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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이제7 (述而第七) 본문
論語集註卷之七 述而第七
此篇多記聖人謙己誨人之辭及其容貌行事之實凡三十七章
<제1장>
子ㅣ 曰述而不作하며 信而好古를 竊比於我老彭하노라
<제2장>
子ㅣ 曰黙而識之하며 學而不厭하며 誨人不倦이 何有於我哉오
<제3장>
子ㅣ 曰德之不修와 學之不講과 聞義不能徙하며 不善不能改ㅣ 是吾憂也ㅣ니라
<제4장>
子之燕居에 申申如也하시며 夭夭如也ㅣ러시다
<제5장>
子ㅣ 曰甚矣라 吾衰也여 久矣라 吾不復夢見周公이로다
<제6장>
子ㅣ 曰志於道하며
據於德하며
依於仁하며
游於藝니라
<제7장>
子ㅣ 曰自行束修以上은 吾未嘗無誨焉이로라
<제8장>
子ㅣ 曰不憤이어든 不啓하며 不悱어든 不發호대 擧一隅애 不以三隅反이어든 則不復也ㅣ니라
<제9장>
子ㅣ 食於有喪者之側애 未嘗飽也ㅣ러시다
子ㅣ 於是日에 哭則不歌ㅣ러시다
<제10장>
子ㅣ 謂顔淵曰用之則行하고 舍之則藏을 惟我與爾ㅣ 有是夫저
子路ㅣ 曰子ㅣ 行三軍則誰與ㅣ시리잇고
子ㅣ 曰暴虎憑河하야 死而無悔者를 吾不與也ㅣ니 必也臨事而懼하며 好謀而成者也ㅣ니라
<제11장>
子ㅣ 曰富而可求也댄 雖執鞭之士ㅣ라도 吾亦爲之어니와 如不可求댄 從吾所好호리라
<제12장>
子之所愼은 齊戰疾이러시다
<제13장>
子ㅣ 在齊聞韶하시고 三月을 不知肉味하사 曰不圖爲樂之至於斯也호라
<제14장>
冉有ㅣ 曰夫子ㅣ 爲衛君乎아 子貢이 曰諾다 吾將問之호리라
入曰伯夷叔齊는 何人也ㅣ잇고 曰古之賢人也ㅣ니라 曰怨乎ㅣ잇가 曰求仁而得仁이어니 又何怨이리오 出曰夫子ㅣ 不爲也ㅣ시리러라
<제15장>
子ㅣ 曰飯疏食飮水하고 曲肱而枕之라도 樂亦在其中矣니 不義而富且貴는 於我애 如浮雲이니라
<제16장>
子ㅣ 曰加我數年하야 五十以學易이면 可以無大過矣리라
<제17장>
子所雅言은 詩書執禮ㅣ 皆雅言也ㅣ러시라
<제18장>
葉公이 問孔子於子路ㅣ어늘 子路ㅣ 不對한대
子ㅣ 曰女ㅣ 奚不曰其爲人也ㅣ 發憤忘食하며 樂以忘憂하야 不知老之將至云爾오
<제19장>
子ㅣ 曰我非生而知之者ㅣ라 好古敏以求之者也ㅣ로라
<제20장>
子ㅣ 不語怪力亂神이러시다
<제21장>
子ㅣ 曰三人行에 必有我師焉이니 擇其善者而從之오 其不善者而改之니라
<제22장>
子ㅣ 曰天生德於予ㅣ시니 桓魋ㅣ 其如予何ㅣ리오
<제23장>
子ㅣ 曰二三子는 以我爲隱乎아 吾無隱乎爾로라 吾無行而不與二三子者ㅣ 是丘也ㅣ니라
<제24장>
子ㅣ 以四敎하시니 文行忠信이니라
<제25장>
子ㅣ 曰聖人을 吾不得而見之矣어든 得見君子者ㅣ면 斯可矣니라
子ㅣ 曰善人을 吾不得而見之矣어든 得見有恒者ㅣ면 斯可矣니라
兦而爲有하며 虛而爲盈하며 約而爲泰면 難乎有恒矣니라
<제26장>
子는 釣而不網하시며 弋不射宿이러시다
<제27장>
子ㅣ 曰蓋有不知而作之者아 我無是也ㅣ로라 多聞하야 擇其善者而從之하며 多見而識之ㅣ 知之次也ㅣ니라
<제28장>
互鄕은 難與言이러니 童子ㅣ 見커늘 門人이 惑한대
子ㅣ 曰人이 潔己以進이어든 與其潔也ㅣ오 不保其往也ㅣ며 與其進也ㅣ오 不與其退也ㅣ니 唯何甚이리오
<제29장>
子ㅣ 曰仁遠乎哉아 我欲仁이면 斯仁이 至矣니라
<제30장>
陳司敗ㅣ 問昭公이 知禮乎ㅣ잇가 孔子ㅣ 曰知禮시니라
孔子ㅣ 退커시늘 揖巫馬期而進之曰吾聞君子는 不黨이라호니 君子도 亦黨乎아 君이 取於吳하니 爲同姓이라 謂之吳孟子ㅣ라 하니 君而知禮면 孰不知禮리오
巫馬期ㅣ 以告한대 子ㅣ 曰丘也ㅣ 幸이로다 苟有過ㅣ어든 人必知之온여
<제31장>
子ㅣ 與人歌而善이어든 必使反之하시고 而後和之러시다
<제32장>
子ㅣ 曰文莫吾猶人也아 躬行君子는 則吾ㅣ 未之有得호라
<제33장>
子ㅣ 曰若聖與仁은 則吾豈敢이리오 抑爲之不厭하며 誨人不倦은 則可謂云爾已矣니라 公西華ㅣ 曰正唯弟子ㅣ 不能學也ㅣ로소이다
<제34장>
子ㅣ 疾病이어시늘 子路ㅣ 請禱한대 子ㅣ 曰有諸아 子路ㅣ 對曰有之하니 誄에 曰禱爾于上下神祇라 하도소이다 子ㅣ 曰丘之禱ㅣ 久矣니라
<제35장>
子ㅣ 曰奢則不孫하고 儉則固ㅣ니 與其不孫也론 寧固ㅣ니라
<제36장>
子ㅣ 曰君子는 坦蕩蕩이오 小人은 長戚戚이니라
<제37장>
子는 溫而厲하시며 威而不猛하시며 恭而安이러시다
술이편 제1장 ~ 제5장 해설
論語集註卷之七
述而第七
此篇은 多記聖人謙己誨人之辭와 及其容貌行事之實이니 凡三十七章이라
이 편은 성인이 자기를 겸손하고 사람을 가르친 말과 및 그 거동과 일을 행하는 실제를 많이 기록했으니 무릇 37장이라(곧 이 편은 공자의 一動一靜을 기록한 글이다) .
<제1장>
子ㅣ 曰述而不作하며 信而好古를 竊比於我老彭하노라
공자 가라사대 전술은 하되 창작은 아니하며, 믿고 옛 것을 좋아함을 그윽히 우리 노팽과 견주노라.
述은 傳舊而已요 作則創始也ㅣ라 故로 作은 非聖人이면 不能이오 而述則賢者도 可及이라 竊比는 尊之之辭요 我는 親之之辭라 老彭은 商賢大夫니 見大戴禮하니 蓋信古而傳述者也ㅣ라 孔子ㅣ 刪詩書하시고 定禮樂하시며 贊周易하시고 修春秋하시니 皆傳先王之舊요 而未嘗有所作也ㅣ라 故로 其自言如此하시니 蓋不惟不敢當作者之聖이오 而亦不敢顯然自附於古之賢人이니 蓋其德愈盛而心愈下하야 不自知其辭之謙也ㅣ니라 然이나 當是時하야 作者ㅣ 略備어늘 夫子ㅣ 蓋集郡聖之大成而折衷之하야 其事ㅣ 雖述而功則倍於作矣니 此又不可不知也ㅣ니라
술은 옛 것을 전할 뿐이고, 작은 창시함이라. 그러므로 作은 성인이 아니면 능치 못하고 술인즉 현자도 가히 미치니라. 그윽히 견준다는 것은 높이는 말이오, 우리는 친하게 여긴 말이라. 노팽은 상나라의 어진 대부이니 『대대례』에 보이니 대개 옛 것을 믿고 전술한 자라. 공자께서 시서를 깎으시고, 예악을 정하시며, 주역을 찬하시고, 춘추를 닦으셨으니, 다 선왕의 옛 것을 전술한 것이오 일찍이 창작한 것이 아니니라. 그러므로 그 스스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 대개 오직 감히 작자의 성인에 당치 못할 것이오, 또한 감히 드러내놓지 않으시고 스스로 옛 현인(노팽)에게 붙이시니, 대개 그 덕이 더욱 성하고 마음이 더욱 낮춰져 스스로 그 말씀의 겸손함을 아지 못하시니라. 그러나 이때를 당하여 지은 자가 간략히 갖추었거늘 부자가 대개 여러 성인의 크게 이룬 것을 모아서 절충(끊고 가운데로 모아)하여 그 일이 비록 전술이나 공인즉 작자보다 몇 배나 되니 이것을 또한 가히 아지 아니치 못하니라.
<제2장>
子ㅣ 曰黙而識之하며 學而不厭하며 誨人不倦이 何有於我哉오
공자 가라사대 묵묵해서 기록하며 배워서 싫지 아니하며 사람을 가르침에 게을리하지 않음이 무엇이 나에게 있는고!
識 : 알 식, 여기서는 ‘기록할 지’
識는 記也ㅣ니 黙識는 謂不言而存諸心也ㅣ라 一說에 識는 知也ㅣ니 不言而心解也ㅣ라 하니 前說이 近是니라 何有於我는 言何者ㅣ 能有於我也ㅣ라 三者는 已非聖人之極至로대 而猶不敢當하시니 則謙而又謙之辭也ㅣ시라
지는 기록함이니 묵묵히 기록함은 말하지 아니하고 저 마음에 존하게 함(새겨둠)을 이름이라. 일설에 지는 앎(知)과 같으니 말하지 아니하고도 마음에서 풀림이라 하니 전설이 옳음에 가까우니라. ‘무엇이 내게 있는고’는 어떤 것이 능히 내게 있느냐를 말씀하심이라. 세 가지(黙而識之, 學而不厭, 誨人不倦)는 이미 성인의 극지(지극히 이룸)는 아니로되 오히려 감히 당치 않다고 하시니 곧 겸손하고 또 겸손의 말씀이시니라.
<제3장>
子ㅣ 曰德之不修와 學之不講과 聞義不能徙하며 不善不能改ㅣ 是吾憂也ㅣ니라
공자 가라사대 덕의 닦지 못함과, 배움의 강하지 못함과, 의를 듣고 능히 옮기지 못하며, 선하지 않은 것을 능히 고치지 못함이, 이 나의 근심이니라.
尹氏 曰德은 必修而後成하고 學은 必講而後明하며 見善能徙하고 改過不吝이니 此四者는 日新之要也ㅣ라 苟未能之면 聖人도 猶憂시온 況學者乎아
윤씨 가로대 덕은 반드시 닦은 뒤에 이루고, 학은 반드시 익힌 후에 밝아지며, 선을 보고 능히 옮기고, 허물을 고침에 인색하지 아니하니, 이 네 가지는 날로 새롭게 하는 중요함이라. 진실로 (한가지라도) 능치 못하면 성인도 오히려 근심하시는데 하물며 배우는 자라야!
<제4장>
子之燕居에 申申如也하시며 夭夭如也ㅣ러시다
공자께 연거에(평소 거하심에) 신신한(활달하게 죽 편) 듯하시며, 요요한(和한 기운을 和하게 한) 듯하더시다.
燕居는 閑暇無事之時라 楊氏 曰申申은 其容이 舒也ㅣ오 夭夭는 其色이 愉也ㅣ라 程子ㅣ 曰此는 弟子ㅣ 善形容聖人處也ㅣ라 爲申申字에 說不盡이라 故로 更著夭夭字하니라 今人은 燕居之時에 不怠惰放肆면 必大嚴厲하니 嚴厲時에 著此四字不得이요 怠惰放肆時에 亦著此四字不得이니 惟聖人은 便自有中和之氣시니라
연거는 한가로이 있으면서 일이 없는 때이라. 양시 가로대 신신은 그 용모가 편 것이오, 요요는 그 빛이 화함이라. 정자 가라사대 이것은 제자가 성인의 거처하심을 잘 형용한 것이라. 신신이라는 글자를 써놓고 말이 다하지 못함이라. 그러므로 다시 요요라는 글자를 붙였느니라. 지금 사람은 평소 거할 때에 게으르고 방종하지 아니하면 반드시 크게 엄하고 두렵게 하니, 엄하고 두렵게 하는 때에 이 네 글자를 붙인다면 얻지 못할 것이고(어울리지 않고) 태타방사할 때에 또 이 네 글자를 붙여도 얻지 못하니(어울리지 아니하니), 오직 성인은 문득 스스로 중화의 기운이 있으시니라.
<제5장>
子ㅣ 曰甚矣라 吾衰也여 久矣라 吾不復夢見周公이로다
공자 가라사대 심함이라, 나의 쇠함이여! 오래한지라, 내 다시 꿈에 주공을 보지 못함이로다!
孔子ㅣ 盛時에 志欲行周公之道라 故로 夢寐之間에 如或見之러시니 至其老而不能行也하니 則無復是心이오 而亦無復是夢矣라 故로 因此而自歎其衰之甚也ㅣ시니라 ○程子ㅣ 曰孔子盛時에 寤寐常存行周公之道라가 及其老也하야는 則志慮衰而不可以有爲矣시니라 蓋存道者는 心無老少之異요 而行道者는 身老則衰也ㅣ니라
공자가 한창 때에 뜻이 주공의 도를 행하려 하심이라. 그러므로 꿈꾸고 자는 사이에 혹 더러는 (꿈에) 보더시니, 그 늙음에 이르러서 능히 (주공의 뜻을) 행하지 못하시니 다시 이 마음이 없게 되고 또한 다시 이 꿈도 없게 되었느니라. 그러므로 이로 인하여 스스로 그 쇠함이 깊음을 탄식하심이라. ○정자 가라사대 공자가 한창 때에 잠잘 때에도 항상 주공의 도를 행하려고 존했다가 그 늙음에 이르러서는 뜻과 생각이 쇠퇴해지고 가히 써 하옴이 있지 아니하시니라. 대개 도를 존하는 자는 마음에 노소의 차이는 없지만 도를 행하는 자는 몸이 늙으면 쇠해지니라.
술이편 제6장 ~ 제8장 해설
<제6장>
子ㅣ 曰志於道하며
공자 가라사대 도에 뜻을 두며,
志者는 心之所之之謂요 道則人倫日用之間에 所當行者ㅣ 是也ㅣ라 知此而心必之焉이면 則所適者ㅣ 正而無他歧之惑矣라
지라는 것은 마음의 가는 바를 이름이오, 도는 인륜의 날로 쓰이는 사이에 마땅히 행하는 바가 이것이라. 이것을 알고 마음이 반드시 갈 것 같으면 곧 가는 바가 바루어지고 다른 갈림길의 혹됨이 없으리라.
據於德하며
덕에 웅거하며,
據者는 執守之意요 德則行道而有得於心者也ㅣ라 得之於心而守之不失이면 則終始惟一하야 而有日新之功矣라
거라는 것은 지킴을 잡는 뜻이고, 덕은 도를 행하여 마음에 얻음이 있음이라. 마음에 얻어지고 지키고 잃지 아니하면 끝이나 처음이나 오직 한결같아 날로 새로워지는 공이 있음이라.
依於仁하며
인에 의지하며,
依者는 不違之謂요 仁則私欲이 盡去而心德之全也ㅣ라 工夫至此而無終食之違면 則存養之熟하야 無適而非天理之流行矣라
의라는 것은 어기지 않음을 잃음이오, 인은 사욕이 다 제거되어 마음의 덕이 온전함이라. 공부가 이에 이르면 밥을 먹는 사이라도 어김이 없으면 곧 존양(존하고 기름)함이 익혀져(성숙해져) 어디를 가든지 천리의 유행이 아님이 없느니라.
游於藝니라
예에 노니라.
游者는 玩物適情之謂요 藝則禮樂之文과 射御書數之法이니 皆至理所寓而日用之不可闕者也ㅣ라 朝夕游焉하야 以博其義理之趣면 則應務有餘而心亦無所放矣라 ○此章은 言人之爲學이 當如是也ㅣ니라 蓋學莫先於立志니 志道則心存於正而不他요 據德則道得於心而不失이오 依仁則德性常用而物欲不行이오 游藝則小物不遺而動息有養이니 學者於此에 有以不失其先後之序와 輕重之倫焉이면 則本末兼該하고 內外交養하야 日用之間에 無少間隙而涵泳從容하야 忽不自知其入於聖賢之域矣니라
유라는 것은 물건을 완미하고 실정에 맞춤을 이름이오, 예는 예악의 문과 활쏘고, 말타고, 글쓰고 수놓는 방법이니, 다 지극한 이치가 붙은 것이고 날로 씀에 가히 빼놓지 못하는 것이라. 아침 저녁으로 놀아서(遊觀하여) 써 그 의리의 취미를 넓히면 응하는데 힘쓰고 여유가 있게 되어 마음이 또한 방종하지 않느니라. ○이 장은 사람의 학문함이 마땅히 이와 같이 하여야 함을 말씀하심이라. 대개 학문은 뜻을 세우는 것보다 먼저할 것이 없으니, 도에 뜻을 두면 마음이 바른 데에 존해져 달리함이 없고 덕에 웅거한다면 도가 마음에 얻어져 잃지 않게 되고, 인에 의지한다면 덕의 성품이 항상 쓰여져 물욕이 행하지 못할 것이고, 예술에 논다면 작은 물건이라도 버리지 않고 동할 때나 쉴 때나 길러짐이 있으니, 배우는 자가 이에 써 그 선후의 차례와 경중의 윤리를 잃지 아니하면 본말이 겸해서 해당하고 내외가 사귀어 길러져 날로 쓰는 사이에 조금도 틈이 없어서 무젖어 조용해져 홀연히 스스로 그 성현의 경지에 들어감을 아지 못하느니라
<제7장>
子ㅣ 曰自行束修以上은 吾未嘗無誨焉이로라
공자 가라사대 속수를 행함으로부터 써 위는 내 일찍이 가르침이 없지 아니하였노라.
[본문해설]
공자가 돈을 벌려거나 다른 욕심으로 남을 가르친 것이 아니고, 교육을 받을 사람이라면 어느 정도 성의는 가지고 와서 시작하여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곧 포 열 마리(束修)를 최하로 잡고 그 이상을 가져오는 사람을 일찍이 가르치지 않은 적이 없음을 말하고 있다. 주역 산수몽(山水蒙)에서도 ‘匪我ㅣ 求童蒙이라 童蒙이 求我ㅣ니’, 곧 내가 동몽을 구함이 아니라, 동몽이 나를 구한다고 하였다.
修는 脯也ㅣ니 十脡ㅣ 爲束이라 古者相見에 必執贄以爲禮하니 束修는 其至薄者라 蓋人之有生에 同具此理라 故로 聖人之於人에 無不欲其入於善이로대 但不知來學이면 則無往敎之禮라 故로 苟以禮來면 則無不有以敎之也ㅣ니라
수는 포이니 열 마리 포가 한 묶음이라. 옛 적에 서로 볼 적에 반드시 폐백을 가지고서 써 예를 삼았으니 속수는 그 지극히 박함이라. 대개 사람이 살아감에 있어 한가지로 이러한 이치를 갖추었느니라. 그러므로 성인이 사람에게 그 선에 들어가게 하고자 아님이 없으되 다만 와서 배울 줄을 아지 못하면 가서 가르치는 예는 없느니라. 그러므로 진실로 예로써 오면 써 가르치지 아니함이 없느니라.
脡 : 포 정
<제8장>
子ㅣ 曰不憤이어든 不啓하며 不悱어든 不發호대 擧一隅애 不以三隅反이어든 則不復也ㅣ니라
공자 가라사대 분발을 아니하거든 열어주지 아니하며, 답답히 아니하거든 발표해주지 아니호대 한 귀퉁이를 듦에 세 귀퉁이로써 돌이키지(반증하지) 아니하거든 다시는 (더 가르치지) 아니하니라.
憤者는 心求通而未得之意요 悱者는 口欲言而未能之貌라 啓는 謂開其意요 發은 謂達其辭라 物之有四隅者하니 擧一에 可知其三이라 反者는 還以相證之義라 復는 再告也ㅣ라 上章에 已言聖人誨人不倦之意하고 因幷記此하야 欲學者로 勉於用力하야 以爲受敎之地也ㅣ니라 ○程子ㅣ 曰憤悱는 誠意之見於色辭者也ㅣ니 待其誠至而後에 告之라 旣告之요 又必待其自得하야 乃復告爾라 又曰不待憤悱而發이면 則知之不能堅固요 待其憤悱而後에 發則沛然矣니라
분이라는 것은 마음이 통함을 구하는데도 얻지 못한 뜻이고, 비라는 것은 입으로 말을 하고자 하는데도 능치 못한 모양이라(말이 잘되지 않아 애태우는 모양이라). 계는 그 뜻을 열어줌을 이름이오, 발은 그 말을 통하도록 함을 이름이라. 물건은 네 귀퉁이가 있으니 하나를 듦에 그 셋을 앎이라. 반이라는 것은 돌이켜서 써 서로 증명하는 뜻이라. 부는 두 번 가르침이라. 윗장에 이미 성인이 사람을 가르침에 게을리 아니한다는 뜻을 말하고, 아울러 인하여 이를 기록하여(不憤不啓, 不悱不發, 擧一隅不以三隅反則不復也) 배우고자 하는 자로 힘을 쓰게 하여서 써 가르침을 받는 땅을 삼느니라. ○정자 가라사대 분비는 성의가 얼굴빛(憤)과 말(悱)에 나타남이니 그 성의가 이르기를 기다린 후에 가르침이라. 이미 가르치고 또 반드시 그 스스로 얻어짐을 기다려서 이에 다시 가르쳐줌이라. 또 가라사대 분비를 기다리지 아니하고 발표해주면 아는 것이 능히 견고해지지 못하고 그 분비를 기다린 후에 발표해주면 패연해지느니라(비가 퍼붓듯 한꺼번에 확 깨달아 알게 되니라).
술이편 제9장 ~ 제11장 해설
<제9장>
子ㅣ 食於有喪者之側애 未嘗飽也ㅣ러시다
공자께서 상사가 있는 자의 곁에서 음식을 잡수심에 일찍이 배불리 아니하더시다.
臨喪에 哀不能甘也ㅣ라
상사에 임함에 슬퍼서 능히 달지 아니하니라.
子ㅣ 於是日에 哭則不歌ㅣ러시다
공자께서 이 날에 곡하시면 노래를 부르지 아니하더시다.
哭은 謂弔哭이니 一日之內에 餘哀未忘하야 自不能歌也ㅣ라 ○謝氏 曰學者ㅣ 於此二者에 可見聖人情性之正也ㅣ니 能識聖人之情性然後에 可以學道니라
곡은 조상가서 곡함을 이름이니 하루 안에는 남은 슬픔을 잊지 아니하여 스스로 능히 노래하지 않음이라. ○사씨 가로대 배우는 자가 이 두 가지에 가히 성인의 성정의 바름을 볼지니 능히 성인의 성정을 안 연후에 가히 써 도를 배우니라.
<제10장>
子ㅣ 謂顔淵曰用之則行하고 舍之則藏을 惟我與爾ㅣ 有是夫인저
공자가 안연에게 일러 가라사대 쓰여지면 행하고, 버려지면 은둔하는 것을 오직 나와 네가 이것을 간직하고 있은저!
[본문 해설]
“나라에서 써주면 배운 대로 뜻을 펴보고 써주지 아니하면 은둔생활을 하는데 나와 네가 그렇구나!”하고 공자가 안연에게 말씀하셨다.
尹氏 曰用舍는 無與於己요 行藏은 安於所遇니 命은 不足道也ㅣ라 顔子ㅣ 幾於聖人이라 故로 亦能之시니라
윤씨 가로대 쓰고 버림은 몸에 관계하지 않고(나라가 하는 일이지, 나와는 관계없는 일이며), 행하고 감춤은 만난 바에 편안하니(쓰면 나가고 쓰지 않으면 나가지 않고), 운명은 족히 말하지 않느니라(운명 따위는 거론하지 않느니라). 안자는 성인에 가까우니라. 그러므로 또한 능하시니라.
子路ㅣ 曰子ㅣ 行三軍則誰與ㅣ시리잇고
자로가 말하기를 선생님께서 삼군을 행하신다면 누구와 더불으시리잇고?
[본문 해설]
공자가 안연에게 하는 말씀을 듣고 있던 자로가 안연처럼 칭찬을 듣고 싶어 자신에게 걸맞을 것이라는 일을 찾아내 선생님께 여쭈었다. 내가 용맹이 최고니까 선생님께서 삼군을 지휘하는 데는 나와 더불어 하실 것이다라는 생각을 갖고 우쭐해 하며 물었다.
萬二千五百人이 爲軍이니 大國은 三軍이라 子路ㅣ 見孔子ㅣ 獨美顔淵하고 自負其勇하야 意夫子ㅣ 若行三軍이면 必與己同이라
1만2천5백인이 군이 되니 대국은 삼군이라. 자로가 공자께서 홀로 안연만을 아름다이 여기심을 보고, 스스로 그 용맹을 자부하여 부자께서 만약 삼군을 행하신다면 반드시 나와 더불어 같이할 것임을 뜻함이라.
子ㅣ 曰暴虎憑河하야 死而無悔者를 吾不與也ㅣ니 必也臨事而懼하며 好謀而成者也ㅣ니라
공자 가라사대 범을 때려잡고 하수를 걸어 건너서 죽어도 후회가 없는 자를 나는 더불지 아니하니, 반드시 일에 임해서 두려워하며, 도모하여 이루는 자를 좋아하니라.
暴虎는 徒搏이오 憑河는 徒涉이라 懼는 謂敬其事요 成은 謂成其謀라 言此는 皆以抑其勇而敎之라 然이나 行師之要는 實不外此하니 子路ㅣ 蓋不知也ㅣ라 ○謝氏 曰聖人이 於行藏之間에 無意無必하야 其行이 非貪位요 其藏이 非獨善也ㅣ니 若有欲心이면 則不用而求行이오 舍之而不藏矣리라 是以로 惟顔子는 爲可以與於此라 子路는 雖非有欲心者라 然이나 未能無固必也ㅣ오 至以行三軍爲問하야는 則其論이 益卑矣라 夫子之言은 蓋因其失而救之시니라 夫不謀는 無成이오 不懼는 必敗하나니 小事도 尙然이온 而況於行三軍乎아
폭호는 한갓 맨손으로 때려잡는 것이오, 빙하는 한갓 걸어 건넘이라. 구는 그 일을 공경함을 이름이고, 성은 그 꾀를 이룸을 이름이라. 이것은 다 써 그 용맹을 누르고 가르침을 말씀이라. 그러나 군사를 행하는 중요함은 실지로 이(臨事而懼, 好謀而成)에 바깥하지 아니하니 자로가 대개 아지 못함이라. ○사씨 가로대 성인이 행하고 은둔하는 사이에 뜻도 없고 반드시도 없어서(無意無必無固) 그 행함이 자리를 탐함이 없고, 그 은둔함이 독선이 없으니, 만약 욕심이 있다면 (나라에서) 써주지 않는데도 행함을 구할 것이오, 버려도 은둔하지 아니하리라. 이로써 오직 안자는 가히 써 이에 참여가 되니라. 자로는 비록 욕심이 있지는 않는 자라. 그러나 능히 고집하고 기필코 함이 없지 아니하고, 삼군을 행함으로써 물음을 하는데 이르러서는 그 의논이 더욱 비루하도다. 부자의 말씀은 대개 그 실수로 인하여 구원해주심이니라. 무릇 도모하지 아니함은 이룸이 없고, 두려워함이 없음은 반드시 패할 것이니, 작은 일도 오히려 그러하곤 하물며 삼군을 행하는 데에서라야!
