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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음성, 달라스 윌라드, IVP>
1.
달라스 윌라드를 다시 역주행하고 있다. 내가 달라스 윌라드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한 것은 '레노바레' 운동 때문이었다. 레노바레의 정신과 영성의 추구가 개혁주의 노선의 나와는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 한국에 왔을 때 로마서 7-8장의 설교에서 성령으로 해석해야 하는 부분을 인간의 영으로 해석하는 것도 어딘가 모르게 마음이 불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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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하나님의 모략' 과 '잊혀진 제자도' 정도는 수용했지만 '하나님의 음성' 이라는 책은 2-3번 정도 읽고 이사할 때 다시 안읽을 목록으로 분류해서 창고에 두었다. 달라스 윌라드의 전기를 읽고 다시 <하나님의 음성>을 구입했다. 하나님의 음성이라는 책은 은밀한 개혁주의자보다는 넓지만, 보편적인 복음주의권 안에서는 충분히 수용가능한 책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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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팀 켈러는 <기도>라는 책에서 웨스트 민스터 교회사 교수인 칼 투르먼의 예를 인용한다. 칼 투르먼은 <지성적인 개혁주의자들이 신비주의 영성가들의 책을 읽어야 하는가?> 라는 기사를 썼다. 결론은 반드시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 신비주의 영성가들이 말하는 성령님에 대한 이해는 우리와 다르지만, 그들이 추구하는 성령님에 대한 예민한 추구를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건강한 해석의 바탕에서 더욱 추구해야할 사안으로 이야기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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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켈러도 성경을 연구하고 묵상하는 것을 추천하지만, 자신도 그 연구의 내용을 기도속에서 깨닫는 경우가 많았다고 고백했다. 말씀을 묵상하면서 성령께서 자신에게 주시는 깊은 터치를 경험함으로 은혜를 누렸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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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달라스 윌라드의 <하나님의 음성>은 조이 도우슨의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삶>이라는 부류의 책과는 다른 면이 있다. 예수님을 믿는 모든 사람들은 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다는 주장은 동일하지만 그 방법에 있어서 차이점을 가진다. 달라스 윌라드의 <하나님의 음성>에서 마지막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위한 연습은 주로 렉치오 디비나를 연습할 것을 요구한다.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기도하고 관상하는 과정을 통해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다는 것이다. 마지막 관상이 영성가들은 마치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단계로 표현하지만 달라스 윌라드의 관상은 유진 피터슨과 비슷하게 일상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적용하는 것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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렉치오 디비나라는 말 때문에 달라스 윌라드를 오해하지는 말아야 할 것이다. 또 달라스 윌라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에 대한 오해에서 '매순간 메시지를 주신다는 생각'은 잘못된 오해라고 말한다. 조이 도우슨이 중요한 동전을 잃어버렸는데 성령님께서 목욕탕에 있다고 말씀해주셔서 찾는 방식과는 다르다. 또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구체적인 음성을 거부하는 것도 반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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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사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인 섭리인 것은 맞지만 그 가운데 하나님은 성령님의 터치를 통해 말씀하신다는 것이다. 또 달라스 윌라드는 '극적일 수록 덜 성숙한 것이다' 고 말한다. 하나님의 직통계시같은 목소리로 생생히 듣거나, 하늘에서 성경구절이 보인다든지, 예언과 환상 같은 기적적인 사건들을 통한 것을 추구하는 것은 인격적인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과는 좀 다르다고 말하면서 극적인 것을 추구하는 것 자체가 신앙이 성숙하지 못한 미숙한 상태라고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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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스 윌라드는 구체적으로 말씀하시지 않는 모호한 상황도 우리의 성숙을 위한 하나님의 인도의 과정이라 말한다. 어린 시절에는 부모님이 모든 것을 다 이야기 해주지만, 성숙할수록 알아서 하는 일들이 많아지게 된다. 하나님의 인도도 마찬가자리는 것이다. 성숙할 수록 표적이나 구체적인 음성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인격적인 과정을 통해 하나님의 생각을 점점 더 알아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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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엄밀한 개혁주의자들과의 차이점이라면 엄밀한 개혁주의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벗어나서 말씀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큐티에 대해 지나치게 비판적이고, 해석와 교리를 중시한다. 그러면서 오늘의 삶에 역사하시는 성령님의 터치를 스스로 닫아버리는 경우가 있다. 죽은 교리만 남고 오늘 역사하시는 성령님의 터치에 민감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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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스 윌라드는 하나님의 음성은 말씀 이상이라 말한다. 이 때 말씀 이상이라는 말은 직접적 음성으로 들린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서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는 내용도 말씀을 해석하는 과정 묵상하는 과정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깨닫도록 특유의 터치를 주신다는 것이다. 이말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에 나오는 구체적인 말씀의 지침이 없어도 말씀의 원리를 유추함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말과 일맥상통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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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결국 달라스 윌라드가 말하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핵심은 두 가지이다. 첫째는 말씀을 통해 기도하는 것이고 둘째는 그 말씀을 묵상하면서 일상을 살아가는 것이다. 달라스 윌라드는 하나님의 뜻을 간구해야 하는 문제가 있으면 성경을 읽으면서 하나님께 기도한다. "하나님 ~~문제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구합니다." 그렇게 성경을 읽으면서 기도하면 말씀안에서 여러가지 문제들이 해결될 때가 있다는 것이다. 성령께서 특유의 깨달음을 주시기 때문이다. 