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루귀
2023년 3월 24일(금) 맑음, 남한산성
풀꽃들을 찾아갈 때는 늘 마음이 설렌다. 거기에 가면 여태 알지 못한 세계에 대한 기대에 부풀곤 한다.
남한산성 노루귀가 작년에 비해 시들하다. 나를 포함한 워낙 많은 탐화객들에게 시달려서인지 개체수가 눈에 띄
게 줄었고, 생육상태도 보기에 안쓰러울 정도로 빈약하다. 어쩌면 이러다 찾는 사람이 적어지면 다시 예전 모습을
회복할지도 모를 일이다.
정지영의 내가 사랑하는 시 『마음이 예뻐지는 시』(2001, 나무생각)에서 몇 수 골라 함께 올린다.
호 수
문병란
수많은 사람을 만나고 온 밤에
꼭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다
무수한 어깨들 사이에서
무수한 눈길의 번뜩임 사이에서
더욱 더 가슴 저미는 고독을 안고
시간의 변두리로 밀려나면
비로소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다
수많은 사람 사이를 지나고
수많은 사람을 사랑해 버린 다음
비로소 만나야 할 사람
비로소 사랑해야 할 사람
이 긴 기다림은 무엇인가
바람 같은 목마름을 안고
모든 사람과 헤어진 다음
모든 사랑이 끝난 다음
비로소 사랑하고 싶은 사람이여
이 어쩔 수 없는 그리움이여
주) 나는 위 시에서 ‘사람’을 ‘풀꽃’으로 읽는다.
이제 우리가 사랑한다는 것은
류근
이제 우리가 사랑한다는 것은
사랑 때문에 서로를 외롭게 하지 않는 일
사랑 때문에 서로를
기다리게 하지 않는 일
이제 우리가 사랑한다는 것은
사랑 때문에 오히려 슬픔을 슬픔답게
껴안을 수 있는 일
아픔을 아픔답게
앓아낼 수 있는 일
먼 길의 별이여
우리 너무 오래 떠돌았다
우리 한 번 눈 맞춘 그 순간에
지상의 모든 봄의 꽃 피었느니
이제 우리가 사랑한다는 것은
푸른 종 흔들어 헹구는
저녁답 안개마저 물빛처럼
씻어 해맑게 갈무리할 줄 아는 일
사랑 때문에
사랑 아닌 것마저 부드럽게
감싸 안을 줄 아는 일
이제 우리가 진실로
진실로 사랑한다는 것은
농 담
이문재
문득 아름다운 것과 마주쳤을 때
지금 곁에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떠오르는 얼굴이 있다면 그대는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
그윽한 풍경이나
제대로 맛을 낸 음식 앞에서
아무도 생각하지 않는 사람
그 사람은 정말 강하거나
아니면 진짜 외로운 사람이다
종소리를 더 멀리 내보내기 위하여
종은 더 아파야 한다
함께 있으면 좋은 사람
용혜원
그대를 만나던 날
느낌이 참 좋았습니다
착한 눈빛, 해맑은 웃음
한 마디 한 마디 말에도
따뜻한 배려가 담겨 있어
잠시 동안 함께 있었는데
오래 사귄 친구처럼
마음이 편안했습니다
내가 하는 말들을
웃는 얼굴로 잘 들어주고
어떤 격식이나 체면 차림 없이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솔직하고 담백함이
참으로 좋았습니다
그대가 내 마음을 읽어주는 것 같아
둥지를 잃은 새가
새 보금자리를 찾은 것만 같았습니다
짧은 만남이지만
기쁘고 즐거웠습니다
오랜만에 마음을 함께
맞추고 싶은 사람을 만났습니다
마치 사랑하는 사람에게
장미꽃 한 다발을 받은 것보다
더 행복했습니다
그대는 함께 있으면 있을수록
더 좋은 사람입니다
34. 현호색
35. 앉은부채
36. 제비꽃
첫댓글 앉은부채라는 게 있군요.
천남성 종류인가 봅니다.
일본어를 찾아보니 座禅草(ザゼンソウ)(좌선초)라고 나오네요.
신기하네요.
그렇다면 식물 이름이 일본명에서 유래했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