<제11장>
子ㅣ 曰富而可求也댄 雖執鞭之士ㅣ라도 吾亦爲之어니와 如不可求댄 從吾所好호리라
공자 가라사대 부를 가히 구할진댄 비록 채찍을 잡은 선비라도 내 또한 하거니와 만약 가히 구하지 못할진댄 내 좋아하는 바를 따르호리라.
執鞭은 賤者之事라 設言富若可求댄 則雖身爲賤役以求之라도 亦所不辭라 然이나 有命焉이오 非求之可得也댄 則安於義理而已矣니 何必徒取辱哉리오 ○蘇氏 曰聖人이 未嘗有意於求富也ㅣ시니 豈問其可不可哉시리오 爲此語者는 特以明其決不可求爾라 楊氏 曰君子ㅣ 非惡富貴而不求요 以其在天하야 無可求之道也일새니라
채찍을 잡는다는 것(마부)은 천한 자의 일이라. 가설하여 말하건대 부자를 만약 구할진댄 비록 몸이 천한 일을 하여서 써 구할지라도 또한 사양하지 않을 바이라. 그러나 명에 있고, 구하여 가히 얻지 못할진댄 곧 의리에 편안히 할 뿐이니 어찌 반드시 한갓 욕을 취하리오. ○소씨 가로대 성인이 일찍이 부를 구함에 뜻을 두지 아니하셨으니 어찌 그 가하다 불가하다를 물으시리오. 이 말씀을 하신 것은 특별히 써 그 결코 가히 (부를 욕심으로) 구하지 못함을 밝히심이라. 양씨 가로대 군자가 부귀를 미워하고 구하지 않는 것이 아니오, 그것이 하늘에 있어서 가히 구하는 방도가 없어서 일새니라.
술이편 제12장 ~ 제16장 해설
<제12장>
子之所愼은 齊戰疾이러시다
공자의 삼가신 바는 재계함과 전쟁과 병이러시다.
齊之爲言은 齊也ㅣ니 將祭而齊其思慮之不齊者하야 以交於神明也ㅣ라 誠之至與不至와 神之享與不享이 皆決於此요 戰則衆之死生과 國之存亡이 繫焉이오 疾은 又吾身之所以死生存亡者ㅣ니 皆不可以不謹也ㅣ니라 ○尹氏 曰夫子ㅣ 無所不謹시나 弟子ㅣ 記其大者耳라
재계한다 말한 것은 가지런히 함이니 장차 제사를 지내려 함에 그 생각이 가지런하지 아니함을 가지런히 하여 써 신명과 교통함이라. 정성의 지극함과 더불어 지극하지 못함과 신의 흠향과 흠향하지 아니함이 다 이에 결정되고, 전쟁인즉 많은 사람의 사생과 나라의 존망이 매어 있고, 병은 또한 내 몸의 써 사생과 존망인 바이니(달려있으니) 다 가히 써 삼가지 아니치 아니하니라. ○윤씨 가로대 부자가 삼가지 아니한 바가 없으시나 제자가 그 큰 것을 기록함이라.
<제13장>
子ㅣ 在齊聞韶하시고 三月을 不知肉味하사 曰不圖爲樂之至於斯也호라
공자가 제나라에 계실 적에 소악을 들으시고 석 달을 고기 맛을 아지 못하사 음악이 이에 이를 줄을 도모하지 아니호라.
史記에 三月上에 有學之二字라 不知肉味는 蓋心一於是하야 不及乎他也ㅣ라 曰不意舜之作樂而至於如此之美라 하시니 則有以極其情文之備하야 而不覺其欺息之深也ㅣ시니 蓋非聖人이면 不足以及此ㅣ라 ○范氏 曰韶는 盡美又盡善하니 樂之無以加此也ㅣ라 故로 學之三月을 不知肉味하사 而歎美之如此하시니 誠之至요 感之深也ㅣ니라
사기에 삼월이란 위에 ‘학지’라는 두 글자가 있느니라(그러면 ‘삼 개월을 배우는 동안’으로 해석해야 한다). 고기 맛을 아지 못한다는 것은 대개 마음이 이에 한결 같아서 다른데는 미치지 아니함이라. 가라사대 순임금이 지은 음악이 이와 같이 아름다운 데에 이를 줄은 뜻하지 아니했다 하시니 그 감정과 문장의 갖추어짐이 지극하야 그 탄식의 깊음을 깨닫지 못하시니 대개 성인이 아니면 족히 써 이에 미치지 못하느니라. ○범씨 가로대 소는 아름다움을 다하고 또한 선을 다했으니 음악의 써 이에 더할 것이 없느니라. 그러므로 배운 지 석달을 고기맛을 아지 못하고 아름다움을 탄식하심이 이와 같으니 정성의 지극함이오, 감정(감동)의 깊음이라.
<제14장>
冉有ㅣ 曰夫子ㅣ 爲衛君乎아 子貢이 曰諾다 吾將問之호리라
염유가 가로대 부자가 위나라 임금을 위하심인가? 자공이 가로대 그렇다. 내 장차 물어보리라.
爲는 猶助也ㅣ라 衛君은 出公輒也ㅣ라 靈公이 逐其世子蒯聵러니 公이 薨에 而國人이 立蒯聵之子輒하다 於是에 晉納蒯聵而輒이 拒之하니라 時에 孔子ㅣ 居衛하실새 衛人이 以蒯聵로 得罪於父요 而輒으로 嫡孫當立이라 故로 冉由ㅣ 疑而問之하니라 諾은 應辭也ㅣ라
위는 도움과 같음이라. 위군은 출공 첩이라. 영공(출공의 할아버지)이 그 세자 괴외를 쫓아내더니 공(영공)이 죽음이 나라 사람이 괴외의 아들 첩을 세우도다. 이에 진나라가 괴외를 받아들이려 하니 첩이 막았느니라. 이때에 공자가 위나라에 거하실 때에 위나라 사람이 괴외로써 아버지에게 죄를 얻었다하고 첩으로 적손이라 마땅히 세움이라. 그러므로 염유가 의심을 갖고 물으니라. 낙은 그렇다라는 말이라.
輒 : 문득 첩 蒯 : 황모(黃茅) 괴 聵 : 배냇귀머거리 외
入曰伯夷叔齊는 何人也ㅣ잇고 曰古之賢人也ㅣ니라 曰怨乎ㅣ잇가 曰求仁而得仁이어니 又何怨이리오 出曰夫子ㅣ 不爲也ㅣ시리러라
(자공이) 들어가서 가로대 백이와 숙제는 어떠한 사람이잇고? (공자) 가라사대 옛적의 어진 사람들이니라. 가로대 원망을 했나잇가? 가라사대 인을 구하고 인을 얻었거니 또한 어찌 원망하리오. (자공이) 나가서 가로대 부자는 (위군을) 위하지 아니하겠더시라.
伯夷叔齊는 孤竹君之二子라 其父ㅣ 將死에 遺命立叔齊러니 父卒에 叔齊ㅣ 遜伯夷한대 伯夷曰父命也ㅣ라 하고 遂逃去하니 叔齊ㅣ 亦不立而逃之한대 國人이 立其中子하니라 其後ㅣ 武王이 伐紂에 夷齊ㅣ 扣馬而諫이러니 武王이 滅商에 夷齊ㅣ 恥食周粟하야 去隱于首陽山이라가 遂餓而死하다 怨은 猶悔也ㅣ라 君子ㅣ 居是邦하야 不非其大夫온 況其君乎아 故로 子貢이 不斥衛君하고 而以夷齊로 爲問이어늘 夫子ㅣ 告之如此하시니 則其不爲衛君을 可知矣니라 蓋伯夷는 以父命爲尊하고 叔齊는 以天倫爲重하니 其遜國也ㅣ 皆求所以合乎天理之正하고 而卽乎人心之安이오 旣而各得其志焉하야는 則視棄其國을 猶敝蹝爾니 何怨之有리오 若衛輒之據國拒父하고 而唯恐失之는 其不可同年而語ㅣ 明矣라 ○程子ㅣ 曰伯夷叔齊는 遜國而逃하고 諫伐而餓호대 終無怨悔하니 夫子ㅣ 以爲賢이라 故로 知其不與輒也ㅣ니라
백이숙제는 고죽군의 두 아들이라. 그 아버지가 장차 죽을 적에 유명함에 숙제를 세우라 하더니 아비가 죽음에 숙제가 백이에게 사양한대, 백이 가로대 아버지 명이라 하고 마침내 도망하니 숙제 또한 서지 아니하고 도망를 간대 나라 사람이 그 가운데 아들을 세우니라. 그 뒤 무왕이 주를 침에 백이 숙제가 말을 붙들고 두들기면서 (以臣伐君하지 못한다고) 간하더니, 무왕이 상나라를 멸함에 백이 숙제가 주나라 곡식을 먹음이 부끄럽다고 하여 떠나가 수양에서 은거하다가 마침내 굶어 죽었다. 원은 뉘우침과 같으니라. 군자가 이 나라에 거하여 그 대부도 그르니 아니하온, 하물며 그 인군이랴. 그러므로 자공이 위군을 배척하지 아니하고 백이 숙제로 묻게 되었거늘(군자가 그 나라에 거함에 정치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간섭하지 아니하거늘, 하물며 위나라 임금을 직접 들어 묻겠는가. 그러므로 자공이 백이 숙제로써 넌지시 공자의 의중을 헤아린 것이다), 공자가 이와 같이 가르쳐주시니 곧 그 위군을 위하지 아니함이 가히 알만하니라. 대개 백이는 아버지 명으로써 존귀함을 삼고, 숙제는 천륜으로써 중함을 삼으니, 그 나라를 사양함이 다 써한 바 천리의 바름에 합하고 인심의 편안함에 나아감이오, 이미 각각 그 뜻을 얻어서는 그 나라 버리기를 마치 떨어진 짚신짝처럼 보았으니 어찌 원망이 있으리오. 위나라 첩같이 나라에 웅거하면서 아비를 막고 오직 잃을까 두려워함은 그 가히 동년하여(본래는 同甲이란 뜻으로 同席과 통한다. 곧 한 자리에 두고) 말하지 못함이 밝음이라. ○정자 가라사대 백이 숙제는 나라를 사양하며 도망쳤고, 정벌함을 간하고 굶어 죽었으되 마침내 원망과 후회가 없었으니 부자가 써 어질다고 하시니라. 그러므로 그 첩을 도와주지 않음을 알 수 있음이라.
蹝 : 짚신 사
<제15장>
子ㅣ 曰飯疏食飮水하고 曲肱而枕之라도 樂亦在其中矣니 不義而富且貴는 於我애 如浮雲이니라
공자 가라사대 거친 밥을 먹으며 물을 마시고 팔을 굽혀 베더라도 즐거움이 또한 그 가운데 있으니 의롭지 아니하면서 부하고 귀함은 나에게 뜬 구름과 같으니라.
飯은 食之也ㅣ라 疏食는 麤飯也ㅣ라 聖人之心은 渾然天理하야 雖處困極이나 而樂亦無不在焉하니 其視不義之富貴를 如浮雲之無有하야 漠然無所動於其中也ㅣ시니라 程子ㅣ 曰非樂疏食飮水也ㅣ오 雖疏食飮水라도 不能改其樂也ㅣ니 不義之富貴를 視之輕如浮雲然이라 又曰須知所樂者何事니라
반은 먹음이라. 소사는 추한 밥이라. 성인의 마음은 천리가 혼연하여 비록 곤궁에 처하더라도 즐거움이 또한 있지 않음이 없으니 그 불의한 부귀 봄을 뜬구름이 있으면서도 없는 것같이 하여 막연하게 그 속에 동하는 바가 없으심이라. 정자 가라사대 거친 밥과 물 마심을 즐거워함이 아니오, 비록 (처지가) 소사음수를 하게 되었더라도 능히 그 즐거움을 고치지 아니하니 불의한 부귀를 뜬구름처럼 가볍게 보았음이라. 또한 가라사대 모름지기 즐거운 바가 어떤 일인지를 알아야 하니라.
<제16장>
子ㅣ 曰加我數年하야 五十以學易이면 可以無大過矣리라
공자 가라사대 나에게 두어 해를 더하여 오십으로써 주역을 배우면 가히 큰 허물이 없으리라.
[본문 해설]
‘加我數年하야 五十以學易’에서 옛날 선비들은 ‘加’자를 ‘빌릴 가(假)’라로 해야 한다고 보았으며 ‘五十’은 ‘마침내 졸(卒)’가 나눠져서 된 글자로 해석하였다. 위 글은 공자가 70세 되신 해에 하신 말씀이므로, 곧 ‘몇 년을 빌려 더 살아서 마침내 위편삼절(韋編三絶)하면서 읽은 주역을 공부하면 큰 허물은 짓지 않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하지만 주역의 이치로 살펴보면 위와 같은 해석을 적절치 못하다. 주역의 64괘 가운데 체가 되는 건곤감리(乾坤坎離)괘를 제외해놓고 보면, 주역 상경은 둔(屯)괘에서 시작하여 대과(大過)괘로 끝난다. 소강절의 황극경세로 보면 지금은 대과의 시대이다. 곧 선천의 끝에 가서 물질문명과 과학문명이 극도로 발달한 나머지 혼란한 세상이라는 된다는 것이다. 50은 주역에서 대연수(大衍數) 50을 말하는 것으로, 이 50이 주역의 핵심이다. 이를 좀더 연구한다면 대과의 세상을 평화의 세상으로 바꿀 좋은 방안을 찾아낼 수 있을 텐데 하는 공자의 의지가 담긴 말씀이라고 보아야 한다.
한편으로 공자의 나이 70에 50을 더하면 120이 되는데, 이 120은 인간이 타고난 수명이다. 그러므로 120을 살게 된다면 대과가 없을 것이다라는 의미로도 해석될 수 있다. 왜냐하면 윗 문장은 다른 문장들과는 달리 주역을 언급한 것이므로 역학적 관점에서 해석해야 하기 때문이다.
劉聘君이 見元城劉忠定公한대 自言嘗讀他論하니 加는 作假요 五十은 作卒이라 하니 蓋加假는 聲相近而誤讀이오 卒與五十은 字相似而誤分也ㅣ라 愚는 按此章之言컨대 史記에 作假我數年하야 若是면 我於易則彬彬矣라 하야 加正作假而無五十字하니 蓋是時에 孔子ㅣ 年已幾七十矣시니 五十字誤ㅣ 無疑也ㅣ라 學易則明乎吉凶消長之理와 進退存亡之道라 故로 可以無大過라 蓋聖人이 深見易道之無窮하고 而言此以敎人하사 使知其不可不學이오 而又不可以易而學也ㅣ시니라
유빙군이 원성유충정공을 찾아가본대 스스로 말하기를 일찍이 다른 논어를 읽으니 加는 假로 짓고 五十은 卒이라 지었다 하니, (유빙군이) 대개 加假는 소리가 서로 가까워져 잘못 읽고 卒과 五十은 글자 서로 같아서 잘못 나눠진 것이라. 우는 이 장의 말을 상고하건대 사기에 ‘나에게 두어 해를 빌려서 이와 같이 내가 주역에 공부한다면 빈빈할 것이다’ 하여 加는 정히 假로 짓고 五十이란 글자가 없으니 대개 이때에 공자 나이가 이미 거의 70이시니, 오십이란 글자의 잘못은 의심이 없음이라. 역을 배운다면 길흉 소장의 이치와 진퇴 존망의 도에 밝아짐이라. 그러므로 가히 써 큰 허물이 없음이라. 대개 성인이 역도의 무궁함을 깊이 보여주고 이로써 사람을 가르쳐서 하여금 그 가히 배우지 아니치 아니함을 알게 하고, 또한 가히 써 쉽게 배워서도 아니됨을 말씀하심이라.
술이편 제17장 ~ 제20장 해설
<제17장>
子所雅言은 詩書執禮ㅣ 皆雅言也ㅣ러시라
공자가 늘 말씀하신 것은 시와 서와 예를 잡음(집행함)이 다 항상 말씀하신 것이라.
雅는 常也ㅣ오 執은 守也ㅣ라 詩以理情性하고 書以道政事하며 禮以謹節文하니 皆切於日用之實이라 故로 常言之하시니라 禮에 獨言執者는 以人所執守而言이오 非徒誦說而已也ㅣ니라 程子ㅣ 曰孔子雅素之言이 止於如此하시되 若性與天道는 則有不可得而聞者하니 要在黙而識之也ㅣ니라 謝氏 曰此는 因學易之語而類記之니라
아는 항상이고, 집은 지킴이라. 시는 써 감정과 성품을 다스리고(그 정성의 바름을 얻는 것이고), 글로써 정사를 말하며(제왕들의 정치를 책으로 엮었으니 정치를 배우는 것이며), 예로써 절문을 삼가니 다 날로 쓰는 실지의 절실함이라. 그러므로 항상 말씀하시니라. 예에 특별히 잡는다고 말한 것은 사람이 잡아 지킴으로써 말한 것이고, 한갓 외우고 말하는 것뿐이 아니니라. 정자 가라사대 공자께서 항상 본디(평상시에) 하신 말씀이 이와 같은 데에 그치시되 만약에 성과 천도는 곧 가히 얻어 듣지 못함이 있으니 요컨대 묵묵히 아는데 있느니라. 사씨 가로대 이것은 (앞장의) 역을 배운다는 말로 인하여 비슷하게 기록하였느니라.
<제18장>
葉公이 問孔子於子路ㅣ어늘 子路ㅣ 不對한대
섭공이 자로에게 공자를 묻거늘 자로가 대답하지 아니한대
葉公은 楚葉縣允 沈諸梁이오 字는 子高니 僭稱公也ㅣ라 葉公이 不知孔子하니 必有非所問而問者라 故로 子路ㅣ 不對라 抑亦以聖人之德이 實有未易名言者與여
섭공은 초나라 섭현의 윤 심제량이고, 자는 자고니 참람하게 공이라 일컬음이라. 섭공이 공자를 아지 못하니 반드시 묻지 않을 것을 물을 것이라. 그러므로 자로가 대답하지 아니함이라. 아니면 또한 성인의 덕이 실제 쉽게 이름 지어 말하지 못하기 때문인저!
子ㅣ 曰女ㅣ 奚不曰其爲人也ㅣ 發憤忘食하며 樂以忘憂하야 不知老之將至云爾오
공자 가라사대 네가 어찌하여 그 사람됨이 분함이 발하면 먹을 것을 잊으며, 즐거우면 써 근심을 잊어서 늙음이 장차 이름을 아지 못한다고 아니했는고!
[본문해설]
자로가 섭공의 물음에 대답하지 아니했다는 말을 듣고 하신 말씀이다.
“공자 그 사람은 공부하다가 깨닫지 못하면 답답해서 먹는 것도 잊어버린 채 답을 구하기 위해 골몰하고, 그러다가 깨우치면 즐거워서 다른 근심 걱정은 다 잊어버려 늙어가는 줄도 모른다더라 하고 얘기하지 아니했는가?”
未得則發憤而忘食하며 已得則樂之而忘憂하야 以是二者로 俛焉하야 日有孶孶而不知年數之不足하니 但自言其好學之篤이라 然이나 深味之면 則見其全體至極하야 純亦不己之妙니 有非聖人이면 不能及者라 蓋凡夫子之自言이 類如此하시니 學者ㅣ 宜致思焉이라
얻지 못하면 분함을 발하여 먹을 것을 잊으며 이미 얻으면 즐거워서 근심을 잊어서 이 두 가지로써 힘을 써서 날로 부지런히 함이 있어서 연수(나이)가 부족함을(늙어서 죽을 나이가 되었음을) 아지 못하게 되었으니 다만 스스로 그 학문 좋아함이 돈독함을 말함이라. 그러나 깊이 맛을 들이면(완미하면) 그 전체의 지극함이 순전하여 그만두지 못하는 묘함을 볼 것이니 성인이 아니면 능히 미치지 못하니라. 대개 무릇 공자의 스스로 말씀하심이 이와 같이 유유대로(유에 따라) 하셨으니 배우는 자가 마땅히 생각을 이를지어라.
<제19장>
子ㅣ 曰我非生而知之者ㅣ라 好古敏以求之者也ㅣ로라
공자 가라사대 내 나면서 아는 자가 아니니라. 옛 것을 좋아하여 민첩하여 써 구한 자로라.
生而知之者는 氣質淸明하고 義理昭著하야 不待學而知也ㅣ라 敏은 速也ㅣ니 謂汲汲也ㅣ라 ○尹氏 曰孔子ㅣ 以生知之聖으로 每云好學者는 非惟勉人也ㅣ라 蓋生而可知者는 義理爾니 若夫禮樂名物과 古今事變은 亦必待學而後에 有以驗其實也ㅣ라
나면서 아는 자는 기질(기운과 본질)이 맑으며 밝고 의리가 밝고 빛나서 배움을 기다리지 아니해도 아느니라. 민은 빠름이니 급급함이라. ○윤씨 가로대 공자는 생지하신 성인으로서 매양 배움을 좋아한다고 말한 것은 오직 다른 사람을 힘쓰게 한 것뿐이 아니라 대개 나서 가히 아는 것은 의리일 뿐이니 만약 무릇 예악과 물건의 이름과 고금 사변은 또한 반드시 배움을 기다린 후에야 써 그 실제를 징험함이 있느니라.
<제20장>
子ㅣ 不語怪力亂神이러시다
공자는 괴이함과 힘과 어지러움과 신을 말하지 아니하더시다.
怪異勇力과 悖亂之事는 非理之正이니 固聖人所不語요 鬼神은 造化之迹이니 雖非不正이나 然이나 非窮理之至면 有未易明者라 故로 亦不輕以語人也ㅣ라 ○謝氏 曰聖人은 語常而不語怪하고 語德而不語力하며 語治而不語亂하고 語人而不語神이시니라
괴이하고 힘 자랑함과 세상을 시끄럽게 하고 어지럽게 하는 일은 이치의 바름이 아니니 진실로 성인이 말씀하지 아니한 것이고, 귀신은 조화의 자취이니 비록 바르지 아니치 아니하나 이치를 궁구함이 지극하지 아니하면 쉽게 밝히지 못함이 있느니라. 그러므로 또한 가벼이 사람에게 말하지 아니함이라. ○사씨 가로대, 성인은 떳떳함을 말씀하고 괴이함을 말씀하지 아니하시고, 덕은 말씀하시되 힘은 말씀하지 아니하시며, 다스림은 말씀하시되 어지러움은 말씀하지 아니하시고, 사람은 말씀하시되 신은 말씀하지 아니하시니라.
술이편 제21장 ~ 제24장 해설
<제21장>
子ㅣ 曰三人行에 必有我師焉이니 擇其善者而從之오 其不善者而改之니라
공자 가라사대 세 사람이 감에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으니 그 선한 자를 가려서 따르고 그 불선한 자를 고치니라.
三人同行에 其一은 我也ㅣ니 彼二人者ㅣ 一善一惡이어든 則我從其善而改其惡焉이면 是二人者ㅣ 皆我師也ㅣ니라 ○尹氏 曰見賢思齊하며 見不賢而內自省이면 則善惡이 皆我之師니 進善에 其有窮乎아
세 사람이 함께 감에 그 하나는 나이니, 저 두 사람이 하나는 선하고 하나는 악하거든 곧 내가 그 선함을 따르고 그 악함을 고치면 이 두 사람이 다 나의 스승이니라. ○윤씨 가로대 어진 이를 보고 가지런함을 생각하며, 어질지 못함을 보고 안으로 스스로 살피면 곧 선악이 다 나의 스승이니 선에 나아감에 그 궁함이 있으랴!
<제22장>
子ㅣ 曰天生德於予ㅣ시니 桓魋ㅣ 其如予何ㅣ리오
공자 가라사대 하늘이 나에게 덕을 내시니 환퇴가 그 나에게 어찌 하리오.
桓魋는 宋司馬向魋也ㅣ니 出於桓公이라 故로 又稱桓氏니라 魋ㅣ 欲害孔子어늘 孔子ㅣ 言天旣賦我以如是之德하시니 則桓魋ㅣ 其奈我何오 하시니 言必不能違天害己니라
환퇴는 송나라 사마 향퇴이니 환공에게서 남이라. 그러므로 또한 환씨라고 일컫느니라. 퇴가 공자를 해치고자 하거늘 공자가 하늘이 이미 나에게 이와 같은 덕으로써 부여해 주셨으니 곧 환퇴가 그 나에게 어찌 하리오 말씀하시니, 반드시 능히 하늘을 어기고 자기를 해치지 못함을 말씀하심이라.
<제23장>
子ㅣ 曰二三子는 以我爲隱乎아 吾無隱乎爾로라 吾無行而不與二三子者ㅣ 是丘也ㅣ니라
공자 가라사대 그대들은(두세 사람은, 여러분은) 나로써 은둔한다(숨겼다) 하랴? 내 은둔함이 아니로라(숨김이 없도다). 내가 행하는데 그대들과 더불지(그대들에게 보여주지) 아니함이 없으니 바로(이) 나(구)이니라.
