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새 / 나쓰메 소세키
대여섯 사람이 모여서 화로를 둘러싸고 이야기를 하고 있으려니 갑작스레 한 청년이 찾아왔다. 이름도 듣지 못했고 만난 적도 없는 전혀 낯선 사나이다. 소개장도 없이 안내하는 사람을 통해서 면회를 청하기에 방으로 맞아들였더니, 청년은 여러 사람 앞에 산새 한 마리를 들고 들어왔다. 초면의 수인사를 마치자, 그 산새를 좌중 한가운데에 내놓고는, 고향에서 보내온 것이라면서 그걸 선물로 주겠노라 했다.
그날은 추운 날이었다. 그래서 모두들 산새국을 끓여서 먹었다. 산새를 요리할 때, 청년은 하까마를 입은 채 부엌에 나가 손수 털을 뽑고 살을 가려내고 난도질해 주었다. 청년은 키가 작달막하고 갸름한 얼굴이었는데, 해맑은 이마 밑에는 도수가 높아 뵈는 안경이 반짝이고 있었다. 가장 두드러져 보인 것은 그의 근시보다도, 그의 거무스름한 콧수염보다도, 그가 입고 있는 그 하까마였다. 그건 면직물인데 보통 학생들에게선 찾아볼 수 없을 만큼 굵은 줄무늬가 요란한 것이었다. 그는 그 하까마 위에다 두 손을 얹고 고풍스럽게 자기는 남부시령의 사람이노라 했다. 청년은 한 일 주일 지나서 또 나타났다. 이번엔 자기가 쓴 원고를 들고 왔다. 그다지 잘된 것도 아니기에 서슴지 않고 그렇다는 말을 했더니, 다시 써 보겠노라 하면서 가지고 갔다.
그 후 일주일만에 다시 원고를 가지고 왔다. 이런 식으로 해서 그는 올 적마다 뭔가 써 온 것을 두고 가지 않은 적이 없었다. 그 중엔 세 권으로 계속되는 대작도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가장 신통치 못한 것이었다. 나는 그가 쓴 것 중 가장 낫다고 생각되는 것을 한두 번 잡지에 추천한 일이 있다. 하지만 그것은 그저 편집자의 아량으로 잡지에 실렸을 뿐 원고료라곤 한 푼도 받지 못했던 것 같다. 내가 그의 생활의 어려움을 듣게 된 것은 이때였다. 그는 장차 글을 팔아서 입에 풀칠할 작정이라고 했다. 언제던가 이상한 물건을 갖다주었다. 국화꽃을 말려 가지고 얇은 김같이 한 장 한 장 굳힌 것인데, 전쟁 때의 정어리포나 다름없다고 했다. 마침 그 자리에 와 있던 고시라는 사람이 마침 잘됐다고 그걸 데쳐서 안주 삼아 술을 마셨다. 그리고 얼마 뒤엔 은방울꽃 조화 한 다발을 가져온 적도 있다. 자기 누이가 만든 것이라면서 가지에 심지로 꽂은 철사를 손가락으로 빙글빙글 돌리는 것이었다. 누이와 함께 살림을 한다는 것은 이때 처음 알게 되었다.
남매끼리 고옥 이층을 한 칸 얻어 여동생은 날마다 자수를 배우러 다닌다고 했다. 그 다음번에 왔을 때엔 남빛 매듭에 흰 나비를 수놓은 장식깃을 신문지에 똘똘 싸가지고, 혹 쓰신다면 드리지요. 하고 두고 갔다. 그것을 야쓰노가 날 주시지요. 하고 집어 갔다. 그 밖에도 그는 가끔씩 오곤 했다. 올 때마다 자기 고향의 경치랑 풍습이랑 전설이랑 고리타분한 축제 때의 광경이랑 여러 가지 이야기를 했다. 그의 부친은 한문학자라는 말도 했다. 도장 파는 기술이 능란했다는 말도 했다. 조모는 어느 영주댁에서 일했다 한다. 원숭이해에 태어났다는데, 원님의 눈에 들어, 원숭이와 인연이 있는 물건을 이따금씩 받으셨다 한다. 그 가운데 가잔의 그림인 긴팔원숭이의 족자가 있으니, 이번에 올 땐 가져다 보여 드립지요. 했다. 청년은 그 길로 다신 오질 않았다.
그런 후 봄이 가고 여름이 되어, 이 청년에 대해서도 어느새 잊어버리게 된 어느 날 -그날은 볕이 들지 않는 방 한가운데에 홑옷 바람으로 가만히 앉아 책 읽는 것조차 견디기 어려운 더위였는데- 그가 갑자기 찾아왔다. 여전히 그 요란한 하까마 차림으로, 해맑은 이마에 송글송글 돋은 땀을 수건으로 꼼꼼히 훔친다. 약간 야윈 것 같다. 말하기가 몹시 거북한 듯, 20원만 꾸어 주십사 했다. 실은 친구가 급한 병에 걸려서 우선 병원에 입원을 시키고 보니, 당장 돈이 문제라서 여러모로 주선해 보았지만 잘 되지를 않아 어쩔 수 없이 말씀드리러 온 것입니다, 라고 했다.
