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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에서는 닿을 수 없는... 너와 나의... “이연”
異緣 #.10
“한발짝만 더 오면 험한 꼴 볼 줄 알아.”
“그런 너야말로 한발짝만 비켜보지 그래.”
뚱-하게 바라보고 있는 나를 향해 손가락을 까딱까딱- 해보인다.
한걸음 비켜서 돌아보자 벽면 전체가 거대한 가구와도 같았다.
황제는 나를 지나쳐 빼곡히 가득한 서랍들 가운데 하나를 열어 필요한 문서들을 꺼내고는 다시 제자리로 돌아갔다.
방금 전까지 대화란걸 주고받은 내 존재에 대해선 벌써 잊기로 했는지 제 일에 금세 골몰해버리는 모습에 나도 풀이 죽었다.
뒤돌아 나가려는 내 등에 대고 기어이 복장 터지는 한마디를 잊지 않는다.
“시녀복장을 한 색사라- 뭐, 애원해도 가고싶은 맘은 안생기겠군.”
그런 나는 뭐 좋아서 운궁에 왔는 줄 알아??!!!! 다 네놈이 꾸민거잖아!!!!!
“그거 잘 됐네. 난 앞으로도 이렇게 입을 생각이니까.”
// 異緣 //
거대한 반원형을 그리며 주욱 이어진 많은 방들 가운데 가장 끝 방.
제풀에 지쳐 방으로 돌아온 나는, 딱히 짐이랄 것도 없는 보따리를 풀어 정리라는 걸 하기 시작했다.
자고 일어날 때 갈아입는 옷, 진이가 궁 밖에서 사준 가면, 그 밖에 잡다한 것들.
그리고 이 나라안에서는 하나뿐일- 벽화에서 입고왔던 내 옷.
벽화에서 이리로 오게 된지 얼마가 지났는지도 가물할 만큼, 이젠 오히려 벽화에서의 생활이 꿈이었던 것처럼 느껴진다.
그 바래져버린 기억처럼 오래도록 손을 타지 않은 이 옷도 제 색을 잃고 퇴색해버렸다.
추억만은 변질되지 않기를, 이곳의 공기를 타는 것만으로도 그것들이 다 변해버릴까 두려워 얼른 옷을 감추듯 넣어버렸다.
“안에 계신지요.”
때아닌 존칭에 되려 당황해버렸다. 나를 찾는걸까. 빼꼼- 문을 열자 시녀 한 사람이 꾸벅 인사를 한다.
“선운궁에서 왔습니다. 은비 마마께서 찾아계십니다.”
교은비. 그녀가 어째서 나를 찾는걸까.
의아한 마음과 함께, 그 이름만으로도 다정함이 느껴지는 그 사람을 나도 만나고 싶어졌다.
여기서 더 격식을 차리고 할 옷도 없으니 나는 그대로 방을 나선다.
길을 인도하는 시녀의 뒤를 좇아, 운궁에서 선운궁으로 가는 빠른 길을 알게 되었다. 그 때처럼 흐드러진 수선화의 꽃내음이 먼저 나를 반겼다.
“들어가십시오.”
방으로 들어서자 교은비는 침상위에 펼쳐진 대여섯 벌쯤 되는 옷들을 내려다보며
마치 근교로 소풍이라도 나갈 사람처럼 신이 난 모양을 하고는 흐뭇해하고 있었다.
찾아계시옵니까- 객쩍어하며 말을 거는 나를 알아차리고 가까이 다가서며 스스럼없이 두 손을 잡았다.
“운궁으로 옮겨갔다는 소식을 들었구나.”
“..예, 그리 되었습니다.”
“잘 되었어, 다행한 일이지 않느냐.”
“이렇듯 염려를 해주시니-”
표정을 보자면, 운궁으로 옮겨가서 팔자를 펴게 된 것은 내가 아니라 교은비 인 것처럼- 그녀는 그렇게 반가운 기색이었다.
내 말이 다 맺어지기도 전에 팔을 잡아끌더니 침상위에 잔뜩 널려있는 옷들을 향해 간다.
“이제 내겐 맞지 않는 옷들이라서, 네게 주려하는데-”
“아니옵니다, 어찌-”
“나같은 사람이야 언제고 마음에 드는 옷은 가질 수 있으니 상관없다.”