諸弟子ㅣ 以夫子之道로 高深하야 不可幾及이라 故로 疑其有隱하니 而不知聖人作止語黙이 無非敎也ㅣ라 故로 夫子以此言으로 曉之시니라 與는 猶示也ㅣ라 ○程子ㅣ 曰聖人之道ㅣ 有天然하야 門弟子ㅣ 親灸而冀及之然後에 知其高且遠也ㅣ라 使誠以爲不可及이면 則趨向之心이 不幾於怠乎아 故로 聖人之敎ㅣ 常俯而就之如此하시니 非獨使資質庸下者로 勉思企及이오 而才氣高邁者도 亦不敢躐易而進也ㅣ라 呂氏 曰聖人은 體道無隱하야 與天象昭然하야 莫非至敎하니 常以示人이로대 而人自不察이니라
모든 제자들이 ‘부자의 도로써 높고 깊다하여 가히 거의 미치지 못하니라. 그러므로 그 숨김이 있는가’ 의심하니, 성인의 동작과 그침과 말하고 묵묵함이 가르침이 아님이 없느니라. 그러므로 부자께서 이 말(以我爲隱乎, 吾無隱乎爾, 吾無行而不與二三子者 : 나더러 숨겼다 하는가, 나는 숨김이 없느니라. 나는 행하는데 여러분들과 더불어 하지 않음이 없느니라)로써 깨닫게 하심이라. 여는 보임과 같으니라. ○정자 가라사대 성인의 도가 하늘과(천지자연과, 있는 그대로와) 같아서 문인 제자가 친히 굽고 미치기를 바란 연후에 그 높고 또한 먼 것을 아느니라. 하여금 진실로 가히 미치지 못한다고 하면, 달려 향하는 마음이 거의 게으르지 아니하랴. 그러므로 성인의 가르침이 항상 구부리면서 나아감이 이와 같으시니 홀로 자질이 용렬하고 낮은 자로 하여금 힘써 미치기를 바라도록 생각하게 함이오, 재기가 고매한(높고 빠른) 자도 또한 감히 넘고(주제넘게) 쉽게 여겨서 나아가지 못하게 함이라. 여씨 가로대 성인은 도를 체득함이 숨김이 없어서 천상과 더불어 소연하여(하늘에서 빛이 내려오는 것과 같이) 지극한 가르침이 아님이 없으니 항상 써 사람에게 보여주었으되 사람이 스스로 살피지 않느니라.
* 薰陶親炙(훈도친자) : 불에 흙을 구어야 그릇이 되고 생선이나 고기를 구어야 익듯이 선생님 앞에서 괴로움을 참고 견디고 피부로 느끼며 열심히 공부하는 제자들의 모습을 이르는 말.
<제24장>
子ㅣ 以四敎하시니 文行忠信이니라
공자가 네 가지 가르침으로써 하시니 학문과 수행과 충성스러움(충실함)과 믿음이니라.
程子ㅣ 曰敎人以學文修行而存忠信也ㅣ니 忠信은 本也ㅣ라
정자 가라사대 사람을 가르침에 학문과 수행으로써 하고 충실과 믿음을 존하니 충신은 근본이라.
술이편 제25장 ~ 제28장 해설
<제25장>
子ㅣ 曰聖人을 吾不得而見之矣어든 得見君子者ㅣ면 斯可矣니라
공자 가라사대 성인을 내 얻어 보지 못하거든, 얻어 군자를 보면 이 가하니라.
聖人은 神明不測之號요 君子는 才德出衆之名이라
성인은 신명불측함을 이르고 군자는 재덕이 출중함을 이름이라.
子ㅣ 曰善人을 吾不得而見之矣어든 得見有恒者ㅣ면 斯可矣니라
공자 가라사대 선인을 내가 얻어 보지 못하거든 항상함이 있는 자를 얻어 보면 이 가하니라.
子曰字는 疑衍文이라 恒은 常久之意라 張子ㅣ 曰有恒者는 不二其心이오 善人者는 志於仁而無惡이라
자왈이라는 글자는 의심컨대 연문이라. 항은 항상하고 오래하는 뜻이라. 장자(장횡거) 가라사대 항상함이 있는 자는 그 마음을 두 가지로 아니하고, 선인은 인에 뜻을 두고 악함이 없음이라.
兦而爲有하며 虛而爲盈하며 約而爲泰면 難乎有恒矣니라
없는데도 있다 하며 비었는데도 차있다 하며 간략한데도 크다 하면 유항자가 되기 어려우니라.
[본문 해설]
세상에 어리석은 것이 세 가지 있는데 ①없어도 있는 체하고 ②못나도 잘난 체하고 ③모르면서도 아는 체하는 것이다. 이를 三痴(삼치)라 하는데 공자는 兦而爲有, 虛而爲盈, 約而爲泰로 말하고 있다. 이런 어리석은 자는 항상하는 마음을 두기 어렵다고 하였다.
三者는 皆虛夸之事니 凡若此者는 必不能守其常也ㅣ라 ○張敬夫 曰聖人君子는 以學言이오 善人, 有恒者는 以質言이라 愚는 謂有恒者之與聖人에 高下ㅣ 固懸絶矣라 然이나 未有不自有恒 而能至於聖者也ㅣ라 故로 章末에 申言有恒之義하시니 其示人入德之門이 可謂深切而著明矣로다
세 가지는 다 과장하는 일이니 무릇 이와 같은 자는 반드시 능히 그 떳떳함을 지키지 못하니라. ○장경부 가로대 성인, 군자는 학문으로써 말하고, 선인, 유항자는 질로써 말함이라. 우는 이르기를 유항자와 다못 성인에 높고 낮음이 진실로 현절(딱 끊은 것처럼 현저하게 다름)함이라. 그러나 스스로 항상함이 있고 능히 성인에 이르지 못할 자가 있지 아니하니라. 그러므로 이 장의 끝에 거듭 항구함이 있어야 한다는 뜻을 말씀하시니, 그 사람에게 덕에 들어가는 문을 보여주심이 깊고 간절하여 나타나고 밝다고 이르리로다.
<제26장>
子는 釣而不網하시며 弋不射宿이러시다
공자께서는 낚시질은 하시되 그물질은 하지 아니하시며 활을 쏘는데 자는 새는 쏘지 아니하더시다.
射 : 쏠 사, 여기서는 ‘쏠 석’
網은 以大繩屬網하야 絶流而漁者也ㅣ오 弋은 以生絲로 繫矢而射也ㅣ라 宿은 宿鳥라 ○洪氏 曰孔子ㅣ 少貧賤하야 爲養與祭에 或不得已而釣弋하시니 如獵較이 是也ㅣ라 然이나 盡物取之와 出其不意는 亦不爲也하시니 此可見聖人之本心矣로다 待物如此면 待人을 可知요 小者如此면 大者를 可知니라
망은 큰 노로써 꼬아서 그물을 엮어서 흐름을 끊어 고기를 잡는 것이오, 익은 생사로써 화살에 매서 쏨이라. 숙은 잠자는 새라. ○홍씨 가로대 공자께서 어려서 가난하여 봉양과 제사를 지냄에 혹 부득이하여 낚시질하고 활로 쏘셨으니 엽각하셨다는 것이 이것이라. 그러나 물건을 다 취하는 것(그물로 다 훑어 잡는 짓)과 그 불의에 나오는 것(잠자는 새를 잡거나 함정을 파서 잡는 짓)은 또한 하지 아니하시니 이에 가히 성인의 본심을 보리로다. 물건을 대함에 이와 같이 한다면 사람 대함을 가히 알 수 있고, 작은 것을 이와 같이 하면 큰 것을 가히 알 수 있느니라.
屬 : 이을 속, 여기서는 ‘붙일 촉’ 較 : 견줄 교, 여기서는 ‘비교할 각’ 獵較(엽각) : 누가 더 사냥을 많이 했는가 비교하는 것
<제27장>
子ㅣ 曰蓋有不知而作之者아 我無是也ㅣ로라 多聞하야 擇其善者而從之하며 多見而識之ㅣ 知之次也ㅣ니라
공자 가라사대 대개 아지 못하고 짓는 자가 있는가? 나는 이러함이 없노라. 많이 들어서 그 선함을 가려서 그것을 따르며, 많이 보고 기록을 함이 앎의 다음이니라.
不知而作은 不知其理而妄作也ㅣ라 孔子ㅣ 自言未嘗妄作이라 하시니 蓋亦謙辭라 然이나 亦可見其無所不知也ㅣ라 識는 記也ㅣ라 所從을 不可不擇이오 記則善惡이 皆當存之하야 以備參考하니 如此者는 雖未能實知其理라도 亦可以次於知之者也ㅣ니라
아지 못하고 지음은 그 이치를 아지 못하고 망녕되이 지음이라. 공자 스스로 말씀하시기를 일찍이 망녕되이 짓지 않는다라고 하시니 대개 또한 겸손하신 말씀이라. 그러나 또한 가히 그 아지 못한 바가 없음을 봄이라. 지는 기록함이라. 따르는 것을 가히 가리지 아니치 못하고, 기록인즉 선악이 다 마땅히 존하여 써 참고를 갖추니, 이와 같이 하는 자는 비록 실지로 그 이치를 아지 못하더라도 또한 가히 써 지의 다음은 가니라.
<제28장>
互鄕은 難與言이러니 童子ㅣ 見커늘 門人이 惑한대
호향은 더불어 말하기 어렵더니 동자가 뵙거늘 문인이 의혹한대
互鄕은 鄕名이니 其人이 習於不善하야 難與言善이라 惑者는 疑夫子ㅣ 不當見之也ㅣ라
호향은 시골 이름이니 그 사람이 불선함을 익혀서 더불어 선을 말하기 어려우니라. 의혹이라는 것은 부자가 마땅히 보지 말아야 할 것을 의심함이라.
子ㅣ 曰人이 潔己以進이어든 與其潔也ㅣ오 不保其往也ㅣ며 與其進也ㅣ오 不與其退也ㅣ니 唯何甚이리오
공자 가라사대 사람이 몸을 깨끗이 하여 써 나아가거든 그 깨끗함을 허여하고 그 지나간 것을 따지지 아니하며, 그 나아가는 것만 더불고(허락해주고) 그 물러남은 허락하지 아니하니 오직 어찌 심하리오.
疑此章은 有錯簡이니 人潔로 至往也十四者는 當在與其進也之前이라 潔은 脩治也ㅣ오 與는 許也ㅣ오 往은 前日也ㅣ라 言人潔己而來어든 但許其能自潔耳오 固不能保其前日所爲之善惡也ㅣ며 但許其進而來見耳오 非許其旣退而爲不善也ㅣ라 蓋不追其旣往하며 不逆其將來하야 以是心至면 斯受之耳라 唯字上下에 疑又有闕文이라 大抵亦不爲已甚之意니라 ○程子ㅣ 曰聖人待物之洪이 如此시니라
의심컨대 이 장은 착간이 있으니 '人潔'로부터 '往也'에 이르기까지 14자는 마땅히 '與其進也'의 앞에 있어야 하니라. 결은 닦고 다스림이오, 여는 허락함이오, 왕은 지난 날이라. 사람이 자기 몸을 닦고 오거든 다만 그 능히 스스로 깨끗한 것만을 허락해주고 진실로 능히 그 전날의 선악을 지은 바는 보태지 아니할 것이며 다만 그 나아와서 봄을 허락해줄 뿐이오, 그 이미 물러가서 선하지 아니한 것은 허여해주지 아니할 것이라. 대개 그 이미 지나간 것을 추종하지 아니하며(들먹거리지 아니하며) 그 장차 오는 것을 거스리지 아니하여 이 마음으로써 지극하면 이 받아들일 것이라. 唯자 위 아래에 또 빠진 문장이 있는 듯하니라. 대개 또한 이미 너무 심하다는 뜻이니라. ○정자 가라사대 성인이 물건을 대하는 넓음이 이와 같으시니라.
술이편 제29장 ~ 제37장 해설
<제29장>
子ㅣ 曰仁遠乎哉아 我欲仁이면 斯仁이 至矣니라
공자 가라사대 인이 먼가? 내가 인을 하고자 하면 이 인이 이르니라.
仁者는 心之德이오 非在外也ㅣ어늘 放而不求라 故로 有以爲遠者하니 反而求之면 則卽此而在矣니 夫豈遠哉리오 ○程子ㅣ 曰爲仁由己라 欲之則至하니 何遠之有리오
인이라는 것은 마음의 덕이오, 밖에 있는 것이 아니거늘 방종하여 구하지 않느니라. 그러므로 멀다고 하는 자가 있으니 돌이켜서 구하면 곧 이에 있으니 무릇 어찌 멀리요. ○정자 가라사대 인을 함이 몸으로 말미암은지라. 하고자 하면 이르나니 어찌 멀리 있으리오.
<제30장>
陳司敗ㅣ 問昭公이 知禮乎ㅣ잇가 孔子ㅣ 曰知禮시니라
진사패가 묻되 소공이 예를 아시나잇가? 공자 가라사대 예를 아시니라.
陳은 國名이라 司敗는 官名이니 卽司寇也ㅣ라 昭公은 魯君이니 名은 稠라 習於威儀之節하야 當時에 以爲知禮라 故로 司敗ㅣ 以爲問而孔子ㅣ 答之如此하시니라
진은 나라 이름이라. 사패는 벼슬 이름이니 곧 사구(요즘의 경찰)라. 소공은 노나라 인군이니 이름은 주라. 위의의 절차를 익혀서 당시에 써 예를 안다고 했느니라. 그러므로 사패가 써 묻되 공자가 대답을 이와 같이 하시니라.
孔子ㅣ 退커시늘 揖巫馬期而進之曰吾聞君子는 不黨이라호니 君子도 亦黨乎아 君이 取於吳하니 爲同姓이라 謂之吳孟子ㅣ라 하니 君而知禮면 孰不知禮리오
공자가 물러가시거늘, 무자기에게 읍하여 나아가서 가로되, 나는 들으니 군자는 붕당을 않는다호니 군자도 또한 붕당을 합니까? 인군이 오나라에 장가를 들으니 동성이 되니라. 오맹자라 이르니 인군이 예를 알면 누가 예를 알지 못하리오.
[본문 해설]
진사패가 소공이 예를 아느냐고 물으니 공자가 간단히 예를 안다하고 나가시니, 진사패가 다시 공자의 제자인 무자기에게 물어 따졌다. 군자는 붕당을 짓지 아니한다고 들었는데 공자 같은 군자도 붕당을 지은 것이 아닌가? 소공이 오나라의 여자를 취하여 장가를 들었는데 동성인지라 마치 송나라의 딸인 것처럼 여자의 성을 바꿔 ‘오맹자’로 하였는데, 이런 인군을 보고 예를 안다고 하는 것은 붕당을 짓는 것과 다를 바가 무엇인가? 게다가 동성동본은 백계지친(百戒之親)으로 혼인을 않는데, 그 예를 속인 것이다. 이러한 인군이 예를 안다고 하면 이 세상 어떤 사람이 예를 모르겠는가.
巫馬는 姓이오 期는 字이오 孔子弟子니 名은 施라 司敗ㅣ 揖而進之也ㅣ라 相助匿非曰黨이라 禮에 不取同姓이어늘 而魯與吳皆姬姓이니 謂之吳孟子者는 諱之하야 使若宋女子姓者然이라
무마는 성이고, 기는 자이고, 공자 제자니 이름은 시라. 사패가 읍하고 나아감이라. 서로 그릇됨을 돕고 숨겨주는 것을 일러 당이라 하니라. 예에 동성은 취하지 않는 것이어늘 노나라와 오나라가 다 희성이니 오맹자라고 하는 것은 숨겨서 하여금 송나라 여자의 성과 같이 한 것이라.
巫馬期ㅣ 以告한대 子ㅣ 曰丘也ㅣ 幸이로다 苟有過ㅣ어든 人必知之온여
무마기가 써 고한대 공자 가라사대 구는 다행이로다. 진실로 허물이 있거든 다른 사람이 반드시 알지온여!
孔子ㅣ 不可自謂諱君之惡이오 又不可以取同姓으로 爲知禮라 故로 受以爲過而不辭시니라 ○吳氏 曰魯는 蓋夫子父母之國이오 昭公은 魯之先君也ㅣ니 司敗ㅣ 又未嘗顯言其事하고 而遽以知禮爲問하니 其對之宜如此也ㅣ시니라 及司敗以爲有黨하야는 而夫子ㅣ 受以爲過하시니 蓋夫子之盛德이 無所不可也ㅣ라 然이나 其受以爲過也에 亦不正言其所以過하시고 初若不知孟子之事者하시니 可以爲萬世之法矣로다
공자께서 가히 스스로 인군의 악함을 숨겼다고 이르지도 못하고 ,또 가히 동성을 취함으로써 예를 안다고 하지도 못하니라. 그러므로 받아들여서 써 허물이 된다하고 사양하지 아니하셨느니라. ○오씨 가로대 노나라는 대개 공자 부모의 나라이고 소공은 노나라의 선군이니, 사패가 또한 일찍이 드러내놓고 그 일을 말하지 못하고 문득 써 예를 아느냐고 물으니 그 대답이 마땅히 이와 같으시니라. 그런데 사패가 써 당을 했는가에 이르러서는 부자가 받아들여서 써 허물을 삼으시니, 대개 부자의 성한 덕이 옳지 않은 바가 없느니라. 그러나 그 받아서 써 허물을 삼으시는 데에 또한 그 써 허물한 것을 바로 하지 아니하시고, 처음에 오맹자의 일을 아지 못하는 것 같이 하시니 가히 써 만세의 법이 됨이로다.
<제31장>
子ㅣ 與人歌而善이어든 必使反之하시고 而後和之러시다
공자가 사람과 더불어 노래를 하심에 잘 하거든 반드시 하여금 다시 하게 하시고 뒤에 따라 하더시다.
反은 復也ㅣ라 必使復歌者는 欲得其詳而取其善也ㅣ오 而後和之者는 喜得其詳而與其善也ㅣ라 此는 見聖人氣象이 從容하고 誠意懇至하야 而其謙遜審密하야 不掩人善이 又如此하니 蓋一事之微에 而衆善之集을 有不可勝旣者焉이니 讀者ㅣ 宜詳味之어다
반은 다시라. 반드시 하여금 다시 노래부르게 하는 것은 그 자세함을 얻어서 그 좋은 점을 취하고자 하심이고, 뒤에 따라 부른 것은 그 자세함을 얻어서 그 좋은 점을 더불어 기뻐하심이라. 이는 성인의 기상이 종용하고 성의가 간곡하고 지극하여 그 겸손하고 심밀하여 사람의 선함을 가리지 않음이 또한 이와 같으니, 대개 한 가지의 미미함에 여러 선한 모임을(여러 가지 선한 것을 다 모이게 하는 것) 가히 다 이기지 못함이 있으니, 읽는 자 마땅히 자세히 완미할 지어다.
<제32장>
子ㅣ 曰文莫吾猶人也아 躬行君子는 則吾ㅣ 未之有得호라
공자 가라사대 글은 내가 다른 사람과 같은가 아닌가(아마 같을 것이다). 군자를 몸소 행하는 것은 내 얻음이 있지 못하노라.
莫은 疑辭라 猶人은 言不能過人而尙可以及人이오 未之有得은 則全未有得이니 皆自謙之辭요 而足以見言行之難易緩急이니 欲人之勉其實也ㅣ라 ○謝氏 曰文雖聖人이나 無不與人同이라 故로 不遜이오 能躬行君子는 斯可以入聖이라 故로 不居하시니 猶言君子道者三에 我無能焉이시니라
막은 의심하는 말이라. 다른 사람과 같다는 것은 능히 남을 지나치지(남보다 뛰어나지) 아니하고 오히려 가히 남에게 미친다는 것이고, 얻음이 있지 않다는 것은 곧 온전히 얻음이 있지 않다는 것이니, 다 스스로 겸손하신 말씀이오, 족히 써 언행의 어렵고 쉽고 느리고 급한 것을 볼 수 있으니, 사람에게 그 실지를 힘쓰게 하고자 하심이라. ○사씨 가로대 글은 비록 성인이라도 다른 사람과 더불어 같지 아니함이 없음이라. 그러므로 사양을 아니하시고, 능히 군자를 몸소 행함은 이에 가히 써 성인에 들어가는 것이라. 그러므로 거하지(자처하지) 아니하시니 오히려 군자의 도 세 가지에 나는 능함이 없다는 것과 같음이라.
<제33장>
子ㅣ 曰若聖與仁은 則吾豈敢이리오 抑爲之不厭하며 誨人不倦은 則可謂云爾已矣니라 公西華ㅣ 曰正唯弟子ㅣ 不能學也ㅣ로소이다
공자 가라사대 만약 성과 다못 인은 곧 내 어찌 감당하리오. 아니 하는 것을 싫어하지 아니하며 사람 가르치는 것을 게을리하지 아니함은 곧 가히 이를 만하니라. 공서화 가로대 정히(참으로) 오직 제자가 능히 배우지 못하노소이다.
此亦夫子之謙辭也ㅣ라 聖者는 大而化之요 仁則心德之全이니 而人道之備也ㅣ라 爲之는 謂爲仁聖之道요 誨人은 亦謂以此敎人也ㅣ라 然이나 不厭不倦이 非己有之면 則不能이니 所以弟子ㅣ 不能學也ㅣ라 ○鼂氏 曰當時에 有稱夫子聖且仁者라 以故로 夫子辭之하시나 苟辭之而已焉이면 則無以進天下之材하며 率天下之善하야 將使聖與仁으로 爲虛器而人終莫能至矣라 故로 夫子ㅣ 雖不居仁聖이시나 而必以爲之不厭과 誨人不倦으로 自處也시니라 可謂云爾已矣者는 無他之辭也ㅣ라 公西華ㅣ 仰而歎之하니 其亦深知夫子之意矣로다
이는 또한 부자의 겸손하신 말씀이라. 성인이라는 것은 커서 화하는 것이오, 인은 곧 심덕의 온전함이니 인도의 갖춤이라. 한다는 것은 인성의 도를 한다는 것을 이름이오, 사람을 가르침은 또한 이로써 다른 사람을 가르침을 이름이라. 그러나 싫어하지 아니하고 게으르지 아니함이 자기에게 있지 아니하면 곧 능치 못하니 써한 바 제자가 능히 배우지 못하니라. ○조씨 가로대 당시에 부자를 성인이오 또한 인으로 일컬음이 있느니라. 그럼으로써 부자가 사양하셨으나 진실로 사양만 하면 곧 써 천하의 재목을 나아가게 하고, 천하의 선을 거느리지 못하여 장차 성과 다못 인으로 하여금 빈 그릇이 되어 사람이 마침내 능히 이르지 못하니라. 그러므로 부자가 비록 인성에 거하지 아니하셨으나 반드시 하는 것을 싫어하지 아니하고 사람을 가르치는데 게으르지 않다는 것으로써 자처하셨느니라. 가히 이를 따름이라고 한 것은 다른 것이 없다는 말이라. 공서화가 우러러 탄식하니 그 또한 깊이 부자의 뜻을 아는도다.
<제34장>
子ㅣ 疾病이어시늘 子路ㅣ 請禱한대 子ㅣ 曰有諸아 子路ㅣ 對曰有之하니 誄에 曰禱爾于上下神祇라 하도소이다 子ㅣ 曰丘之禱ㅣ 久矣니라
공자께서 병을 앓거시늘 자로가 기도를 청한대 공자 가라사대 (그런 것이) 있는가? 자로 대답하여 가로대 있으니 뇌에 가로대 천지신지에게 기도를 올린다라고 하도소이다. 공자 가라사대 구는 기도한지가 오래되었느니라.
誄 : 제문 뢰
禱는 謂禱於鬼神이오 有諸는 問有此理否라 誄者는 哀死而述其行之辭也ㅣ라 上下는 謂天地니 天曰神이오 地曰祗라 禱者는 悔過遷善하야 以祈神之佑也ㅣ라 無其理면 則不必禱요 旣曰有之면 則聖人이 未嘗有過하고 無善可遷하야 其素行이 固已合於神明이라 故로 曰丘之禱ㅣ 久矣라 하시니라 又士喪禮에 疾病에 行禱五祀하니 蓋臣子迫切之至情에 有不能自己者하야 初不請於病者而後禱也ㅣ라 故로 孔子之於子路에 不直拒之하시고 而但告以無所事禱之意시니라
도는 귀신에게 기도함을 이르고 유저는 이런 이치가 있느냐 아니냐를 물음이라. 뇌라는 것은 죽음을 슬퍼하여 그 행적을 기술하는 말이라. 상하는 천지를 이름이니 하늘을 신이라 이르고, 땅을 지라 이르니라. 기도라는 것은 허물을 뉘우치고 선함으로 옮겨서 써 신의 도움을 빎이라. 그 이치가 없다면 반드시 빌 것도 없고, 이미 가로대 있다면 성인이 일찍이 허물이 있지 아니하고 선을 가히 옮길 것도 없어서 그 평소의 행실이 진실로 이미 신명에 부합함이라. 그러므로 가라사대 구가 기도한지가 오래라고 하시니라. 또한 사상례에 질병에 오사(문, 방문 앞, 부엌, 부뚜막, 아랫목)에게 빎을 행한다(축도)고 하니, 대개 신하와 자식이 절박한 지극한 정에 능히 스스로 그만 두지 않은 자가 있어서, 처음에는 병자에게 청하지 않고 뒤에(위중할 때에) 축도하니라. 그러므로 공자가 자로에게 바로 거절하지 아니하시고 다만 기도하는 일이 없다는 뜻(이미 신명에 부합하여 행하기에 굳이 새삼스럽게 기도할 필요가 없다는 뜻)으로써 고하심이라.
<제35장>
子ㅣ 曰奢則不孫하고 儉則固ㅣ니 與其不孫也론 寧固ㅣ니라
공자 가라사대 사치를 하면 손순(遜順)하지 못하고 검소하면 고루하니, 더불어 그 손순하지 못하여론 차라리 고루할지니라.
孫은 順也ㅣ오 固는 陋也ㅣ니 奢儉은 俱失中이나 而奢之害大라 ○鼂氏 曰不得已而救時之弊也ㅣ시니라
손은 순함이라. 고는 비루함이라. 사치하고 검소함은 같이 중을 잃음이나 사치의 해가 크니라. ○조씨 가로대 부득이하여 (검소함을 권장한 것이 아니라) 때의 폐단을 구하심이라.
<제36장>
子ㅣ 曰君子는 坦蕩蕩이오 小人은 長戚戚이니라
공자 가라사대 군자는 탄탄하면서도 너그럽고, 소인은 길게 근심하니라.
坦은 平也ㅣ라 蕩蕩은 寬廣貌라 程子ㅣ 曰君子는 循理라 故로 當舒泰요 小人은 役於物이라 故로 多憂戚이라 ○程子ㅣ 曰君子ㅣ 坦蕩蕩은 心廣體胖이라
탄은 평평함이라. 탕탕은 너그럽고 넓은 모양이라. 정자 가라사대 군자는 이치를 따름이라. 그러므로 마땅히 펴고 태연함(태연자약)이라. 소인은 물건에 노역이 되니라. 그러므로 많이 근심하고 슬퍼하니라. ○정자 가라사대 군자가 탄탄하면서 탕탕하다는 것은 (『대학』의) 심광체반(마음이 너그럽고 몸이 살짐)이라.
<제37장>
子는 溫而厲하시며 威而不猛하시며 恭而安이러시다
공자는 온화하되 엄숙하시며, 위엄하시되 사납지 아니하시며, 공순하시되 편안하더시다.
厲는 嚴肅也ㅣ라 人之德性이 本無不備로대 而氣質所賦ㅣ 鮮有不偏하니 惟聖人은 全體渾然하야 陰陽合德이라 故로 其中和之氣ㅣ 見於容貌之間者ㅣ 如此ㅣ라 門人이 熟察而詳記之하니 亦可見其用心之密矣로다 抑非知足以知聖人而善言德行者면 不能記라 故로 程子ㅣ 以爲曾子之言이라 하시니 學者ㅣ 所宜反復而玩心也어다
여는 엄숙이라. 사람의 덕성이 본래 갖추지 않음이 없으되 기질의 품부한 바가 편벽되지 아니함이 적으니, 오직 성인은 전체가 혼연하여 음과 양이 덕을 합하니라. 그러므로 그 중화의 기운이 용모의 사이에 나타남이 이와 같으니라. 문인이 성숙하게 살피고 자세히 기록하니 또한 가히 그 마음 씀의 주밀함을 봄이로다. 아니 족히 써 성인을 알고 또 선언 덕행을 아는 자가 아니면 능히 기록하지 못하느니라. 그러므로 정자가 써 증자의 말씀이라고 하시니 배우는 자가 마땅히 반복하고 마음속에 두고 구경해야 할 지어다.
