 것을 다 들어주겠다"" 는 대왕의 말에
햇빛을 가리지 말아 달라 는 소리에 세상에서
가장 바보스러운 사람이 되었다. 자기에게 필요 없는 짓은 바보같은 짓이다. 크나큰 대륙을 정복하고 위대한 칭호를 받아도 지나고 나면 평생 바보같은 짓을 하다 젊은 나이에 죽는 일이다. 히틀러도 징기스칸도
지나고 나면 가장 바보이고 따르는 무리들이나 열광 하는 이들도 모두 바보이고
지나고 나면 독재자이고 잔인한 폭력자일 뿐이다. 평생을 따라 다니는 인간들은 미친자 이고 가장 바보들이다. 바보들도 가장 바보스러운 자를 만들어 따라 다니는 것이 세상일이다. 인간은 한발은 죽음 한발은 삶을 향해가는 나그네이다. 누구든지 죽음의 절벽으로 가지 않는 이는 없다. 죽자 살자 바보 세상에서 바보가되어 만들어놓은 세상에서 돈울 벌고 일을하고 죽기전 까지 돈을 쥐고 있다. 죽을때 아무것도 없이 죽는이는 아무도 없다. 바보짓을 하여 이루어 놓았다는 것들을 놓아두고 죽는다. 이름하나 정도부터 빚이나 재산이나 다른이들에게는 필요없는 것들을 잔뜩 남기고 가는이들이 대부분이다. 공자나 부처나 예수나 도인이나 평생을 바보들 세상에서 바보아닌 짓을 찻다가 죽어버렸다. 그것을 받아서 지금도 바보아닌 짓으로 선동하고 따르는 이들로 인해 먹고살다 죽는다. 이세상이 바보들의 세상이니 바보가 아니면 바보가 되는 것이다.
바보들 끼리 아무리 떠들고 옳고 그르고 떠들어도 결국은 바보들 짓이다. 나도 하루 종일 책이나 보고 주말에 산을 가니 나를 가장 바보스럽다 한다. 자기에게 필요 없는 짓을 하는 것은 당연히 바보들이나 하는 짓이다. 나도 바보인줄 벌써 알고있다.
오늘 가장 바보같은 친구가 전화받고 바보 만나서 술 한잔 나누고 지나면 아무쓸모 없는 이야기로 웃고 즐긴다. 집사람이 정신나갔다는 말을 들어도 바보는 어쩔수 없다. 그러니 바보는 즐겁다. 주말에 또 산을 가야하니 어쩔수 없다. 그것이 인생이고 삶이다.
인간은 무슨일이든 할려고 한다. 그것은 유전인자가 그렇게 만들어진 까닭도 있지만
조금이라도 무엇이든지 변하지 않어면 죽을 정도로 생존거리를 만들어야 한다. 그것은 인간이 노동이나 새로움으로 마치 창조하는 신을 닮을려는 이유도 있고 무언가 이루고 나면 오는 만족감으로 쉴수있는 보상을 가지는 안락감으로 남들에게 보일려는 우월감도 있다. 마치 들어도 모르는 답답한 연설을 듣는 아이들 같이 인간은 심심하면 새로운 것을 찻아가야하는 운명을 지닌것 처럼 갇히면 마음이나 행동이나 풀려나는 억압된 것들을 뚫고 나가야 한다. 자신의 생각에 맞아 가야하는 것이 안정감으로 가는 길인줄 알도록 만들어진 구조때문이다.
인간은 켜가지 않어면 안되는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오래전 태고적 조상들의 삶에서 얻은 생존 본능이다. 주위에 늘 위험과 불안이 가득한 원시시대부터 사는 방법인지 모른다. 그것이 결국은 죽음으로 가는 길인줄 알지만 그길 밖에 없는 것이 인생이다. 새벽마다 쥣산에 운동을 이십년 이상 하고 다니고 주말마다 주중 에도 산을 다니고 하는 사람 이나 집에서 늘 편안히 텔레비전 이나 보고 동네 어슬렁거리며 술집이나 돌아다니고 요양병원에서 세월을 보내고 사는이나 모두 살아가는 것은 같은 삶이다. 빨리 건강하게 살다죽는 사람이나
늙어면 다 병들고 힘들고 좋은 것들은 보기 싫어도 오래 살고 싶어하는 사람도 어느 것이 나은지는 각자의 선택이다. 오래사는 방법은 하나 뿐이다. 나이를 먹지 않고 오래사는 이는 없다. 오래사는 것은 가보지 않은 길을 가는 것 뿐이다. 낯설은 길은 항상 새로운 위험이나 도전이 기다리는 것이다. 지치고 병들지 않는 늙은 이들은 지구상에서 존재하지 않고 나는 해당되지 않는일은 절대로 없다. 새로운 것을 비라는 것은 인간의 숙명이다. 그러나 그것은 본인에게 샤로움이지만 누군가가 가보았던 길이다.
