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을 접하고, 나는 문학의 본질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하였다.
우선, 내 자신의 문제에 대한 것들이었다. 내 과거의 기억과 아픈 이야기들, 내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들, 내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들, 나의 관심은 서서히 내 자신으로부터 시작하여 밖으로 퍼져나감을 느낄 수 있었다.
필연적으로, 문학은 나의 이야기든, 남의 이야기든, 깊은 이야기임을 알게 되었다. 깊은 이야기는 대체로 아픈 이야기, 괴로운 이야기 즉, 갈등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남의 이야기를 생각하다 보니 자연스레 사회적 갈등에 대한 문제에 접근하게 되었다.
사실, 나는 문학을 하기 전에는, 나와 내 주변 사람들 이외에는 관심이 없었다. 내 배부르면 그만이었고, 내 식구 행복하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요즘은 사회적 문제가 나로서는 절실하게 다가온다. 정치와 경제, 국가와 민족,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민주주의와 사회주의, 종교와 전쟁, 기업의 생산과 복지 정책에 의한 분배, 나는 설익은 내 가치관으로 인터넷과 여러 서적들을 뒤지기 시작하였다. 내가 찾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채, 마구잡이로 여러 가지 지식들을 섭렵하기 시작하였다. 그래서 어느 정도 나의 사회적 가치관을 정립하고, 서서히 현실의 우리 문제점들에 대해 생각을 하였다.
21 세기에 들어와 이념논쟁이 사라지고 바야흐로 자본주의 천국이 되어버렸다. 가까운 중국을 보더라도 자본주의 열풍은 실감할 수 있다. 상품을 만들어 다른 나라에 팔아서 이익을 남기는 것이 국가의 가장 중요한 화두가 된 것이다. 국가 경쟁력은 상품의 경쟁력이고 국가의 가치는 富의 창출이 되어 버렸다. 자본과 상품의 힘은 전 세계에 미치고 있다. 이제 시장 개방은, 마치 19 세기 말 개항을 요구했던 서구 열강들의 힘을 피할 수 없었듯이, 우리 앞에 다가 온 것이다.
올해 대통령 연두기자 회견을 두 번했다. 두 번씩 한 이유는 양극화 때문이었다. 이제 정치권에서도 양극화 해결 방안이 최우선 과제로 다가 온 것이다. 정치인들은 정권을 잡기위해 양극화를 생각하겠지만, 나는 문학으로 다가 온 사회 문제점을 생각하다 양극화를 생각하게 되었다.
자본주의에서 빈부의 격차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나는 그것마저 부정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빈곤하더라도 인간의 존엄성만큼은 지키고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뉴스에서 굶어죽은 노숙자를 보았다. 나는 슬프기 전에, 분노했다. 국가라는 것에, 사회라는 것에, 치를 떨었다. 그 시각, 우리가 미국 메이저리그 사무국이 스포츠 마케팅으로 만들어 놓은 세계 야구 경기를 보며 흥분해 있을 때, 그 늙은 노숙자는 아파트 지하 차가운 바닥에서 병들어 굶어 죽은 것이다.
도대체 국가가 왜 있는가. 국민을 통제하고 세금을 거두어 어디다 쓰는가. 정치인들은 뭐 하라고 뽑아 놓은 것인가.
현재 우리나라 양극화의 원인을 알아보자. 양극화의 시발점을 따지자면, 멀리 박정희 정권부터 시작되어야겠지만, 알기 쉽게 노태우 정권부터 시작해 보자. 노태우 정권이 내세우는 아파트 200 만호 건설에서 주택 문제의 양극화가 시작되었다. 아파트란 선진국에서는 서민들을 위해 국가에서 임대주택으로 주는 것이다. 노태우 정권은 서민들 주택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치고, 주택 문제를 심화 시키고 아파트 값을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상승시킨 주범이다. 토지공사를 만들어 땅장사를 하고, 대형건설사와 분양가 담합을 해서, 아파트를 팔아먹었다. 아파트가 투자수단이 되는 웃기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노태우 정권은 200 만호 전부를 영구 임대 아파트로 지었어야 하는 것이다.
김영삼 정권은 세계화가 무엇인지도 파악을 못한 채 설치다가 국제 투기 자본에 의해 IMF를 초래했다. 자본의 세계화가 얼마나 위험한지 미처 모르고, 주식시장을 개방했다가, 해외 투기 자본에 의해 주식 시장이 교란 되면서 주가를 한창 상승시켜놓고 돈을 벌어 일시에 빠져나간 것이 주원인이 되었다. 물론 부실한 우리 기업들의 재무구조도 원인이었지만, 가장 중요한 원인을 제공한 것은 자본의 세계화였던 것이다.