태백제8(太伯第八) 본문
>論語集註卷之八 太伯第八 凡二十一章
<제1장>
子ㅣ 曰太伯은 其可謂至德也已矣로다 三以天下讓호대 民無得而稱焉이온여
<제2장>
子ㅣ 曰恭而無禮則勞하고 愼而無禮則葸하고 勇而無禮則亂하고 直而無禮則絞ㅣ니라
君子ㅣ 篤於親則民興於仁하고 故舊를 不遺則民不偸ㅣ니라
<제3장>
曾子ㅣ 有疾하사 召門弟子曰啓予足하며 啓予手하라 詩云戰戰兢兢하야 如臨深淵하며 如履薄氷이라 하니 而今而後에아 吾知免夫ㅣ와라 小子아
<제4장>
曾子ㅣ 有疾이어시늘 孟敬子ㅣ 問之러니
曾子ㅣ 言曰鳥之將死에 其鳴也ㅣ 哀하고 人之將死에 其言也ㅣ 善이니라
君子ㅣ 所貴乎道者ㅣ 三이니 動容貌에 斯遠暴慢矣며 正顔色에 斯近信矣며 出辭氣에 斯遠鄙倍矣니 籩豆之事則有司ㅣ 存이니라
<제5장>
曾子ㅣ 曰以能으로 問於不能하며 以多로 問於寡하며 有若無하며 實若虛하며 犯而不校를 昔者吾友ㅣ 嘗從事於斯矣러니라
<제6장>
曾子ㅣ 曰可以託六尺之孤하며 可以寄百里之命이오 臨大節而不可奪也ㅣ면 君子人與아 君子人也ㅣ니라
<제7장>
曾子ㅣ 曰士ㅣ 不可以不弘毅니 任重而道遠이니라
仁以爲己任이니 不亦重乎아 死而後已니 不亦遠乎아
<제8장>
子ㅣ 曰興於詩하며
立於禮하며
成於樂이니라
<제9장>
子ㅣ 曰民은 可使由之오 不可使知之니라
<제10장>
子ㅣ 曰好勇疾貧이 亂也ㅣ오 人而不仁을 疾之已甚이 亂也ㅣ니라
<제11장>
子ㅣ 曰如有周公之才之美오도 使驕且吝이면 其餘는 不足觀也已니라
<제12장>
子ㅣ 曰三年學에 不至於穀을 不易得也ㅣ니라
<제13장>
子ㅣ 曰篤信好學하며 守死善道ㅣ니라
危邦不入하고 亂邦不居하며 天下ㅣ 有道則見하고 無道則隱이니라
邦有道에 貧且賤焉이 恥也ㅣ며 邦無道에 富且貴焉이 恥也ㅣ니라
<제14장>
子ㅣ 曰不在其位하얀 不謀其政이니라
<제15장>
子ㅣ 曰師摯之始에 關雎之亂이 洋洋乎盈耳哉라
<제16장>
子ㅣ 曰狂而不直하며 侗而不愿하며 悾悾而不信을 吾不知之矣로다
<제17장>
子ㅣ 曰學如不及이오 猶恐失之니라
<제18장>
子ㅣ 曰巍巍乎舜禹之有天下也而不與焉이여
<제19장>
子ㅣ 曰大哉라 堯之爲君也ㅣ여 巍巍乎唯天이 爲大어시늘 唯堯ㅣ 則之하시니 蕩蕩乎民無能名焉이로다
巍巍乎其有成功也ㅣ어 煥乎其有文章이여
<제20장>
舜이 有臣五人而天下ㅣ 治하니라
武王이 曰予有亂臣十人호라
孔子ㅣ 曰才難이 不其然乎아 唐虞之際ㅣ 於斯ㅣ 爲盛하나 有婦人焉이라 九人而已니라
三分天下에 有其二하사 以服事殷하시니 周之德은 其可謂至德也已矣로다
<제21장>
子ㅣ 曰禹는 吾無間然矣로다 菲飮食而致孝乎鬼神하시며 惡衣服而致美乎黻冕하시며 卑宮室而盡力乎溝洫하시니 禹는 吾無間然矣로다
태백편 제1장~제2장 해설
<제1장>
子ㅣ 曰太伯은 其可謂至德也已矣로다 三以天下讓호대 民無得而稱焉이온여
공자 가라사대 태백은 그 가히 지극한 덕이라 이를 뿐이로다. 세 번 천하로써 사양하되 백성이 얻어 일컬음이 없곤여.
太伯은 周大王之長子라 至德은 謂德之至極이 無以復加者也ㅣ라 三讓은 謂固遜也ㅣ라 無得而稱은 其遜隱微하야 無迹ㅣ 可見也ㅣ라 蓋大王三子에 長은 太伯이오 次는 仲雍이오 次는 季歷이라 大王之時에 商道浸衰하고 而周日彊大하며 季歷이 又生子昌하니 有聖德이라 大王이 因有翦商之志어늘 而太伯이 不從이러니 大王이 遂欲傳位季歷하야 以及昌한대 太伯이 知之하고 卽與仲雍으로 逃之荊蠻하다 於是에 大王이 乃立季歷하고 傳國至昌하야 而三分天下에 有其二하시니 是爲文王이라 文王崩하고 子發이 立하야 遂克商而有天下하시니 是爲武王이라 夫以太伯之德으로 當商周之際하야 固足以朝諸侯ㅣ 有天下矣로대 乃棄不取하고 而又泯其迹焉하니 則其德之至極이 爲如何哉아 蓋其心은 卽夷齊扣馬之心이나 而事之難處는 有甚焉者하니 宜夫子之歎息而贊美之也ㅣ라 太伯不從은 事見春秋傳하니라
태백은 주나라 태왕의 장자라. 지덕은 덕의 지극함이 써 다시 더할 것이 없다함을 이름이라. 세 번 사양함은 굳이 사양함을 이름이라. 얻어 일컬음이 없음은 그 손순함이 은미하여 자취를 가히 볼 수 없음이라. 대개 태왕의 세 아들에 장자는 태백이오, 차자는 중옹이오, 그 다음 차자는 계력이라. 태왕의 때에 상나라의 도가 점점 쇠해지고 주나라는 날로 강대해지면 계력이 또한 아들 창을 낳으니 성덕이 있음이라. 태왕이 인하여 상나라를 칠 뜻을 두거늘 태백이 따르지 않더니 태왕이 드디어 위를 계력에게 전하여 써 창에게 미치고자 한대 태백이 알고 중옹과 더불어 형만으로 도망하다. 이에 태왕이 이에 계력을 세우고 나라를 전하여 창에 이르러 천하를 삼분하여 그 둘을 두시니 이가 문왕이라. 문왕이 죽고 아들 발이 서서 드디어 상나라를 이기고 천하를 두시니 이가 무왕이 되니라. 무릇 태백의 덕으로써 상나라와 주나라의 즈음을 당하여 진실로 족히 써 제후를 조회 받고 천하를 두되 이에 버리고 취하지 아니하고 또한 그 자취마저도 없앴으니 그 덕의 지극함이 어떠하랴. 대개 그 마음은 곧 백이 숙제가 말 고삐를 잡고 두드린 마음이나 일이 어려운 것은 심하니 마땅히 공자께서 탄식하시며 찬미하심이라. ‘태백부종’은 춘추전에 나타나니라.
<제2장>
子ㅣ 曰恭而無禮則勞하고 愼而無禮則葸하고 勇而無禮則亂하고 直而無禮則絞ㅣ니라
공자 가라사대 공손하되 예가 없으면 수고롭고, 삼가고 예가 없으면 두렵고, 용맹하되 예가 없으면 난폭하고, 곧기만 하되 예가 없으면 급박하니라.
葸는 畏懼貌라 絞는 急切也ㅣ라 無禮則無節文이라 故로 有四者之弊라
사는 두려워하고 두려워하는 마음이라. 교는 급박하고 절박함이라. 예가 없다는 것은 곧 절차와 문행이 없음이라. 그러므로 네 가지의 폐단이 있음이라.
君子ㅣ 篤於親則民興於仁하고 故舊를 不遺則民不偸ㅣ니라
군자가 어버이에게 돈독하면 백성이 인에 일어나고, 옛 친구를 버리지 아니하면 백성이 각박해지지 않느니라.
君子는 謂在上之人也ㅣ라 興은 起也ㅣ라 偸는 薄也ㅣ라 ○張子ㅣ 曰人道ㅣ 知所先後면 則恭不勞하고 愼不葸하며 勇不亂하고 直不絞하야 民化而德厚矣리라 ○吳氏 曰君子以下는 當自爲一章이니 乃曾子之言也ㅣ라 愚는 按此一節컨대 與上文으로 不相蒙하고 而與首篇謹終追遠之意로 相類라 하니 吳說이 近是니라
군자는 위에 있는 사람을 이름이라. 흥은 일어남이라. 투는 각박함이라. ○장자 가라사대 사람의 도가 선후를 알면 공순하면서 수고롭지 않고 삼가면서 두려워하지 않고 용감하면서 난폭하지 않고 곧으면서 급박하지 않아 백성이 화하여 덕이 두터워지리라. ○오씨 가로대 ‘군자’ 이하는 마땅히 스스로 1장이 되니 이에 증자의 말씀이라. 우가 이 1절을 상고하건대 윗글과 더불어 서로 힘입지(더불지) 아니하고, 머리의 ‘근종추원’편(제1장 9절의 愼終追遠)이라는 뜻과 서로 같으니 오씨의 말이 이에 가까우니라.
태백편 제3장~제5장 해설
<제3장>
曾子ㅣ 有疾하사 召門弟子曰啓予足하며 啓予手하라 詩云戰戰兢兢하야 如臨深淵하며 如履薄氷이라 하니 而今而後에아 吾知免夫ㅣ와라 小子아
증자 병이 있어 문제자를 불러 가라사대 내 발을 열며, 내 손을 열라. 시에 이르길 전전긍긍하여(두려워하고 두려워하며 조심하고 조심하여) 깊은 못에 임하는 것같이 하면 얇은 얼음을 밟는 것같이 한다 하니 이제인 뒤에야(앞으로는) 내 (불효를) 면함을 알았노라, 제자들아!
啓는 開也ㅣ라 曾子平日에 以爲身體는 受於父母하니 不敢毁傷이라 故로 於此에 使弟子로 開其衾而視之시니라 詩는 小旻之篇이라 戰戰은 恐懼요 兢兢은 戒謹이라 臨淵은 恐墜요 履氷은 恐陷也ㅣ라 曾子ㅣ 以其所保之全으로 示門人하시고 而言其所以保之之難如此라가 至於將死而後에 知其得免於毁傷也ㅣ시니라 小子는 門人也ㅣ니 語畢而又呼之하야 以致反復丁寧之意하시니 其警之也ㅣ 深矣로다 ○程子ㅣ 曰君子曰終이오 小人曰死니라 君子ㅣ 保其身以沒로 爲終其事也ㅣ라 故로 曾子ㅣ 全歸로 爲免矣시니라 尹氏 曰父母l 全而生之하시니 子ㅣ 全而歸之니라 曾子ㅣ 臨終而啓手足은 爲是故也ㅣ니 非有得於道면 能如是乎아 范氏 曰身體도 猶不可虧也ㅣ어든 況虧其行하야 以辱其親乎아
계는 열음이라. 증자가 평일에 써 신체는 부모에게 받았으니 감히 훼상하지 말아야 하니라. 그러므로 이에 제자로 하여금그 이불을 열어서 보이시니라. 시는 소민편이라. 전전은 두려워함이오, 긍긍은 경계하고 삼감이라. 못가에 이름은 떨어질까를 두려워함이오, 얼음을 밟음은 빠질까를 두려워함이라. 증자가 그 보전하는 것으로써 문인에게 보이시고 그 보전하기 어렵다는 것이 이와 같다고 말하다가 장차 죽음에 이른 뒤에야 그 훼상의 면함을 알았다고 하시니라. 소자는 문인이니 말을 다하고 또 불러서 써 반복하고 정녕한 뜻을 이루셨으니 그 일깨움이 깊도다. ○정자 가라사대 군자를 일러 종이라 하고 소인을 일러 사라 하니라. 군자가 그 몸을 보전하여 몰함으로써 그 일을 마침을 삼느니라. 그러므로 증자가 온전히 돌아감으로써 면했다고 하니라. 윤씨 가로대 부모가 온전히 낳으셨으니 자식이 온전히 돌아가야 하느니라. 증자가 임종하면서 수족을 열게 한 것이 이런 까닭이니 도의 얻어짐이 있지 아니하면 능히 이와 같으랴. 범씨 가로대 신체도 오히려 가히 헐어서는 아니되거든 하물며 그 행실을 훼손해가면서 그 어버이를 욕되게 하랴.
<제4장>
曾子ㅣ 有疾이어시늘 孟敬子ㅣ 問之러니
증자가 병이 있거시늘 맹경자가 문병하더니
孟敬子는 魯大夫仲孫氏니 名은 捷이라 問之者는 問其疾也ㅣ라
맹경자는 노나라 대부 중손씨니 이름은 첩이라. 묻는다는 것은 그 병을 물음이라.
曾子ㅣ 言曰鳥之將死에 其鳴也ㅣ 哀하고 人之將死에 其言也ㅣ 善이니라
증자 말씀하여 가라사대 새가 장차 죽음에 그 울음이 슬프고, 사람이 장차 죽음에 그 말이 선하니라.
言은 自言也ㅣ라 鳥는 畏死라 故로 鳴哀요 人窮反本이라 故로 言善이라 此는 曾子之謙辭니 欲敬子로 知其所言之善而識之也ㅣ시니라
언은 스스로 말함이라. 새는 죽음을 두려워함이라. 그러므로 울음이 슬프고, 사람은 궁하면 근본으로 돌아가니라. 그러므로 말이 선하니라. 이는 증자의 겸손한 말씀이니, 맹경자가 그 말의 선함을 알아서 기록하도록 하고자 하심이라.
君子ㅣ 所貴乎道者ㅣ 三이니 動容貌에 斯遠暴慢矣며 正顔色에 斯近信矣며 出辭氣에 斯遠鄙倍矣니 籩豆之事則有司ㅣ 存이니라
군자가 도에 귀히 여기는 바가 셋이니, 용모를 움직임에 이에 포만(포악스럽고 거만함)을 멀리하며, 얼굴빛을 바로 함에 이에 미더움에 가까우며, 말 기운을 냄에 이에 비루하고 거스림을 멀리하니 변두의 일(제사지내는 일)인즉 유사가 있느니라.
籩 : 대그릇 변 豆 : 목기 두 籩豆 : 제물을 담는 그릇
貴는 猶重也ㅣ라 容貌는 擧一身而言이라 暴는 粗厲也ㅣ오 慢은 放肆也ㅣ라 信은 實也ㅣ니 正顔色而近信은 則非色莊也ㅣ라 辭는 言語요 氣는 聲氣也ㅣ라 鄙는 凡陋也ㅣ라 倍는 與背로 同이니 謂背理也ㅣ라 籩은 竹豆요 豆는 木豆라 言道雖無所不在나 然이나 君子所重者는 在此三事而已니 是皆修身之要요 爲政之本이라 學者ㅣ 所當操存省察하야 而不可有造次顚沛之違者也ㅣ라 若夫籩豆之事는 器數之末이니 道之全體ㅣ 固無不該라 然이나 其分則有司之守요 而非君子之所重矣라 程子ㅣ 曰動容貌는 擧一身而言也ㅣ라 周旋中禮면 暴慢이 斯遠矣요 正顔色이면 則不忘이니 斯近信矣요 出辭氣에 正由中出이면 斯遠鄙倍라 三者ㅣ 正身而不外求라 故로 曰籩豆之事는 則有司ㅣ 存이니라 尹氏 曰養於中이면 則見於外하나니 曾子ㅣ 蓋以修己로 爲爲政之本하시고 若乃器用事物之細면 則有司ㅣ 存焉이라 하시니라
귀는 중함과 같으니라. 용모는 한 몸을 들어서 말함이라. 포는 거칠고 위태로움이오, 만은 방자하게 베풂이라. 신은 실지이니 안색을 바로 하여 신에 가깝다는 것은 빛이 씩씩함이 아니라. 사는 언어요, 기는 소리의 기운이라. 비는 무릇 누추함이라. 패는 패와 더불어 같으니 패리를 이름이라. 변은 대나무로 만든 제기요, 두는 나무로 만든 제기라. 도가 비록 있지 않은 바가 없으나 그러나 군자가 소중히 하는 것은 이 세 가지 일에 있을 뿐이니 이것이 다 수신의 중요함이오, 정치의 근본이 됨을 말함이라. 배우는 자가 마땅히 잡아서 존하며 성찰하여 가히 잠깐이라도 엎어지고 넘어지더라도(경황중이라도) 어김을 두어서는 아니되니라. 만약에 무릇 변두의 일은 그릇과 수의 끝이니 도의 전체에 진실로 포함되지 아니함이 없느니라. 그러나 그 직분은 유사의 지킴이오, 군자의 소중한 것은 아니니라. 정자 가라사대 용모를 움직임은 일신을 들어서 말함이라. 주선함(몸을 이리저리 움직임)을 예에 맞게 하면 포만이 이에 멀어지고, 안색을 바로하면 망령되지 아니하니 이에 미더움에 가까우니라. 말의 기운(말소리)을 냄에 정히 중으로 말미암아 나오면 이에 비패가 멀어지니라. 세 가지는 몸을 바로하여 바깥에 구하지 아니하니라. 그러므로 가로대 변두의 일은 곧 유사가 존하니라. 윤씨 가로대 중심에 길러지면 곧 밖에 나타나나니 증자가 대개 몸을 닦는 것으로써 정치의 근본을 삼으시고 만약 이에 그릇을 쓰고 사물의 세세함이라면 유사가 존한다(맡아한다) 하시니라.
<제5장>
曾子ㅣ 曰以能으로 問於不能하며 以多로 問於寡하며 有若無하며 實若虛하며 犯而不校를 昔者吾友ㅣ 嘗從事於斯矣러니라
증자 가라사대 능함으로써 능치 못한 데에 물으며, 많음으로써 적은 데에 물으며, 있으면서도 없는 것같이 하며, 실해도 허한 것같이 하며, 범해도 계교하지 않는 것을 옛 적에 내 친구가 일찍이 모든 일을 이에 따라 했더니라.
[본문 해설]
증자가 말한 벗이란 아마도 안연을 말한 것으로 보인다. 안자는 스스로가 능하면서도 능치 못한 사람에게서도 물어 배웠으며, 많이 알면서도 적게 아는 사람에게서도 배웠으며, 있어도 있다고 자랑하지 않고 없는 듯이 하였으며, 가득 차 있어도 늘 빈 것 같이 하였으며, 남이 그를 시비하며 해하여도 복수하기 위해 다른 꾀를 내지 않았다.
校는 計校也ㅣ라 馬氏ㅣ 以爲顔淵이 是也ㅣ라 顔子之心은 惟知義理之無窮이오 不見物我之有間이라 故로 能如此시니라 ○謝氏 曰不知有餘在己요 不足在人이며 不必得爲在己요 失爲在人이니 非幾於無我者면 不能也ㅣ니라
교는 (복수하기 위해) 꾀를 내는 것이라. 마씨가 써 안연이라고 하는 것이 이것이라. 안자의 마음은 오직 의리의 무궁함만 알았지 물건과 나의 틈이 있음을 보지 아니했느니라. 그러므로 능히 이와 같이 하셨느니라. ○사씨 가로대 내 자신에 여유가 있고 남에게 부족함이 있음을 아지 못했으며(이치, 곧 體), 반드시 얻은 것은 내 몸에 있고 잃음은 남에게 있다는 것이라고 하지 아니했으니(일, 곧 用), 거의 나를 없이 한 자가 아니면(무아지경에 있는 자가 아니면) 능치 못하니라.
태백편 제6장~제9장 해설
<제6장>
曾子ㅣ 曰可以託六尺之孤하며 可以寄百里之命이오 臨大節而不可奪也ㅣ면 君子人與아 君子人也ㅣ니라
증자 가라사대 가히 써 육척의 외로운 이를 부탁하며 가히 써 백리의 명을 부치고, 대절을 임하고도 가히 빼앗기지 아니하면 군자의 사람인가? 군자의 사람이니라.
[본문 해설]
증자가 정치 일선에 나선 군자에 대해 말하는 대목이다. 주공이 어린 성왕을 맡아 섭정했듯이 그 신하의 자격이 육척쯤 되는 외로운 어린 인군을 대신해 섭정할 수 있으며, 임금의 명을 받아 이웃 나라에 가서 외교를 잘하고 올 수 있어야 하며, 큰 절개를 갖고 있어 목숨이 위태로운 일이 있더라도 그 절개를 잃지 않는다면, 이런 사람이 군자일까? 그렇다, 군자이니라.
其才ㅣ 可以輔幼君하고 攝國政하며 其節이 至於死生之際而不可奪이면 可謂君子矣니라 與는 疑辭요 也는 決辭라 設爲問答은 所以深著其必然也ㅣ라 ○程子ㅣ 曰節操如是면 可謂君子矣니라
그 재주가 가히 써 어린 인군을 보필하고 국정을 섭정할 수 있으며, 그 절개가 사생의 즈음에 이르러서도 가히 빼앗기지 아니하면 가히 군자라 이르니라. 여는 의심하는 말이고 야는 결정하는 말이라. 가설하여 묻고 대답한 것은 깊이 그 반드시 그렇다는 것을 나타냄이라. ○정자 가라사대 절조가 이와 같으면 가히 군자라 이르리니라.
<제7장>
曾子ㅣ 曰士ㅣ 不可以不弘毅니 任重而道遠이니라
증자 가라사대 선비가 가히 써 크게 하고 굳세게 하지 아니할 수 없으니 책임은 무겁고 도는 머니라.
弘은 寬廣也ㅣ오 毅는 强忍也ㅣ니 非弘이면 不能勝其重이오 非毅면 無以致其遠이니라
홍은 너그럽고 넓음이오, 의는 강인함이니, 홍이 아니면 능히 그 무거움을 이길 수 없고, 의가 아니면 써 그 멂을 이름이 없느니라.
仁以爲己任이니 不亦重乎아 死而後已니 不亦遠乎아
인으로써 자기의 책임을 삼았느니 또한 무겁지 아니하랴, 죽은 뒤에야 그만두니 또한 멀지 아니하랴.
仁者는 人心之全德이오 而必欲以身體而力行之니 可謂重矣요 一息이라도 尙存此志하야 不容少懈니 可謂遠矣니라 ○程子ㅣ 曰弘而不毅면 則無規矩而亂立이오 毅而不弘이면 則隘陋而無以居之라 又曰弘大剛毅然後에 能勝重任而遠到니라
인이라는 것은 사람 마음의 온전한 덕이오, 반드시 신체로써 힘써 행하고자 할 것이니 가히 중하다 이를 것이오, 한번 숨쉬는 동안이라도 오히려 이 뜻을 두어서 조금이라도 게을리함을 용납하지 아니하니 가히 멀다 이르느니라. ○정자 가라사대 너그럽고 강인하지 아니하면 규구(법도)가 없어서 서기 어렵고, 강인하고 너그럽지 하지 아니하면 좁고 누추해서 거할 수 없느니라. 또 가라사대 홍대(寬廣)하고 강의(强忍)한 연후에 능히 중임을 이겨내어 먼데에 이를 수 있느니라.
<제8장>
子ㅣ 曰興於詩하며
공자 가라사대 시에 일어나며
興은 起也ㅣ라 詩本性情이나 有邪有正하야 其爲言이 旣易知하고 知而吟詠之間에 抑揚反覆하야 其感人이 又易入이라 故로 學者之初에 所以興起其好善惡惡之心而不能自已者ㅣ 必於此而得之니라
흥은 일어남이라. 시는 성정을 근본으로 했으나 삿됨이 있고 바름이 있어서, 그 말됨이 이미 알기가 쉽고, 알고서 읊는 사이에 억양하고 반복하여 그 사람을 감동케 함이 또 들어가기 쉬우니라. 그러므로 배우는 자가 처음에 써 그 선을 좋아하고 악을 미워하는 마음을 흥기하여 능히 스스로 그만두지 않는 자가 반드시 (이 시에서부터) 얻어지느니라.
立於禮하며
예에 서며
禮는 以恭敬辭遜爲本而有節文度數之詳하야 可以固人肌膚之會와 筋骸之束이라 故로 學者之中에 所以能卓然自立而不能事物之所搖奪者ㅣ 必於此而得之니라
예는 공경하고 사양함으로써 근본을 삼아 절문(예절과 예문)의 도수의 자세함이 있어서 가히 써 사람의 살과 피부가 모임과 근육과 뼈가 묶음을 견고히 하니라. 그러므로 배우는 자가 중간에 높다랗게 스스로 서서 사물의 흔들리고 빼앗기는 바가 되지 않는 자 반드시 이에서 얻어지니라.
成於樂이니라
음악에서 이루니라.
