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공감에서 오는 대리만족, 카타르시스 등을 느끼기 위해 복수극을 시청한다. /사진= 유튜브 넷플릭스 코리아 '더 글로리' 공식 예고편 캡처
최근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더 글로리’의 인기가 뜨겁다. 작년 12월 종영한 JTBC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도 회차 내내 최고 시청률을 경신하며 많은 사랑을 받았다. 앞서 언급한 작품들의 공통점은 모두 주인공이 복수를 다짐하고 실현하는 복수극이라는 점이다. 대체 이렇게까지 복수극이 흥행하는 이유는 무얼까. 사람들이 복수에 열광하는 심리를 알아본다.
◇복수극 시청하며 대리만족, 카타르시스 느껴
사람들이 복수극을 좋아하는 이유는 공감에서 오는 대리만족에 있다. 고려대 심리학과 김학진 교수는 “가난한 환경, 학교폭력 등으로 고통받는 드라마 속 인물을 보면서 시청자도 과거에 자신이 겪은 유사 경험을 떠올릴 수 있다”며 “등장인물에 감정이입을 하고 공감하게 돼 드라마 속 복수에 대해 대리만족을 느끼는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대 심리학과 곽금주 교수는 “요즘과 같은 비교 사회에선 나만 어려운 것 같고 나만 당하는 것 같은 억울한 감정을 많이 느껴 잘나가는 사람이 누군가의 복수에 의해 추락하는 모습을 보면서 행복함과 통쾌함, 이를테면 카타르시스를 느낀다”며 “실제론 직장, 대인관계 등 현실적인 이유로 인해 복수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어 드라마 시청을 통해서라도 내 처지를 보상 받고 대리만족하기 위해 복수극이 큰 인기를 얻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복수를 할 때 우리 뇌는 일종의 보상을 받는데, 이러한 보상은 복수극 시청을 통해서도 충족될 수 있다. 심리학에선 상대방과 나 사이의 관계가 좋지 않을 때, 신체 항상성이 깨졌을 때 등을 불균형 상태로 본다. 가령 대인관계에서 원만한 관계를 유지할 땐 균형 있는 상태에 있다가 상대방이 내가 기대한 만큼 나를 존중해주지 않거나 나와 상대방 간의 관계가 기존 상태를 벗어나면 불균형 상태로 본다. 김학진 교수는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 우리 뇌는 끊임없이 돈과 칭찬, 감사 등 새로운 보상을 찾는다”며 “이러한 불균형을 회복하기 위해 보상을 받고자 행해지는 행동 중 하나가 바로 복수인데, 이는 직접 복수가 아닌 복수극을 시청하는 행위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다. 현실 상황에서 불균형으로 인한 보상을 받기 어려울 때 복수극 시청을 통해 보상을 충족하고 대리만족을 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복수를 당하는 사람의 반성도 복수에 큰 영향 미쳐
대개 미디어에선 복수를 당하는 사람이 진심으로 자기 행동을 반성하고 뉘우치는 모습은 나오지 않는다. 이러한 모습은 시청자들을 분노케 한다. 그렇다면 복수 대상이 반성의 기미를 보이지 않을 때 이뤄지는 복수도 만족감을 줄 수 있을까? 곽금주 교수는 “반성, 사과 여부와 관계없이 그 사람이 무너지는 모습을 보고 희열과 만족감 자체를 느끼고자 복수하는 사람이 많아 충분한 만족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복수를 당하는 사람의 반성과 뉘우침 없이는 통쾌함을 느끼기 어려울 것이란 의견도 있다. 저서 ‘이타주의자의 은밀한 뇌 구조’에선 이를 다룬 한 해외 연구 결과를 소개한다. 복수를 행한 사람은 복수를 당한 사람으로부터 두 가지 유형의 답변을 받았다. 첫 번째 유형은 복수를 당한 사람이 상대방의 복수 이유를 이해한다는 것이었고, 두 번째 유형은 복수를 당한 사람이 오히려 자신이 복수 당했다는 사실에 대해 분개한다는 메시지였다. 그 결과, 첫 번째 답변을 받은 복수를 행한 사람은 복수에 대한 훨씬 높은 수준의 만족감을 나타냈다. 김학진 교수는 "복수를 당한 사람의 진심 어린 뉘우침이 복수를 계획한 사람의 불균형을 회복하는 데 중요한 요소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복수극 과몰입, 중독 일으킬 수 있어
그러나 ‘복수극 과몰입 시청’은 일종의 중독 부작용을 일으킬 위험이 있다. 이전에 봤던 동일한 수준의 보상을 받으면 쾌감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드라마에선 자극적으로 복수하는 장면이 자주 나온다. 김학진 교수는 “미디어 속 자극적인 장면은 점점 수위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며 “복수를 계획하는 사람을 점점 더 비참하게 만들고 복수를 당할 사람을 점점 더 악덕하게 묘사해야지만 사람들이 다른 작품들보다 더 큰 복수에 대한 쾌감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자기 파괴적인 복수는 피해야
한편, 복수가 불균형 해소의 유일한 방법인 것은 아니다. 곽금주 교수는 "가장 이상적인 것은 복수에 대한 감정을 원동력 삼아 복수 당하는 사람에게 직접적인 피해나 고통을 주지 않으면서 내가 훨씬 성공하는 것이다”며 “상대방을 파멸시키는 공격적인 복수는 자기 파괴적인 복수”라고 말했다. 상대방을 직접적으로 위험에 빠뜨리면서 피해를 주는 복수는 항상 좋은 건 아니다. 오히려 본인에게 악영향을 줄 수 있다. 그 순간은 통쾌할지 몰라도 이후 법적 책임 등을 지게 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가장 바람직한 건 복수를 당할 사람이 복수를 계획한 사람에게 잘못한 것을 사죄하며 용서를 비는 것이다. 김학진 교수는 "사실 어떤 방법이든 간에 상대방의 진심 어린 용서를 이끌어내는 게 중요하다"며 "상대방을 위협하는 복수는 오히려 복수를 당한 사람이 자기 잘못을 인지하고 뉘우칠 가능성을 낮출 것이다"고 말했다.
강수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