새로움은 착각이다. 단지 가보지 않았다는 것이다. 바보는 늘 새로운 것 뿐이다.
자연은 바보이다. 노자와 장자는 신이 존재한다면 자연이 신이라 한다. 자연이 하는 일은 바라지도 않고 항상 베풀기만 한다. 자연이 하는 일은 항상 옳은 일이다. 똑똑한 사람들은 항상 자연과 싸운다. 오늘은 비가와서 비 탓하고, 바람이 불면 부는 바람을 미워하고, 더우면 언제쯤 더위가 갈것인지 혼자서 헤아리고, 추우면 겨울이 싫다고 세상의 괴로움을 추위에 퍼붙는다.
자연은 바보이기에 누가 무어라 하여도 여름에 태풍을 만들어 만물의 순환을 이루고,
겨울의 혹환으로 병충해와 봄의 새로움을 꽃피우고 만물이 새생명을 잉태시키고, 봄 이 되면 신록은 피어나고 탄생의 그늘아래 서로 살아가는 시작을 알고, 가을에는 겨울이 오기전에 수확과 결실로 분주한 즐거움으로
쉬어가는 겨울의 안락함과 따스함을 기다리는 고마움의 빛으로 물든 단풍으로 조상과 신에게 감사의 기도를 올릴수 있는 성숙된 마음을 가지도록 한다. 누가 얼마나 얻든지
잃든지 하는 것에 아무런 간섭도 없이 바라만 보는 바보같은 짓이나 하는 자연이다. 무위 無爲란 도인이나 선인들이 배울려하는 가장 바보짓이라 한다. 바보가 되는 것이 자연을 닮는 것이라 한다. 노자의 도덕경도 자연을 닮는 바보가 되라는 말씀이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황당한 일을 당하고 살아가도 모두가 바보가 되면 어쩔수 없이
모두가 그런가 하고 살아간다. 피해를 보는 쪽이나 피해를 준쪽은 사라지고 없어면 누군가 책임을 지는이도 없는데 누가 용서하고 누가 책임을 밑아야히는지도 모르고 어느 힘있는 바보가 내린 결정아닌 결정으로 지나가는 것만 바라보는 바보가 되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지나가는 일들은 모두가 마치 당연한 바보역사로 보는 바보가 된다. 중국의 역사나 서양의 역사나 마치 따라 다니는 군사들의 희생은 어마어마 하다.
한명의 뛰어난 바보의 결정으로 수백만의 목숨은 바보처럼 사라진다. 외환 위기로 파산하는 회사 다니던 분들이나 목숨잃은 극한 시민들이나 6.25 사태 때 목숨잃은 피난민이나 전사자들 이나 한일합방으로 나라를 잃어버린 가해자 매국노나 독립 유공자의 집안이나 직접피해를 본적이 있어면 직접 피해를 준 매국노나 후손들이 살아있어도 피해자 후손들은 아직도 바보처럼 살아간다. 매국노 후손들은 외국에서 떵떵거리고 살아가고 있는데 어쩔수 없는 듯이 당한 후손들은 바보처럼 살아간다. 잘못된 국가 일들로 직접당한 당사자들은 누구에게 용서를 받고 누가 보상을 하여야 하는지 끝없는 보상을 아무런 이해도 없는 바보국민들만 보상하는 책임을 지는 이유를 누구도 설명없이 힘있는 가장 바보가 하는 짓을 바라만 보는 것이다. 국가유공자도 후손들을 직접 피해를 준쪽은 잘살다 사라지고 없는데 남은 국민들은 마치 죄인처럼 끝없는 보상이나 존경하는 위인처럼 공경하는 멍청한 바보가 되는 것같다. 직접 피해를 준쪽은 잘못한 일에 대한 반성은 고사하고 당연히 한일처럼 지내다 사라진다. 용서받지도 못하고 마치 음주운전에 피해를 준 가해자는 없고 보험사가 나서서 합의니 보상을 책임지는 바보같은 피해자가 되는 것처럼 역사나 근대사에서 당하는 국민이라는 이유로 당하고 사는 바보세상 이다. 지금도 우리는 가장 바보를 앞세우고 책임도 없는 지도자를 만들고 늘 당하고 살아가고 있다.