樂有五聲十二律하니 更唱迭和하야 以爲歌舞八音之節하니 可以養人之性情而蕩滌其邪穢하며 消融其査滓라 故로 學者之終에 所以至於義精仁熟而自和順於道德者ㅣ 必於此而得之니 是는 學之成也ㅣ라 ○按內則컨대 十歲學幼儀하고 十三에 學樂誦詩하며 二十而後에 學禮하니 則此三者는 非小學傳受之次요 乃大學終身所得之難易先後淺深也ㅣ라 程子ㅣ 曰天下之英才ㅣ 不爲少矣로대 特以道學不明이라 故로 不得有所成就라 夫古人之詩는 如今之歌曲하야 雖閭里童稚라도 皆習聞之而知其說이라 故로 能興起러니 今雖老師宿儒라도 尙不能曉其義온 況學者乎아 是는 不得興於詩也ㅣ라 古人은 自灑掃應對로 以至冠婚喪祭시 莫不有禮러니 今皆廢壞라 是以로 人倫不明하고 治家無法하니 是不得立於禮也ㅣ라 古人之樂은 聲音所以養其耳요 采色所以養其目이오 歌詠所以養其性情이오 舞蹈所以養其血脉이러니 今皆無之하니 是는 不得成於樂也ㅣ라 是以로 古之成材也ㅣ 易하고 今之成材也ㅣ 難이라
음악에는 5성(宮商角齒雨)과 12율(陽律: 黃鐘 太蔟 姑洗 蕤賓 夷則 無射, 陰呂 : 大呂 夾鐘 中宮 林鐘 南宮 應鐘)이 있어서 고쳐서 부르고 번갈아 화해서 가무하는데 팔음(金石絲竹匏土革木으로 만든 악기의 소리)의 절도로 삼으니, 가히 써 사람의 성정을 기르고, 그 간사하고 더러움을 깨끗이 씻으며, 그 찌꺼기를 없애서 융화시키느니라. 그러므로 배우는 자의 마침에 써한 바 의가 정하고 인이 성숙한데에 이르러서 스스로 도덕에 화순한 자가 반드시 이에서 얻으니, 이는 배움의 이룸이라. ○내칙을 상고하건데 열 살에 어린이의 거동을 배우고, 열세 살에 음악을 배우고 시를 외우며, 이십 이후에 예를 배우니 곧 이 세 가지는 소학에서 전수하는 차례가 아니고, 이에 대학에서 종신토록 얻은 바의 난이와 선후와 천심이라. 정자 가라사대 천하의 영재가 적지 아니하되 특별히 도학으로써 밝지 못하니라. 그러므로 얻어 성취하는 바가 있지 못하니라. 무릇 옛 사람의 시는 지금의 가곡과 같아서 비록 촌마을의 어린 아이들이라도 다 익혀 듣고 그 말을 아니라. 그러므로 능히 흥기하더니 이제는 늙은 스승과 오래된 선비라도 오히려 능히 그 뜻을 깨닫지 못하온 하물며 배우는 자야. 이는 시에서 흥기하지 못함이라. 옛 사람은 물 뿌리고 쓸고 응하고 대답함으로부터 관혼상제에 이르기까지 예가 있지 않음이 없더니 이제는 다 떨어지고 무너졌느니라. 이로써 인륜이 밝지 못하고 집을 다스림에 법도가 없으니 이는 예에서 서지 못함이라. 옛 사람의 음악은 성음으로써 그 귀를 기르고, 채색으로써 그 눈을 기르고, 노래함으로써 그 성정을 기르고, 춤으로써 그 혈맥을 기르더니 이제는 다 없어졌으니 이것은 음악에서 이루지 못함이라. 이로써 옛적에 재목을 이룸은 쉬웠고, 이제 재목을 이룸은 어려우니라.
태백편 제10장~제14장 해설
<제10장>
子ㅣ 曰好勇疾貧이 亂也ㅣ오 人而不仁을 疾之已甚이 亂也ㅣ니라
공자 가라사대 용맹을 좋아하고 가난을 미워함이 어지러움이오, 사람이 되어 어질지 못함을 싫어함이 매우 심함이 어지러움이니라.
好勇而不安分이면 則必作亂이오 惡不仁之人而使之無所容이면 則必致亂이니 二者之心은 善惡雖殊나 然이나 其生亂則一也ㅣ니라
용맹을 좋아하고 분수에 편안하지 못하면 반드시 난을 짓게 되고, 불인한 사람을 미워하면서 용납할 바가 없으면 곧 반드시 난에 이르니, 두 가지의 마음은 선악이 비록 다르나 그러나 그 난을 생함은 곧 하나이니라.
<제11장>
子ㅣ 曰如有周公之才之美오도 使驕且吝이면 其餘는 不足觀也已니라
공자 가라사대 만약 주공의 재주의 아름다움을 두고도 하여금 교만하고 또 인색하면 그 나머지는 족히 볼 것이 없느니라.
才美는 謂智能技藝之美라 驕는 衿夸요 吝은 鄙嗇也ㅣ라 ○程子ㅣ 曰此甚言驕吝之不可也ㅣ라 蓋有周公之德이면 則自無驕吝이어니와 若但有周公之才而驕吝焉이면 亦不足觀矣라 又曰驕는 氣盈이오 吝은 氣歉이라 愚는 謂驕吝이 雖有盈歉之殊나 然이나 其勢ㅣ 常相因하니 蓋驕者는 吝之枝葉이오 吝者는 驕之木根이라 故로 嘗驗之니 天下之人이 未有驕而不吝하며 吝而不驕者也ㅣ라
재주가 아름다움은 지혜와 능함과 기예의 아름다움을 이름이라. 교는 자랑하고 무던치 않음이오, 인은 인색함이라. ○정자 가라사대 이는 심히 교만하고 인색함의 불가함을 말씀하심이라. 대개 주공의 덕을 두었으면 곧 스스로 교만하고 인색함이 없거니와, 만약에 다만 주공의 재주만을 두고 교만하고 인색하면 또한 족히 볼 것이 없느니라. 또 가라사대 교만은 기운이 가득 참이고, 인색은 기운이 부족함이라. 우는 이르되 교만하고 인색함은 비록 차고 부족함의 다름이 있으나 그러나 그 세력은 항상 서로 인하니, 대개 교만이라는 것은 인색의 지엽이고, 인색이라는 것은 교만의 목근이라. 그러므로 일찍이 경험한 것이니 천하의 사람이 교만하고 인색하지 아니하며 인색하고 교만하지 아니한 자 있지 않느니라.
<제12장>
子ㅣ 曰三年學에 不至於穀을 不易得也ㅣ니라
공자 가라사대 삼년을 배움에 벼슬에 뜻하지 아니한 이를 쉽게 얻지 못하리니라.
穀은 祿也ㅣ라 至는 疑當作志라 爲學之久而不求祿이면 如此之人을 不易得也ㅣ라 ○楊氏 曰雖子張之賢으로도 猶以干祿爲問이온 況其下者乎아 然則三年學而不至於穀을 宜不易得也ㅣ니라
곡은 녹이라. 지는 아마도 마땅히 志로 지어야 할 것이라. 학문을 함에 오래하고도 녹을 구하지 않는다면 이러한 사람을 쉽게 얻지 못하느니라. ○양씨 가로대 비록 자장의 어짊으로도 오히려 간록(녹을 구함)으로써 물었건대 하물며 그 아래인자라야. 그렇다면 삼년을 배우고도 녹에 뜻을 두지 못한 이를 마땅히 쉽게 얻지 못하리니라.
<제13장>
子ㅣ 曰篤信好學하며 守死善道ㅣ니라
공자 가라사대 돈독히 믿고 배움을 좋아하며 죽음을 지키고 도를 선히 할지니라.
篤은 厚而力也ㅣ니 不篤信則不能好學이라 然이나 篤信而不好學이면 則所信이 或非其正이오 不守死면 則不能以善其道라 然이나 守死而不足以善其道면 則亦徒死而已라 蓋守死者는 篤信之效요 善道者는 好學之功이라
독은 후하고 힘을 씀이니, 독신하지 아니하면 능히 배움을 좋아하지 못하느니라. 그러나 돈독히 믿기는 하되 배움을 좋아하지 아니하면 믿는 바가 혹 그 바르지 못하고, 죽음을 지키지 못하면 능히 써 그 도를 선으로써 못하니라. 그러나 죽음을 지키면서 족히 써 그 도를 선하게 못하면 또한 한갓 죽을 뿐이라. 대개 죽음을 지키는 것은 돈독히 믿음의 효력이오, 도를 선히 하는 것은 배움을 좋아하는 공이라.
危邦不入하고 亂邦不居하며 天下ㅣ 有道則見하고 無道則隱이니라
위태로운 나라는 들어가지 아니하고, 어지러운 나라는 거하지 아니하고, 천하가 도가 있으면 나타나고, 도가 없으면 은둔하니라.
君子는 見危授命이니 則仕危邦者는 無可去之義어니와 在外則不入이 可也ㅣ라 亂邦은 未危나 而刑政紀綱이 紊矣라 故로 潔其身而去之라 天下는 擧一世而言이니라 無道則隱其身而不見也ㅣ라 此惟篤信好學하고 守死善道者라야 能之니라
군자는 위태로움을 보거든 명을 주니(나라의 위태로움을 보면 깨끗이 목숨 바칠 각오를 하고 일에 임하니), 그렇다면 위태로운 나라에서 벼슬을 하는 자는 가히 떠나갈 의리가 없거니와, 밖에 있다면 들어가지 않음이 가하니라. 어지러운 나라는 위태롭지는 아니하나 형벌과 정치와 기강이 어지러움이라. 그러므로 그 몸을 깨끗이 하고 떠나니라. 천하는 온 세상을 들어서 말함이니라. 도가 없으면 그 몸을 숨겨서 나타내지 아니하니라. 이는 오직 독신 호학하고 수사 선도하는 자라야 능하니라.
邦有道에 貧且賤焉이 恥也ㅣ며 邦無道에 富且貴焉이 恥也ㅣ니라
나라에 도가 있음에 가난하고 또 천함이 부끄러움이며, 나라에 도가 없음에 부하고 또한 귀함이 부끄러움이니라.
世治而無可行之道하며 世亂而無能守之節이면 碌碌庸人이라 不足以爲士矣니 可恥之甚也ㅣ라 ○鼂氏 曰有學有守而去就之義ㅣ 潔하고 出處之分ㅣ 明然後에 爲君子之全德也ㅣ니라
세상이 다스려짐에 가히 행할 만한 도가 없으며 세상이 어지러움에 능히 지킬 수 있는 절개가 없으면 녹록하고(변통수 없는) 용렬한 사람이라. 족히 써 선비가 되지 못하니 가히 부끄러움이 심함이라. ○조씨 가로대 배움이 있고 지킴이 있으면서 거취의 의리가 깨끗하고, 출처(벼슬길에 나아가거나 집에 있음)의 나눔(분별)이 밝은 연후에 군자의 온전한 덕을 갖추느니라.
<제14장>
子ㅣ 曰不在其位하얀 不謀其政이니라
공자 가라사대 그 위에 있지 아니하고는 그 정사를 도모하지 못하니라.
程子ㅣ 曰不在其位則不任其事也ㅣ니 若君大夫ㅣ 問而告者則有矣니라
정자 가라사대 그 위에 있지 않다면 그 일을 책임지지 못하니, 만약에 인군과 대부가 물음에 고하는 것은 있느니라.
태백편 제15장~제19장 해설
<제15장>
子ㅣ 曰師摯之始에 關雎之亂이 洋洋乎盈耳哉라
공자 가라사대 악사인 지의 처음에 관저의 끝장이 출렁이며 귀에 넘치는 듯이 꽉 차니라.
師摯는 魯樂師니 名은 摯也ㅣ라 亂은 樂之卒章也ㅣ라 史記에 曰關雎之亂은 以爲風始라 하니라 洋洋은 美盛矣라 孔子ㅣ 自衛至魯로하사 而正樂하실새 適師摯在官之初라 故로 樂之美盛이 如此시니라
사지는 노나라 악사니 이름은 지라. 난은 음악의 끝장이라. 사기에 가로대 관저(시경 관저장)의 끝은 써 국풍으로 시작한다 하니라. 양양은 아름답고 성함이라. 공자가 위나라로부터 노나라에 이르러서 음악을 바로 하실 적에 마침 악사인 지가 벼슬에 있을 때의 처음이라. 그러므로 음악의 아름답고 성함이 이와 같다고 하시니라.
<제16장>
子ㅣ 曰狂而不直하며 侗而不愿하며 悾悾而不信을 吾不知之矣로다
공자 가라사대 미치고도 곧지 아니하며, 미련하고도 정성스럽지 못하며, 무능하면서 믿지 못함을 나는 아지 못하노라.
[본문 해설]
여기에서 狂은 지나치게 고상한 것으로, 어느 한 가지 일에 미친듯이 푹 빠져 있는 것을 말한다. 곧 보통 사람보다 지나친 데가 있는 것을 말한다. ‘자로편’에서 공자가 제자들에게 ‘중정한 사람과 사귀지 못할 바에야 광견(狂狷)한 자를 택하겠다’고 했는데 이때의 狂과 같은 표현이다.
侗은 無知貌이라 愿은 謹厚也ㅣ라 悾悾은 無能貌라 吾不知之者는 甚絶之之辭니 亦不屑之敎誨也ㅣ라 ○蘇氏 曰天之生物에 氣質이 不齊하야 其中材以下는 有是德이면 則有是病이오 有是病이면 必有是德이라 故로 馬之蹄齧者는 必善走하고 其不善者는 必馴하나니 有是病而無是德이면 則天下之棄才也ㅣ라
통은 무지한 모양이라. 원은 삼가고 후함이라. 공공은 능치 못한 모양이라. 내 아지 못한다는 것은 심히 끊는 말이니 또한 조촐하지 않은 가르침이라. ○소씨 가로대 하늘이 물건을 냄에 기질이 가지런하지 못하여 그 중재로써 아래는 이 덕이 있으면 이 병이 있고, 이 병이 있으면 반드시 이 덕이 있음이라. 그러므로 말이 뒷발질 잘 하고 깨물기를 잘하는 것은 반드시 잘 달리고, 그 잘하지 못한 것은 반드시 길을 들여야 하나니 이 병이 있고 이런 덕이 없으면 천하의 버린 재주이니라.
蹄 : 발굽 제 齧 : 깨물 설
<제17장>
子ㅣ 曰學如不及이오 猶恐失之니라
공자 가라사대 배움을 미치지 못할 것 같이 하고 오히려 잃을까 두려워할지니라.
言人之爲學에 旣如有所不及矣요 而其心에 猶竦然하야 惟恐其或失之니 警學者ㅣ 當如是也ㅣ니라 ○程子ㅣ 曰學如不及하고 猶恐失之하야 不得放過니 才說姑待明日이라 하면 便不可也ㅣ니라
사람이 학문을 함에 이미 미치지 못한 바가 있는 것처럼 하고, 그 마음에 오히려 두려워하여 오히려 그 혹 (때를) 잃을까 두려워할지니 배움을 일깨우는 자가 마땅히 이와 같이 할 것을 말함이라. ○정자 가라사대 배움은 미치지 못할 것처럼 하고 오히려 잃을까를 두려워하여 얻어 방종하고 지나치게 하지 않을지니, 겨우 짐짓 내일을 기다린다고 말하면 문득 불가함이라.
<제18장>
子ㅣ 曰巍巍乎舜禹之有天下也而不與焉이여
공자 가라사대 높고도 크도다. 순임금과 우임금이 천하를 두시되 관여하지 아니하심이여.
[본문 해설]
순임금과 우임금은 천하를 다스리는 데는 신경을 쓰셨지만 천하가 ‘내 것이다’라는 것에는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러기에 공자가 외외하다고 탄미하셨다.
巍巍는 高大之貌라 不與는 猶言不相關이니 言其不以爲樂也ㅣ라
외외는 높고 큰 모양이라. 불여는 상관하지 않는다는 말과 같으니 그로써 즐거움을 삼지 않았다는 말이라.
<제19장>
子ㅣ 曰大哉라 堯之爲君也ㅣ여 巍巍乎唯天이 爲大어시늘 唯堯ㅣ 則之하시니 蕩蕩乎民無能名焉이로다
공자 가라사대 크도다. 요임금의 인군 되심이여, 높고 크도다. 오직 하늘이 큼이 되거시늘 홀로 요임금이 본받으시니, 넓고 멀도다. 백성이 능히 이름할 수 없음이로다.
猶는 猶獨也ㅣ오 則은 猶準也ㅣ라 蕩蕩은 廣遠之稱也ㅣ라 言物之高大ㅣ 莫有過於天者어늘 而獨堯之德이 能與之準이라 故로 其德之廣遠이 亦如天之不可以言語形容也ㅣ라
유는 홀로와 같고 칙은 기준과 같음이라. 탕탕은 넓고 멂을 일컬음이라. 물건의 높고 큼이 하늘보다 더한 것이 있지 아니하거늘, 홀로 요임금의 덕이 더불어 법이 됨을 말함이라. 그럼으로 그 덕의 넓고 멂이 또한 하늘의 언어로써 가히 형용하지 못함과 같음이라.
巍巍乎其有成功也ㅣ어 煥乎其有文章이여
넓고 멀도다, 그 성공이 있음이여. 빛나도다, 그 문장이 있음이여.
成功은 事業也ㅣ라 煥은 光明之貌라 文章은 禮樂法度也ㅣ라 堯之德은 不可名이오 其可見者ㅣ 此爾라 ○尹氏 曰天道之大ㅣ 無爲而成이어늘 唯堯ㅣ 則之하야 以治天下라 故로 民無得而名焉이오 所可名者는 其功業文章이 巍然煥然而已라
성공은 사업이라. 환은 빛나고 밝은 모양이라. 문장은 예악법도라. 요임금의 덕은 가히 이름할 수 없고 그 가히 보는 것이 이것일 뿐이라. ○윤씨 가로대 천도의 큼이 하옴이 없이 이루거늘, 오직 요임금이 본받아서 써 천하를 다스림이라. 그러므로 백성이 얻어 이름할 수 없고, 가히 이름한다는 것은 그 공업 문장이 넓고 멀며 밝다고 할 뿐이라.
태백편 제20장~제21장 해설
<제20장>
舜이 有臣五人而天下ㅣ 治하니라
순임금이 신하 다섯 사람을 두심에 천하가 다스려지니라.
五人은 禹, 稷, 契, 皐陶, 伯益이니라
5인은 우, 직, 설, 고요, 백익이니라.
武王이 曰予有亂臣十人호라
무왕이 가라사대 내 난신(잘 다스리는 신하) 10인을 두었노라.
書泰誓之辭라 馬氏 曰亂은 治也ㅣ라 十人은 謂周公旦, 召公奭, 太公望, 畢公, 榮公, 太顚, 閎夭, 散宜生, 南宮适이오 其一人은 謂文母라 劉時讀이 以爲子無臣母之義하니 蓋邑姜也ㅣ니 九人은 治外하고 邑姜은 治內라 或이 曰亂은 本作乿이니 古治字也ㅣ라
서경 태서편의 말이라. 마씨 가로대 亂은 다스림이라. 10인은 주공단, 소공석, 태공망, 필영, 영공, 태전, 굉요, 산의생, 남궁괄이고, 그 한 사람은 문왕의 비(사씨)를 이름이라. 유시독이 써 자식이 어머니를 신하로 삼는 의리가 없으니, 대개 읍강(강태공의 딸로 무왕의 비)이니, 9인은 밖에서 다스리고 읍강은 안에서 다스림이라. 혹이 가로대 亂은 본래 乿으로 지었으니 옛날에 治자라.
閎 : 마을 문 굉 乿 : 이치 치
孔子ㅣ 曰才難이 不其然乎아 唐虞之際ㅣ 於斯ㅣ 爲盛하나 有婦人焉이라 九人而已니라
공자 가라사대 재주(재주를 얻기)가 어려움이 그 그렇지 아니한가. 당우의 즈음이 이에 성했으나 부인이 있음이라. 아홉 사람일 뿐이니라.
稱孔子者는 上係武王君臣之際니 記者ㅣ 謹之니라 才難은 蓋古語요 而孔子ㅣ 然之也ㅣ시니라 才者는 德之用也ㅣ라 唐虞는 堯舜이 有天下之號라 際는 交會之間이라 言周室人才之多가 惟唐虞之際에 乃盛於此요 降自夏商은 皆不能及이라 然이나 猶但有此數人爾니 是는 才之難得也ㅣ니라
(서경에서 직접 순임금과 무왕의 말을 인용해놓고 그 다음에) 공자라고 일컬은 것은 위로 무왕과 군신의 즈음에 매여 있기(시대는 다르지만 순임금과 무왕에 대해 공자는 신하의 위치이기) 때문에 기록한 자가 삼감함이니라. 재난은 대개 옛말이고 공자가 그렇게 하시니라. 재라는 것은 덕의 용이라. 당우는 요순이 천하를 둔 칭호라. 제는 사귀고 모이는 사이라. 주나라 왕실에 인재의 많음이 오직 당우의 즈음에 이에 이보다 성했고, 내려오면서 하나라 상나라로부터는 다 능히 미치지 못함이라. 그러나 다만 이 수 인일 뿐이니 이는 재주의 얻기가 어려움이라.
三分天下에 有其二하사 以服事殷하시니 周之德은 其可謂至德也已矣로다
천하를 삼분함에 그 둘을 두시사 써 은나라를 복종하여 섬기시니 주나라의 덕은 그 가히 지극한 덕이라 이르리로다.
春秋傳에 曰文王이 率商之畔國하사 以事紂하시니 蓋天下ㅣ 歸文王者ㅣ 六州니 荊梁雍豫徐揚也ㅣ오 惟靑袞冀는 尙屬紂이니라 范氏 曰文王之德이 足以代商하야 天與之하고 人歸之로대 乃不取而服事焉하시니 所以爲至德也ㅣ라 孔子ㅣ 因武王之言하야 而及文王之德하시고 且與太伯으로 皆以至德稱之하시니 其指微矣로다 或이 曰宜斷三分以下하야 別以孔子曰로 起之而自爲一章이라
춘추전에 가로대 문왕이 상나라에 배반하는 나라들을 거느려서 써 주를 섬기게 하시니 대개 천하가 문왕에게 돌아간 자가 여섯 고을 이니 형, 량, 옹, 예, 서, 양이고, 오직 청, 곤, 기는 아직 주에 속하니라. 범씨 가로대 문왕의 덕이 족히 써 상나라를 대신하여 하늘이 주시고, 사람이 돌아갔으되 이에 취하지 아니하시고 복종하고 섬기도록 하시니 써 지극한 덕이 되는 바이라. 공자가 무왕의 말로 인하여 문왕의 덕에 미치시고, 또한 태백과 더불어 다 써 지극한 덕이라 일컬으셨으니 그 뜻이 은미하도다. 혹이 가로대 마땅히 ‘삼분’ 이하를 따개서 별도로 ‘공자왈’로 일으켜서 스스로 한 장을 만들어야 하니라.
<제21장>
子ㅣ 曰禹는 吾無間然矣로다 菲飮食而致孝乎鬼神하시며 惡衣服而致美乎黻冕하시며 卑宮室而盡力乎溝洫하시니 禹는 吾無間然矣로다
공자 가라사대 우는 내가 흠잡을 데가 없음이로다. (자기가 먹는) 음식은 소박하게 하시고 귀신에게는 지극히 효성스러우시며, 의복은 추하게 하면서도 제의와 제관은 매우 아름답게 하시며, 궁실은 낮추고 (들판의) 구혁에는 힘을 다하시니, 우는 내 흠잡을 데가 없음이로다.
菲 : 엷을 비, 보잘것없을 비 洫 : 봇도랑 혁
間은 罅隙也ㅣ니 謂指其罅隙하야 而非議之也ㅣ라 菲는 薄也ㅣ라 致孝鬼神은 謂享祀豐潔이라 衣服은 常服이오 黻은 蔽膝也ㅣ니 以韋爲之요 冕은 冠也ㅣ니 皆祭服也ㅣ라 溝洫은 田間水道니 以正疆界하야 備旱潦者也ㅣ라 或豐或儉하야 各適其宜하니 所以無罅隙之可議也ㅣ라 故로 再言以深美之시니라 ○楊氏 曰薄於自奉而所勤者는 民之事요 所致飾者는 宗廟朝廷之禮니 所謂有天下而不與也ㅣ라 夫何間然之有리오
간은 틈이니 그 하극을 가르쳐서 비난함을 이름이라. 비는 박함이라. 치효귀신은 제사 지냄을 풍성하고 깨끗하게 함을 이름이라. 의복은 항상 입는 옷이오, 불은 무릎을 가리는 것이니 가죽으로 만들고, 면은 갓이니 다 제복이라. 구혁은 밭 사이의 물길이니 써 경계를 바로하여 가뭄과 장마를 대비함이라. 혹 풍성하게 하고, 혹 검소하게 하여 각각 그 마땅하게 했으니 써 틈을 내어 가히 의논(비난)할 수 없음이라. 그러므로 거듭 말씀하셔서 써 깊이 아름다이 여기시니라. ○양씨 가로대 스스로 받듦에는 박하게 하고, 힘쓴 것은 백성의 일이고, 꾸밈을 이룬 것은 종묘 조정의 예이니 이른바 천하를 두셨어도 관여하지 않으셨음이라. 무릇 어찌 흠잡을 데가 있으리오.
罅 : 틈 하 隙 : 틈 극 潦 : 장마 료(요)
자한제9(子罕第九) 본문
論語集註卷之九 子罕第九 凡三十章
<제1장>
子는 罕言利與命與仁이러시다
<제2장>
達巷黨人이 曰大哉라 孔子ㅣ여 博學而無所成名이로다
子ㅣ 聞之하시고 謂門弟子曰吾何執고 執御乎아 執射乎아 吾ㅣ執御矣로리라
<제3장>
子ㅣ 曰麻冕이 禮也ㅣ어늘 今也純하니 儉이라 吾從衆호리라
拜下ㅣ 禮也ㅣ어늘 今拜乎上하니 泰也ㅣ라 雖違衆이나 吾從下호리라
<제4장>
子ㅣ 絶四ㅣ리시니 毋意毋必毋固毋我ㅣ러시다
<제5장>
子ㅣ 畏於匡이러시니
曰文王이 旣沒하시니 文不在玆乎아
天之將喪斯文也ㅣ신댄 後死者ㅣ 不得與於斯文也ㅣ어니와 天之未喪斯文也ㅣ시니 匡人이 其如予에 何ㅣ리오
<제6장>
大宰ㅣ 問於子貢曰夫子는 聖者與아 何其多能也오
子貢이 曰固天縱之將聖이시고 又多能也ㅣ시니라
子ㅣ 聞之曰大宰ㅣ 知我乎저 吾ㅣ 少也에 賤故로 多能鄙事호니 君子는 多乎哉아 不多也ㅣ니라
牢ㅣ 曰子ㅣ 云吾ㅣ 不試故로 藝라 하시니라
<제7장>
子ㅣ 曰吾ㅣ 有知乎哉아 無知也ㅣ로라 有鄙夫ㅣ 問於我호대 空空如也ㅣ라도 我ㅣ 叩其兩端而竭焉하노라
<제8장>
子ㅣ 曰鳳鳥ㅣ 不至하며 河不出圖하니 吾已矣夫저
<제9장>
子ㅣ 見齊衰者와 冕衣裳者와 與瞽者하시고 見之에 雖少ㅣ나 必作하시며 過之必趨ㅣ러시다
<제10장>
顔淵이 喟然歎曰仰之彌高하며 鑽之彌堅하며 瞻之在前이러니 忽然在後ㅣ로다
夫子ㅣ 循循然善誘人하사 博我以文하시고 約我以禮하시니라
欲罷不能하야 旣竭吾才호니 如有所立이 卓爾라 雖欲從之나 末由也已로다
<제11장>
子ㅣ 疾病이어시늘 子路ㅣ 使門人으로 爲臣이러니
病間曰久矣哉라 由之行詐也ㅣ여 無臣而爲有臣하니 吾誰欺오 欺天乎저
且予ㅣ 與其死於臣之手也론 無寧死於二三子之手乎아 且予ㅣ 縱不得大葬이나 予ㅣ 死於道路乎아
<제12장>
子貢이 曰有美玉於斯하니 韞匵而藏諸잇가 求善賈而沽諸잇가 子ㅣ 曰沽之哉沽之哉나 我는 待賈者也ㅣ로라
<제13장>
子ㅣ 欲居九夷러시니
或曰陋커니 如之何잇고 子ㅣ 曰君子ㅣ 居之면 何陋之有ㅣ리오
<제14장>
子ㅣ 曰吾ㅣ 自衛反魯然後에 樂正하야 雅頌이 各得其所하니라
<제15장>
子ㅣ 曰出則事公卿하고 入則事父兄하며 喪事를 不敢不勉하며 不爲酒困이 何有於我哉오
<제16장>
子ㅣ 在川上曰逝者ㅣ 如斯夫저 不舍晝夜ㅣ로다
<제17장>
子ㅣ 曰吾未見好德이 如好色者也케라
<제18장>
子ㅣ 曰譬如爲山에 未成一簣하야 止도 吾止也ㅣ며 譬如平地에 雖覆一簣나 進도 吾往也ㅣ니라
<제19장>
子ㅣ 曰語之而不惰者는 其回也與저
<제20장>
子ㅣ 謂顔淵曰惜乎ㅣ라 吾見其進也ㅣ오 未見其止也호라
<제21장>
子ㅣ 曰苗而不秀者ㅣ 有矣夫ㅣ며 秀而不實者ㅣ 有矣夫저
<제22장>
子ㅣ 曰後生이 可畏니 焉知來者之不如今也ㅣ리오 四十五十而無聞焉이면 斯亦不足畏也已니라
<제23장>
子ㅣ 曰法語之言은 能無從乎아 改之爲貴니라 巽與之言은 能無說乎아 繹之爲貴니라 說而不繹하며 從而不改면 吾末如之何也已矣니라
<제24장>
子ㅣ 曰主忠信하며 毋友不如己者ㅣ오 過則勿憚改니라
<제25장>
子ㅣ 曰三軍은 可奪帥也ㅣ어니와 匹夫는 不可奪志也ㅣ니라
<제26장>
子ㅣ 曰衣敝縕袍하야 與衣狐貉者로 立而不恥者는 其由也與저
不忮不求ㅣ면 何用不臧이리오
子路ㅣ 終身誦之한대 子ㅣ 曰是道也ㅣ 何足以臧이리오
<제27장>
子ㅣ 曰歲寒然後에 知松柏之後彫也ㅣ니라
<제28장>
子ㅣ 曰知者는 不惑하고 仁者는 不憂하고 勇者는 不懼ㅣ니라
<제29장>
子ㅣ 曰可與共學이오도 未可與適道ㅣ며 可與適道ㅣ오도 未可與立이며 可與立이오도 未可與權이니라
<제30장>
唐棣之華ㅣ여 偏其反而로다 豈不爾思ㅣ리오마는 室是遠而니라
子ㅣ 曰未之思也ㅣ언정 夫何遠之有리오
자한편 제1장 ~ 제4장 해설
<제1장>
子는 罕言利與命與仁이러시다
공자는 이와 다못 명과 다못 인을 드물게 말씀하더시다.
