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도(滔滔)히 흐르는 섬진강...
섬진강 하동포구...
...
♥
사랑했었노라고 그땐
또 어쩔 수 없었노라고
지금은 어디서 어떻게 사는지도 모를 너를 찾아
고백하고도 싶었다
—그것은 너나 나나의 가슴에서
못을 뽑아버리고자 하는 일
그러나 타이어에 박힌 못을 함부로
잡아 뽑아버리고서 알았다
빼는 그 순간 피식피식 바람이 새어나가
차는 주저앉고 만다
사는 일이 더러 그렇다
가슴팍에 대못 몇 개 박아둔 채
정비소로 가든지 폐차장으로 가든지
갈 데까지 가는 것
갈 때까지는 가야 하는 것
치유를 꿈꾸지 않는 것
꿈꾼대도 결국 치유되지 않을 것이므로
대못이 살이 되도록 대못을 끌어안는 것
때론 대못이
대못 같은 것이
생이 새어나가지 않게
그러쥐고 있기도 하는 것이다
- 복효근 詩 < 타이어의 못을 뽑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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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가 되어 베어진 나무라 할지라도
나무에겐 추억이 있다네
잘린 나무토막을 보면 나이테가 보이지
나이테가 나무의 온몸에 결을 만들고 있지
결을 따라 바람이 드나들고
물이, 말하자면 나무의 피가 돌았지
그래서 말인데
장작을 팰 땐 포정이 소를 다루듯 해야 하네
무리한 힘을 줄 필요가 없어
나무가 이룬 결을 따라 도끼날을 집어넣어 주면 돼
마치 지수화풍地水火風이었던
그 모습으로돌려보내 주기 위해
천장사가 육신을 잘게 나누어
새들에게 먹이는 조장처럼 말이야
포정의 소는 뼈와 살이 다 분리되어 무너지는 순간까지
제 몸에 칼이 들어와 후비고 다녔다는 걸 몰랐다잖나
무엇보다 나무에게 미안한 마음으로
나무가 물이었던 시절
나무가 바람이었던 시절로 돌려보내주겠다는 생각으로
나무가 미리 내놓은 길을 찾아
길을 넓혀주면 되는 거지
그러면 나무가 쩍 박수 소리를 내며 벌어진다네
주의할 점도 있지
제 몸의 상처를 감싸고 돌처럼 굳어진 옹이엔
도끼날을 들이대지 않아야 하네
옹이는 나무의 사리이므로
상처를 사리로 만드는
기나긴 나무의 생에 대한 예의이므로
온몸에 불을 붙이고
제 갈 길 제가 밝히고 가는 장작,
장작에 대한 예의이므로...
- 복효근 詩 < 장작 패는 법 >
♣
눈물에서 행복을 끌어올립니다.
사람은 누구나 행복을 추구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가장 많이 접하는 단어도 행복입니다.
구글에서 ‘행복(happiness)’을 입력하면
불과 0.34초 만에 5억 개가 넘게 검색된다고 합니다.
행복의 비밀을 알려주는 책들이 쏟아지고,
1초도 안 되는 시간에 수억 개의 검색결과를 볼 수 있는데
‘왜 우리는 행복하지 못할까?’,
‘왜 아직도 행복에 대한 답을 찾지 못하고 있을까?’,
‘행복은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얼어붙은 눈물(Frozen Tears)은
진주를 일컫는 말입니다.
아름다움의 상징인 진주가
‘얼어붙은 눈물’이라고도 불리는 것은
그 탄생과정 때문입니다.
진주는 모래알이 조갯살에 박히면서부터 시작되는데
이때 조개는 자신의 피라고 할 수 있는
나카(nacre)라는 생명의 즙액을 분비해
모래로 인한 상처를 감싸 모든 이물질을 녹여버리고
상처를 치료합니다.
그렇게 오랜 세월 반복되면
하나의 아름다운 진주가 탄생되는 것입니다.
이때 ‘나카’라는 체액은 아주 조금씩, 천천히 생성되기 때문에
조개에겐 엄청난 고통이 따른다고 합니다.
행복을 향한 인간의 삶은
아름다움을 향한 진주의 삶과 많이 닮았습니다.
살다보면 우리의 삶에도
이런저런 모래알이 들어올 때가 있습니다.
바로 시련입니다.
세상에 시련 없는 인생은 없습니다.
맑은 날이 있으면 궂은 날이 있고,
햇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생기며,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는 것처럼
우리 삶에는 항상 행운과 행복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행복한 일도 있지만
그 보다는 슬픈 일, 힘든 일, 어려운 일,
가슴 아픈 일이 더 많을지도 모릅니다.
어느 詩人의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
... 라는 구절처럼
인생에서 불운과 불행은 당연히 찾아올 수 있고,
또 우리가 겪으며 살아가야 할 필연적인 삶의 일부분입니다.
살아간다는 것, 그 자체가
크고 작은 여러 시련을 극복해나가는 과정입니다.
그런데 인간의 삶이 진주의 삶과
달라야 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진주는 ‘나카’를 생성할 때
‘얼어붙은 눈물’로 인식하지만,
인간은 시련이 닥칠 때
‘얼어붙은 행복’으로 인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람인지라 예기치 못한 시련에
“왜 하필 나입니까?(Why me?)”라고
불평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곧
“왜 넌 안 되지?(Why not?)”라는
神의 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이 소리를 듣지 못하고 계속 불평하는 사람은
시련을 이겨내기가 힘듭니다.
불행을 빨리 극복하고 행운에 깊이 감사하는 사람이
행복한 삶을 살아갑니다.
외부에서 주어지는 시련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시련에 대한 내적 반응입니다.
우리 삶을 망가뜨리는 것은 시련이 아니라
그것을 대하는 자세입니다.
긍정적인 마음과 생각, 태도를 가진 사람은
감사할 수 없는 환경, 불평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도
감사해 합니다.
고난 속에서도 감사해 하고,
사소한 일상에서도 감사해 합니다.
그러나 부정적인 사람은 감사할 상황인데도
불평불만을 토로합니다.
감사나 불평도 그 사람이 갖고 있는 습관입니다.
감사하는 마음을 습관화하면
자나 깨나 앉으나 서나 감사가 있을 뿐입니다.
보고 듣고 느끼는 모든 것이 감사의 조건이 되고,
한평생을 감사하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일상생활에서 진정으로 감사하는 마음이 습관화되면
그것이 곧 행복을 피어나게 합니다.
불평하는 사람은 항상 불평만 합니다.
모든 것이 불평의 조건으로 보이고,
입만 열면 불평이 쏟아져 나옵니다.
닥친 시련을 최악의 상황과 비교하고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이며
감사하다고 말하는 사람은 행복하지만,
현재의 시련을 최선의 상황과 비교하고
불평하는 사람은 불행할 수밖에 없습니다.
시련 그 자체를 즐기며, 진주의 눈물에서 끌어올린
‘얼어붙은 행복’을 ‘따뜻한 행복’으로 녹이는 사람이
진정으로 행복한 사람입니다.
얼어붙은 것을 따뜻하게 녹이는 것은
함께하는 마음입니다.
함께는 나에게 힘이 되고,
위로가 되어 줍니다.
한 사람이 두 손으로 치는 박수보다
한쪽 팔을 잃은 두 상이용사가
서로 마주보며 남은 한 손으로 치는 박수가
더 감동적입니다.
함께 시련을 극복하고
활짝 웃는 웃음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 정종민 散文集 < 얼어붙은 행복 > 中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