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침에 읽는 오늘의 詩 〈1560〉
■ 누룩 (이성부, 1942~2012)
누룩 한 덩이가
뜨는 까닭을 알겠느냐.
지 혼자 무력(無力)함에 부대끼고 부대끼다가
어디 한군데로 나자빠져 있다가
알맞은 바람 만나
살며시 더운 가슴,
그 사랑을 알겠느냐.
오가는 발길들 여기 멈추어
밤새도록 우는 울음을 들었느냐.
지 혼자서 찾는 길이
여럿이서도 찾는 길임을
엄동설한 칼별은 알고 있나니.
무르팍 으깨져도 꽃피는 가슴.
그 가슴 울림 들었느냐.
속 깊이 쌓이는 기다림
삭고 삭아 부서지는 일 보았느냐.
지가 죽어 썩어 문드러져
우리 고향 좋은 물 만나면
덩달아서 함께 끓는 마음을 알겠느냐.
춤도 되고 기쁨도 되고
해 솟는 얼굴도 되는 죽음을 알겠느냐.
아 지금 감춰둔 누룩 뜨나니.
냄새 퍼지나니.
-1982년 시집 <평야 平野> (지식산업사)
*예로부터 누룩은 술을 빚는데 쓰이는 우리나라 전통의 발효제인데 밀이나 찐 콩을 반죽한 덩어리에 누룩곰팡이를 번식시켜 만들어집니다. 좋은 술을 빚기 위해서는 발효가 잘 되는 것 이외에도 적절한 온도와 습도 등의 외부적 여건이 잘 맞아야 하며, 무엇보다 만드는 이의 정성이 중요하다고 하는군요.
지금은 완전히 사라졌지만 1960,70년대만 해도 엄한 밀주 단속령에도 불구하고 시골에서는 개인들이 몰래 술을 빚는 집들이 제법 있었기에 우리 세대들에게 누룩은 친숙한 단어라 하겠습니다.
이 詩는 누룩을 소재로 하여 누룩이 자기 자신을 희생하여 발효됨으로서 사람들에게 기쁨과 흥을 돋아주는 존재로 태어나게 된다는 사실을 노래하는 작품입니다.
그러나 독재에 맞서던 1980년대 발표된 이 詩는, 겉으로는 누룩을 말하면서도 실은 ‘누룩’을 의인화하여 상징적으로 시대적 이슈였던 ‘민중’을 표현한다 하겠습니다. 즉, 혼자서는 무력감에 빠져 있더라도 ‘알맞은 바람’을 만나면 더운 가슴과 뜨거운 사랑을 내어 보이는 누룩이 바로 민중들의 속성과 닮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 詩는 강퍅한 현실 속에서도 시련을 극복하고 누룩과 같은 고귀한 희생정신을 발휘하여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기 위한 민중의 현실극복 의지를 비유적으로 노래한다고 할 수 있겠지요.
물론 이런 시대적 배경과 상관없이 누룩 본래의 속성을 순수하게 묘사한 내용으로 받아들이는 것도 나쁘지 않겠습니다만. Cho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