罕은 少也ㅣ라 程子ㅣ 曰計利則害義오 命之理ㅣ 微하고 仁之道ㅣ 大하니 皆夫子所罕言也ㅣ시니라
한은 적음이라. 정자 가라사대 이를 계산하면 의리에 해롭고, 명의 이치가 은미하고, 인의 도가 크니 다 부자가 드물게 말씀한 것이니라.
<제2장>
達巷黨人이 曰大哉라 孔子ㅣ여 博學而無所成名이로다
달항당인이 가로대, 크도다! 공자여. 널리 배웠으되 이름을 이룬 바 없도다.
達巷은 黨名이니 其人姓名은 不傳이라 博學而無所成名은 蓋美其學之博而惜其不成一藝之名也ㅣ라
달항은 마을 이름이니 그 사람의 이름은 전하지 아니하니라. 널리 배웠으되 이름을 이룬 바가 없다는 것은 대개 그 학문의 넓음을 아름다이 여기고, 그 한 재주라도 이뤄 이름을 내지 못함을 애석히 여김이라.
子ㅣ 聞之하시고 謂門弟子曰吾何執고 執御乎아 執射乎아 吾ㅣ執御矣로리라
공자가 들으시고 문인 제자들에게 일러 가라사대 내가 무엇을 잡을고? 말 모는 것을 잡을까? 활 쏘는 것을 잡을까? 내 말 모는 것을 잡으리로라.
執은 專執也ㅣ라 射御는 皆一藝나 而御爲人僕이니 所執이 尤卑라 言欲使我로 何所執以成名乎아 然則吾將執御矣라 하시니 聞人譽己하고 承之以謙也ㅣ시니라 ○尹氏 曰聖人은 道全而德備하야 不可以偏長으로 目之也ㅣ라 達巷黨人이 見孔子之大하고 意其所學者ㅣ 博而惜其不以一善으로 得名於世하니 蓋慕聖人而不知者也ㅣ라 故로 孔子ㅣ 曰欲使我로 何所執而得爲名乎아 然則吾將執御矣로라 하시니라
집은 오로지 잡음이라. 활 쏘고 말 모는 것은 다 한 가지 재주이나 말 모는 것은 남의 종이 되는 것이니 잡는 것이 더욱 낮음이라. 나로 하여금 무엇을 잡아서 써 이름을 이루랴, 그러면 내 장차 말 모는 것을 잡으리라 하시니, 남이 자기를 칭찬해주는 것을 듣고 겸손함으로써 이으심이니라. ○윤씨 가로대 성인은 도가 온전하고 덕이 갖추어져 가히 한쪽의 장점으로써 지목하지 못하니라. 달항당인이 공자의 큼을 보고 뜻이 그 배운 것은 넓어도 그 한 선함으로써 세상에 이름을 얻지 못한 것을 애석히 여겼으니, 대개 성인을 흠모하면서도 아지 못함이라. 그러므로 공자가, 나로 하여금 무엇을 잡아서 이름을 이루랴 한다면, 그러면 내 장차 말 모는 것을 잡으리로라 하시니라.
<제3장>
子ㅣ 曰麻冕이 禮也ㅣ어늘 今也純하니 儉이라 吾從衆호리라
공자 가라사대 삼베로 짠 면류관이 예이거늘, 지금 실로 짰으니 검소함이라. 내 무리를 따르리라.
麻冕은 緇布冠也ㅣ라 純은 絲也ㅣ라 儉은 謂省約이라 緇布冠은 以三十升布로 爲之니 升은 八十縷니 則其經이 二千四百縷矣라 細密難成하야 不如用絲之省約이라
마면은 검은 베로 짠 갓이라. 순은 실이라. 검은 덜고 간략히 함을 이름이라. 치포관은 삼십세의 베로써 만드니 세는 80올이니 그 날실이 2천4백올이라. 가늘고 빽빽하여 만들기가 어려워 실로 생략하여 쓰는 것만 같지 못함이라.
拜下ㅣ 禮也ㅣ어늘 今拜乎上하니 泰也ㅣ라 雖違衆이나 吾從下호리라
아래에서 절함이 예이거늘 지금 위에서 절하니 태만함이라. 비록 무리를 어기나 내 아래를 따르리라.
臣與君이 行禮에 當拜於堂下하니 君辭之어든 乃升成拜라 泰는 驕慢也ㅣ라 ○程子ㅣ 曰君子處世에 事之無害於義者는 從俗이 可也어니와 害於義則不可從也ㅣ라
신하와 인군이 예를 행함에 당연히 당 아래에서 절을 해야 하니, 인군이 사양하거든 이에 올라가 절을 함이라. 태는 교만함이라. ○정자 가라사대 군자가 세상에 처함에 일이 의리에 해롭지 아니하면 풍속을 따름이 가하거니와 의리에 해로우면 가히 따르지 못함이라.
<제4장>
子ㅣ 絶四ㅣ리시니 毋意毋必毋固毋我ㅣ러시다
공자가 네 가지를 완전히 끊으시니 뜻하지 말 것과 기필하지 말 것과 고집하지 말 것과 나를 두지 말 것이다.
絶은 無之盡者라 毋는 史記에 作無是也ㅣ라 意는 私意也ㅣ오 必은 期必也ㅣ오 固는 執滯也ㅣ오 我는 私己也ㅣ니 四者ㅣ 相爲終始하니 起於意하야 遂於必하고 留於固하야 而成於我也ㅣ라 蓋意必은 常在事前이오 固我는 常在事後니 至於我又生意면 則物欲이 牽引하야 循環不窮矣라 ○程子ㅣ 曰此毋字는 非禁止之辭니 聖人이 絶此四者어시늘 何用禁止시리오 張子ㅣ 曰四者에 有一焉이면 則與天地로 不相似니라 楊氏 曰非知足以知聖人하야 詳視而黙識之면 不足以記此니라
절은 없는 것이 다함이라. 毋는 『사기』에 無자로 지었으니 이것이라. 의는 사사로운 뜻이오, 필은 기필이오, 고는 잡아 막히는 것이오, 아는 사사로운 몸이니, 네 가지는 서로 종과 시가 되니 뜻에서 일어나서 기필하는 데에 이르고, 고집부리는데 머물러 나에게서 이룸이라. 대개 意와 必은 항상 일의 앞에 있고, 固와 我는 항상 일의 뒤에 있으니, 나라고 하는데에 이르러 또한 뜻을 내면 물욕이 끌어 이끌어서 순환반복하면서 끝이 없느니라. ○정자 가라사대 이 毋자는 금지하는 말이 아니니 성인이 이 네 가지를 완전히 끊으셨거늘 어찌 금지로 쓰리오. 장자 가로대 네 가지에 한 가지라도 있으면 천지와 더불어 서로 같지 않느니라. 양씨 가로대 지혜가 족히 써 성인을 알아서 자세히 보고 묵묵히 아는 이가 아니면 족히 써 이를 기록하지 못하니라.
자한편 제5장 ~ 제6장 해설
<제5장>
子ㅣ 畏於匡이러시니
공자가 광에서 두려워하시니(어려움을 겪더시니),
畏者는 有戒心之謂라 匡은 地名이라 史記에 云陽虎ㅣ 曾暴於匡이러니 夫子ㅣ 貌似陽虎라 故로 匡人이 圍之니라
외라는 것은 경계하는 마음을 둔 것을 이름이라. 광은 땅이름이라. 사기에 이르기를 양호가 일찍이 광땅에서 포악하더니 부자가 모습이 양호와 비슷함이라. 그러므로 광인이 에워싸니라.
曰文王이 旣沒하시니 文不在玆乎아
가라사대 문왕이 이미 돌아가시니 문이 여기에 있지 아니한가.
道之顯者를 謂之文이니 蓋禮樂制度之謂라 不曰道而曰文은 亦謙辭也ㅣ라 玆는 此也ㅣ니 孔子ㅣ 自謂시니라
도가 나타나는 것을 문이라 이르니 대개 예, 악, 제도를 이름이라. 도라고 아니하고 문이라 이른 것은 또한 겸손하는 말이라. 자는 이것과 같으니 공자가 스스로 이르심이라.
天之將喪斯文也ㅣ신댄 後死者ㅣ 不得與於斯文也ㅣ어니와 天之未喪斯文也ㅣ시니 匡人이 其如予에 何ㅣ리오
하늘이 장차 이 문을 상하게 하실진대 뒤에 죽는 자가 얻어 이 문에 참여하지 못하거니와, 하늘이 이 문을 상하게 하지 아니하시니 광인이 그 나에게 어찌하리오.
[참고]
바로 여기에서 공자의 도를 斯文이라 하고, 선비를 일컬어 斯文이라 하며, 李斯文, 朴斯文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
馬氏 曰文王이 旣沒故로 孔子ㅣ 自謂後死者시니라 言天이 若欲喪此文이신댄 則必不使我로 得與於此文이어니와 今我ㅣ 旣得與於此文하니 則是는 天未欲喪此文也ㅣ라 天旣未欲喪此文인댄 則匡人이 其奈我에 何리오 言必不能違天害己也ㅣ시니라
마씨 가로대 문왕이 이미 몰하신 고로 공자가 스스로 뒤에 죽는 자라고 이르시니라. 말하건대 하늘이 만약에 이 문을 상하고자 할진댄 곧 반드시 나로 하여금 얻어 이 문에 참여를 못하게 하거니와 지금 내가 이미 얻어 이 문에 참여하니, 그렇다면 이는 하늘이 이 문을 상하게 하고자 아니하심이라. 하늘이 이미 이 문을 상하게 하고자 아니하실진댄 그렇다면 광인이 그 나에게 어찌 하리오. 반드시 능히 하늘을 어기고 나를 해칠 수 없음을 말씀하심이라.
<제6장>
大宰ㅣ 問於子貢曰夫子는 聖者與아 何其多能也오
태재가 자공에게 물어 가로대 부자는 성인인가, 어찌 그 능함이 많은고.
孔氏 曰大宰는 官名이니 或吳或宋인지는 未可知也ㅣ라 與者는 疑辭也ㅣ라 大宰ㅣ 蓋以多能으로 爲聖也ㅣ라
공씨 가로대 태재는 관직 이름이니 혹 오나라 벼슬인지 송나라 벼슬인지는 가히 알지 못하니라. 여라는 것은 의심하는 말이라. 태재가 대개 능함이 많은 것으로써 성인을 삼음이라.
子貢이 曰固天縱之將聖이시고 又多能也ㅣ시니라
자공이 가로대 진실로 하늘이 놓은 장차 성인이시고, 또한 능함이 많으시니라.
縱은 猶肆也ㅣ니 言不爲限量也ㅣ라 將은 殆也ㅣ니 謙若不敢知之辭라 聖은 無所不通이오 多能은 乃其餘事라 故로 言又以兼之니라
종은 베풂과 같으니 한량을 두지 못함을 말함이라. 장은 자못이니 겸손하여 감히 아지 못한다는 것과 같은 말이라. 성은 통하지 않는 바가 없고, 다능은 이에 그 나머지 일이라. 그러므로 또한 겸함으로써 말함이라.
子ㅣ 聞之曰大宰ㅣ 知我乎저 吾ㅣ 少也에 賤故로 多能鄙事호니 君子는 多乎哉아 不多也ㅣ니라
공자가 들으시고 가라사대 태재가 나를 알진저. 내가 젊을 적에 천한 고로 비루한(자질구레한, 천박한) 일에 능함이 많았으니 군자는 (능함이) 많은가? 많지 않느니라.
言由少賤故로 多能而所能者는 鄙事爾요 非以聖而無不通也ㅣ니라 且多能은 非所以率人이라 故로 又言君子ㅣ 不必多能으로 以曉之시라
말하건대 젊어서 천한 고로 능함이 많고, 능한 것이란 것은 비루한 일이오, 성인으로써 통하지 않음이 없는 것은 아니니라. 또한 다능은 써 사람을 통솔하는 바가 아니라. 그러므로 또한 군자가 반드시 다능하지 않음으로써(군자란 다능하다고 되는 것이 아님을) 깨우쳐주기 위해 말씀하심이라.
牢ㅣ 曰子ㅣ 云吾ㅣ 不試故로 藝라 하시니라
뇌가 가로대 공자께서 나에게 이르시기를 (세상에) 쓰여지지 아니한 고로 재주있다 하시니라.
牢는 孔子弟子니 姓은 琴이오 字는 子開요 一字는 子張이라 試는 用也ㅣ라 言由不爲世用이라 故로 得以習於藝而通之라 ○吳氏 曰弟子ㅣ 記夫子此言之時에 子牢ㅣ 因言昔之所聞이 有如此者하니 其意相近이라 故로 幷記之니라
뇌는 공자 제자니 성은 금이오, 자는 자개요, 한편으로 자는 자장이라. 시는 씀이라. 세상에 쓰여지지 못함으로 말미암음을 말함이라. 그러므로 얻어서 써 예능을 익혀서 통함이라. ○오씨 가로대 제자들이 부자의 이(윗 문장의) 말씀을 기록할 적에, 자뇌가 인하여 옛적에 들은 바가 이와 같음이 있다고 말하니, 그 뜻이 서로 가까우니라. 그러므로 함께 기록하니라.
자한편 제7장 ~ 제10장 해설
<제7장>
子ㅣ 曰吾ㅣ 有知乎哉아 無知也ㅣ로라 有鄙夫ㅣ 問於我호대 空空如也ㅣ라도 我ㅣ 叩其兩端而竭焉하노라
공자 가라사대 내가 앎이 있는가, 앎이 없노라. 비부가 나에게 묻되 무지하더라도 내가 그 양단을 두들겨 다 하노라.
[본문해설]
공자의 말씀이다. “사람들이 나더러 다 안다고 하는데 나는 아는 게 없다. 다만 아무리 무지몽매한 사람이 나에게 묻더라도 내가 아는 데까지 최선을 다해 그 사람이 알아들을 수 있도록 이쪽저쪽을 다 두드려 알아들을 수 있도록 설명해준다”고 하였다.
孔子ㅣ 謙言己無知識호대 但其告人에 雖於至愚라도 不敢不盡이라 叩는 發動也ㅣ라 兩端은 猶言兩頭니 言終始, 本末, 上下, 精粗에 無所不盡이라 ○程子ㅣ 曰聖人之敎人에 俯就之若此로대 猶恐衆人以爲高遠而不親也ㅣ라 聖人之道는 必降而自卑니 不如此면 則人不親이오 賢人之言은 則引而自高니 不如此면 則道不尊이라 觀於孔子孟子에 可見矣라 尹氏 曰聖人之言은 上下兼盡하니 卽其近이면 衆人이 皆可與知어니와 極其至면 則雖聖人이라도 亦無以可焉하니 是之謂兩端이니 如答樊遲之問仁智에 兩端竭盡하야 無餘蘊矣라 若夫語上而遺下하고 語理而遺物이면 則豈聖人之言哉리오
공자가 겸손하면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지식은 없으되 다만 그 사람을 가르침에 비록 매우 어리석더라도 감히 다하지 아니함이 없음이라. 고는 발동이라. 양단은 두 머리를 말한 것과 같으니 종시, 본말, 상하, 정조에 다하지 아니한 바가 없다는 말이라. ○정자 가라사대 성인이 사람을 가르침에 구부려 나아감이 이와 같되, 오히려 뭇사람이 높고 멀다하여 친하지 아니할까를 두려워함이라. 성인의 도는 (너무나 높기 때문에) 반드시 내려가면서 스스로 낮춰야 하니, 이와 같지 않다면 사람들이 친해지지 아니하고, 어진 사람의 말은 곧 끌어서 스스로 높이니 이와 같지 않다면 도가 높아지지 않느니라. 공자와 맹자(의 말씀)를 관찰해 보면 가히 볼 수 있음이라. 윤씨 가로대 성인의 말씀은 위 아래가 겸하여 다하니, 그 가까운데 나아가면 많은 사람들이 다 가히 참여하여 알거니와, 그 지극함에 이르러서는 비록 성인이라도 또한 써 더할 수 없으니, 이것을 일러 양단이라 하니 번지가 인과 지를 물음에 답하심이 양단을 다하여 나머지 쌓인 것(미진한 것)이 없는 것과 같음이라. 만약 무릇 위를 말하는데 아래를 버리거나 이치를 말하는데 물건을 버리면, 곧 어찌 성인의 말씀이리오.
<제8장>
子ㅣ 曰鳳鳥ㅣ 不至하며 河不出圖하니 吾已矣夫인저
공자 가라사대 봉조가 이르지 아니하며 하수에 그림이 나오지 아니하니 내 말진저.
[본문해설]
공자가 철환주유를 했지만 도가 펴지지 않아 탄식하시는 말씀이다. 세상에 성인이 나오면 봉황새가 나오고, 복희씨 때 하수에서 용마가 나왔지만, 지금은 아무것도 나오지 않으니, 아마도 스스로의 역량이 매우 부족한가보다 하면서 자책 겸 세상을 탄식하시는 말씀이다.
鳳은 靈鳥니 舜時에 來儀하고 文王時에 鳴於岐山하며 河圖는 河中龍馬ㅣ 負圖니 伏羲時에 出하니 皆聖王之瑞也ㅣ라 已는 止也ㅣ라 ○張子ㅣ 曰鳳至圖出은 文明之祥이어늘 伏羲舜文之瑞ㅣ 不至하니 則夫子之文章이 知其己矣라
봉은 영특한 새이니 순임금 때에 나와서 모습을 보이고, 문왕 때에는 기산에서 울었으며, 하도는 하수 가운데에서 용마가 그림을 지고 복희씨 때에 나왔으니 다 성왕의 상서로움이라. 이는 그침이라. ○장자 가로대 봉황이 이르고 하도가 나옴은 문명의 상서로움이거늘, 복희씨, 순임금, 문왕의 상서로움이 이르지 아니하니 곧 부자의 문장이 그 그침을 알게 됨이라.
<제9장>
子ㅣ 見齊衰者와 冕衣裳者와 與瞽者하시고 見之에 雖少ㅣ나 必作하시며 過之必趨ㅣ러시다
공자가 재최한(상복 입은) 자와 면류관과 의상 갖춘(벼슬하는) 자와 다못 소경을 보심에 볼 적에 비록 젊으나 반드시 일어나시며 지날 적에는 반드시 종종걸음을 치더시다.
齊衰는 喪服이라 冕은 冠也ㅣ오 衣는 上服이오 裳은 下服이니 冕而衣裳은 貴者之盛服也ㅣ라 瞽는 無目者라 作은 起也ㅣ라 趨는 疾行也ㅣ라 或이 曰少는 當作坐라 ○范氏 曰聖人之心에 哀有喪하고 尊有爵하며 矜不成人하야 其作與趨에 蓋有不期然而然者라 尹氏 曰此는 聖人之誠心이 內外一者也ㅣ니라
재최는 상복이라. 면은 관이오, 의는 웃옷이오, 상은 아래옷이니 면류관 쓰고 의상을 갖춤은 귀한 자의 성복이라. 고는 눈이 없음이라. 작은 일어남이라. 추는 빨리 감이라. 혹이 가로대 소는 마땅히 ‘앉을 좌’로 지어야 함이라. ○범씨 가로대 성인의 마음에 초상에는 슬퍼하고, 벼슬하는 사람은 높이며, 사람 구실을 제대로 못하는 사람은 불쌍히 여겨서 그 일어나고 종종걸음을 함에 대개 기약하지 아니하였는데도 자연 그렇게 함이라. 윤씨 가로대 이는 성인의 성심이 안과 밖으로 일치함이니라.
<제10장>
顔淵이 喟然歎曰仰之彌高하며 鑽之彌堅하며 瞻之在前이러니 忽然在後ㅣ로다
안연이 위연히 탄식하며 가로대 우러름에 더욱 높으며, 뚫음에 더욱 굳으며, 바라봄에 앞에 있더니 홀연히 뒤에 있도다.
喟는 歎聲이라 仰彌高는 不可及이오 鑽彌堅은 不可入이오 在前在後는 恍惚不可爲象이니 此는 顔淵이 深知夫子之道ㅣ 無窮盡無方體而嘆之也ㅣ라
위는 탄식하는 소리라. 앙미고는 가히 미치지 못함이오, 찬미견은 가히 들어가지 못함이오, 재전재후는 황홀하여 가히 형상하지 못함이니 이는 안연이 부자의 도가 궁진함도 없고 방체도 없음을 알고 깊이 탄식함이라.
夫子ㅣ 循循然善誘人하사 博我以文하시고 約我以禮하시니라
부자가 순순히 사람을 잘 인도하사 나를 넓게 하되 글로써 하시고, 나를 간략히 하되 예로써 하시니라.
循循은 有次序貌라 誘는 引進也ㅣ라 博文約禮는 敎之序也ㅣ라 言夫子ㅣ 道雖高妙나 而敎人有序也ㅣ라 ○侯氏 曰博我以文은 致知格物也ㅣ오 約我以禮는 克己復禮也ㅣ라 程子ㅣ 曰此는 顔子ㅣ 稱聖人最切當處니 聖人敎人에 唯此二事而已라
순순(준준)은 차서가 있는 모양이라. 유는 이끌어 나감이라. 박문약례(글로 넓혀주고, 예로 요약해줌)는 가르침의 순서라. 부자가 도가 비록 높고 신묘하나 사람을 가르침에는 순서가 있음을 말함이라. ○후씨 가로대 나를 글로써 넓혀준다는 것은 (대학의) 치지 격물이오, 나를 예로써 간략히 해준다는 것은 극기복례라. 정자 가라사대 이는 안자가 성인의 가장 절실하고 합당한 곳을 일컬음이니, 성인이 사람을 가르침에 오직 이 두 가지 일뿐이니라.
欲罷不能하야 旣竭吾才호니 如有所立이 卓爾라 雖欲從之나 末由也已로다
그만두려고 능치 못하여 이미 내 재주를 다하니, 서신 바가 우뚝서있는 것과 같음이라. 비록 따르고자 하나 (어디서부터 해야 할지) 말미암음이 없도다.
卓은 立貌라 末은 無也ㅣ라 此는 顔子ㅣ 自言其學之所至也ㅣ라 蓋悅之深하야 而力之盡호대 所見이 益親하야 而又無所用其力也ㅣ라 吳氏 曰所謂卓爾는 亦在乎日用行事之間이오 非所謂窈冥昏黙者라 程子ㅣ 曰到此地位면 工夫尤難하니 直是峻絶이오 又大段著力不得이라 楊氏 曰自可欲之謂善으로 充而至於大는 力行之積也어니와 大而化之는 則非力行所及矣니 此는 顔子所以未達一間也ㅣ라 ○程子ㅣ 曰此는 顔子所以爲深知孔子而善學之者也ㅣ라 胡氏 曰無上事而喟然嘆하니 此는 顔子ㅣ 學旣有得이라 故로 述其先難之故와 後得之由하고 而歸功於聖人也ㅣ라 高堅前後는 語道體也ㅣ오 仰鑽瞻忽은 未領其要也ㅣ라 惟夫子ㅣ 循循善誘하야 先博我以文하야 使我로 知古今, 達事變케 하시고 然後에 約我以禮하야 使我로 尊所聞, 行所知케 하시니 如行者之赴家와 食者之求飽라 是以로 欲罷不能하야 盡心盡力하야 不少休廢하니 然後에 見夫子所立之卓然하고 雖欲從之나 末由也已니라 是蓋不怠所從하야 必求至乎卓立之地也ㅣ라 抑斯歎也는 其在請事斯語之後와 三月不違之時乎인저
탁은 우뚝 서있는 모양이라. 말은 없음이라. 이는 안자가 스스로 그 학문의 이른 바를 말함이라. 대개 기쁨이 깊어서(欲罷不能) 힘을 다하되(旣竭吾才), 보는 바가 더욱 친근해져서(如有所立卓爾) 또한 그 힘을 쓸 곳이 없느니라(欲從未由). 오씨 가로대 이른바 우뚝 서 있다는 것은 또한 날로 쓰면서 행하는 일의 사이에 있는 것이고, 그윽하고 어둡고 침침하고 묵묵한 것을 이른 바가 아니니라. 정자 가라사대 이 지위에 이르면 공부가 더욱 어려우니, 곧 이것이 높은 절벽에 있는 것 같고, 또한 대단하게 힘을 부쳐도 얻기 어려움이라. 양씨 가로대 가히 하고자 하는 것이 선이라는 것으로부터 채워서 큰 데에 이르는 것은 힘써 행하면 쌓이거니와, 커져서 화한다는 것(참조 :『맹자』 盡心하편 제25장에서 맹자는 공부하여 이뤄나가는 단계를 善人 信人 美人 大人 聖人 神人의 여섯 단계로 말하였다.)은 역행의 미치는 바가 아니니, 이는 안자가 (공자보다) 한 칸 미달한 바이라. ○정자 가라사대 이는 안자가 써한 바 공자를 깊이 알고서 잘 배운 것이라. 호씨 가로대 위에 일을 말함이 없이 위연히 탄식하니 이는 안자가 이미 학문을 얻음이 있음이라. 그러므로 먼저 어려운 까닭과 뒤에 얻어진 연유를 기술하고, 공을 성인에게 돌림이라. 고(仰之彌高의 高)견(鑽之彌堅의 堅)전(瞻之在前의 前)후(忽然在後의 後)는 도체를 말함이오, 앙찬첨홀은 그 요령을 거느리지(파악하지) 못함이라. 오직 공자께서 차근차근히 잘 인도하여 먼저 글로써 나를 넓히고, 나로 하여금 고금을 알게 하시고, 사변을 통달하게 하신 연후에 나를 예로써 간략하게 해주시어 듣는 바로 높이고, 아는 바를 행하게 하여, 길을 가는 자가 집에 찾아들어가는 것과 같고 먹는 자가 배부름을 구하는 것과 같으니라. 이로써 그만두려하여도 능치 못하여 마음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잠깐이라도 쉬거나 폐하지를 아니하였으니, 그런 뒤에 선생님이 우뚝 서 있는 것을 보고는 비록 따라가고자 하나 말미암음이 없느니라. 이는 대개 따르는 바를 게을리 하지 아니하여 반드시 우뚝 서있는 땅에 이르려고 구함이라. 아니(아마도) 이 탄식은 그 ‘청컨대 이 말씀을 일삼겠습니다’라고 한 말과 ‘석 달을 어기지 않았다’는 그 때의 것인저.