나는 글 읽기를 멈추고 청년의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그는 늘 하는 대로 두손을 무릎 위에 얌전히 얹어놓고, 부디 부탁드립니다 하고 잦아드는 소리로 말했다. 자네 친구네 집은 그렇게 살기가 어려우냐고 물었더니, 아니 그렇지는 않습니다만 먼 곳이라 갑자기 시간에 댈 수 없어서 부탁드리는 것입니다. 2주일 후면 고향에서 부쳐올 테니 그땐 지체없이 갚아 드리겠습니다. 그런 대답이었다. 나는 돈을 주선해 주기로 약속했다. 그때 그는 보따리 속에서 족자 한 폭을 꺼내어, 이것이 저번에 말씀드린 그 가잔의 족자입니다. 하면서, 종이 포장을 한 반절짜리 그림을 보였다. 살펴보니 유명한 화가인 가잔의 낙관 비슷한 것조차 없다. 청년은 이걸 두고 가겠습니다 하기에, 그럴 것까진 없다고 거절했지만, 굳이 맡겨 놓고 갔다. 이튿날 다시 돈을 가지러 왔다. 그 후론 다시 소식이 없다. 약속한 2주일이 됐는데도 그림자조차 보이질 않는다. 나는 속았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숭이 족자는 벽에 걸어 놓은 채 가을이 왔다.
겹옷을 입고 기분이 맑아지는 시절에 나가쓰카가 언제나처럼 돈을 꾸어 달라고 왔다. 나는 번번이 꾸어 주기가 싫었다. 문득 그 청년이 생각이 나서, 이러이러한 돈이 있는데 혹시 자네가 받을 수 있다면 받으러 가 보게, 받아내면 꾸어주지 했더니, 나가쓰카는 머리를 긁적거리며 약간 망설이다가, 이윽고 결심을 했는지 가보지요. 했다. 그래서 지난번 돈을 이 사람에게 주라는 편지를 쓰고, 거기에 원숭이 족자를 곁들여 가지고 나가쓰카에게 주어 보냈다. 나가쓰카는 다음 날, 차를 타고 또 찾아왔다. 오자마자 품속에서 편지를 꺼내기에 받아보니, 어제 내가 써 준 편지다. 봉함도 뜯지 않은 채다. 집에 없더냐고 물었더니, 나가쓰카는 이마에 여덟 팔자를 새기면서, 가 보았습니다만 안되겠더군요. 비참하기 짝이 없습디다. 지저분한 곳이더군요. 아내가 수를 놓구요. 당자는 앓고 있어요, 돈 소리를 꺼낼 경황이 못되기에, 조금도 염려하지 마시라고 안심시키고 족자만 돌려주고 왔습니다, 했다. 나는 그렇던가 하고 좀 놀랐다.
다음 날 청년한테서 그만 거짓말을 해서 미안하다, 족자는 틀림없이 받았노라는 엽서가 왔다. 나는 그 엽서를 다른 편지들과 함께 잡
동사니 상자 속에 넣어 두었다. 그리고 청년에 대해선 다시 잊어버리게 되었다. 그럭저럭 겨울이 왔다. 예년에 진배없이 바쁜 설을 맞았다. 손님이 뜸한 틈을 타서 글을 쓰고 있는데 하녀가 유지로 싼 소포 꾸러미를 들고 왔다. 털썩 소리가 나는 둥그런 물건이었다. 보낸 사람의 이름은 잊어버렸던 언젠가의 그 청년이었다. 유지를 끌러고 신문지를 헤쳐 보니 안에서 산새가 한 마리 나왔다. 편지가 곁들여있다. 그 후 여러 가지 사정 때문에 현재 고향에 와있다. 고맙게도 빌려주신 돈은 3월경 상경해서 돌려 드릴 작정이노라고 씌어 있다. 편지는 산새 피가 말라붙어서 쉽게 떼어지질 않았다.
그날은 또 목요일이라 젊은 사람들이 모임을 갖는 밤이었다. 나는 대여섯 사람과 함께 큼직한 식탁에 둘러앉아 따끈한 산새국을 먹었다. 그리곤 요란한 면직물 하까마를 입은 해맑은 그 청년의 성공을 빌었다. 사람들이 돌아간 뒤에 나는 그 청년에게 고맙다는 편지를 썼다. 그 편지 속엔 지난해의 돈에 대해선 더 염려하지 말아라는 한 마디를 덧붙였다.
[나쓰메 소세키] 소설가, 평론가, 영문학자
*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마음》 《도련님》등등
산새로 국을 끓인다? 좀 이질적인 음식문화로 느껴지네요. 아니지요, 가만 생각해 보니 꿩이니, 메추리니, 참새구이니 먹기도 하지요. 북한의 꿩고기로 만두소를 채운 만두며, 냉면도 있고요. 우리의 산골에서도 꿩고기를 먹죠. 이해가 됩니다.
청년의 가난한 형편이 안타까워요. 작정하고 하는 거짓말은 아닌 것 같아요. 병약한 청년과 산새국, 애잔해요. 작가의 기원처럼 청년의 성공을 함께 빌어봅니다.
첫댓글 해맑은 그 청년이 잘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 청년이 젊은 날의 우리 일 수도 있지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