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무이, 진지 잡솼능겨
응, 누고
옆집 상철 아범 아임니꺼
점심때쯤 다시
할무이, 밭에 가시니껴
응, 누고
바로 옆집 상철 아범 아임니꺼
저녁나절 또 누구냐고 묻자
상철 아범 그만 큰일 났다 싶어 얼굴 바짝 들이대며
딱 보이 이제 알겠능겨
할머니 잠시 뜸을 들이다가 설핏 미소 지으며
응, 딱 보이구나!
상철 아범 그 이후로 멀쩡한 제 이름 놔두고
딱 보이로 불린다
딱봉이, 쌀 댓 말은 족히 주었어야 할
할무이 치매도 고치는
참 좋은 이름이다
〈경북방송/김조민이 만난 오늘의 시〉2023.01.03.
이름을 짓는 것은 집안의 제일 큰 어른 몫이다.
아기가 태어나면 한학에 조예가 있는 이웃에게, 혹은 점쟁이에 달려가 집안의 돌림 항렬 자字와 아기 사주팔자를 내밀고 이름을 지어온다.
이름이 여자 이름 같다며 바꾸어 달라고 떼를 썼더니 ‘야가 이마며 눈매며 나를 꼭 빼 닮았구나’ 할아버지가 선뜻 쌀 두 말을 내고 지어온 이름이라 했다.
순할 순順이 아니고 임금 순舜이라고. 임금은 되지 못했지만 이름 덕분에 남 신세 안지고 그냥저냥 살았다. 세태가 많이 달라졌다. 이제 수생 목, 목생 화, 화생 토, 토생 금이며 사주팔자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다. 젊은 아빠 엄마는 부르기 쉽고 의미도 좋은 순 한글로 아기 이름을 짓는다. 가람이라 짓기도 하고 달래, 꽃님이라고도 짓는다.
예쁘고 좋은 이름들이 하늘의 별처럼 많다. 딱 보이, 딱봉이 – 하루에 딱 열 번씩만 이 이름을 부르면 할머니 치매도 곧 나을 성 싶다.
5억 년 전 쯤 존재했던 오파비니아 고생물은 여기저기 다섯 개의 눈을 가진 것으로 밝혀졌는데, 5억 년 후 나는 눈 두 개만을 지니고 세상에 태어났다. 두 눈 모두 얼굴 정면에 위치하여 머리 위 하늘에서 일어나는 일을 알지 못하고 몸 뒤편의 지나간 일들은 아예 볼 수조차 없다.
나뭇가지에 움 다시 돋고 꽃이 피었다 진 후 열매를 맺는 이유며 날이면 날마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왜 해가 뜨고 지는지, 낮이나 밤이나 어느 곳을 향해 내가 달려가고 있는지 세상의 이치와 공식들에 대해 평생을 눈 뜬 장님으로 지내온 날들, 오파비니아처럼 눈이 다섯이었으면 다 알 수 있지 않았을까.
다섯 개의 눈을 가진 오파비니아는 왜 멸절되고 말았는가. 그 많은 눈으로도 미처 보지 못한 것이 있었을까. 어째서 지금 화석으로만 그림으로만 남아 있는지 알 길이 없다.
방금 내 손에 두 날개를 잡힌 홑눈 겹눈이 수 만 개나 되는 고추잠자리는 나도 모르겠다며 머리를 갸우뚱거린다. 잠자리의 영롱한 눈 속에 든 외눈박이 짐승이 수 만 개의 알갱이로 부서져 햇빛에 반짝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