窈 : 그윽할 요
자한편 제11장 ~ 제14장 해설
<제11장>
子ㅣ 疾病이어시늘 子路ㅣ 使門人으로 爲臣이러니
공자께서 병을 앓거시늘 자로가 문인으로 하여금 신하를 삼더니,
夫子ㅣ 時己去位하야 無家臣이어시늘 子路ㅣ 欲以家臣으로 治其喪하니 其意ㅣ 實尊聖人이나 而未知所以尊也ㅣ라
선생님이 당시 이미 벼슬을 떠나 가신이 없거시늘, 자로가 가신으로써 그 상을 다스리고자 하니, 그 뜻이 실제는 성인을 높인 것이나 써 높이는 바를 아지 못함이라.
病間曰久矣哉라 由之行詐也ㅣ여 無臣而爲有臣하니 吾誰欺오 欺天乎인저
병이 조금 나으심에 가라사대 오래로다, 유가 거짓을 행함이여, 신하가 없을 때에 신하를 두었으니 내가 누구를 속일고, 하늘을 속인저.
病間은 少差也ㅣ라 病時에 不知라가 旣差에 乃知其事라 故로 言我之不當有家臣을 人皆知之하니 不可欺也어늘 而爲有臣하니 則是欺天而已라 人而欺天은 莫大之罪어늘 引以自咎하시니 其責子路ㅣ 深矣시니라
병간은 조금 나음이라. 병을 앓을 떼에 아지 못하다가 이미 차도가 있음에 이에 그 일을 앎이라. 그러므로 내가 마땅히 가신을 두지 못함을 사람들이 다 아니 가히 속이지 못하거늘 신하를 두었으니 이는 하늘을 속인 것이라고 말씀함이라. 사람이 하늘을 속임은 막대한 죄이거늘 이끌어서 써 스스로 허물로 하시니 그 자로를 꾸짖으심이 깊으시니라.
且予ㅣ 與其死於臣之手也론 無寧死於二三子之手乎아 且予ㅣ 縱不得大葬이나 予ㅣ 死於道路乎아
또한 내가 그 신하의 손에서 죽음으로 더불온 차라리 너희들의 손에서 죽는 것이 낫지 않으랴. 또한 내가 장사는 얻지 못하나 내가 도로에서 죽으랴.
無寧은 寧也ㅣ라 大葬은 謂君臣禮葬이오 死於道路는 謂棄而不葬이니 又曉之以不必然之故라 ○范氏 曰曾子ㅣ 將死에 起而易簀曰吾得正而斃焉이면 斯已矣라 하시니 子路ㅣ 欲尊夫子로대 而不知無臣之不可爲有臣이라 是以로 陷於行詐하야 罪至欺天하니 君子之於言動이 雖微나 不可不謹이니라 夫子ㅣ 深懲子路는 所以警學者也ㅣ라 楊氏 曰非知至而意誠이면 則用智自私하야 不知行其所無事하야 往往에 自陷於行詐欺天하고도 而莫之知也하니 其子路之謂乎인저
무녕은 차라리라. 큰 장사는 군신의 예장을 이름이오, 도로에서 죽는다는 것은 버려두고 장사지내지 않음을 이름이니, 또한 반드시 그렇게 할 까닭이 없다는 것으로써 깨우치심이라. ○범씨 가로대 증자가 장차 돌아가실 적에 일어나 자리를 바꾸어 가라사대 내가 바름을 얻어 죽으면 이것일 뿐이다 하시니, 자로가 부자를 높이고자 했음이로되 신하가 없을 때에 가히 신하를 두어서는 아니됨을 아지 못함이라. 이로써 거짓을 행하는 데에 빠져서 죄가 하늘을 속이는 데에 이르니, 군자의 행동이 비록 미미하나 가히 삼가지 아니치 못하니라. 부자가 자로를 깊이 꾸짖음은 배우는 자를 깨우치는 바라. 양씨 가로대 이를 데를 알아서 뜻을 성실히 하지 않는다면, 지혜를 씀이 스스로 사사로워서 그 일없는 바를 행함을 아지 못하여, 이따금 스스로 하늘을 속이는 데에 빠지면서도 아지 못하니 그 자로를 이름인저.
簀 : 자리 책, 살평상 책 易簀 : 죽음을 말함 斃 : 죽을 폐
<제12장>
子貢이 曰有美玉於斯하니 韞匵而藏諸잇가 求善賈而沽諸잇가 子ㅣ 曰沽之哉沽之哉나 我는 待賈者也ㅣ로라
자공이 가로대 아름다운 옥이 이에 있으니 독에 감춰두리잇가, 좋은 값을 구해서 팔으리잇가? 공자 가라사대 팔아야 하나, 팔아야 하나, 나는 값을 기다리는 자이로라.
韞 : 감출 온 匵 : 궤 독 匱 : 함 궤, 삼태기 궤 沽 : 팔 고
[본문 해설]
자공이 공자를 세상에 매우 아름다운 옥이라고 비유하면서 묻는 내용이다. 이에 공자가 팔기는 팔아야 하나 헐값에는 팔지 않겠노라고 답변한다.
韞은 藏也ㅣ오 匵은 匱也ㅣ오 沽는 賣也ㅣ라 子貢이 以孔子ㅣ 有道不仕故로 設此二端하야 以問也ㅣ라 孔子ㅣ 言固當賣之로대 但當待賈요 而不當求之耳니라 ○范氏 曰君子ㅣ 未嘗不欲仕也언마는 又惡不由其道하니 士之待禮ㅣ 猶玉之待賈也ㅣ라 若伊允之耕於野와 伯夷太公之居於海濱에 世無成湯文王인들 則終焉而已니 必不枉道以從人하야 衒玉而求售也ㅣ라
온은 감춤이오, 독은 궤요, 고는 팖이라. 자공이 공자가 도가 있는데도 벼슬을 하지 않는 까닭으로 이 두 가지 단서를 가설해서 써 물음이라. 공자가 말씀하심은 진실로 마땅히 값을 기다리고 마땅히 구하지는 않느니라. ○범씨 가로대 군자가 일찍이 벼슬을 하고자 않고자 아니하건마는 또한 그 도로 말미암지 않음을 미워하니 선비가 예를 기다림이 옥의 값을 기다림과 같음이라. 이윤이 들에서 농사지을 적과 백이와 태공이 바닷가에 거할 적에 세상에 탕임금과 문왕이 없었던들 (세상을) 마쳤을 뿐이니, 반드시 도를 굽혀서 써 사람을 따라 옥을 팔고 값을 구하지 않음이라.
衒 : 팔 현 售 : 팔 수, 값 수
<제13장>
子ㅣ 欲居九夷러시니
공자께서 구이에 거하고자 하더시니
東方之夷에 有九種이라 欲居之者는 亦乘桴浮海之意라
동방의 이족에 아홉 종류가 있음이라. 거하고자 하는 것은 또한 뗏목을 타고 바다에 뜬다는 뜻이라.
[앞주해설]
이족의 아홉 종류는 『後漢書』 東夷傳에 “畎夷 于夷 方夷 黃夷 白夷 赤夷 玄夷 風夷 陽夷”를 열거하고 있다.
或曰陋커니 如之何잇고 子ㅣ 曰君子ㅣ 居之면 何陋之有ㅣ리오
혹이 가로대 누추하거니 어찌하리잇고? 공자 가라사대, 군자가 거하면 어찌 누추함이 있으리오.
君子所居則化이니 何陋之有리오
군자가 거한즉 화해지니 어찌 누추함이 있으리오.
<제14장>
子ㅣ 曰吾ㅣ 自衛反魯然後에 樂正하야 雅頌이 各得其所하니라
공자 가라사대 내가 위나라로부터 노나라로 돌아온 뒤에 악이 바루어져 아와 송이 각각 그 곳을 얻었느니라.
魯哀公十一年冬에 孔子ㅣ 自衛反魯하시니 是時에 周禮在魯라 然이나 詩樂이 亦頗殘缺失次어늘 孔子ㅣ 周流四方하사 參互考訂하야 以知其說이러시니 晩知道終不行이라 故로 歸而正之하시니라
노나라 애공 11년 겨울에 공자가 위나라에서 노나라로 돌아오시니 이때에 주례가 노나라에 있음이라. 그러나 시와 악이 또한 자못 쇠잔하고 이지러져 차례를 잃었거늘 공자가 사방을 떠돌아다니셔서 참여하여 서로 고정하여 써 그 말을 알게 하시더니, 느즈막에 도가 마침에 행해지지 못할 것을 아심이라. 그러므로 돌아와서 바로하심이라(시와 악을 완전히 정리하심이라).
자한편 제15장 ~ 제20장 해설
<제15장>
子ㅣ 曰出則事公卿하고 入則事父兄하며 喪事를 不敢不勉하며 不爲酒困이 何有於我哉오
공자 가라사대 나가면 공경을 섬기고, 들어가면 부형을 섬기며, 상사를 감히 힘쓰지 아니치 못하며, 술에 곤함(빠짐)이 되지 않음이, 무엇이 나에게 있으리오.
說見第七篇이라 然이나 此則其事ㅣ 愈卑而意愈切矣라
설명이 제7편에 나타나니라. 그러나 이것은 그 일이 더욱 낮으면서 뜻은 더욱 간절함이라.
<제16장>
子ㅣ 在川上曰逝者ㅣ 如斯夫저 不舍晝夜ㅣ로다
공자가 냇물 위에 있으면서 가라사대 가는 것이 이같은저! 주야로 쉬지 않는도다.
天地之化ㅣ 往者는 過하고 來者ㅣ 續하야 無一息之停하니 乃道體之本然也ㅣ라 然이나 其可指而易見者ㅣ 莫如川流라 故로 於此에 發以示人하사 欲學者로 時時省察而無毫髮之間斷也ㅣ라 ○程子ㅣ 曰此는 道體也ㅣ라 天運而不已하야 日往則月來하고 寒往則暑來하며 水流而不息하고 生物而不窮하니 皆與道爲體하야 運乎晝夜하야 未嘗已也ㅣ라 是以로 君子ㅣ 法之하야 自强不息하나니 及其至也하야는 純亦不已焉이라 又曰自漢以來로 儒者ㅣ 皆不識此義하니 此見聖人之心이 純亦不已也ㅣ라 純亦不已는 乃天德也ㅣ니 有天德이라야 便可語王道니 其要는 只在謹獨이니라 愚는 按自此至終篇이 皆勉人進學不已之辭라
천지의 화함이 가는 것은 지나고 오는 것은 계속하여 한번도 쉬면서 머묾이 없으니 이것이 도체의 본연이라. 그러나 그 가히 가리켜서 쉽게 볼 수 있는 것은 냇물 흐르는 것만 같음이 없느니라. 그러므로 이에 발표하여서 사람에게 보이니 배우는 자가 때때로 성찰하여 터럭만큼이라도 사이가 끊어짐이 없고자 함이라. ○정자 가라사대 이는 도의 체라. 하늘이 운행하여 쉬지 아니하여 날이 가면 달이 오고, 추위이 가면 더위가 오며, 물을 흐르며 쉬지 아니하고, 물건이 나옴에 궁함이 없으니, 다 도와 더불어 체가 되어 밤낮으로 운행하여 일찍이 그치지 아니함이라. 이로써 군자가 본받아 스스로 힘써 쉬지 아니하나니 그 지극함에 미쳐서는 순전하여 또한 그만두지 아니하니라(純亦不已). 또 가라사대 한나라로부터 이래로 유자가 다 이 뜻을 아지 못하니, 이에 성인의 마음이 순역불이함을 볼 수 있음이라. 순역불이는 이에 천덕이니 천덕이 있어야 문득 가히 왕도를 말할지니 그 중요함은 다만 근독에 있느니라. 어리석은 내가 상고하건대 이로부터 종편에 이르기까지 다 사람에게 학문에 나아감에 그만두지 않도록 힘쓰게 한 말이라.
<제17장>
子ㅣ 曰吾未見好德이 如好色者也케라
공자 가라사대 내가 덕을 좋아함이 색을 좋아함과 같은 자를 보지 못케라.
謝氏 曰好好色, 惡惡臭는 誠也ㅣ니 好德을 如好色은 斯盛好德矣라 然이나 民鮮能之니라 ○史記에 孔子ㅣ 居衛하실새 靈公이 與夫人으로 同車하고 使孔子로 爲次乘하야 招搖市過之한대 孔子醜之라 故로 有是言이라
사씨 가로대 좋은 색을 좋아하고 나쁜 냄새를 싫어함은 정성이니, 덕 좋아함을 색 좋아하는 것과 같이 함은 이것이 진실로 덕을 좋아함이라. 그러나 백성이 능한 이가 드무니라. ○『사기』에 공자가 위나라에 거하실 적에 영공이 부인과 더불어 수레를 같이 타고, 공자로 하여금 다음 수레를 타게 하고, 초요하면서(이 사람 저 사람을 부르고 손과 몸을 흔들며 요란을 피워대면서) 시장을 지나가니, 공자가 추하게 여김이라. 그러므로 이 말씀을 하심이라.
<제18장>
子ㅣ 曰譬如爲山에 未成一簣하야 止도 吾止也ㅣ며 譬如平地에 雖覆一簣나 進도 吾往也ㅣ니라
공자 가라사대 비유컨대 산을 쌓음에 한 삼태기로 이루지 못하여 그침도 내가 그침이며, 비유컨대 평지에 비록 한 삼태기를 엎으나 나아감도 내가 감이라.
[본문 해설]
『서경』 주서편 여오(旅獒)장에 “爲山九仞에 功虧一簣”라 하였고, 『맹자』盡心上편 제29장에 “爲井九仞而未及泉이면 猶爲棄井也니라(우물을 아홉 길을 파고 샘물에 이르지 못하면 오히려 우물을 버리게 되니라)”하였듯이 끝을 이루지 아니하면 지난 공이 다 아깝게 되는데, 이 모든 것은 자기 자신에게 달린 문제이다. 시작하는 것도 내가 하는 것이고, 중도에 그만 두는 것은 내가 하는 것이고, 끝을 맺어 성공하는 것도 내게 달린 것이다.
簣는 土籠也ㅣ라 書에 曰爲山九仞에 功虧一簣라 하니 夫子之言이 蓋出於此라 言山成而但少一簣하야 其止者도 吾自止耳요 平地而方覆一簣하야 其進者도 吾自往이니 蓋學者ㅣ 自强不息이면 則積少成多하고 中道而止면 則前功盡棄니 其止其往이 皆在我而不在人也ㅣ니라
궤는 흙으로 만든 바구니라. 『서경』에 산 아홉 길을 만듦에 공이 한 삼태기에서 이지러진다 하니, 부자의 말씀이 대개 이에서 나옴이라. 말하되 산을 이루는데 다만 한 삼태기가 적어 그 그치는 것도 내가 스스로 그침이오, 평지에 바야흐로 삼태기를 들어부어서 그 나아감도 내 스스로 감이니, 대개 배우는 자가 스스로 힘써 쉬지 아니하면 작은 것을 쌓아서 많음을 이루고, 중도에서 그치면 앞의 공이 다 버려지니, 그 그침과 그 감이 다 내게 있지 남에게 있음이 아니니라.
<제19장>
子ㅣ 曰語之而不惰者는 其回也與인저
공자 가라사대 말함에 게을리 않는 자는 그 회인저!
惰는 懈怠也ㅣ라 范氏 曰顔子ㅣ 聞夫子之言하고 而心解力行하야 造次顚沛라도 未嘗違之하니 如萬物이 得時雨之潤하야 發榮滋長하니 何有於惰리오 此는 群弟子ㅣ 所不及也ㅣ라
타는 게으름이라. 범씨 가로대 안자가 부자의 말씀을 듣고 마음에 풀어 힘써 행하여 잠깐 엎어지고 미끄러지는 사이라도(위급하고 황급한 상황이더라도) 일찍이 어기지 아니하니, 마치 만물이 때로 내린 비로 윤택함을 얻어 활짝 피어나 싱싱하게 자라나니, 어찌 게으름을 피우리오. 이는 모든 제자가 미치지 못하는 바이라.
<제20장>
子ㅣ 謂顔淵曰惜乎ㅣ라 吾見其進也ㅣ오 未見其止也호라
공자 안연에게 일러 가라사대, 아깝도다. 내 그 나아감을 보았고 그 그침은 보지 못했노라.
進止二字는 說見上章이라 顔子ㅣ 旣死에 而孔子ㅣ 惜之하사 言其方進而未已也ㅣ시라
進止 두 글자는 설명이 윗장에 나타나니라. 안자가 이미 죽은 뒤에 공자가 애석히 여기시면서 그 바야흐로 나아가고 그치지 아니함을 말씀하심이라.
자한편 제21장 ~ 제25장 해설
<제21장>
子ㅣ 曰苗而不秀者ㅣ 有矣夫ㅣ며 秀而不實者ㅣ 有矣夫인저
공자 가라사대 싹이 나고 (이삭이) 패지 않는 것이 있으며, (이삭이) 패고도 여물지 않은 것이 있을진저.
穀之始生曰苗요 吐華曰秀요 成穀曰實이니 蓋學而不至於成이 有如此者라 是以로 君子ㅣ 貴自勉也ㅣ니라
곡식이 처음 나는 것을 가로대 묘라 하고, 꽃을 토해내는 것을 가로대 수라 하고, 곡식이 이룬 것을 가로대 실이라 하니, 대개 배우고 성공에 이르지 못한 것이 이와 같음이 있음이라. 이로써 군자가 스스로 힘씀을 귀히 여기니라.
<제22장>
子ㅣ 曰後生이 可畏니 焉知來者之不如今也ㅣ리오 四十五十而無聞焉이면 斯亦不足畏也已니라
공자 가라사대 후생이 가히 두려우니 어찌 오는(태어나는) 자가 지금 (나만) 같지 못함을 알리오. 사십, 오십이 되어도 (세상에) 들림이 없으면 이 또한 족히 두렵지 않느니라.
孔子ㅣ 言後生이 年富力彊하야 足以積學而有待하야 其勢可畏하니 安知其將來에 不如我之今日乎아 然이나 或不能自勉하야 至於老而無聞이면 則不足畏矣라 言此以警人하야 使及時勉學也ㅣ시니라 曾子ㅣ 曰五十而不以善聞이면 則不聞矣라 하시니 蓋述此意라 尹氏 曰少而不勉하야 老而無聞이면 則亦已矣니 自少而進者ㅣ 安知其不至於極乎아오 是可畏也ㅣ니라
공자가 말씀하심은 후생이 연부역강(나이가 한참 때에 힘이 강한 젊을 때를 말함)하여 족히 써 학문을 쌓고 (때를) 기다림이 있어 그 기세가 가히 두려우니, 어찌 그 장래에 나의 오늘만 같지 못함을 알리오. 그러나 혹 능히 스스로 힘쓰지 아니하여 늙음에 이르러서 들림이 없으면(이름을 내지 못하면) 족히 두렵지 않느니라. 말하건대 이로써 사람을 깨우쳐 때에 미쳐 학문에 힘쓰게 하심이라. 증자 가라사대 오십에 선한 들림이 없으면 들리지 못함이라(더 이상 세상에 이름내기는 어렵다) 하시니 대개 이 뜻을 기술함이라. 윤씨 가로대 젊어서 힘쓰지 아니하여 늙어서 들림이 없으면 또한 끝이니, 젊어서부터 나아가는 자가 어찌 그 극도에 이르지 않을 것을 알리오. 이에 가히 두려우니라.
<제23장>
子ㅣ 曰法語之言은 能無從乎아 改之爲貴니라 巽與之言은 能無說乎아 繹之爲貴니라 說而不繹하며 從而不改면 吾末如之何也已矣니라
공자 가라사대 법으로 말한 말은 능히 따름이 없으랴. 고침이 귀함이 되니라. 공순히 더불어 말함은 능히 기쁨이 없으랴. (실마리를 찾아) 계속함이 귀함이 되니라. 기뻐하면서 이어나가지 아니하며, 따르기만 하고 고치지 아니하면, 내 어찌할 수 없느니라.
法語者는 正言之也ㅣ오 巽言者는 婉而導之也ㅣ라 繹은 尋其緖也ㅣ라 法言은 人所敬憚이라 故로 必從이라 然이나 不改則面從而已요 巽語는 無所乖悟라 故로 心說이라 然이나 不繹則又不足以知其微意之所在也ㅣ라 ○楊氏 曰法言은 若孟子論行王政之類ㅣ 是也ㅣ오 巽言은 若其論好貨好色之類ㅣ 是也ㅣ라 語之而不達하며 拒之而不受는 猶之可也ㅣ어니와 其或喩焉이면 則尙庶幾其能改繹矣라 從且說矣이오 而不改繹焉이면 則是終不改繹也已니 雖聖人이라도 其如之何哉리오
법어라는 것은 바르게 말함이오, 손언이라는 것은 순하게 인도함이라. 역은 그 실마리를 찾음이라. 법언은 사람이 공경하면서 꺼리는 바라. 그러므로 반드시 따름이라. 그러나 고치지 아니하면 얼굴만 따를 뿐이오, 손언은 어긋나고 거스리는 바가 없음이라. 그러므로 마음이 기쁨이라. 그러나 실마리를 이어나가지 않는다면 또한 족히 써 그 은미한 뜻이 있는 곳을 알지 못하니라. ○양씨 가로대 법언은 맹자가 왕도정치를 행하는 것을 논하는 유가 이것이고, 손언은 그 재물을 좋아하고 색을 좋아하는 것을 논하는 유가 이것이라. 말만 하고 달하지 못하며 막기만 하고 받아들이지 못함은 오히려 가하거니와, 그 혹 깨우치면 곧 오히려 거의 능히 고치고 실마리를 찾아 이어나갈 수 있음이라. 따르며 기뻐하고 고쳐서 이어나가지 아니한다면, 이는 마침내 고치고 이어나가지 못할 뿐이니 비록 성인이라도 그 어찌하리오.
<제24장>
子ㅣ 曰主忠信하며 毋友不如己者ㅣ오 過則勿憚改니라
공자 가라사대 충성되고 미쁨을 주장하며, 나만 못한 자를 벗 삼지 말고, 허물이 있으면 고침을 꺼리지 말지니라.
重出而逸其半이라
거듭 나와서(학이편 제8장) 그 반은 빠짐이라.
<제25장>
子ㅣ 曰三軍은 可奪帥也ㅣ어니와 匹夫는 不可奪志也ㅣ니라
공자 가라사대 삼군은 가히 장수(의 머리)를 빼앗을 수 있거니와 한 지아비는 가히 뜻을 빼앗지 못하니라.
侯氏 曰三軍之勇은 在人이오 匹夫之志는 在己라 故로 帥可奪이오 而志不可奪이니 如可奪則亦不足謂之志矣라
후씨 가로대 삼군의 용맹은 사람에게 있고, 필부의 뜻은 자기에 있음이라. 그러므로 장수는 가히 빼앗을 수 있거니와 뜻은 가히 빼앗지 못하니 만약에 가히 빼앗을 수 있다면 또한 족히 뜻이라 이르지 못하니라.
자한편 제26장 ~ 제30장 해설
<제25장>
子ㅣ 曰三軍은 可奪帥也ㅣ어니와 匹夫는 不可奪志也ㅣ니라
공자 가라사대 삼군은 가히 장수(의 머리)를 빼앗을 수 있거니와 한 지아비는 가히 뜻을 빼앗지 못하니라.
侯氏 曰三軍之勇은 在人이오 匹夫之志는 在己라 故로 帥可奪이오 而志不可奪이니 如可奪則亦不足謂之志矣라
후씨 가로대 삼군의 용맹은 사람에게 있고, 필부의 뜻은 자기에 있음이라. 그러므로 장수는 가히 빼앗을 수 있거니와 뜻은 가히 빼앗지 못하니 만약에 가히 빼앗을 수 있다면 또한 족히 뜻이라 이르지 못하니라.
<제26장>
子ㅣ 曰衣敝縕袍하야 與衣狐貉者로 立而不恥者는 其由也與인저
공자 가라사대 떨어진 도포를 입고서 여우가죽과 담비가죽으로 만든 갖옷을 입은 자와 더불어 함께 서있어도 부끄럽지 않는 자는 그 유인저!
縕 : 헌솜 온 縕袍(온포) : 묵은 솜을 둔 도포 貉 : 담비 락
敝는 壞也ㅣ라 縕은 枲著也ㅣ라 袍는 衣有著者也ㅣ니 蓋衣之賤者라 狐貉은 以狐貉之皮로 爲裘니 衣之貴者라 子路之志如此하니 則能不以貧富로 動其心而可以進於道矣라 故로 夫子ㅣ 稱之하시니라
폐는 떨어짐이라. 온은 시저(모시풀)이라. 포는 옷에 나타남(얼룩얼룩한 무늬)이 있는 것이니 대개 옷이 천한 자라. 호락은 여우와 담비의 가죽으로써 만든 갖옷이니 옷의 귀한 것이라. 자로의 뜻이 이와 같으니 빈부로써 그 마음을 움직일 수 없으니 가히 써 도에 나아갈 수 있음이라. 그러므로 공자가 칭찬하심이라.
枲 : 모시풀 시
不忮不求ㅣ면 何用不臧이리오
해롭게도 아니하고 구하지도(탐내지도) 아니하면 어찌 써 착하지 아니하리오.