현대사회는 뛰어난 바보들에게 바보들이 만들어 놓은 것에 열광한다. 연예인이나 운동선수이나 멍청한 정치인들이나 만들어 놓어면 죽자살자 빠져산다. 그것은 홀로 지내는 사람일수록 집착아니 집착으로 빠져드는 것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똑같이 적용되지만 가면 갈수록 심하다. 다른 쪽이 되는 바보들이라는 이유로 심하면 죽여버리고 싶을 정도로 미움을 받는다.
앞에 나서는 바보가 되면 뛰어난 삶을 사는 것은 시간문제이다. 좋아하는 야구나 운동도
젊은 바보들 때문에 즐기지도 못하고 핸드폰이나 만지작 거리며 근황에 열광한다.
그들은 쉽게 광고로 때돈을 벌고 움직이면 돈이 저절로 들어오는 현대의 바보시스템 덕분에 같이 먹고사는 바보들 때문에 더욱 난리이다. 몇백억이나 몇십억은 하루아침에 벌어들인다. 바보들이 열광하고 따라다니니
경쟁이 치열하니 어쩔수 없다. 더큰 외국이나
타지에 가면 더 많은 바보들이 있어니 이름난 바보가 되면 국내에 있는 바보들은 바라만 보는 처지가 되고 한번쯤 얼굴을 볼려면 몇배의 바용도 감수하는 것을 자랑 삼는다.
현대는 앞장서는 바보들을 만들고 따라다니는 세상이다.
친한 친구가 바보로 사는 이유는 참으로 대단하다. 젊은 날 같이 고생하는 배우자가 오래동안 병마와 싸우다 하늘나라로 갔다.
혼자 살것 같은 친구는 인연이 생기고 가정을 다시 가졌다. 그런데, 친구는 자식이 없다.
무슨 이유가 있지만 다시 가족이 되는 분은 아들 딸이 있다. 바보같은 친구는 새로생긴 자식들을 평생 키우고 새로운 배우자를 위해
헌신을 한다. 친한 사이이니 알고는 있지만
심할정도로 가정에 헌신적이다. 새로운 자식들을 위해 다른 곳으로 이사하고 대학콩부 부터 결혼까지 시키는 열정은 대단하다. 우리 집사람은 항상 이 바보같은 친구 반만 닮아라는 소리가 염불소리보다 더 자주한다. 인연이 생기는 것도 그렇지만 무엇이든 운명처럼 생기는 것에 최선을 다하는 바보들이 있어니 세상은 바로 기는 것이다. 바보는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니다.
바보가 되지 않어려고 세상에서 가장 똑똑하게 사는 사람들도 있지만 본인은 세상에서 가장 바보스러운 줄은 모르고 산다.
돈이나 도리나 명예나 모든 셔상의 오욕칠정도 베푸는 것에서 얻어지는 것은 바보일수록 되돌려 받는 것은 대단하다.
친한 친구가 마치 하늘의 별들처럼 빛난다.
바보는 항상 빛나게 되어있다.
와로움과 정신병은 선진국형 질환이라한다. 홀로 되는 것은 각자의 개성이나 혼자서 하는 전문적인 성향이 심해지면서 어울리지 못하는 공동체의 상호 관계의 단절로 얻어지는 사회병이다. 바보는 외로움을 모르고 항상 즐거운 마음이라 한다. 마음에 타인의 관심을 새기는 순간 외로움은 자신을
분리하기 시작한다고 한다. 외로움은 각자가 가지는 것이기에 누가 알수도 없다고 한다.
