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어진 대왕암, 정말 좋던데 언제 한번 갑시다"
힌번도 울산 방어진을 가 본 적 없는 나에게 며칠 전 마눌은 그렇게 말했다.
2012년 12월의 마지막 날.
토요일에도 근무를 해야하는 가엾은 백성인 내게 뜻하지 않은 여분의 휴일이 마련되었다
그 여분의 휴일은 왼종일 방에 쳐박혀 잔뜩 밀린 사진, 동영상를 편집하고 지인들에게 문자로 새해 인사를 보내려 했는데
마눌이 드디어 바다엘 가잔다.
'바다는 무슨 얼어죽을 바다...'
목구멍에서 그 말이 막 나오려는 걸 꿀꺽 삼켰다.
연말을 맞아 연일 송년회 모임에 싸돌아 다니느라 아주 잘 나가는 나에 비해, 집안에만 틀어박혀 살림살이, 삼부녀 출근
뒤치닥거리하느라 스트레스가 심할텐데 무시했다간 괜한 불똥이 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떠났다.
이왕 가는 거 가보지 않은 바다를 가기로 했고, 그래서 찾아가는 곳 울산 방어진의 겨울바다다.
사진과 동영상 업로드를 기다리는 지인들에겐 정말 죄송하지만, 실상은 나도 이 겨울 쯤 겨울바다를 만나보고 싶었다.
녹음(祿陰)이 사라진 텅 빈 겨울바다의.... 쉴새 없이 부딪치는 무수한 포말들이 연시(然詩 )처럼 그리웠고, 여민 옷깃 사이로
들어오는 살을 에는 겨울 바람조차 왠지 그리웠다.
나 역시 사는 게 그리 만만하지 않아, 그 겨울 바다앞에 찬바람에 실컷 두들겨 맞는 나를 세워두고 싶었다.
(내가 쓰는 글 내용으로는 아직 바다에 도달한 단계가 아닌데... ㅋ ㅋ 읽으시는 분 지겨우실까봐 미리 바다 사진을 싣는다.
연사(연속 사진)를 찍으면서 삼각대가 바닷바람에 흔들렸나 보다. 쓸데없이 바위가 꿈틀거린다. ㅋ ㅋ 죄송!!)
울산을 향해 출발하면서...율산에 가면 만나고 싶은 그리운 분들의 얼굴이 떠 오른다.
초등학교, 중학교 동창생인 친구 용선이,
동창생이면서 두살 더 많아 누나가 되는 친척 춘희 누나,
카페 <황둔 사랑>의 운영자이면서 초등학교 시절 은사님처럼 자상하고 따사로운 해인님.
그러나 나름대로 소중한 시간을 보낼 한 해의 마지막 날에, 느닷없이 "제가 갑니다:라고 연락을 드릴 수도 없고....
그냥 소리소문없이 살짝 다녀오려 했는데 막상 울산에 도착하니 친구 용선이의... 목소리라도 듣고 싶어 베길 수가 없었다.
친구의 목소리를 기왕이면 그가 사는 울산 땅에서 듣고 싶었다.
마침 친구는 집에서 전화를 받았다.
"해가 바뀌는데...용선아, 새해는 2012년이니까 복(福)도 이천 열 두배로 받아라"
"ㅎ ㅎ 안 그래도 나 지금 늬들한테 신년인사로 문자메세지 보내고 있었다"
용선이의 대답이다,
"근데 용선아, 나 지금 울산 왔어, 방어진 가려고...."
"너 울산까지 오면서 연락도 안 하려 했냐?"
내 친구 용선이, 무척 반가워하면서 오분 남짓 더 가면 <울기 등대>가 있는데 거기서 기다리라고 해놓고...
거짓말처럼.... 정말 거짓말 처럼....
한걸음에 달려나와 나보다 먼저 기다리고 있었다. 사진에서만 보았던 용선이의 예쁜 각시랑...
