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리무라 세이치(森村誠一) - 인간 내부 본성을 파헤친, 잔잔한 애수를 불러일으키는
본격추리소설.
24층-B/D 도쿄 로열호텔,
28초에150m를 오르는 스카이다이닝레스토랑으로 가는 엘리베이터 안 베이지색 바닥 양탄자에 검붉은 색의 액체가 번진다. 마지막으로 탄 바바리코트의 흑인-눈을 감고 있었다. 단도의 손잡이 부분까지 가슴 깊숙이 꽂힌 칼을 품고 엉덩방아를 찧는 모습으로 푹 꺾였다.
관광비자로 들어온 미 국적 뉴욕발 조니 헤이워드 24세의 죽음에서 시작된다.
초호화판 호텔 가장 우아한 시간대에 피투성이 시체가 굴러들어 온 것이다. 수사본부- 무네스네 고이치로(棟居弘一良) 형사가 사건을 주도해 나간다.
용의자의 단서가 미궁인 초동수사에서 건진 건 “스토하”란 택시기사가 기억하는 단어 하나를 해석해나가는 난해한 과정에서 우연히 발견 된《사이죠 야소(西條八十)》의 시집(1892-1970)》 “밀짚모자”라는 詩가있는 시집에서 퍼즐 조각을 맞추듯이 수사방향이 전개되어 간다.
미국에서는 뉴욕시경 켄슈프탄 형사가 출구가 없는 할렘가 암흑 속에서 살해된 조니의 신상을 조사한다. 그도 파병시 저항하지 못하는 일본인에게 소변을 갈긴 경험을 갖고 있다. 차가운 겨울 날 그 소변을 맞은 사람이 무네시네 일본형사의 아버지였다.
여기서 무네스네 형사를 주목한다. 우리들 세대와 비슷한 당대의 현실처럼- 초등학교 교사였던 아버지는 전후 어린이교육에 몸 바쳤지만 도망 가버린 어머니 없이 결손 가정에서 아버지와 함께 살았다. 미 진주군의 횡포에 한 여성을 구해줬지만(그녀가 훗날 조니의 어머니 였다는 아이러니)그녀가 군인들에게 얻어맞고 소변을 적시는 치욕을 당한다. 철부지 나이의 그 상황은 그의 정신의 원형질이 된다.
그래서 “인간이란 동물은 그 누구라도 깊이 파 들어가 보면 ‘추악’이라는 원소로 돌아가 버린다.”
고 결정한다. 그것은 필연 이었던가? 그래서 그는 형사가 된다.
야스기고쿄-미군으로 파병(派兵)된 흑인과 사랑하는 사이로 아들 ‘조니’를 낳게 된다. 그의 아버지는 조니 헤이워드 만을 데리고 귀국하게 된다. 이 장면은 사실 6. 25 전후 우리들 사회상과 비슷하다.
그 후 야스기 교쿄는 고오리 요오헤이와 결혼, 조니의 아버지는 잊혀 진 채로 20여년이 흐른다. 그녀는 가정문제 평론가로 그 허상이 하늘을 찌른다. 그 남편 요오헤이는 정계의 다크호스로 파워가 만만치 않았다. 그러나 그들의 자녀들은 시대적 아웃사이더로서 파렴치한 환락 속에 모든 비트와 섹스에 탐닉하며 아버지를 더러운 수컷이라고 던진다.
일상의 코너에 몰린 등장인물들이 가슴으로 부르짖는다.
“ 어느 틈엔지 다른 사내의 괭이가 아내의 몸속에 새로운 개척의 자국을 남겨 놓았다”
한편 미국 할렘가 빈민촌에서 죽어가며 살던 조니는 일본에서 발간된 야스기쿄고의 베스트 셀러 책을 보고 어린날의 추억과 어머니를 찾아 일본행을 결심한다. 일본행 경비는 아버지가 고의 교통사고를 낸 사망보상금으로 준비했다.
【어머니, 내 그 모자 어찌되었을 까요?
그래요, 여름날 우스이(確氷)에서 기리즈미(霧積)로 가는 길에,
골짜기에 떨어트린 그 밀짚모자 말이에요,
어머니, 그것은 아끼던 모자였어요. 그래서 나는 그때 꽤 분했어요.