이것은 특별한 체험이 아니라 우리도 일상 속에서 흔히 경험하는 것을 하나님의 음성이라고 표현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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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는 명확하게 깨달음이 없으면 하나님의 뜻을 묵상하면서 그냥 일상적인 생활을 한다. 일상 속에서 어떤 마음의 부딛침이 없으면 자신이 하나님의 뜻을 파악하지 못하는 어떤 욕심을 가지고 있는지 자신을 돌아보는 기도를 하면서 일상을 살아간다. 그리고 그래도 명확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선택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스스로 선택하면서 계속 하나님을 간구하며 나아가라고 권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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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모든 문제에 하나하나 구체적인 해답이 있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모호한 과정 속에서 믿음이 성장하고 하나님을 의지할 수 있다고 권유한다. 사실 이 부분은 개혁주의자들이 배우고 따라야할 실천지침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달라스 윌라드의 관심은 음성을 듣는 것이 아니라, 이 땅에 임한 하나님의 나라의 실재를 경험하는 것이다. 그 과정 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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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경험을 통해 하나님의 음성을 구분하는 세 가지를 언급한다. 첫째는 '음질'이라고 번역한 'Quality' 둘째는 '정신'으로 번역한 'spirit' 셋째는 '내용'인 'content' 이다. 하나님의 뜻과 인간의 뜻과 마귀의 뜻은 모두 1인칭의 시점인 나의 생각으로 떠오른다. 마귀의 생각은 마귀의 생각처럼, 하나님의 생각은 하나님의 생각처럼 떠오르는 것이 아니라 모두 내 생각으로 떠오르고 그래서 모든 하나님의 음성에 대해서는 내가 스스로 책임지고 선택하며 판단하는 것임을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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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내가 선택한 것에 대해 하나님을 탓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그때 하나님의 음성을 구분하는 첫번째는 Quality 음질이다. 이것을 달라스 윌라드는 말씀 자체가 주는 권위의 무게라고 표현한다. 하나님의 뜻이 내 생각 속에 떠오를 때는 나를 설득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는다고 한다. "이래서..이렇게 되서..이렇게 하면... 이렇게 할 수 있구나" 라는 설득의 과정은 대부분 잘못된 자기 합리화로 이끌어 가고 주로 자신의 생각이나 마귀가 심어준 생각인 경우가 많다. 하나님의 뜻은 스스로 선포된다. 그 음질자체의 무게가 다르게 다가온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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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는 정신 'spirit' 이다. 하나님의 뜻은 특유의 정신이 있기 때문에 인간의 마음에 기쁨, 감사를 동반한다. 때로는 책망과 훈계를 동반하기도 하지만 그 끝에는 언제나 감사와 기쁨이 존재한다. 이 정신을 야고보서 3장 17절로 표현했다.
9.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견과 거짓이 없나니" 이런 특유의 정신이 배여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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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는 '내용' content 이다. 그 내용은 성경말씀을 바르게 해석한 것과 다르게 나타날 수는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비윤리적이신 분이 아니시다. 만약 비윤리적인 음성이라면 100%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고 단정해도 좋을 것이다. 언젠가 옥한흠 목사님은 순장반 강의에서 '상식과 신앙이 부딛치면 상식을 따르라' 는 발언을 하시기도 했다. 모든 면에서 다 적용될 수는 없지만. 신앙이 비상식적이지 않다는 말씀을 하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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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그리고 마지막으로 두 가지를 더 언급한다. 성경이 지엽적인 단어가 아니라 성경의 원리 즉 교리에 맞는지를 돌아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성경의 원리에 어긋나는 하나님의 뜻이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또 한가는 아무리 하나님의 뜻이라 확신하고 행동하더라도 틀릴 수도 있다는 생각을 늘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땅에 사는 동안 우리는 100% 무오한 하나님의 뜻이라 생각하고 행동하고 판단해서는 안 되고 판단을 하고 선택을 하지만 지속적으로 돌아보고 점검해야 함을 이야기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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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대부분은 스스로 알아서 판단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말도 덧붙인다. 하나님을 의지한다는 말은 어디로 갈지, 버스를 탈지 지하철을 탈지를 하나 하나 기도한다는 것이 아니다. 그것 자체는 영적 미성숙의 특징이라고 말한다. 성숙할 수록 구체적인 뜻보다 알아서 판단하는 것이 많고 그것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이 늘 인격적인 교제가운데 이루어지는 일이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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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달라스 윌라드는 2살 때 어머니를 잃었다. 새어머니는 자신을 싫어해서 같이 있고 싶어하지 않았고 아버지의 사랑도 잘 받지 못한 외로운 소년이었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큰형과 형수님 손에서 자랐다. 그런 외로운 인생 속에서 그가 꿈꾸었던 것은 어머니의 사랑이었을 것이다. 달라스 윌라드가 현상학이라는 철학에 집중했던 것도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실재하는 것임을 증명하고 싶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나라의 임재의 확신이 바로 하나님의 음성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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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이렇게 이 땅에 임한 일상속의 하나님의 나라를 경험하면서 어린시절 외로웠던 어머니의 사랑을 하나님으로부터 채웠을 것이다. 그가 추구했던 철학, 영성, 이 모든 것은 결국 이 세상 가운데 임한 하나님의 나라를 풍성히 누리고자 하는 그의 삶이 반영된 추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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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어쩌면 영성이라는 개념때문에 잘못된 색안경을 쓰고 달라스 윌라드를 평가했는지도 모르겠다. 다시 <하나님의 음성>을 읽으면서 많은 부분이 동의가 되었다. 그리고 나도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면서 내 안에 역사하시는 생생한 성령님의 역사를 경험하고 싶어졌다. 내 삶 속에 지금도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이 느껴지지 않는다면 무미건조해서 어떻게 신앙생활을 할 수 있겠는가? 하나님은 오늘도 성경을 기초로해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분이시다.
ㅡ고상섭
첫댓글 하나님은 오늘도 성경을 기초로해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분이시다 아멘
샬롬♧
은혜가 더욱 풍성하시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