바보는 남들이 인정해야 하기에 타인들과는 멀어질수 없다. 바보는 인정하나 인정하지 않어나 신경을 쓰지 않고 자신의 일에 항상 열중한다는 것이다. 외로움은 자신을 위하지 않고 항상 비교하는 매체를 바같에 두고 스스로를 자책하는 어리석은 짓을 반복하는 자신을 학대하는 것이다. 와로움을 이기는 방법은 자신을 찻는 길이다. 무엇에 열중하든지 명상이나 자신이 외로움을 전달할 진실한 친구를 찻든지 아니면 남에게 봉사하는 것으로 만족감을 얻는 것이 우선이라 한다. 외로움은 소아적부터 가지는 트라우마 라고 한다. 형제나 대가족에는 어린시절은 관계의 시작을 알아지기에 외로움을 잊고 자신의 위치를 깨닫는 좋은 환경이라 한다. 나이가 들어서 가지는 외로움은 어쩔수 없는 시절이다. 시대가 환경에 따라 가는 것이지만 혼자 창작이나 책읽기나 명상에 얻어지는 스스로 자신의 내면과 교류하는 것이 좋은 바보가 되는 길이다. 서로가 없어면 나도 존재할수 없다는 것을 빠르게 얻어지는 지혜를 가지는 바보도 좋은 길이다. 그리고, 바보가 빨리 되는 것도 외로움을 잊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바보 되는 법은 스스로 알아지는 노력이 나이가 들어갈수록 꼭꼭 필요한 일이다. 친구나 가까운 관계나 배우자에게 바보 같다는 소리를 듣도록 노력해야한다. 외로움은 몸과 마음을 병들게하는 무서운 세포이다. 마음과 몸은 절대로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세포란 삼년주기로 바꾸어지는 것으로 외로움은 세포를 병들고 지치게한다. 이러한 증상을 방치하면 고립감과 외로움이 더욱 심한 외로움을 낳는 악순환의 위험을 초래하고 건강에 큰 문제를 일으키는 결과로 이어진다.
지금 바보들과 같이 어울리는 것도 좋은 일이다. " 노년은 전투가 아니라 확살이다. "
산을 다니면서 가장 자주 접하는 것은 소나무이다. 소나무는 어떤나무보다 숭고하고 단정한 노대老大의 기운이 있다. 소나무는 고색창연 하여 각별한 지리에 있다.
솟아나는 암벽이나 기이한 바위에 노송은 무엇을 하는가? 늙을수록 존경하는 것은 무릇 늙음은 엄하기 때문에 암릉에서 저리 오래 살고 있나? 누군가는 소나무는 침묵, 장중, 속세를 초월함을 나타내는 은자의 품격을 보인다 한다. 한폭의 동양화속에 우직한 바위에 노송의 그늘아래 무엇을 나타내는가?
노자의 말대로" 말이 없음이야말로 자연이다."
노송은 말이 없다.높고 높은 바위위에서 묵연하고 태연하고 우뚝 솟아 무슨 생각에 잠겨있는가? 굽이 보는 자연의 산야를 다 아는 늙은이 같은 노송사이로 무엇을 볼려고 하는가? 소나무, 대나무는 상록수이고 산산한 겨울 기운에 깃드는 청고함의 상징이고 싸늘한 단아함은 하이얀 백설에 묻힐때는 속세를 떠난 은자의 풍미를 가진듯 하다.
언제 가보아도 조령산 신선대 겨울노송이나
영축산 능선 어디에 바위사이 길게 뻗은 뿌리가 용처럼 숭고한 모습의 노송이 산꾼의 마음을 가득채우는 것이다. 소나무는 산꾼의 이정표 인가? 산에 제일 바보는 소나무인가?
미설 몽테뉴가 말했듯이 "인간에게 알려진 모든 희열은 그 희열을 추구하는 자체로 희열을 준다. 우리의 시야에 들어와 있는 목표물에서 느낄수 있는 가치의 향기, 그것이 희열의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이 자체가
희열의 한 부분인 것이다." 사람들이 바라는 내적 희열이라는 개념은 환경에 따라 달라진다. 희열은 느끼는 대상에 따라 달라질수 있다. 선행과 마찬가지로 보시나 봉사등 남에게 주는 것이상으로 많은 것을 얻을수 있다. 부자의 가장큰 행복은 가지는
것보다 남들이 주는 것으로 더 큰 만족을 느낀다고 한다. 남들이 바라보는 것으로 얻는 즐거움이 더 크다는 것이다. 존경이나 고마움으로 하는 칭찬은 가희 희열의 절정이다. 장수의 비결은 희열이다. 부자의 행복과 같은 것이다. 새로움이나 봉사나 같은 일을 늘 원하는 것은 장수의 에너지가 쏟아난다는 것이다. 우리가 산을 잘타는 경우는 남들을 리더하거나 보살피고 가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희열은 새로운 지식을 맛보는 것이나, 모양은 다를지 언정 계속해서 원하는 일을 만드는 것이라 한다. 새로운 것을 이루려는 마음은 희열을 얻어지는 원천이다.