김대중 정권은 IMF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양극화를 심화시켰다. 미국과 해외 투기 자본이 주도하는 국제통화기금(IMF)의 요구대로 기업과 공기업들을 구조조정을 하였다. 그러나, 어쩔 수 없이 그들의 요구대로 구조조정을 했다고 하더라도, 그 과정은 너무나 강압적이었고, 엉터리였다. 그 결과 기업의 재무구조는 튼튼해졌지만, 엄청난 실업자와 비정규직 노동자를 탄생시켰다. 구조조정 과정에서도 부실기업뿐만 아니라 건실한 기업도 말도 안돼는 가격으로 팔아치웠고,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구조조정이라는 이름으로 공적인 성격을 지닌 공기업조차도 민영화 시키면서, 많은 수의 직원들을 퇴사 시켰다. 그 덕분에 엄청난 수의 해직 근로자들이 영세한 장사에 뛰어 들어 명예퇴직으로 받은 퇴직금을 날리고 서민 경제는 더 어려워 진 것이다.
혹자는, 구조조정의 명분으로 세계화의 무한경쟁과 효율성을 이야기 할 것이다. 효율성과 경쟁력이라는 말은 참으로 듣기도 좋고 쓰기도 좋은 말이다. 내 자신 조차도 그 말에 잠시 취한 적이 있다.
그러나, 그것을 뒤집어 보면, 현재의 양극화의 원인과 해법을 찾을 수 있다.
우리가 늘 마시고 사용하는 수돗물을 보자. 수돗물의 원가계산을 해 보면, 우리는 터무니없는 싼값에 수돗물을 사용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각 광역지방자치단체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대략 일 입방 미터당 500원 정도로 물값이 정해져 있다. 같은 양의 생수 가격 500000원에 비하면 우리는 엄청나게 싼 가격으로 수돗물을 사용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국가는 분명 손해 보는 장사를 하는 셈이다. 그 손해부분을 우리의 세금으로 보전이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즉, 경제학 용어로 수돗물은 공공재이고 생수는 상품이라고 말한다.
만약, 수도 사업을 민영화 시키면 어떻게 되겠는가. 아마 지금과 같은 격심한 양극화 시대에서는 물을 마시지 못해 죽는 사람도 생길 것이다.
한국통신이 민영화 되었다. KT 라고 이름을 영어로 고치고, 민간인을 사장으로 앉히고, 주식을 개방하고 구조조정을 단행해서 엄청난 수의 직원을 퇴사시키고, 현재도 구조조정은 진행되고 있다. 현재 KT의 주식은 의결권이 없는 우리사주를 제외하고는 과반수 이상을 외국인이 가지고 있다. 그 중 대부분은 해외 투기 자본임을 알아야 한다.
현재, 철도청이 철도공사라는 이름으로 민영화 과정에 있다. 철도공사 직원들도 많은 수가 비정규직이 되거나 퇴사 당할 것이다. 물론 효율성과 경쟁력이라는 명분일 것이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 보자. 만약 KT와 철도공사가 완전히 민영화 되고, 게다가 외국인들이 주총에서 의결권을 행사한다고 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
전봇대 수십개, 수백개를 세워야 통 할 수 있는 산간벽지의 전화선은 효율성과 이익이라는 이름으로 짤릴 것이고, 만년적자인 영동선 철로는, 마치 휴전선 때문에 끊긴 철원의 녹 쓸은 기차처럼, 철마는 달리고 싶다를 외칠지도 모를 일이다.
현재 담배인삼공사가 주총에서 과반수를 점한 외국인들에 의해 경영권을 빼앗길 위기에 있다.
이제, 양극화의 해법을 찾아보자. 대통령은 연두기자 회견에서 양극화의 해법을 일자리 창출과 대기업 경쟁력과 중소기업에 자금 지원, 빈민층 복지지원, 새로운 경제 활성화로 찾을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그것은 터무니없는 소리다. 앞으로 10 년 후에는 지금의 일자리 중에서 절반이 사라는데, 어떻게 해서 그 많은 일자리를 어거지로 만든단 말인가. 혹시, 일시적인 공공근로 일자리라면 모르지만 말이다. 대기업 경쟁력, 물론 수출은 늘어난다. 작년 우리나라 국민 총 생산은 세계 11위이다. 이 작은 나라에서 근로자들은 아직까지 세계 최장시간 노동을 하여 이루어 놓은 결과이다. 그러나 대기업 경쟁력은 수출시장과 국민 총생산에는 분명 효과가 있을 것임에는 반론이 없다. 그러나 지금의 현실을 보아도, 그것이 서민경제와는 무관한 일이다. 과거 개발 경제 시대의 우리 경제와 현재의 볼륨이 큰 경제와의 차이는 소비의 문제이다. 개발 경제 시대에는 소비가 미덕이 아니었고, 저축이 미덕이었지만, 지금의 우리 경제는 소비를 해야지만, 서민 경제가 살아난다.
빈곤층 복지지원, 이것도 좋은 말임에는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일부 극소수의 서민층에 대한 복지 지원만으로는 양극화는 해소되지 않는다. 지금의 양극화는 극소수의 빈곤층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경제를 좌우하는 중산층의 문제인 것이다.
양극화의 해법은, 수돗물에서 찾을 수 있다. 수돗물의 경우처럼 공공복지를 늘이자는 이야기다. 국민이 먹고 자고 병을 치료하고 교육받는 부분을 공공재로 처리하자는 것이다.