忮 : 해칠 기
忮는 害也ㅣ라 求는 貪也ㅣ라 臧은 善也ㅣ라 言能不忮不求면 則何爲不善乎아 此는 衛風雄雉之詩니 孔子ㅣ 引之하사 以美子路也ㅣ시니라 呂氏 曰貧與富交에 彊者는 必忮하고 弱者는 必求니라
기는 해침이라. 구는 탐함이라. 장은 선함이라. (시기하여) 해치지도 않고 (내게 없다고 하여) 탐내지도 아니하면 어찌 선하지 아니하랴고 말함이라. 이는 『시경』 위풍장 웅치의 시이니 공자가 이끌어서 써 자로를 아름다이 여기시니라. 여씨 가로대 가난함과 부함의 사귐에(교차점에) 강한 자는 반드시 해롭게 하고 약한 자는 반드시 구하니라.
子路ㅣ 終身誦之한대 子ㅣ 曰是道也ㅣ 何足以臧이리오
자로가 종신토록 그것(不忮不求 何用不臧)을 외운대 공자 가라사대 이 도가 어찌 족히 써 (전체적으로) 착하다 하리오.
終身誦之면 則自喜其能하야 而不復求進於道矣라 故로 夫子ㅣ 復言此以警之시니라 ○謝氏 曰恥惡衣惡食은 學者之大病이니 善心不存이 蓋由於此라 子路之志ㅣ 如此하니 其過人이 遠矣라 然이나 以衆人而能此면 則可以爲善矣어니와 子路之賢은 宜不止此어늘 而終身誦之면 則非所以進於日新也ㅣ라 故로 激而進之시니라
종신토록 외우면 곧 스스로 그 능함을 기뻐하여 다시는 도를 구하여 나아가지 않음이라. 그러므로 공자가 다시 이것을 말씀함으로써 깨우쳐주시니라. ○사씨 가로대 추한 옷과 추한 음식을 부끄러이 여김은 배우는 자의 큰 병이니 선한 마음이 존하지 않음이 대개 이에서 말미암음이라. 자로의 뜻이 이와 같으니 그 사람을(보통사람보다) 지나침이 멂이라. 그러나 보통 사람이 이에 능하면 곧 가히 써 선을 할 수 있거니와, 자로의 어짊은 마땅히 이에 그치지 않아야 하거늘 종신토록 외운다면 날로 새로이 나아가는 바가 없음이라. 그러므로 격동시켜(고무진작시켜) 나아가게 하심이라.
<제27장>
子ㅣ 曰歲寒然後에 知松柏之後彫也ㅣ니라
공자 가라사대 해가 추운 연후에 소나무와 잣나무가 후에 시듦을 아니라.
范氏 曰小人之在治世에 或與君子로 無異로대 惟臨利害, 遇事變然後에 君子之所守를 可見也ㅣ라 ○謝氏 曰士窮에 見節義요 世亂에 識忠臣이니 欲學者는 必周于德이라
범씨 가로대 소인이 세상을 다스릴 적에 혹 군자와 다름이 없되 오직 이해에 임하고, 사변을 만난 연후에 군자의 지키는 바를 가히 볼 수 있음이라. ○사씨 가로대 선비가 궁함에 절의를 보고, 세상이 어지러움에 충신을 알게 되니, 배우고자 하는 자는 반드시 덕에 두루해야 하니라.
<제28장>
子ㅣ 曰知者는 不惑하고 仁者는 不憂하고 勇者는 不懼ㅣ니라
공자 가라사대 지혜로운 자는 의혹되지 아니하고, 어진 자는 근심하지 아니하고 용감한 자는 두려워하지 아니하니라.
明足以燭理라 故로 不惑이오 理足以勝私라 故로 不憂요 氣足以配道義라 故로 不懼니 此는 學之序也ㅣ라
밝음은 족히 써 이치를 밝히니라. 그러므로 의혹되지 아니하고, 이치는 족히 써 사사로움을 이기니라. 그러므로 근심하지 아니하고, 기운은 족히 써 도의에 짝이 되니라. 그러므로 두려워하지 아니하니 이는 배움의 순서니라.
<제29장>
子ㅣ 曰可與共學이오도 未可與適道ㅣ며 可與適道ㅣ오도 未可與立이며 可與立이오도 未可與權이니라
공자 가라사대 가히 더불어 한가지로 배우더라도 가히 더불어 도에 가지 못하며, 가히 더불어 도에 가더라도 가히 더불어 서지 못하며, 가히 더불어 서더라도 가히 더불어 저울질하지 못하니라.
可與者는 言其可與共爲此事也ㅣ라 程子ㅣ 曰可與共學은 知所以求之也ㅣ오 可與適道는 知所往也ㅣ오 可與立者는 篤志固執而不變也ㅣ라 權은 稱錘也ㅣ니 所以稱物而知輕重者也ㅣ라 可與權은 謂能權輕重하야 使合義也ㅣ라 ○楊氏 曰知爲己면 則可與共學矣오 學足以明善然後에 可與適道요 信道篤然後에 可與立이오 知時措之宜然後에 可與權이니라 洪氏 曰易九卦에 終於巽以行權하니 權者는 聖人之大用이라 未能立而言權이면 猶人未能立而欲行하야 鮮不仆矣라 程子ㅣ 曰漢儒ㅣ 以反經合道로 爲權이라 故로 有權變權術之論하니 皆非也ㅣ라 權은 只是經也ㅣ니 自漢以下로 無人識權字라 愚는 按先儒ㅣ 誤以此章으로 連下文, 偏其反而爲一章이라 故로 有反經合道之說하니 程子ㅣ 非之ㅣ 是矣라 然이나 以孟子嫂溺授之以手之義로 推之면 則權與經을 亦當有辨이라
가히 더분다는 것은 그 가히 더불어 한 가지로 이 일을 함을 말함이라. 정자 가라사대 가히 더불어 한가지로 배운다는 것은 써 구하는 것을 앎이오, 가히 더불어 도에 간다는 것은 가는 바를 앎이오, 가히 더불어 선다는 것은 뜻을 돈독히 하고 고집하여 변하지 않음이라. 권은 저울대와 저울추이니 써한 바 물건을 저울질하여 경중을 아는 것이라. 가히 더불어 저울질함은 능히 경중을 저울질하여 의리에 합하게 함이라. ○양씨 가로대 자기를 위한다는 것(爲己之學)을 알면 가히 더불어 한가지로 배움이오, 배움이 족히 써 선을 밝힌 연후에 가히 더불어 도에 가는 것이고, 도를 믿음을 돈독히 한 연후에 가히 더불어 설 수 있고, 때로 마땅히 두는 것을 안 연후에 가히 더불어 저울질하니라. 홍씨 가로대 주역 구덕(삼진)괘에 마침내 공순함으로써 권도를 행하니, 권이라는 것은 성인의 크게 씀이라. 능히 서지 못하고 저울질을 말하면 ,오히려 사람이 능히 서지 못하고 가고자 하여도 넘어지지 않을 자 드무니라. 정자 가라사대 한나라 선비가 반경합도(법을 돌이켜 도에 합치시킴)로써 권도를 삼음이라. 그러므로 권변권술(권모술수)의 의논이 있으니 다 그릇됨이라. 권은 다만 법도이니 한나라로부터 아래로 사람이 ‘權’자를 알지 못했느니라. 어리석은 내가 상고하건대 앞선 선비들이 이 문장(29장)으로써 아랫글(30장) ‘偏其反 ’을 한 장으로 삼았으니 잘못됐음이라. 그러므로 反經合道의 설이 있으니 정자가 그르다고 한 것이 옳도다. 그러나 맹자(離婁章 上편 제17장 참조)가 아주머니가 물에 빠졌을 때 손으로써 잡아당기는 의리로서 미루어본다면, 권도(임시방편적임)와 더불어 법도(經, 일정한 법도) 는 또한 마땅히 분별이 있어야 함이라.
仆 : 엎드릴 부
[앞주 해설]
“易九卦에 終於巽以行權”은 『주역』 계사하전 제7장의 내용으로 중고(中古)의 성인인 문왕과 주공이 후세를 근심하여 역을 지었는데, 공자는 그 근심한 바를 해결하려면 다음과 같이 아홉 가지 덕을 갖춘 괘(履謙復恒損益困井巽)들이 필요하다고 하였다(대산주역강의 3권, 257쪽~272쪽 참조).
履는 德之基也ㅣ오 謙은 德之柄也ㅣ오 復은 德之本也ㅣ오 恒은 德之固也ㅣ오 損은 德之修也ㅣ오 益은 德之裕也ㅣ오 困은 德之辨也ㅣ오 井은 德之地也ㅣ오 巽은 德之制也ㅣ라
[九德 一陣] 履()는 덕의 터요, 謙()은 덕의 자루요, 復()은 덕의 근본이오, 恒()은 덕의 굳음이오, 損()은 덕의 닦음이오, 益()은 덕의 넉넉함이오, 困()은 덕의 분별함이오, 井()은 덕의 땅이오, 巽()은 덕의 지음이라.
履는 和而至하고 謙은 尊而光하고 復은 小而辨於物하고 恒은 雜而不厭하고 損은 先難而後易하고 益은 長裕而不設하고 困은 窮而通하고 井은 居其所而遷하고 巽은 稱而隱하니라
[九德 二陣] 履는 화하되 지극하고, 겸은 높되 빛나고, 복은 작되 물건을 분별하고, 항은 섞이되 싫어하지 아니하고, 손은 먼저는 어렵되 나중은 쉽고, 익은 길고 넉넉하되 베풀지 아니하고, 곤은 궁하되 곤하고, 정은 그 장소에 거처하되 (샘물이) 옮겨가고, 손은 맞추되(저울질하되) 숨기니라.
履以和行코 謙以制禮코 復以自知코 恒以一德코 損以遠害코 益以興利코 困以寡怨코 井以辨義코 巽以行權하나니라
[九德 三陣] 履로써 화하게 행하고, 謙으로써 예를 짓고, 복으로써 스스로 알고, 항으로써 덕을 한결같이 하고, 손으로써 해를 멀리하고, 익으로써 利를 일으키고, 곤으로써 원망을 적게 하고, 정으로써 의를 분별하고, 손으로써 권세를 행하니라.
이를 낙서구궁수리의 그림으로 나타내면 다음과 같다.
제1진
恒(4巽)巽(9離)謙(2坤)復(3震)損(5中)困(7兌)井(8艮)履(1坎)益(6乾)
제2진
巽(4巽)損(9離)困(2坤)井(3震)履(5中)復(7兌)恒(8艮)益(1坎)謙(6乾)
제3진
井(4巽)恒(9離)益(2坤)困(3震)巽(5中)謙(7兌)復(8艮)損(1坎)履(6乾)
위의 내용을 낙서구궁수리의 이치인 一坎 二坤 三震 四巽 五中 六乾 七兌 八艮 九離에 의거하여 제1진→제2진(卍往)→제3진(卍來)의 순으로 펼쳐 나가는 것을 살펴보면, 履는 1→5→6으로, 謙은 2→6→7로, 復은 3→7→8로, 恒은 4→8→9로, 損 은 5→9→1로, 益은 6→1→2로, 困은 7→2→3으로, 井은 8→3→4로, 巽은 9→4→5로 나아가 巽이 마침내 가운데 황극에 자리하여 권도를 행함(終於巽以行權)을 볼 수 있다.
<제30장>
唐棣之華ㅣ여 偏其反而로다 豈不爾思ㅣ리오마는 室是遠而니라
당체의 꽃이여, 그 나부끼도다. 어찌 너를 생각지 아니하리오마는 집이 이 머니라.
唐棣는 郁李也ㅣ라 偏은 晉書에 作翩이니 然則反도 亦當與翻으로 同이니 言華之搖動也ㅣ라 而는 助語也ㅣ라 此는 逸詩也ㅣ니 於六義에 屬興이라 上兩句는 無意義로대 但以起下兩句之辭耳니 其所謂爾는 亦不知其何所指也ㅣ라
당체는 우북한 오얏이라. 편은 진서에 ‘나부낄 편’으로 지었으니 그렇다면 反도 또한 마땅히 ‘뒤집을 번’과 더불어 같으니 꽃이 흔들림을 말함이라. 이는 어조사라. 이는 (시경 삼백편에서) 빠진 시이니, 육의(興 賦 比 興而賦 興而比 比而興)에는 흥에 속에 있음이라. 위의 두 글귀는 별다른 뜻이 없으되, 다만 써 아래 두 글귀를 일으킨(흥기시킨) 말이니 그 이른바 너라는 것은 또한 그 어느 곳을 가리킨 것인지는 아지 못하니라.
[앞주 해설]
위의 시는 『시경』에서 빠진 시로 구체적인 의미가 무엇인지는 잘 알지 못지만, 적어도 다음의 공자 말씀을 이끌어내기 위해 흥기시킨 시이다. 곧 네 집이 멀다는 것은 곧 도를 말하는 것으로 도가 멀어서 하지 못하겠다고 말은 하지 말라는 뜻이다. 꽃이 흩날리면 먼 곳에 있는 사랑하는 애인을 생각하고 한걸음에라도 달려가듯이, 도를 생각하지 않아서 그렇지, 도를 생각한다면 결코 그 도가 멀어서 행하지 못한다는 소리는 못할 것이다.
子ㅣ 曰未之思也ㅣ언정 夫何遠之有리오
공자 가라사대 생각하지 않을지언정 무릇 어찌 멂이 있으리오.
夫子ㅣ 借其言而反之하시니 蓋前篇仁遠乎哉之意라 ○程子ㅣ 曰聖人이 未嘗言易하야 以驕人之志하시고 亦未嘗言難하야 以阻人之進하시고 但曰未之思也ㅣ언정 夫何遠之有리오 하시니 此言은 極有涵蓄하야 意思ㅣ 深遠이라
공자가 그 말을 빌려서 반복하시니 대개 전편의 '인이 멀랴‘라는 뜻이라. ○정자 가라사대 성인이 일찍이 쉽게 말하여 써 사람을 교만하게 하지 않으시고 또한 일찍이 어렵게 말하여 써 사람이 나아감을 막지 않으시고, 다만 가라사대 생각하지 않을지언정 무릇 어찌 멂이 있으리오 하시니 이 말씀은 지극히 함축이 있어서 뜻과 생각이 깊고 멂이라.
향당제10(鄕黨第十) 본문
論語集註卷之十 鄕黨第十
<제1절>
孔子ㅣ 於鄕黨에 恂恂如也하사 似不能言者ㅣ러시다
其在宗廟朝廷하사는 便便言하사대 唯謹爾러시다
<제2절>
朝에 與下大夫言에 侃侃如也하시며 與上大夫言에 誾誾如也러시다
君在어시든 踧踖如也하시며 與與如也?척?
<제3절>
君이 召使擯이어시든 色勃如也하시며 足躩如也ㅣ러시다
揖所與立하사대 左右手ㅣ러시니 衣前後ㅣ 襜如也ㅣ러시다
趨進에 翼如也ㅣ러시다
賓退어든 必復命曰賓不顧矣라 하더시다
<제4절>
入公門하실새 鞠躬如也하사 如不容이러시다
立不中門하시며 行不履閾이러시다
過位하실새 色勃如也하시며 足躩如也하시며 其言이 似不足者ㅣ러시다
攝齊升堂하실새 鞠躬如也하시며 屛氣하사 似不息者ㅣ러시다
出降一等하사는 逞顔色하사 怡怡如也하시며 沒階하사는 趨進翼如也하시며 復其位하사는 踧踖如也ㅣ러시다
<제5절>
執圭하사대 鞠躬如也하시며 如不勝하시며 上如揖하시고 下如授하시며 勃如戰色하시며 足蹜蹜如有循이러시다
享禮에 有容色하시며
私覿에 愉愉如也ㅣ러시다
<제6절>
君子는 不以紺緅로 飾하시며
紅紫로 不以爲褻服이러시다
當暑하사 袗絺綌을 必表而出之러시니
緇衣엔 羔裘ㅣ오 素衣엔 麑裘ㅣ오 黃衣엔 狐裘ㅣ러시다
褻裘는 長호대 短右袂러시다
必有寢衣하시니 長이 一身有半이러라
狐貉之厚로 以居ㅣ러시다
去喪하사는 無所不佩러시다
非帷裳이어든 必殺之러시다
羔裘玄冠으로 不以弔ㅣ러시다
吉月에 必朝服而朝ㅣ러시다
<제7절>
齊必有明衣러시니 布ㅣ러라
齊必變食하시며 居必遷坐ㅣ러시다
<제8절>
食不厭精하시며 膾不厭細러시다
食饐而餲와 魚餒而肉敗를 不食하시며 色惡不食하시며 臭惡不食하시며 失飪不食하시며 不時不食이러시다
割不正이든 不食하시며 不得其醬이어든 不食이러시다
肉雖多ㅣ나 不使勝食氣하시며 唯酒無量하사대 不及亂이러시다
沽酒市脯를 不食하시며
不撤薑食하시며
不多食이러시다
祭於公에 不宿肉하시며 祭肉은 不出三日하더시니 出三日이면 不食之矣니라
食不語하시며 寢不言이러시다
雖疏食菜羹이라도 瓜祭하사대 必齊如也ㅣ러시다
<제9절>
席不正이든 不坐ㅣ러시다
<제10절>
鄕人飮酒에 杖者ㅣ 出이어든 斯出矣러시다
鄕人儺에 朝服而立於阼階러시다
<제11절>
問人於他邦하실새 再拜而送之러시다
康子ㅣ 饋藥이어늘 拜而受之曰丘ㅣ 未達이라 不敢嘗이라 하시다
<제12절>
廐焚이어늘 退朝曰傷人乎아 하시고 不問馬하시다
<제13절>
君이 賜食이어시든 必正席先嘗之하시고 君이 賜腥이어시든 必熟而薦之하시고 君이 賜生이어시든 必畜之러시다
侍食於君에 君祭어시든 先飯이러시다
疾에 君이 視之어시든 東首하시고 加朝服拖紳이러시다
君이 命召ㅣ어시든 不俟駕行矣러시다
<제14절>
入太廟하사 每事를 問이러시다
<제15절>
朋友ㅣ 死하야 無所歸어든 曰於我殯이라 하더시다
朋友之饋는 雖車馬ㅣ라도 非祭肉ㅣ어든 不拜러시다
<제16절>
寢不尸하시며 居不容이러시다
見齊衰者하시고 雖狎이나 必變하시며 見冕者與瞽者하시고 雖褻이나 必以貌ㅣ러시다
凶服者를 式之하시며 式負版者ㅣ러시다
有盛饌이어든 必變色而作이러시다
迅雷風烈에 必變이러시다
<제17절>
升車하사 必正立執綏ㅣ러시다
車中에 不內顧하시며 不疾言하시며 不親指러시다
<제18절>
色斯擧矣하야 翔而後集이니라
曰山梁雌雉ㅣ 時哉時哉저 子路ㅣ 共之한대 三嗅而作하시다
향당편 제1절~제3절 해설
論語集註卷之十 鄕黨第十
楊氏 曰聖人之所謂道者ㅣ 不離乎日用之間也ㅣ라 故로 夫子之平日一動一靜에 門人이 皆審視而詳記之하니라 尹氏 曰甚矣라 孔門諸子之嗜學也ㅣ여 於聖人之容色言動에 無不謹書而備錄之하야 以貽後世하니 今讀其書하고 卽其事면 宛然如聖人之在目也ㅣ라 雖然이나 聖人이 豈拘拘而爲之者哉시리오 蓋盛德之至에 動容周旋에 自中乎禮耳니 學者ㅣ 欲潛心於聖人컨대 宜於此求焉이라 舊說에 凡一章이라 하니 今分爲十七節이라
양씨 가로대 성인의 이른바 도라는 것은 날로 쓰는 사이에 떠나지 않음이라. 그러므로 부자가 평일에 한번 움직이고 한번 고요함에 문인이 다 살피고 살펴서 자세히 기록했느니라. 윤씨 가로대 심하도다. 공자 문인의 모든 제자들의 학문을 즐김이여. 성인의 용모와 빛과 말과 행동에 글을 삼가지 않음이 없고 다 갖추어 기록하여 써 후세에 주었으니, 이제 그 글을 읽고 그 일에 나아가면 어렴풋이 성인이 눈에 있는 것과 같으니라. 비록 그러나 성인이 어찌 구구하게 하셨으리오. 대개 성덕의 지극함에 동용주선(움직이는 태도와 일을 주선하는 모습)에 자연스럽게 예에 맞으니 배우는 자가 마음을 성인에 잠기고자 할진대 마땅히 여기에서 구해야 할지니라. 구설에 무릇 (향당 제10편이) 1장이라 하니 이제 17절로 나누었음이라.
<제1절>
孔子ㅣ 於鄕黨에 恂恂如也하사 似不能言者ㅣ러시다
공자가 향당에서 순순히(믿음직스러우며 후중히) 하사 능히 말을 못하는 자처럼 하더시다.
[본문 해설]
공자가 시골에 계실 때의 모습을 그린 것이 향당편이다. 시골에는 어른들이 많이 사시기에 늘 믿고 후중하게 행동하신 것이다. 안다고 함부로 나서지 않고 마치 어눌한 사람처럼 행동하였다.
恂恂은 信實之貌요 似不能言者는 謙卑遜順하야 不以賢知로 先人也ㅣ라 鄕黨은 父兄宗族之所在라 故로 孔子ㅣ 居之에 其容貌辭氣ㅣ 如此하시니라
순순은 신실한 모양이오, 능히 말을 못하는 것과 같다는 것은 겸손하고 낮추고 공순하고 순하여 어질고 앎으로써 사람을 먼저 하지 않느니라. 향당은 부형과 집안이 계시는 곳이라. 그러므로 공자가 거처하심에 그 용모와 사기가 이와 같으시니라.
其在宗廟朝廷하사는 便便言하사대 唯謹爾러시다
그 종묘와 조정에 계실 적에는 변변히 말씀하시되 오직 삼가더시다.
便便은 辯也ㅣ라 宗廟는 禮法之所在요 朝廷은 政事之所出이니 言不可以不明辯이라 故로 必詳問而極言之로대 但謹而不放爾시니라 ○此一節은 記孔子ㅣ 在鄕黨, 宗廟, 朝廷에 言貌之不同이라
변변은 말을 잘함이라. 종묘는 예법이 있는 곳이고, 조정은 정사가 나오는 곳이니 말이 가히 써 명변하지 아니치 못하니라. 그러므로 반드시 자세히 묻고 지극히 말씀하시되 다만 삼가서 함부로 하지 아니할 뿐이시니라. ○이 한 마디는 공자가 향당과 종묘와 조정에 계실 때에 말과 모양이 같지 않음을 기록함이라.
<제2절>
朝에 與下大夫言에 侃侃如也하시며 與上大夫言에 誾誾如也러시다
조정에 하대부와 더불어 말함에 강직하시며 상대부와 더불어 말하심에 화하게 하더시다.
此는 君未視朝時也ㅣ라 王制에 諸侯는 上大夫요 卿은 下大夫니 五人이라 許氏說文에 侃侃은 剛直也ㅣ오 誾誾은 和悅而諍也ㅣ라
이는 인군이 조회를 보지 않을 때라. 왕제에 제후는 상대부요, 경은 하대부니 다섯 사람이라. 허씨 설문에 간간은 강직함이오, 은은은 화열하면서 간함이라.
諍 : 간할 쟁
君在어시든 踧踖如也하시며 與與如也ㅣ러시다
인군이 계시거든 공경하시며, 더불어 하는 듯하게(위엄있게) 하더시다.
踧 : 공경히 디딜 축 踖 : 공경히 디딜 척
君在는 視朝也ㅣ라 踧踖은 恭敬不寧之貌요 與與는 威儀中適之貌라 ○張子ㅣ 曰與與는 不忘向君也ㅣ라 하니 亦通이라 ○此一節은 記孔子ㅣ 在朝廷에 事上接下之不同也ㅣ라
군재는 조회를 봄이라. 축척은 공경하되 편안하지 못한 모양이고, 여여는 위엄있는 모양이되 적중한 모양이라. ○장자 가라사대 여여는 인군에게 향함을 잊지 않는다 하니 또한 통함이라. ○이 한 마디는 공자가 조정에 계실 적에 위를 섬기고 아래를 접하는 것이 같지 않음을 기록함이라.
<제3절>
君이 召使擯이어시든 色勃如也하시며 足躩如也ㅣ러시다
인군이 불러서 국빈을 대접하라 하거시든 얼굴빛이 변하는 듯하시며 발은 공경히 디디더시다.
擯 : 손님을 대접할 빈 勃 : 우쩍 일어날 발 躩 : 공경히 디딜 확(곽)
擯은 主國之君所使出接擯者라 勃은 變色貌요 躩은 盤辟貌니 皆敬君命故也ㅣ라
빈은 주국의 인군이 나가 손을 접하게 하는 것이라. 발은 색이 변하는 모양이오, 확은 서리면서 서는 모양이니 다 인군의 명을 공경하는 까닭이라.
盤 : 서릴 반 辟 : 절 벽
揖所與立하사대 左右手ㅣ러시니 衣前後ㅣ 襜如也ㅣ러시다
더불어 선 바에 읍을 하사대 손을 좌우로 하더시니 옷의 앞뒤가 가지런하더시다.
襜 : 옷깃 여밀 첨
所與立은 謂同爲擯者也ㅣ라 擯用命數之半이 如上公九命에 則用五人以次傳命이라 揖左人則左其手하고 揖右人則右其手라 襜은 整貌라
더불어 선 바는 같이 손님 대접하는 자를 이름이라. 손님 대접하는데 명을 받는 수의 반을 쓰니 만약에 상공 아홉이 명을 받음에 다섯 명을 써서 써 번갈아 명을 전함이라. 왼쪽의 사람에게 읍을 하면 그 손을 왼쪽으로 하고 오른쪽의 사람에게 읍을 하면 그 손을 오른쪽으로 함이라. 첨은 가지런한 모양이라.
趨進에 翼如也ㅣ러시다
종종걸음으로 나가심에 나는 듯하더시다.
疾趨而進에 張拱端好를 如鳥舒翼이라
빨리 달려 나감에 어깨를 펴고 손을 맞잡아서 단정하고 좋아 보이기에 함을 새가 날개를 펴고 나는 것같이 함이라.
賓退어든 必復命曰賓不顧矣라 하더시다
손님이 물러가거든 반드시 복명하여 가라사대 손님이 돌아보지 않더라 하더시다.
[본문해설]
국빈접대를 다 하고 손님이 돌아간 뒤에 인군에게 그 결과를 보고하면서 손님이 돌아보지 아니할 때까지 전송했음을 밝히고 있다. 인군의 명을 받고 인군에게 누가 되지 않도록 그만큼 정성껏 국빈을 예우했음을 나타내는 뜻이다.
* 復命 : 명령을 받고 일을 처리한 사람이 그 결과를 보고함
紓君敬也ㅣ라 ○此一節은 記孔子爲君擯相之容이라
인군 공경함을 폄이라. ○이 한마디는 공자가 인군을 위하여 손님 접대를 하고, 도운 모습을 기록함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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