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에서 온 초희가 해죽이 웃었다. 옆에 있던 자원봉사자가 그녀의 뺨을 살몃살몃 문질렀다. 그 손길에서 애틋함이 묻어난다. 내년에 다른 대학으로 편입을 준비하고 있는 지향이는 노랗게 물든 나뭇잎을 들고 환하게 웃었다. 표정이 해맑다. 거머멀쑥이 입은 옷차림까지 밝아지는 듯하다.
한쪽 나무의자에선 참가자 가운데 나이가 가장 많은 선우와 나이 적은 회진이 나란히 앉아서 줄곧 얘기를 나누고 있다. 한동안 변하지 않던 표정이 차즘차즘 환해진다. 얼굴이 푼더분히 생긴 특수학교 교사 지훈은 같이 온 네 살배기 아들과 놀며 연신 싱글벙글했다. 검실검실 보이는 아들을 보며 두 눈에 함초롬 물기를 머금기도 했다.
▲ 강진 초당림 숲길에 걸려 있는 글귀 '빛나라 내 인생'. 숲을 찾은 시각장애인들을 응원하는 문구인 것만 같다.
지난 11일 '남도답사 일번지' 강진의 초당림(草堂林)에서다. 초희, 지향, 선우, 회진, 지훈은 청년 시각장애인들이다. 이들이 초당림에 간 것은 지난 11월 10일부터 11일까지 1박 2일 일정으로 열린 '청년 시각장애인 라이프 이노베이션 워크숍'의 일환이었다.
워크숍에는 광주광역시와 전라남도는 물론 멀리 춘천과 서울, 부산, 창원, 천안에서 온 청년 시각장애인 20여 명이 참여했다. 광주시각장애인연합회 임직원과 자원봉사자 10여 명이 도우미로 나섰다. 워크숍은 '열정 그리고 도전'을 주제로 열렸다. 광주광역시 시각장애인 연합회(회장 김갑주) 주관했다.
10일 강진 다산수련원에서 시작된 워크숍은 '지역민과 함께 재활하는 시각장애인의 자세', '남도답사 일번지 강진여행과 시각장애인'을 주제로 한 외부 강사의 강연과 참가자들의 공감토론으로 이어졌다. 다과를 함께하며 밤늦게까지 계속된 공감토론에서는 시각장애인과 자원봉사자들이 경험담을 털어 놓으며 진로와 직업문제 등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 정크아트 '물고기' 조형물 앞에 모인 워크숍 참가자들. 물고기 조형물은 다 쓴 페트병과 캔 등으로 만들어졌다.
초당림에선 낙엽이 수북하게 쌓인 만추의 숲길을 사붓사붓 걸었다. 발바닥으로 전해지는 늦가을의 감촉도 참가자들을 위무해 주었다. 자원봉사자들이 꺾어 건넨 들국화와 단풍으로 물든 낙엽을 머리카락에 꽂으며 웃는 지향과 초희의 얼굴은 천진난만했다.
참가자들은 초당림의 면적이 960㏊로 서울 여의도의 3배가 넘고, 무안 출신 김기운(96) 백제약품 명예회장이 50년 동안 가꾼 숲이라는 얘기를 듣고 하나 같이 벌린 입을 다물 줄 몰랐다. 머릿속으로 그 면적을 상상하며 가늠해보기도 했다.
초당림 소유주인 초당산업(주)의 배려로 숲에서 자라고 있는 표고버섯을 직접 따 보는 체험도 했다. 자원봉사자의 도움을 받아 손끝으로 표고목을 더듬으며 표고버섯을 찾아보고 몇 개씩 따 봤다. 생버섯을 입에 넣어 혀끝으로 맛을 보고, 숲속 쉼터에서 표고버섯을 끓는 물에 데쳐 먹어보기도 하며 이틀 동안의 일정을 마무리했다.
▲ 초당림의 편백숲 아래 표고버섯 재배장에서 표고버섯을 직접 만져보며 따 보고 있는 황초희. 바로 옆에서 자원봉사자가 도움을 주고 있다.
김갑주 광주광역시 시각장애인 연합회장은 "아무도 알아주지 않던 그 시절, 민둥산에 나무를 심은 김기운 회장처럼, 우리도 시각장애인이라는 불편을 뛰어넘어 사회와 나라에 도움 되는 사람이 돼야 하지 않겠냐"면서 "우리가 무엇이든지 하려고 하면, 주위에 도와줄 사람은 정말 많이 있다"며 청년 시각장애인들을 격려했다.
지훈, 선우는 물론 진소, 재명, 운성 등 다른 참가자들도 "숲 체험과 가우도 여행이 즐겁고, 1박 2일 워크숍이 너무 빨리 지나간 것 같다"면서 "이런 기회가 더 많은 시각장애인들에게, 더 자주 마련되면 좋겠다"고 입을 모았다.
▲ 초당림에서 표고버섯을 따 보고 있는 김갑주 회장. 김 회장은 이번 워크숍을 주관한 광주광역시 시각장애인 연합회를 이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