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시형 피체지
일시:2024년 5월 16일 목요일
장소:강원도 원주시 호저면 고산리 최시형 피체지,고산초등학교
* 고산 마을 입구
원주시 호저면 고산리에 동학운동가 최시형 피체지가 있어서 탐방 왔다. 고산교와 고산마을 안내비가 웅장하게 반긴다. 최시형에 대한 비석도 있다. ‘모든 이웃의 벗 최보따리 선생님을 기리며’ 라는 무위당 장일순의 글이다. 최시형 선생의 법설인 ’天地卽父母 천지는 곧 부모요 父母卽天地 부모는 곧 천지니 父母一體也 천지부모는 일체니라’라고 전각해 놓은 비석이다. 그의 별칭 최보따리 선생님을 기리며 새긴 비문이다. 최보따리는 처형당할 때까지 30여 년간 보따리 하나만 들고 전국을 떠돌며 동학의 씨앗을 부렸다. 최보따리는 동학을 가르치다가 여차하면 급히 보따리를 챙겨 전국을 누빈 데서 유래된 별명이다.
* 원주 호저면 고산리 최시형 피체지
고산리 송골마을 길을 따라 걸어가는데 어제 비가 내린 후라서 온 풍경이 꺠끗하고 청청하다. 산과 하늘 구름까지 비경이다. 마을 안쪽 뒤편에 최시형 피체지가 있다. 동학 2대 교주 해월 최시형이 은신하다 체포된 민가 피체지다. 그는 1861년 동학에 입문했다. 조정에 교조의 신원, 포덕의 자유, 탐관오리 숙청을 요구하였다. 1894년 전봉준의 동학농민혁명에 호응해 10만여 병력을 일으켰다. 그러나 잇따른 패배로 1898년 이곳에서 체포돼 서울로 압송 당하여 단성사 앞에서 처형당했다. 이곳 피체지는 6.25 때 허물어진 집을 2008년 복원됐다. 관광객들이 찾기도 하고, 천도교에서는 순례지로 꼽힌다.
* 고산 마을 정경
최시형 피체지에서 다시 도로변으로 나오면서 본 고산마을은 고운 정경이다. 청청한 하늘과 풍요로운 농토, 소박한 마을 주택들이 최시형이 머물렀던 고산리 송골마을을 빛내고 있다.
* 고산초등학교
최시형 피체지에서 보이던 고산 초등학교를 탐방했다. 나는 초등학교 교사였다. 그래서 초등학교는 내게 큰 기쁨을 주는 고향 같은 존재다. 아련한 교단시절의 회억을 다듬으며 교정을 둘러보았다. 시골학교인데 아주 청결하고 시설 등 분위기가 풍요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