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도 어느 여름날의 경운기처럼 시동을 거는데 얼마간의 시간이 필요한 것 같아요.
어둠 속에서 들려오는 빗소리가 Cool 합니다. 벽시계 하나 사두려고 한지가 언젠데
아직까지 사지 못한 나를 자책하고 있습니다. 시간만 확인하려던 모바일을 한20분을
붙잡고서 ‘메모지 칸 삭제하기‘를 누른다고 눌렀는데 그대로입니다. 헐. 휴가 확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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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었지만 들뜨지 않으려고 애쓰다보니 1도 기대감이 없습니다. 여수 매형이 꼭 오라고
일부러 전화까지 한 것이 약간 신경 쓰이긴 해도 스스로 반납한 휴가를 무르지 않을
생각입니다. 그러고 보면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말이 정답입니다. 프로테스탄트
신학이 지향하는 천국, 구원, 성화, 성령, 자아부정, 공동체 모두 깨닫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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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유냐. 존재냐? 가질 것이냐, 생각만으로 행복할 것이냐? 하다못해 그리움마저.
생각이 바꾸면 행동이 바뀌고 행동이 바뀌면 생이 바뀌니까 하나같이 점철된다고 봅니다.
나 이러다 철학자 되는 것 아닌가 모르겠습니다. 둘 다 같은 것 아닌가? 인문학.
‘닥터 지바고‘로 시작된 동반 부에 대한 관심이 영화 보는 것으로 이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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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안이 자꾸 밟히는 건 무슨 이유일까? 책은 두꺼워서 완독을 못하고 영화로
보았습니다. 러닝 타임3시간 20분이 지루하지 않은 영화입니다. 시인이자 작가인 '보리스
파스테르나르'(1890-1960)와 '닥터지바고'의 삶은 분리되어 읽히지 않는 것 같습니다.
러시아 문학의 전통에서 보자면 푸시킨의 ‘에브게니 오네긴’이 시로 쓴 소설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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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지바고’는 소설로 쓴 시가 아닐까요? 노벨상 수상과 데이비드 린 때문에 더 유명
해진 이 영화는 저만 몰랐지 20세기의 걸작으로 평가를 받고 있었습니다. 물론 덕분에
유명세를 치르긴 했지만 말입니다. ‘닥터 지바고’를 어떤 인간이 지나치게 정치적으로
읽고 멜로 드라마적으로 읽혀진 이유를 아시나요? 눈 덮인 설원에서의 지바고와 라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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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야기가 저에겐 판타지이었습니다. 여주인공 라라는 책에서나 영화에서나 딱 맞는
배역이라고 봅니다. 저는 연기자 라라든, 실제 인물 라라든 그런 여자 있으면 당장 남은
인생을 올-인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닥터지바고’는 역사 속에 놓인 한 인간의 삶과
그 의미에 관한 것으로 봅니다. 여주인공 라라를 놓고 삼각관계를 이루는 두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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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바고와 파샤(라라의 남편)는 각기 다른 방식으로 혁명과 관계합니다. 지바고는 방관자적
지식인의 비겁한 삶을 끝까지 유지하고 반대로 파샤는 적극적으로 혁명에 개입하지만, 둘
다 불운한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파샤는 자살을 하고 지바고는 자신의 유고 시들을 남긴
채 길거리에서 죽음을 맞습니다. 이 대목에서 장발장이 왜 떠오를 까요? 과연 그것이 무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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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미일까? 작가는 이야기가 종결된 이후에 유리지바고의 시들을 덧붙임으로써 그의 삶이
예술을 통해서 부활함을 암시하려한 걸까? 한 인간의 삶은 타인들의 기억 속에서, 그가
남은 업적들 가운데 촛불처럼 타오르는 것일 테지. 세계를 바꾸는 일을 한갓 하찮은 일로
치부했던 라라와 지바고의 세계관에 다 동의할 수는 없어도, 역사(환경)라는 명분에 매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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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지 않고 내적 망명자의 길을 택한 한 시인의 삶을 존중할 수는 있을 것입니다.
지바고는 시베리아의 부유한 사업가 가정에서 태어났어요. 그러나 어머니가 10살 때
세상을 뜨고 가문은 몰락의 길을 걷게 되지요. 영화에서는 거꾸로 편부슬하에서 큽니다.
고아간 된 지바고는 모스크바의 지식인의 집에 맡겨졌고 의학을 공부한 뒤 결혼을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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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서는 1917년 러시아혁명의 와중에서 의학을 배우고 양부모의 딸 토냐와 결혼하고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군의관으로 오스트리아 전투에 동원됩니다. 거기서 지바고는
그의 주변을 맴돌던 간호사 라라와 운명적인 재회를 하게 됩니다. 서로 사랑하지만 절제
할 수밖에 없었어요. 한편 라라는 지바고의 집을 파산시킨 변호사에게 능욕을 당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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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이 있었으나 결국 그렇게 저렇게 지바고와 사랑에 빠지게 되어요. 1917년 혁명정부
수립 후 처자가 있는 모스크바에 돌아왔으나 그 사회에 동화되지 못한 채 숙청 대상이
되어요. 공산당원인 이복형의 도움으로 화를 면한 지바고는 식솔들을 데리고 처가의 옛
영지인 우랄지방의 오지 바리끼노로 숨어들어요. 기차 길에 분뇨를 푸는 모습이나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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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문에 누덕지가 된 러시아 복장이 인상 깊었어요. 제가 당시 입었던 러시아 코트를 알고
있거든요. 궁핍하나 잠깐의 평화가 감도는 그 곳에서 글을 쓰는 지바고를 보면서 묘한
동변상련 같은 것이 느껴졌어요. 그 후 두 사람의 사랑은 여러 번 어려움에 부닥쳐요.
유리아친 도서관에서 라라를 다시 만나는 장면은 제가 다 반갑더라고요. 지바고와 라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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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불륜이라는 것을 밝히며 우연 청산에 의기투합을 하였는데 그것이 말처럼 쉽나요.
조금 전 작별한 라라를 찾으러 가는 도중 빨치산에게 끌려 강제 입산을 당한 지바고는
탈출을 위해 절치부심을 하였고 다시 라라를 찾아 헤맵니다. 그 사이 지바고의 아내는
두 아이를 데리고 파리로 망명을 해버렸어요. 지바고는 라라의 장래와 관련 피할 수 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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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에 이별을 하였는데 어느 날 전차를 타고 가다 차창 밖에서 라라를 발견하고 그를
좇다 심장마비로 죽어요. 결국 ‘닥터지바고‘는 비극적인 종말로 앤딩을 맞습니다.
에니메이션 ‘거울 왕국’보다 더 판타지 같은 설원이 ‘컬럼비아 대 빙원’이라고 합니다.
“그는 또냐를 사랑했으며 존경하기까지 했다. 그녀의 정신적 평온은 그에게 세상 어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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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보다 중요했다. 그는 그녀의 아버지나 그녀보다도 그녀의 명예를 헌신적으로 지켜주려고
했었다. 그녀의 자존심에 상처를 낸 사람이 있으면 누구라도 자기 손으로 갈기갈기 찢어
놓으려고 했었다. 그런데 그녀를 모욕한 사람은 바로 그 자신이었다. “
2019.7.27.sat.악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