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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스승과 제자 사이였다.
경북 구미가 고향인 박정희와 경남 양산이 고향인 박태준은 박태준의 육사 생도 시절 탄도학을 가르치던 박정희가 수학을 잘하던 박태준을 이뻐하며 인연이 시작된다.
시간이 지나 박정희가 5.16을 준비하던 중 박태준을 부른다.
"임자는 일에서 빠지지. 잘못 되었을 때 내 가족들이나 돌봐줘"
박정희에게는 박종규, 김종필, 김재규, 차지철, 이후락 등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부하가 많았다. 그러나 이 대목에서 박정희에게 박태준이 어떤 사람이었나 하는 답이 나온다.
박종규와 차지철.... 선글라스를 낀 박정희의 양 옆에서 날카로운 눈빛을 번뜩이던... 후에 각각 집권 전후반기 경호실장을 맡았던 사람들..
그런 사람들보다도 박정희에게 박태준이란, 제자이기에 앞서 가족들을 돌봐달라고 할만큼 가장 믿을 수 있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박태준은 박정희의 말을 어긴다.
5.16당일, 박태준은 자신의 스승이자 주군이 있는 5.16상황실로 향한다. 향명은 향명이지만 스승 박정희를 생각하는 박태준의 마음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박정희가 정권을 잡고 박종규부터 김종필까지 모든 측근이 정치로 들어간데 반해 박태준은 기업체로 나가있었다.
그것은 박정희가 정권을 잡고 박종규부터 김종필까지 모든 측근이 정치로 들어간데 반해 박태준은 기업체로 나가있었다.
그것을 박정희가 명령했는지 박태준의 선택이었는지는 두사람만이 알것이다.
박정희는 얼마 안되어 '종합제철소'라는 대 프로젝트를 추친한다.
'철'은 사람도 들어야하지만 나라의 산업을 일으키는 필수 산업이다. 또한 어떤분야에도 연관되는 기반 산업이다.
그러나, 당시 한국이 종합체철소를 만든다 했을때.. 선뜻 돈을 빌려주겠다거나 기술 이전을 해주겠다고 나서는 나라도, 사람도 없었다.
경제지표니 뭐를 봐도 도대체 비젼이 없다고 생각하는지 모른다.
그러나, 꿈의 실천은 시작되었다. 원래 제철소는 1차 후보 지역은 포항이 아니었다. 울산에 제철소를 만드려던 계획은 '부적합'하다는 보고가 보고 되면서 수포로 돌아간다.
그러나 박정희에게 아니 대한민국에 '제철산업'은 반드시 필요 했다
백방으로 뛰었다. 드디어 미국에서 신호가 왔다..
먼저 공장부터 지으면 해외 철강 차관단이 돈과 기술을 빌려주겟다고 약속한다.
박정희는 이때 박태준이라는 인물을 떠올린다.
강렬한 눈빛과 굳게 다문 입술을 가진 젊은 그를 프로젝트의 적임자로 삼은 것이다.
장소는 포항, 그것도 모래밭으로 유명한 영일만.
박태준은 회상하기를 저녘까지 작업을 하고 자고 일어나면 어제 작업한것들이 모래바람 때문에 사라져버리거나 엉망이 된 적이 많았다고 한다.
그리고 박정희가 브리핑을 받기 위해 앉아 있으면 눈과 코, 그리고 목에 모래가 들어가 재채기를 하지 않고는 못버티는 곳이 바로 지금의 포항 영일만이었다고 회상 한다..
그렇게 장소는 마련이 된다. 이제 기술이전과 돈이 남았다..
그런데 약속을 했던 철강 차관단에서는 한국에서의 종합 제철사업에 회의를 느꼈던지 돈을 못꿔주겠다고 약속을 뒤집어 버린다,
얼마나 국력이 약했으면 그제와서 약속을 뒤집었을까.
생각하지 않을수 없다,.
박태준은 망연자실한다,. '한국에 돌아가서 박대통령에게 무슨 말을 할 것인가' 무슨 일을 이따위로 하느냐고 핀잔을 듣는게 문제가 아니었을 것이다.. 박정희 못지 않게 신경을 쓰며 대통령으로부터 큰 기대를 받아 추친한 사업이 자기손에서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절박감이 들었을 것이다..
그래서 박태준은 귀국 전에 머리를 식힐 겸 지인이 소개해준 하와이의 휴양지에 들린다. 그곳에서 휴식을 취하던 박태준이 불현듯 생각해 낸것이 .... 일본이엇다...
당시 일본으로부터 받은 '대일청구권 자금'이 남아있었다..
이 중에는 농업 분야에만 쓰기로 약속한 돈이 있었는데 희망은 그 돈이었다. 천재적 사업가 박태준은 종합제처소가 없으면 대한민국 산업에 미래가 없다고 판단 했을것이다. 서울로 날아온 박태준은 박정희 대총령에게 자신이 설득하겟다며 일본으로 보내줄 것을 부탁한다. 박정희는 박태준을 신뢰 했고 그는 일본으로 날아 간다.
