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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시키는 일과 하느님께서 시키시는 일의 차이; 일이 수단이 되거나 목적이 되거나!
2022년 다해 연중 제20주간 수요일
복음: 마태오 20,1-16
‘내일의 죠’(1980)라는 일본 애니메이션이 있습니다. 죠는 본래 길거리에서 주먹 쓰기를 좋아하는 건달이었습니다. 그의 재능을 알아본 코치가 그를 훌륭한 권투선수로 키워냅니다. 그런데 죠에게는 항상 내일을 향한 목표가 생깁니다. 일본 챔피언을 꺾는 것을 넘어서서 세계 챔피언이 되려 합니다.
이 과정에서 매우 힘든 과정을 거칩니다. 자신의 라이벌과 경기하던 중 라이벌이 사망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큰 실의에 빠진 그는 그 후 사람의 얼굴을 때리면 구토증상이 생겼습니다. 결국 그는 큰 노력으로 동양 챔피언이 되었고 세계 챔피언과 시합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미 손이 떨리는 증상을 겪고 있었습니다. 그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챔피언전에 나서지 말라고 청합니다. 그렇지만 죠는 멈추지 않습니다. 자신의 꿈이 눈앞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라운드까지 접전을 펼치고는 숨을 거둡니다. 그는 숨을 거두면서 미소를 짓습니다. 이런 말을 하면서.
“후후…. 불태웠어…. 모두 새하얗게….”
다 타버린 연탄재가 연상됩니다. 뜨겁게 어떤 목적을 위해 달려왔던 죠. 하지만 죠에게 내일은 오지 않았습니다. 누가 다 타버린 연탄재에게 고마워합니까? 치워야 하는 골칫덩이에 불과합니다. “오늘의 죠”여야 했습니다. 그래야 오늘 권투경기를 하는 것을 즐기며 살 수 있었을 것입니다.
일에 목적이 부여되면 그 일을 하며 자신을 소진합니다.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공부하는 아이들이 그렇고, 돈을 벌기 위해 일하는 직장인들이 그렇습니다. 일이 어떤 목적을 위한 수단이 되면 지치고 소진되고 결국 꼴찌가 되어버립니다.
오늘 복음은 이 세상에서 첫째였던 사람이 꼴찌가 되고 꼴찌였던 사람이 첫째가 된다는 내용입니다. 예수님은 포도밭 주인의 비유를 통해 어떤 사람이 첫째이고 어떤 사람이 꼴찌인지 말씀해주십니다. 한 데나리온씩 자기를 위해 일한 사람들에게 일당으로 내어주었을 때 고마워하는 사람이 첫째고 그것밖에 안 주냐며 불만을 가지는 사람이 꼴찌입니다. 그 이유는 일 자체에서 행복을 찾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일을 시키실 때는 그 일 자체에 의미가 있어서 시키시는 것입니다. 보통 사제가 유학을 나가서 공부할 때 목적은 학위가 됩니다. 학위가 목적이 되면 공부가 재미없습니다. 자신을 소진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 맡겨주신 일이라고 생각하면 공부가 목적이 됩니다. 학위는 이 세상 사람들이 원하는 것입니다. 진리를 깨달아가며 학위도 저절로 얻게 됩니다. 그러면 공부하는 동안 자신을 소진하지 않습니다.
허태균 박사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인고의 착각’에 빠져있다고 말합니다. 자녀가 시험을 보면 엄마도 같이 고통을 감내하는 것입니다. 종교에 귀의하여 잠도 자지 않고 치성을 드립니다. 왠지 그래야 자녀가 잘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런 기도는 기도 자체가 목적이 아닌 수단이 되게 합니다. 그래서 힘이 듭니다. 힘이 들어서 아이들 시험이 끝나면 더는 그런 기도는 하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이 꼴찌가 되는 것입니다.
저도 군 생활을 할 때 틈틈이 열심히 영어단어를 외웠습니다. 잠꼬대를 영어로 할 지경이었습니다. 하지만 차로 사고를 내고 난 다음에는 ‘내가 이렇게 열심히 사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군 복무를 주님께서 맡겨주신 일이었다면 그 자체를 최대한 행복하게 하려고 노력해야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즐기지 못하고 군 생활을 수단으로 삼았습니다. 그래서 지치고 행복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면 꼴찌 군인이 되는 것입니다.
유정임 씨는 두 아이를 하나는 서울대에, 하나는 카이스트에 보냈습니다. 유 씨는 아이들에게 공부의 즐거움을 알려주기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주말에는 도서관에 가는 것이었습니다. 가다가 미끄럼도 타고 맛있는 것도 먹었습니다. 도서관에 들어가지 않고 그냥 온 적도 있습니다. 그녀는 아이들이 도서관에 가는 일이 수단이 아닌 목적이 되게 하였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이 책을 재미있게 읽게 하고 공부도 재미있게 하게 하였습니다. 공부하였으면 ‘폐인 데이’라는 것을 만들어 폐인처럼 게임도 하고 TV도 보는 시간을 허락했습니다. 공부한 시간보다 두 배를 놀게 했습니다. 공부가 목적이 되게 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결과도 좋게 나왔습니다.
어떤 사람은 목욕탕에 때 밀러 갑니다. 그런데 때는 저절로 시간이 지나면 떨어져 나갑니다. 굳이 밀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나라만 밉니다. 이런 사람은 목욕탕에 오래 못 있습니다. 목적만 달성하면 바로 나와야 합니다. 하지만 목욕탕 자체가 목적인 사람은 오래 즐깁니다. 온탕과 냉탕을 왔다 갔다 하고 사우나도 하며 잠도 잡니다. 그렇게 피로를 풉니다. 누가 목욕을 즐기는 사람일까요?
주님께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일은 우리가 행복하기를 원하시는 일입니다. 그것을 통해 어떤 목적을 달성하려 하신다면 그분은 인간과 똑같이 우리를 이용하시는 분이실 것입니다. 하지만 그분은 사랑 자체이신 분이십니다. 우리에게 일을 시키시더라도 그 일이 아니면 행복할 수 없어서 시키시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한 시간만 일한 사람이 가장 불행한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일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일하고 싶은데 할 수 없어서 큰 고통을 당한 사람입니다. 그러니 어떤 봉사를 하든 행복해야 합니다. 사제로 살면 사제로 사는 하루하루가 목적입니다. 하루하루 행복하게 살 때 감사할 수밖에 없는 열매가 맺힙니다. 결혼생활도 그렇고 자녀를 키우는 것도 그렇습니다. 그것을 통해 어떤 목적에 도달하려 하지 말고 그것 자체로 만족하고 즐길 수 있어야 합니다. 그 모든 것은 주님께서 우리에게 행복하게 지내라고 만들어주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 전삼용 신부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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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