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사순 제5주간 수요일 강론>
(2024. 3. 20. 수)(요한 8,31-42)
“너희가 내 말 안에 머무르면 참으로 나의 제자가 된다.
그러면 너희가 진리를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고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요한 8,31ㄴ-32).”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죄를 짓는 자는
누구나 죄의 종이다. 종은 언제까지나 집에 머무르지
못하지만, 아들은 언제까지나 집에 머무른다.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는 정녕 자유롭게
될 것이다(요한 8,34ㄴ-36).”
여기서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라는 말씀은,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살면 구원을 받는다는 뜻입니다.
<“나의 가르침이 너희를 구원할 것이다.”>
‘진리’는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구원의 진리’를 뜻합니다.
(예수님의 복음과 계명들도 모두 포함됩니다.
이 진리를 ‘학문의 진리’와 혼동하지 말아야 합니다.)
‘자유’는 구원받은 사람들이 하느님 나라에서 누리는 생명,
평화, 행복, 안식, 기쁨 등을 총체적으로 가리키는 말입니다.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그 ‘자유’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주시는 구원을 받으려면(하느님 나라의 자유를
얻으려면)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살아야 합니다.
“내 말 안에 머무르면”이라는 말씀은,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사는 것을 뜻하는 말씀입니다.
‘머무르다.’ 라는 말은 ‘포도나무의 비유’에 연결됩니다.
“내 안에 머물러라. 나도 너희 안에 머무르겠다.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않으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는
것처럼, 너희도 내 안에 머무르지 않으면 열매를 맺지 못한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는다. 너희는
나 없이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요한 15,4-5).”
‘포도나무의 비유’를 생각하면, “너희가 내 말 안에 머무르면
참으로 나의 제자가 된다.” 라는 말씀은 거꾸로 읽어야 합니다.
“너희가 참으로 나의 제자가 되려면 내 말 안에 머물러라.”
여기서 ‘제자’는 ‘신앙인’을 뜻하고, 예수님의 참된 제자가
된다는 말은, 충실한 신앙인이 되어서 구원받을 자격을
얻는 것을 뜻합니다.
“진리를 깨닫게 될 것이다.” 라는 말씀은,
뜻으로는 “진리를 깨달아라.”입니다.
여기서 깨닫는다는 말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그 깨달음을
뜻하는 말이 아니라, 예수님의 가르침들을 ‘온 삶으로’
실천하는 것을 뜻하는 말입니다.
그래서 “너희가 내 말 안에 머무르면 참으로 나의 제자가
된다. 그러면 너희가 진리를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고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라는 말씀을
모두 하나로 합해서 생각하면,
“구원을 받아서, 하느님 나라에서 자유와 평화를 누리기를
바란다면, 나의 가르침들을 온 삶으로 충실하게 실천하는
참된 신앙인이 되어라.”가 됩니다.
<이 말씀을, 산상설교에 있는 다음 말씀에 연결해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나의 이 말을 듣고 실행하는 이는 모두 자기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슬기로운 사람과 같을 것이다. 비가 내려 강물이
밀려오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들이쳤지만 무너지지 않았다.
반석 위에 세워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의 이 말을 듣고
실행하지 않는 자는 모두 자기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과 같다. 비가 내려 강물이 밀려오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휘몰아치자 무너져 버렸다.
완전히 무너지고 말았다(마태 7,24-27).”
집을 반석 위에 안전하게 지어서 아무 걱정 없이 사는 사람이
평화를 누리는 모습은 자유를 누리는 모습이고, 반대로, 집을
모래 위에 지어서 늘 불안해하고 걱정하면서 사는 사람이
평화를 누리지 못하는 모습은 자유를 잃은 모습입니다.
그처럼 신앙생활을 충실하게 하면서
영혼의 평화를 누리는 것이 바로 신앙인의 자유입니다.>
“죄를 짓는 자는 누구나 죄의 종이다. 종은 언제까지나 집에
머무르지 못하지만, 아들은 언제까지나 집에 머무른다.” 라는
말씀은, ‘되찾은 아들의 비유’에 연결됩니다.
아버지의 집을 떠나서 방탕하게 살던 때의 작은아들의 모습과
화를 내면서 밖에 있는 큰아들의 모습은, ‘죄의 종’이 되어서
집의 ‘밖에’ 있는 모습입니다(루카 15,13.28).
<비유에서는 두 아들이 모두 스스로 밖으로 나간 상황으로
표현되어 있는데, 최후의 심판 때에는 집에 머무를 자격을
잃고 쫓겨나는 상황이 될 것입니다.>
작은아들이 회개하고 집에 돌아왔을 때, 아버지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아들 자격을 회복시켜 준 일이었습니다.
“어서 가장 좋은 옷을 가져다 입히고 손에 반지를 끼우고
발에 신발을 신겨 주어라(루카 15,22).”
아버지의 집에 머무르면서 참된 자유와 평화와 행복을
누리려면 아들 자격을 얻어야 하는데, 그 자격은 아버지께서
주시는 것이고, 우리 쪽에서 할 일은 ‘회개’입니다.
그런데 내 마음대로 “나는 회개했다. 이만큼 했으면 충분히
한 것이다.” 라고 주장할 수는 없습니다.
주님께서 참되고 진실한 회개라고 인정해 주셔야만 합니다.
신앙생활과 회개를 얼마나 잘했는지를 평가하는 기준은
내가 정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정하시고,
그 평가와 판단도 주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바로 그것을 나타내는 말씀이,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는 정녕 자유롭게 될 것이다.” 라는 말씀입니다.
주님만이 우리에게 참된 자유를 주실 수 있습니다.
우리가 참으로 자유롭게 되는 것은(구원받는 것은)
‘나의 힘으로 이루는’ 일이 아니라,
주님께서 베풀어주시는 자비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최선을 다하여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겸손하게 자비를 간청할 뿐입니다.
- 송영진 신부님 -
첫댓글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라는 말씀은,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살면 구원을 받는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참으로 자유롭게 되는 것은(구원받는 것은)
‘나의 힘으로 이루는’ 일이 아니라,
주님께서 베풀어주시는 자비라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