이곳에서 박태준은 대일청구권자금 중 농업에만 쓰기로 했던 자금을 '제철소 건설'에 쓸 수 있도록 하는 회담을 성사시켰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기술이전이었다. 장소가 마련되고 돈이 있어도 기술이 없으면 말짱 도로아미타불이기 때문이었다. 박태준은 일본의 3대 철강 회사 오너를 ?i아 다닌다.
그들은 박태준을 피하기 위해 일부러 휴가를 떠나지만 박태준은 휴가지로 ?i아가는걸 마다하지 않았다.
결국 일본인들은 집요한 박태준에게 기술 이전을 약속할 수 밖에 없었다, 후에 일본의 한 정치인은 잠재적으로 경쟁국을 키우는 리스크보다 가까운 나라에서 철강 산업과 경제가 일어났을 때 인접국으로써 얻는 효과가 더 클 것이라는 판단이 있었다고 말한다 .
그렇게 박태준은 외부 환경을 제철 사업소 성공으로 한발짝 다가서게 만든다.. 하지만 문제는 안에 있었다.
하나는 허허벌판인 영일만에 기숙자들이 묵을 숙소가 없었다는 것,
그리고 제철소 기반을 다 마련해놓으니 정치하는 사람들 중 떡고물을 바가고 얼굴 디미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숙소 문제는 간단하지 않았다. 제철소 부지를 마련할 때부터 언론 등의 공격을 받은 것은 "공장이 돌아가기도 전에 왜, 근처에 아파트부터 짖느냐는 것이었다"는 것이 었다..
결과적으로 이것은 타지역 출신의 유능한 엔지니어, 사원들의 처우문제에 있어서 탁월한 선택으로 평가 받기에 충분한 일이었다.
더 큰 문제는 얼굴을 디미는 정치인 문제였다. 이는 사업가 박태준을 괴롭게 했다. 박태준은 박대통령의 명령에 의해 사업을 추친했던 인물이었음에도 정보기관으로부터 여러번의 가택 수색을 받았다고 말한다.
괴로워하던 박태준은 박정희에게 너무 괴로우니 사표를 내겠다는 말을 건내고 이에 박정희는 "종이 마패"를 써주게 된다.
즉, 박대통령이 "박태준을 건들면 누구든 가만히 안두겠다"는 뜻을 종희에 뚜렷이 적어 준것이다. 이와 함께 포항제철의 인사 및 경영에 대한 전권을 박태준에게 준다.
이때 부터 박태준의 철강 신화는 시작된다.
우선 박태준은 사원 채용에 있어 철저한 공개 채용과 투명함을 추친한다. 그에게 포철은 산고를 거쳐 직접 태줄을 끊어 키운 자식과 같은 사업체였다. 그런 사업체에 더러운 청탁이 묻기를 바라지 않았기에 박정희가 써준 종이 마패는 박태준에게 가장 탁월한 무기이자 박대통령에게 진 빚이었다.
그런 박태준 회장은 포철에서 첫 쇳물이 나올 때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그리고 한국의 종합제철소 건설에 돈을 꿔주는 것은 헛 짓이라는 보고서를 냈던 미국의 박사는 "내 보고서는 틀린게 없다. 지금 쓰라고 그래도 똑같은 내용이다. 그런데 내 보고서를 박태준이라는 인물이 틀리게 만들었다."라고 말했다.
ps..<정운영 교수가 진행하던 회외라는 프로그램의 박정희와 박태준 편을 회상하며 썼습니다>
스승 박정희 제자 박태준이 아니라 박정희 경제개발의 선봉장에 선택 되고 그 역활을 한 사람이 박태준이었다.
박정희는 군인 박태준을 군이 아니라, 경호실이 아니라, 공화당이 아니라, 자신이 가장 열정적으로 추진했던 사업체에 두었다.
박태준이라는 떡잎을 알아본 박정희의 안목과 종이 마패를 써줄 정도의 신뢰감 그리고 자신이 모시던 상관의 야망 때문이기도 했겠으나 무조건 적인 충성이 아닌 자기일에 자신감을 더 크게 생각하고 일했던 박태준.
박정희는 자신이 유능해서가 아니라 영원한 포항제철맨 박태준, 최연소 도지사 고건 같은 인재를 발굴해낸 사람이라 유능하다.
박태준, 그에게 가장 충격적인 일은 "박정희의 죽음"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영의정이 죽으면 손님이 없고 영의정 집 개가 죽으면 손님이 바글바글하다는 속담처럼 .. 박정희 대통령 서거 후, 박정희에게 덕을 보고 출세했음에도 어린 박근혜 남매를 모른척했던 많은 사람들과 다르게 ....
소문에 의하면 박태준은 자신이 모신 상관의 자녀들을 마을으로 돌봐주었던 몇 안되는 사람이라 전해진다..
5.16이 있기 직전 "임자는 일에 참여하지 말고 일이 잘못되면 내 식구들이나 좀 돌봐줘"라고 했던 스승 박정희의 말을 수십년이 지나 잊지 않고 실천한 사람이 바로 대한민국 철강왕 '박태준 회장'이었다..