울 마눌 같으면 준비하는데 한 시간은 걸릴텐데...(화운데이션으로 패인 골 메우는 작업도 해야하고....)
친구의 부인은 불과 5분만에 준비 완료,득달같이 달려와 주셨다. 긴머리 나폴거리며 날라 오셨나?
나처럼 술도 안마시고 담배도 안 피우고 나라에서 하지 말라는 짓 절대 안하고 교과서에 나온 대로만 사는 성실하고 모범적인
친구 용선이, 울산 현대 중공업에 30년 동안 근무한 친구다.
전라도 장흥이 고향인 친구 부인과 경상도 영천이 고향인 울 마눌은 금새 친해져서 나란히 다닌다.
친구 용선이 부부는 다정하게 찍은 사진을 많이 올려 내가 닭살 부부라고 했는데...역시~ 애정행각(?)을 서슴지 않는다.
이에 뒤질세라 우리 부부도 한컷
"닭살 부부시던데.."
내가 그렇게 말하자 용선이 왈
"밖에선 별로 안 그래, 집에서만 그래"
밖에서 그 정도면 집안에선 각시를 무릎위에 올려 놓고 살까?
친구 부부는 "요이 땅!"하면 바로 자세가 나온다.
오늘도 울 마눌은 카메라를 두 대씩 가지고 다니는 별스런 서방 때문에 싫던 좋던 조감독 역할을 해야하고...
문무대왕의 수중릉이 있는 경주 양북면 앞바다의 대왕암과 이름이 같은 울산 방어진의 대왕암.
호국용(護國龍)이 된 문무왕과 더불어 문무왕의 왕비 역시 호국용이 되어 하늘을 날다가 울산 앞바다의 커다란 바위아래 잠겨
용신(龍神)이 되었다는 전설이 있는데 그곳이 바로 울산 대왕암이다.
잔잔한 파도로 다가와 백색 포말로 부서지는 너무도 아름다운 바다.
나는 술 한모금 마시지 않았는데 바다에 그만 흠뻑 취해 버렸다.
취해서 연신 바다를 퍼 담는다.
담아도 담아도 아직 담을 게 더 많은 끝없고 넘치는 겨울 바다.
여운이 남은 바다를 횟집에서 마저 채워주는 친구 용선이... 뒤늦게 생각이 나서 빈 그릇만 찍었다.
세상에 여태 베풀고 살지 못함이 죄스럽다는 선량하고 겸손하고 배울 게 많은 친구 용선이,
예고없이 불쑥 찾아갔지만 한걸음에 달려와 반겨준 친구 용선이와 처음 만나는 우리 부부를 격의없이 대해 준 친구의 부인에게
부족하지만, 내가 담아온 한 페이지의 겨울바다를 선물로 드리고 싶다.
첫댓글 내가 여행하고 내 친구를 만난듯한 편한 글에 퐁당 빠졌습니다.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읽어 주셔서 넘 감사합니다.
이유가 어찌했든 부인때문에 보고픈 친구 만나고 부인한테 사랑 받고 좋은 추억 만들어 올 한해는 부인께 사랑 받는 해가 될 것 같네요 아주아주 잘하셨네요 짝짝짝
감사합니다. 예쁜 꽃지님! 예쁨 듬뿍 받으세요
넘넘보기좋으시네요 부러워요~~
감사합니다. 마니또님! 스크랩하고 보니 글과 사진의 정렬이 제대로 되질 않았네요. 불편하셨을텐데 읽어 주셔서 넘넘 감사합니다.
오래전에 가본 방어진 풍경 감사합니다.방어진 에 보면,참으로 아름답기까지한,국민학교가 있는데,,그 학교 사진이 없는게 아쉽네요.그리고, 소나무숲도 아쉽구요,,제가 보고싶어서..투정부려 봅니다^^
소나무 숲이 정말 아름다웠습니다. 찍긴 했지만 솜씨가 부족해서 올리지 못했습니다. 나중에 기회되면 친구와 더불어 그 멋진 초등학교도 가 보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