현재, 작년까지 서울을 마지막으로 중학교가 무상교육이 되었다. 물론 급식비까지 무료는 아니라서 완전한 무상교육은 아니지만, 하여간 중학교 까지는 무상교육이 완료 되었다. 작년에 서울 시민 중에 중학생이 10만 정도였으니, 아마 일년간 교육비 합계 일인당 80만원 정도가 10만 가구에 가처분 소득으로 남겨져 합계 800억 정도의 돈이 서민 경제에 유통이 되었다.
이것을 고등학교 까지 확대 한다면, 그 효과는 엄청날 것이다. 실제로 쓰나미 피해로 수만명이 죽은 국민소득이 우리나라의 십분의 일 밖에 되지 않는 스리랑카에서도 고등학교 까지무상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사교육비가 세계 최고이다. 전체 교육비에서 사교육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70퍼센트이다. 고등학교 까지 무상교육을 실시하고, 공교육을 정상화시킨다면, 서민들이 쓸 수 있는 가처분 소득은 훨씬 더 늘어날 것이다.
이런 식으로, 의료부분과 주택부분까지 확대 한다면, 그 효과는 가히 상상을 초월 할 것이다. 지금의 의료보험은 사실상 국민들이 제대로 혜택을 보지 못하는 시스템이다. 잔병치레나 의료보험을 받고 정작, 목숨이 달려 있는 큰병에는 전혀 보험 혜택을 받을 수 없으니, 이것을 가지고 의료보험이라고 말하는 것은 다른 나라에 창피한 일이다.
주택 부분은 앞으로는 분양이 아닌, 영구임대 아파트를 건설하자는 것이다. 그래서 소득에 따라 임대료를 정하는 것이다. 실제로 유럽 선진국들은 이런 식으로 주택을 서민들에게 사용하고 있다. 그러면 집을 사기 위해 평생을 일하고, 지금과 같은 말도 안돼는 아파트 값은 형성되지 않을 것이고, 아파트 값은 자연스레 정상화 될 것이다. 물론, 아파트에 대출을 해준 은행들의 부실이 일어나 혼란이 일어나겠지만, 서민경제의 안정화가 금융기관의 부실보다 더 가치 있는 일이다.
양극화의 해법은, 바로 공공복지의 증대이다. 공공복지의 증대로 국민들의 가처분 소득은 늘어날 것이고, 그것이 서민 경제의 활성화를 가져 올 것이다. 혹자는, 그럼 공공복지를 위한 그 많은 돈은 어디서 구하고, 그럼 세금을 더 내야 할 것이 아니냐고 말할 것이다.
예를 들어, 새만금 방조제를 만들지 않고, 도로 하나를 덜 닦고, 건물 하나를 덜 세우고, 그 남는 돈으로 공공복지에 투자하자는 것이다. 개발의 경제에서 복지의 경제로 나가자는 것이다. 가처분 소득이 늘어나 서민 경제가 활성화 되면 기업의 경영도 좋아진다. 그것이 밑거름이 되어 기업들은 경쟁력을 갖추고 세계로 나갈 수 있는 발판이 되는 것이다.
특히, 서민 경제와 밀접한 관계에 있는 중소기업의 경우에는 더욱 그러할 것이다.
개발 경제의 허실에 대한 예를 하나 들겠다.
태풍 루사의 피해복구비로 강릉시에 3년간 1조 2천억이 투입되었다. 3년간 1조 2천억이라면, 강릉 경제는 호황으로 흥청거려야 했다. 그러나 강릉의 서민 경제는 전혀 그런 조짐이 없었다. 그렇다고, 외지업체가 와서 수해복구 공사를 했던 것도 아니었다. 순전히 강릉의 지역 업체만으로 긴급공사의 명목으로 수의 계약과 설계변경으로 공사를 독차지 했다. 강릉에 뿌려진 1조 2천억은 일부 대형 건설업체의 수중으로 들어간 것이다. 서민경제는 개발경제와는 무관함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인 것이다.
나는 강원도에서 열 번째 안에 노사모 회원이 되었고, 열우당 지지자였다. 그러나 나는 지금, 민노당원이 되었다. 열우당의 양극화 해법을 보고 스스로 민노당 사이트를 찾아 당비를 내는 당원이 된 것이다. 노무현은 분배주의자이고, 그가 대통령이 되고 만들어 놓은 정치적 분위기를 인정한다. 그러나 노무현은 양극화를 해결 못한다고 나는 결론을 내렸다. 그래서 민노당원이 된 것이다. 민노당의 해법은, 물론 신자유주의 정책을 막는 것이지만, 나와 같은 양극화의 해법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민노당은 자만해서는 안된다. 현재의 대안으로서 민노당일 뿐이지, 사회의 변화에 따라 언제든지 다른 정책이나 대안이나 정치적 세력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존엄성을 지킬 수 있고, 국민들이 행복하기 위한 것이라면, 좌파든, 우파든, 공산주의든, 민주주의든, 자본주의든, 사회주의든, 무슨 상관인가. 꽁 잡는 게 매가 아니더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