- 이건 소설이 아니라 1960~70년대 우리 대한민국의 실화 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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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준이 누구인지나 알고 무시하냐.
박태준은 포철의 신화를 일으킨 정치보다는 경제계쪽이 어울리는 인물이고
3당합당할때 노태우가 박태준으로 밀까 김영삼으로 밀까 조낸 고민하다가
그나마 육사 선배인 박태준보다는 김영삼이 더 뒤에서 조종하기가 쉽다고
생각해서 김영삼을 민거지.
나중에 영삼이덕에 감옥에서 조낸 후회한거는 유명하고.
처음부터 박태준이 대권 도전했으면 경제쪽으로는 상당히 발전했을꺼다.
왕회장이 대권출마할일도 없고..
이병철 회장이 박태준을 끔찍히 아껴서 나중에 포철 그만두고
자기가 삼성중공업을 주고 5년간 300억씩 지원해줄테니까
맡아 달라고 했던 인물이 박태준이지.
3공4공 때 인물들이라고 그냥 무조건 까지 말아라
솔직히 박태준 만큼 나라 생각하면서 살아온 인물도 드물다.
'짧은 인생을 영원 조국에' 라는 좌우명으로 살아온 인물이 박태준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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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7. 9. 29 경남 양산~.
기업가·정치가.
1947년 일본 와세다대학[早稻田大學] 기계과를 수료하고, 1948년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했다. 1988년 미국 카네기맬런대학교에서 공학 명예박사학위, 영국 세필드대학교에서 금속공학 명예박사학위를 받았다. 1963년 소장으로 예편한 후 1964년 대한중석 사장, 1968~81년 포항종합제철 사장·회장·명예회장, 1975~90년 철강협회 회장, 1981년 한일경제협의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1980년 국가보위입법회의 의장, 1981년 제11대 국회의원(민주정의당 전국구)이 되면서 정치 활동을 시작했으며, 1981년 국회 재무위원회 위원장,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한일의원연맹 회장, 1990년 민주정의당 대표위원, 1990~92년 민주자유당(민자당) 최고위원 등을 역임했다. 1992년 민자당의 제14대 대통령 후보 경선 과정에서 김영삼 후보 진영과 대립했으며, 계속된 당내 갈등 끝에 10월 민자당 최고위원직을 사퇴하고 민자당을 탈당한 데 이어 12월에는 전국구 국회의원직도 사퇴했다. 1993년 김영삼 정부 출범 이후 정치인들에 대한 사정을 피해 일본으로 건너가 있는 동안 포항종합제철 재직시의 탈세·횡령·뇌물수수 혐의로 기소되었다가 1995년 8월 사면·복권되었다. 1997년 8월 경상북도 포항 을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됨으로써 정계에 복귀했다. 제15대 대통령 선거를 1개월여 앞둔 11월 자유민주연합(자민련)에 입당해 총재에 취임하는 한편 지역연합 성격의 이른바 '디제이티(DJT:김대중-김종필-박태준) 연합'을 성사시킴으로써 새정치국민회의 김대중 후보의 대통령 당선에 기여하고 양당 공동정권 창출에 성공했다. 2000년 1~5월 국무총리로 재직했으나 부동산 명의신탁 파문으로 사임했다. 금탑산업훈장·국민훈장무궁화장·오스트리아 금성공로대훈장·서독공로십자훈장 등을 받았으며, 저서로 〈신종 이산가족〉·〈누가 새벽을 태우는가〉가 있다
첫댓글 노태우가 김영삼이 아닌 박태준을 밀어 줬었으면 괜찮았을 듯하네요..모두 여기 저기 퍼온 글이라서 보시기 좀 어색할듯 하네요.
3당합당이후 노태우총재,김영삼대표,김종필최고위원,박태준최고위원등 지도체제가 들어섰지만 원래 정치환경이 다른 이들은 화합하지 못하고 갈등과 반목을 노출하죠.... 92년대선을 놓고 민주계,민정계는 각기 대립하고 김영삼과 대립각을 이룬 대표적 민정계인사가 박태준. 상당수 민정계의원들이 김영삼지지로 돌아서며 신민주계라는 파벌을 형성할 정도가 됐지만 박태준,박철언,이종찬등등 김영삼에 대립하며 대통령후보로 이종찬을 내세우지만 이종찬은 돌연사퇴,, 결국 이들은 민자당을 떠나게 됩니다. 김영삼은 대통령선거이전 포항으로 직접 내려가며 박태준을 영입하려 하지만 박태준은 거절하며 김영삼과 박태준은 돌이킬
새로운걸 알았네요.
노태우 정권 말기에도 당시 기무사령관이었던 서완수 장군께서 김영삼은 안되며 박태준을 밀어야 한다는 보고서를 꾸준히 올렸다고 하던데...박태준이란 큰 인물이 대통령을 했었어야 나라가 다시 한번 크게 일어났을 텐데...얄팍한 정치꾼이 제멋대로 깜짝쇼 정치하며 국정을 농단하다가 나라가 이지경이 되었네요.
맞는 말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