산꾼이 바라는 새로움이나 봉사는 원하면 이루어 진다는 것이다. 좋은 것은 남들과 좋은 관계를 이루는것 뿐이다. 우리는 우리가 현재의 모습보다 더 나아지기를 갈망할 때 우리 자신을 더 괜찮게 느낀다. 나이가 들어서도 지속해서 발전할 수 있는 능력을 부여받은 동물은 인간이 유일하다.
이 세상에서 바보아닌 지는 없다. 이 세계에 어떻게 어느 날 던져 졌는지 아는자는 없다.
이 지구의 시간속에 정해놓은 각자의 시간에 각자의 존재를 의미하는 이름을 부여받고
태어나서 시간이라는 기이한 현상때문에 성장하고 늙어간다. 생이라는 한정된 시간이 다하면 강제 퇴거 대상자다. 세상은 순 자기 마음대로이다. 아는 자는 없지만 아는체 하는 것은 태어나고 종착역이 다가오면 가는 것뿐이다. 생은 자기에서 자기로 가는 여정이다. 이것을 자기도달이라 한다. 인간은 자기시긴을 살기위해 지구에 던져졌다는 말이다. 자기의 삶을 도달하기 위해 던져 졌지만 자신의 삶을 찻기위해 도달하기 위해 살아간다. 존재는 각자의 시간속에 존재하며,
목적지는 '자기자신' 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세계에 존재하는 게 아니라 세계와 공존한다는 것이다. 고정된 세계 내가 있는 것이 아니다 내가 세계를 구성하고 있는 적극적 참여자라는 것이다. 세계는 나로 인해 존재하고 세계와 나는 상보적 관계이다. 세계와 나는 평등하다. 세계는 나를 배제하고 세계 그 자체의 이상적 모델이란 없는 인새의 정답은 없다는 것이다. 인생은 가장 바보같은 나의 세계를 창출하는 나만의 시간을 만들어야 한다. 죽음이란 존재의 멸망이 아닌 시간속의 자기완성이 되어야한다. '나'는 하필 '나'로 태어났다. 나의 삶은 수십억년의 역사 가운데 유일한 존재이다.
산을 다니는 이유는 다양하다.산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은 산타는 것이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면 힘들다. 그러나 목적 자체가 아닌 즐거움이 되면 다르다. 어떤 목적이나 결과를 얻기위해 산을 탄다면 산 그자체가 아니라 모든 순간은 노동이 될뿐이고 의무가 될수있다. 그 목적이 충만한 행복감을 얻을수 있지만 또 다른 목적을 찻는다. 목적을 찻지 못하면 또 불행감을 느낄것이다. 대간을 세번이나 종주하고 백대명산을 다니고 , 함양 오르고 종주하고,
영알 종주하고 물론 성취감이나 남따라 하는 이유도 존재감을 나타내는 경우도 있다.
자신의 시간을 수단으로 쓰지 말고 목적으로 하루 하루를 산다니는 것이 낫지 않을까?
행복에 가장 빨리 다가가는 방법은 결과가 아닌 행복한 과정 그 자체를 만나는 것이다.
우리는 결과를 매일 만나는 것이 아니라 과정을 매일 만나는 삶을 사는 이유다.
가난한 나라 사람들이 부유한 나라 사람들 보다 행복한 이유는 늘 과정의 행복감에 젖어 있는 사람과 끊임없이 가질려는 결과에 행복을 찻는 사람들의 차이를 알아야한다.
행복은 가는 과정에 있지 결과에 있지 않다.
칸트는 '인간을 수단으로 대하지 말고 언제나 목적으로 대하라 ' 라고 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이다. 나는 목적이지 수단이 아니다. 어려운 말이 아니고 과정을 즐기리는 말이다. 사는 것 자체가 행복이다.
그리운 산꾼들 지리산 골짜기에서 봄되면 만나고 겨울이면 덕유산 능선에서 만나고
그들은 늘 그 능선에서 산을 다니고 있을 뿐이다. 영남 알프스를 가고 또 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벚꽃은 벌써 피고 바람에 꽃잎을 날리네
봄은 갑자기 왔다 가는 바람같은 것인가?
진달래 높은 능선 사이 피는 이유는 고귀한 봄 오는 모습인가 ?
봄은 오는 듯 가버리는 젊은 날의 하루같은 것이라ᆢᆢ바람에 흩날리는 꽃잎같이ᆢ
첫댓글 산을 오르내리는 과정의 행복함,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