고맙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이런 식의 호의가 아직 익숙치않은 나는 무턱대고 반가워 할 입장은 아니었다.
더군다나 현 황제의 후궁이 입었던 옷이라니, 그걸 신이나서 입고 다닐 만큼 바보도 아니었거니와.
“마마, 호의에 말할 수 없이 기쁘오나 제 분수에는 맞지 않는 듯합니다.”
“어찌 그리 말하는게야. 이제 색사의 신분이 되었거늘.”
“마음만 주십시오. 아니, 이미 받았으니 충분합니다.”
종전과는 또 반대로 너무나 아쉬워하는 표정을 한 채 교은비가 나를 바라보지만
더 이상 권한다든지, 혹은 보챈다든지 하는 생각 얕은 사람이 아니었기에 차를 대접하며 금세 화제가 전환되었다.
지난 가을에 즙을 낸 것을 오래 즐기려고 보관해두었다 하는 석류차는 은은하게 붉은 빛깔만큼이나 향이 진했다.
중독될 것처럼 진한 맛은 아니었지만, 되려 지금 내가 취해버린건 교은비의 나긋나긋한 목소리.
색사도 황제를 곁에서 모시는 직책의 일종이니 앞으로는 너무 자신을 낮추지 말라 이른다.
“명심하겠습니다.”
“잘 해낼게야.”
...
“혹, 형제들은 좀 있느냐.”
“..예.”
“그렇구나. 모두 전쟁중에 헤어졌을 터인데-”
“어딘가에 잘 지내고 있으리라 짐작만 하고 있습니다.”
“그럴테지. 분명 그럴게야.”
“마마께오서는 형제가 있으신지요.”
“아니, 나는 혼자 자랐단다.”
“.......”
“독녀로 자라는 것이 그리 흔한 일은 아니지.
가까운 예로, 현비께서 아우님을 뵙는 것만 보아도 나는 그리 부럽더구나.”
“아우님..이시라면-”
“폐하의 비서랑으로 계신 분이시란다. 아직 뵌 적은 없는게로구나.”
“예.”
“페하를 모시다 보면 자연히 뵙게 되겠지. 비서랑께서는 매일 궁에 오시니.”
그렇게 너무 무겁지 않은 주제들로 몇몇을 대화가 오간 후에, 오래 머무르는 것도 폐가 되는 일인 것 같아 금세 자리에서 일어났다.
선운궁 뜰을 나서며 돌아가는 길을 눈으로 짚어보고 있는데, 저어기 세연궁 쪽에서 갑옷의 병사들이 지나가는 것이 보인다.
마침 지나치던 시녀 한 사람을 세워 물었다.
“세연궁에 무슨 일이 있습니까.”
“시녀 한 사람이 옥사(獄舍)로 잡혀가는 것 같았습니다.”
“시녀.. 누가 잡혀가는지도 아십니까.”
“이름이.. ‘진’이라 들었습니다.”
말을 마치고 급히 돌아가려는 그녀를 다시 잡아 세웠다.
“진이라니요!! 확실합니까? 이유가 무엇입니까?”
“자세한 것은 모릅니다. 그녀의 방에서 무기같은 것이-”
며칠 전 내 침상 밑에서 꺼냈었던 진이의 검과 화살이 떠올랐다. 나는 급히 세연궁으로 달려갔다.
어수선한 분위기는 물론이었고, 그 안의 시녀들도 모두 서로의 얼굴만 번갈아보며 수군거리고들 있었다.
얼마전까지 진이와 한 방을 썼던 나를 이상하게들 쳐다보는 시선이 거북했다.
방은 미닫이로 여는 문이 반쯤 떨어져 나가 있었고, 내가 쓰던 침상은 벽에서 뜯겨져 모로 세워진 채였다.
물론 진이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쯧쯧쯧, 이제와서 찾으면 뭐하니.”
미령이었다.
“어떻게 된거예요? 진이가 왜 잡혀가요?!!”
“잘못을 했으니까 잡혀가지. 아니, 잡혀가지요. 흠흠.”
이제 서로 반말을 주고받기 힘든 신분을 고려하여 급히 말을 바꾸는 미령이었지만, 그런것 따위 중요할 리가 없었다.
“잘못이라니, 무슨 잘못이요-!”
