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약을 복용할 때 가려야 할 음식들이 너무 많다는 불만이 자주 제기된다. '먹고 싶은 음식을 제쳐놓고 한약만 먹는다고 무슨 건강에 도움이 될까' 의구심을 갖는 사람도 있다. 더러는 한약을 2~3일 복용한 후에 '꼭 필요한 술자리가 있는데 술을 먹으면 안되느냐'고 사정하듯이 묻는 이도 있다.
그렇다면 한약 복용 시 왜 금기 식품을 두었을까? 그 이유는 약효를 증대시켜 치료를 빨리 끝내고, 부작용을 최소로 하기 위함이다. 약식동원(藥食同源)이라고 해서, 한약과 음식은 같은 뿌리여서, 한약과 음식이 충돌돼 약효가 떨어지거나 부작용이 발생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처방된 한약에 따라 금기해야 할 식품을 먼저 얘기해보자.
연세 지긋하신 어르신들은 투명한 한약봉지가 까만 것이면 으레 한약 속에 숙지황이 들어간 줄 안다. 그리고 '무'를 먹으면 머리가 하얗게 센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그런 일은 없다. 하지만 복약금기를 강조하기 위해 그런
이미지를 심어주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사실 숙지황 생지황
하수오가 처방된 한약을 복용할 때 '무'는 금기 식품이다. 박하에는 자라껍질과 자라고기를, 자라껍질은 비름나물을,
토복령, 위령선,
사군자 같은 한약이 들어간 경우는 차(茶)를, 황련, 감초, 도라지,
청매실이 들어 있을 때는 돼지고기를 삼가고, 숙지황, 당귀, 천궁,
백작약으로 된 혈(血)을 보하는 약을 쓸 때는 차(茶)를 삼간다.
혈(血)을 보하는 대표적인 약인 숙지황이 들어있으면 무나 차 같은 일상에서 흔히 먹을 수 있는 음식을 금하는 것이 필요하다. 또 생활 속에서 도라지 반찬을 먹거나
매실차를 마실 때는 돼지고기를 삼가는 편이 좋다.
특히 모든 한약이 조화롭게 잘 어울리도록 하기 위해 들어가는 약방의 '감초'에는 돼지고기를 삼가야 한다. 한약의 금기식품으로 돼지고기를 첫손에 꼽는 이유다. 피부가 가렵거나 종기, 부스럼 등이 있을 때는 따뜻한 성향의
쇠고기,
양고기, 생선과 자극적인 음식을 삼가야 한다.
열이 많은 증상에는 맵고 얼얼하거나, 두꺼운 기름이 뜨는 음식으로 열을 조장하는 일을 자제해야 하고, 추위를 많이 타는 환자는 찬 성질의 음식이나 날것을 삼가고, 야채나 과일도 삼간다.
머리가 아프고 어지럽거나, 잠을 잘 못 이루는 사람, 성미가 급한 사람은 머리로 열이 치받치는 경우로 술이나 차, 커피 등이 좋지 않다. 몸이 붓는 사람들은 짜게 먹지 말아야 하고,
위장병으로 더부룩하고 가스가 차고 소화가 안 되는 사람은 식초를 먹지 말아야 한다. 체기가 있는 사람은 기름지고, 걸쭉한 음식을 피한, 소박한 밥상이 필요하다.
또한 두통이나, 얼굴, 가슴 등 횡격막보다 높은 위치에서 발생한 질병을 치료할 때는 식후에 한약을 복용해 흡수되는 대로 위쪽으로 작용할 수 있도록 하고, 횡격막 아래에 질병이 있는 경우는 식사 전에 복용해 식사할 때
음식물이 약기운을 아래로 내려 보내 치료에 도움이 되도록 한다. 사지에 병이 들었을 때는 공복이나 혹은 이른 아침에 복용해 빠르게 사지로 퍼져나가게 한다.
한약을 먹었는데 설사를 하거나, 피부에 두드러기 혹은 뾰루지가 나거나, 가렵거나, 두통이 있는 등 이상한 증상이 나타난다면 반드시
한의원에 문의해야 한다. 이 증상을 해석하는 것은 크게 2가지다. 명현(瞑眩)현상이거나 부작용이다.
예를 들어 한약을 먹고 설사를 하더라도 기운이 가라앉지 않고 상쾌하면 한약의 좋은 반응으로, 몸의 노폐물을 밖으로 끄집어내는 과정이라고 보면 된다.
명현반응이다. 약기운에 적응해가는 첫 사흘 정도 기운이 가라앉는 경우도 있지만 걱정할 일은 아니다.
반대로 한약을 복용할수록 설사가 더 심해지고, 기운이 가라앉고
컨디션이 안 좋다면 부작용일 가능성이 높다. 한의원에 문의하고 처치를 받으면 된다.
과거에는 환자들이 헐벗고 굶주린 탓에 체력이 떨어져 조금이라도 몸에 자극을 주면 부작용이 나타나는 등 쉽게 몸이 상했다. 그러나 요즘은 체력도 좋아졌고, 한식 중식 양식 등 웬만한 음식에 단련됐기 때문에 앞서 지적한 금기사항을 제외하고 가장 기초적인 금기음식만 가리면 된다. 반드시 금기해야 하는 것은 녹두와 감초다. 녹두와 감초는 감두탕으로, 모든 병을 해독하는 역할을 하므로 한약을 약성이 없는 맹물로 만들어 버린다. 녹두가 포함된 숙주나물과 청포 등도 함께 반드시 금기해야 할 음식이다.
하늘꽃한의원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