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닫으면 곧 청산
오랜동안 알고 지내던 보살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도시 근교의 전원주택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며 이사 후 짐이
정리되는 대로 연락을 할테니 놀러 오라는 초대의 말도 잊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초대의 전화를 받고 보살님께서 이사한 집으로 집들이를
하러 갔다. 아담한 산자락 아래 자리잡은 탓인지. 집 앞으로 실개천이 흐르는
탓인지 제법 운치가 있었고, 집들이 내내 자연을 마음껏 호흡하기에 충분했다.
별채는 시를 쓰시는 보살님의 마음처럼 단아하고 정갈하게 꾸며져 있어
늘 마시던 작설차의 빛과 향이 한층 더 맑고 깨끗하게 느껴졌다.
오랫만에 차 소리, 가로등 불빛을 벗어날 수 있었다. 집들이를 마치고 나올때는
밤하늘에 초롱초롱 떠 있는 별까지 가슴에 품어 보는 호사를 누릴 수 있었다.
그로부터 3개월여가 지난 어느 날, 보살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무슨 일인지를 모르지만 격양된 목소리가 느껴졌다.
미루어 짐작컨대 뭔가 좋은 일은 아닌 듯 했다.
사연인즉, 보살님네 집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조그만 식품 공장이
들어섰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공장 마당에서 보면 보살님네 정원이 훤히
내려다보인다고 했다. 그리고 점심때면 공장 마당에서 직원들이 모여 족구 등 운동
을 하며 왁자지껄 하는 통에 시끄러워서 시를 쓸 수 없다는 불만을 토로했다.
보살님의 성격이 예민하고 귀까지 밝은 탓에 십분 이해가는 일이지만 얘기를
다 듣고 난 후에도 실질적으로 도움을 줄 별 뽀족한 수가 떠오르지 않았다.
다만 보살님께서 아침마다 새들이 정원으로 날아들어 지지배배 지저귀는 소리에
너무너무 행복하게 잠을 깨곤 한다며 산새들이 그렇게까지 사랑스러운지,
오염되지 않은 자연의 소리가 그렇게 좋은줄 몰랐다고 자랑하던 것이 기억났다.
그래서 숙제를 내주었다. 공장의 직원들이 멀리서 보는듯 마는듯 하는 것은
신경이 쓰이는 데 반해 집안에까지 찾아온 산새들은 어째서 기분이 좋은
친구로 생각되는지, 산새 소리에 깨어나서 아침을 맞는 것은
그토록 행복하면서 어째서 사람들의 소리는 소음으로 들리는지,
그리고 자연(自然)의 소리란 무엇이며 사람은 자연의 일부분인지
아닌지 등을 탐구해 보라는 것이 보살님을 위한 복잡한 숙제였다.
많은 사람들이 자연(自然)과 인위(人爲)를 차별하며 전원주택을
지어서 도심을 벗어나고 있다. 좋은 공기를 마실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도심에서는 얻을 수 없는 소중한 것을 얻는 것이다. 이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자연을 누리려는 소박함조차도 욕심이다.
그래서 그 욕심이 기대치에 못 미치면 불평불만을 터트리며 힘들어할 수밖에 없다.
서산대사께서 읊으신 창가의 달빛과 텅 빈 베갯머리,
끝없는 솔바람 소리가 들려주는 천상의 오케스트라는 단순히
산속이라는 환경에서 생활한다고 해서 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늘이 주는 선물은 자연이니 인위니 하는 분별을 여윈 마음만이 받을 수 있다.
달리 말하면 산속과 도심, 달빛과 번쩍거리는 네온 불빛, 자동차 소음과
솔바람 소리에 두 토막 나지 않은 그 마음이 바로 하늘이 주는 최고의 선물이다.
귀로 보고 눈으로 듣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