“침상 밑에서 무기들이 나왔어. 아니, 나왔어요! 궁인 신분으로 그런걸 소지한다는게 말이나 됩니까? 더군다나 여자가!”
“그건..! 그건 그런게 아니예요!!
아니, 것보다- 어디예요? 옥사..인가 하는게 어디냐구요!”
“옥사는 서문을 향해 가다보면-
어쨌든 거기 가 봤자 소용없어요. 무기만 나온거라면 어떻게든 둘러대서 면해보겠지만, 주영옥(朱榮玉)을 훔쳤다면 그걸로 끝인거예요.
괜히 한방 썼다는 이유로 덤터기 쓰지 말고 가까이 안 가는게 신상에-”
미령의 말을 하나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진이가 무얼 숨겼고 무얼 훔쳤든지간에 꼭 가서 만나야겠다는 생각만 들 뿐이었다.
급히 서문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주천국, 목숨을 버리고 싶을만큼 증오스러운 땅에서 나를 일으켜준 친자매 같은 아이를 잃을 수는 없었다.
“어딜 그리 급히 가지.”
...
“진이를.. 진이를 잡아가라 명했어-?”
“폐하께 무슨 말버릇인가!!”
다짜고짜 그에게 달려들어 묻는 내게, 근위대 소속 병사들이 칼을 겨누려는 것을 황제가 저지했다.
“그 아인 잘못이 없어! 이유는 내가 다 설명할게, 그러니까-!!”
“안됐지만 난 우정에 감동받을 정도로 감상적이지 못해. 게다가-”
“........”
“지금은 진이인가하는 그 아이보다도 네 스스로의 변호를 하는게 어때.”
...
“난 지금 너를 포박하라 명할거니까.”
※ Irene입니다^^
벌써 10화예요~ 예전부터의 버릇대로, 응원해주신 독자님들께 감사인사 전하겠습니다^^
옹알이 냐옹이 님/ 카르디아_★ 님/ 헤르티아 님/ 꽃이현 님/ 별이빛나는만큼만 님/
햐딘 님/ 꽃가마 님/ ☞YOU FIRST☜ 님/ 매실자소 님/ soya 님/
진령화 님/ 우량공주 님/ 까불지마ㅋ 님/ 평범소녀z 님/ 도도한미녀ヲ 님
특히나, 초기작부터 제겐 너무나 익숙한 우리 고마운 님들^^
푼수쟁이 님/ 웃으며살자aA 님/ ːFloria…麗 님/ Soul M 님/
비현(悲現) 님/ 윤贇 님/ 잠자는겨울곰 님
여전히 지켜봐주시고 관심 가져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더 많이 노력하고 더 많이 공부해서, 좋은 글 가지고 올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첫댓글 재밎네요.잘 보고가요.
진령화 님★ 감사합니다^^ 다음화에서 뵐께요^^
으아~~그때 그 구슬이 ;;; 이런이런 진이 어쩌죠ㅠㅠ 효가 많이 죄책감 느낄텐데요ㅠㅠ 황제넘 무심하당ㅜㅜ
헤르티아 님★ 무심한 황제~ 효를 더 괴롭히는 일이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다음화에서 뵐께요^^
우왓 내이름도 있어요!(....*) 효도 불쌍하고 진이도 불쌍하고!