하지만, 갑자기 바람이니-
- 어머니, 그때 저쪽에서 그 젊은 약장사가 왔었지요,
남색 각반에 토시를 끼고서- 그리고 주워 주려고 꽤 애섰지요.
하지만, 결국헛일이었어요.
워낙 깊은 골짜기인데다 더구나 풀이 한길이나 자라있었으니까요.
-어머니, 정말 그 모자 어떻게 되었을 까요?
그때 그 옆에 곱게 피었던 수레백합꽃은
벌써 오래전에 시들었겠죠.
그리고 가을에는 회색안개가 그 언덕을 가득 메우고
그 모자 밑에서 밤마다 여치가 울었을지도 모르잖아요.
-어머니, 그리고 지금쯤은-
오늘밤 같은 날엔 그 골짜기에 조용히 눈만 쌓여 가고 있겠지요.
옛날, 아름답게 번쩍이던 그 이탈리아 밀짚모자와 그 안쪽에 내가 쓴 YS라는 머리글자를 묻어버리듯 조용히 쓸쓸하게.】
애틋한 시(詩)다.
조니는 어머니인 야스기쿄고를 만났지만, 아들 조니에 대한 반가움도 순간, 현재의 가정과 일본내 자신의 위상 등이 한순간에 소멸 되 버릴가 두려웠다. 어머니는 조니를 죽이고자 가슴에 칼을 댄다.
그러나 조니는 어머니의 마음을 알고 그 칼을 깊숙이 찔러 넣는다.
스카이 레스토랑에 도착하자 결국 죽음으로 돌아간다.
그런대, 내가 읽은 표현의 압권은 작가의 상징적인 서술이 아닌가 한다. 그 ‘밀짚모자’의 상징성으로- 스토우(Straw Hat)-의 기막힌 추리와 연상을 던져 주는 것.
조니가 바라본 어머니가 있을 곳 레스토랑의 형상.
“지상의 투광기로부터 뿜어 올리는 빛의 가닥들이 은으로 바른 듯한 외벽을 밤의 어둠속에서 뚜렸이 떠 올려주고 있었다. - 화사한 빛의 윤곽들이 도심의 하늘을 수놓고 있었다. 옥상의 쿨링타워 주위를 토성(土星)의 고리처럼 돌고 있는 옥상 레스토랑의 광선으로 짜 놓은 넓은 차양처럼 보인다. 그것은 영락없는 밤하늘에 그려 놓은 빛의 조형이었다.”
인간의 증명-철학적 냄새를 풀풀 풍기는 그 추리의 결말은?
“어머니에게 저의 존재는 방해가 되는 것이었군요.”
최종결론은 -인간 본성(本性)에의 호소다!-
감성도 높은 소설임엔 틀림없다. 글을 읽기 시작하면 몰입하게 되어있다.
일본과 미국 당대의 사회현상 밑바닥은 추악하고 더티한 것이었지만, 우리가 숨쉬는 현재도 삶의 딜레마는 어느 곳에나 있다. 어쨌거나 나는 '밀짚모자'의 시를 읽으며 한두 번 가족 간의 따뜻한 애정에 인간 생존의지에 경배한다.
왜냐하면 고독이 연계되기 때문이다. 고독하지 않은 것처럼 행동할 필요가 없다.
오늘날도 한 인간들 개개인의 삶의 영역과 공간은 모두가 다르다.
그러나, 심리적 압력에 저당잡힌 트라우마의 공황상태는 악몽과 같은 것!
-우리의 현실은 더욱더 살벌하고, 휴머니티는 진열장 안의 화석일 뿐이다.
그렇다.
어디로 가나, 인간 정신을 말살시키는 –그것은 인간이란 것- 버젓한 현실이다.
- End-
첫댓글 허구 또는 추리소설답군요.ㅎ
성선설과 성악설이 생각나네요.
추리소설은 고전 셜록흠즈를 시리즈로 읽은 일은 있지만.
막장 드라마나 배타적인 영화를 좋아하지 않아서 곁눈질하곤
후배님의 웃음 가득한 나날을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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