햐딘 님★ 불쌍하지만, 효랑 진이랑 슬기롭게 잘 헤쳐가지 않을까요^^ 다음화도 지켜봐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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푼수쟁이 님★ 잘 지내셨어요^^? 요즘 한참 바쁘실때라고 생각은 했어요, 잊지않고 들러주셔서 감사해요^^ 그에비해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발전없는 글로 뵙고 있는것 같아서 민망스럽지만;;; 앞으로도 잘 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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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이빛나는만큼만 님★ 글쎄요, 뭔가 이유가 있겠죠^^? 매일 꾸준히 지켜봐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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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ya 님★ ㅎㅎ우리 폐하가 너무 와일드하셔서 이렇게 미움을 받네요>_< 다음화도 지켜봐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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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소녀z 님★ 과찬에 몸둘바를 모르겠네요;ㅁ; 독자를 흐뭇하게 만드는 소설- 앞으로도 그만큼만 해 나갈 수 있게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해요^^
넘 재밌어요!!!! 맨날 눈으로만 보다가 댓글날려요~~~ 얼렁 담편도 보고싶고!! 제발 황제가 진을 놔주었으면!! 아무일도 안 일어났음 좋겠어요~~~
귀여운ai 님★ 와, 닉넴 너무 귀여우셔요^^ㅎㅎ 관심있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려요^^
억울해요ㅠㅜ 2개에 걸쳐 쓴 저의 감상문이 모두 다 날라가버렸어요. 다음 왜 이런답니까ㅠㅜ! 눈물나요. 작가님이 마지막에 써주신 Thanks To[맞나요^^?]글씨 색깔도 너무 이쁘고, 독자들 하나하나 다 기억해주셔서 너무너무 감사드린답니다. 륜후랑 리원이 사이에는 무언가 팽팽한 긴장감과 스파크가 파바박! 튀는 것 같아요. 막상막하. 원래들 남녀 사이는 싸우면서 정 드는 거라고 하니 륜후랑 리원이도 저러면서 새록새록 애정이 돌기를.^^ 교은비는 착한 것 같으면서도 요즘 겉으로만 저러는 드라마나 소설 속 인물들이 너무 많아, 아직 확신을 할 수가 없네요. 부디 제 예상을 벗어나 리원이의 쓸쓸한 궁중 생활에 힘이 되어주는 따뜻한
사람이였으면 좋겠어요. 진이가 잡혀가서 리원이가 죄책감을 많이 느낄 것 같아요ㅠㅜ. 하지만 다음 편에는 이제 곧 포박될 리원이와 진이가 꼭 다시 나오기를 바랍니다. 건필하세요~
웃으며살자aA 님★ 어잇쿠, 속상해하셨을걸 생각하니 저도 눈물나네요ㅠㅜ 매번 이렇게 속속알찬 꼬릿말 남겨주시기가 쉽지 않으실텐데 항상 감사합니다^^ 초기작 연재하던게 이제는 되게 오래전 일이었던 것처럼 까마득한데, 또 여전히 응원해주시는 분들이 계셔서 많이많이 힘이되죠, 웃으며살자aA 님은 물론이시구요^^ 예전만큼이나 우리 히로인들, 리원이, 륜후, 예뼈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항상 '건필하세요' 빼놓지 않고 해주시는 응원에 힘입어서 완결까지 열심히 쓰겠습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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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디아_★ 님★ 항상 응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황제, 은비, 그리고 다른 캐릭터들도 많이 예뼈해주세요^^ 다음화에서 뵐께요^^
한치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내용이 전개되고 있네요^ ^ 점점 흥미진진해지고 기대되는 소설 이연이에요♡ 황제와 리안 서로의 오해는 되도록이면 빨리 풀어지길ㅠ
☞YOU FIRST☜ 님★ 감사합니다^^ 더 나은 내용 들고 찾아뵐 수 있도록 계속 노력해야겠네요^^ 다음화도 지켜봐주세요^^
Irene님.. 한중록 끝나고 한동안 휴식도 취할 줄 알았고 시험기간도 해서 자주 들리지 않았더니 그동안 소설을 또 올리고 계셨어요?! 아.. 저 기억 하실지 모르겠지만..! 이번 소설 너무 재밌어요,.~ 한중록 할 때 처럼 마지막엔 뭔가가 심오하고 자꾸 다음편이 궁금해지는.. 재밌게 보고 갑니다! 다음편 기다릴게요.~
사랑한단그말 님★ 와! 오랜만에 뵙네요^^! 기억하구말구요, 얼마나 큰 힘 주셨던 우리 사랑한단그말 님인데 잊어버릴리가요^^ㅎㅎ 저 되게 오래 잠수탈것처럼 무게잡아놓고 냉큼 돌아와버렸답니다^^;;;; 여전히 구역한 글재주지만, 노력중이랍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려요^^
잘 보고 갑니다^^
.....난그래도 9화까지는 황제가 원이를 쫌이라도 좋아하는줄알앗는데 ㅜ..ㅜ...
왜,왜,왜,잡아가지???(자야되는데 너무 궁금해요~ㅠ)
저번에 주천제에서 가면쓴 그 총각,ㅋㅋㅋㅋ 혹시 비서랑아닌가욤?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