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으로부터 도망치는 달리기 - 중력을 견디는 힘
“제주도에 달리러 갈까요?”
도반스님이 제안했습니다. 처음에는 10km만 달리자고 하더군요. 10km는 한 번도 안 뛰어봤다고 했더니 ‘충분히 달릴 수 있어요!’라며 설득했습니다. 처음에는 무작정 ‘못해!’라는 마음이 들다가 점점 설득이 되더군요? 결국 10km 달리기를 시작할 시간, 새벽 4시가 다가왔습니다.
달렸습니다. 죽겠더군요. 계속 뛰었습니다. 그런데 5km를 넘어가고, 10km가 넘었는데 도반스님이 계속 뛰는 것입니다!
“스님, 뛰는 것 보니까 20km는 충분히 뛰겠는데요?”
이번에는 거부감 없이 단박에 설득되었습니다. 왜냐하면 뛸 만하다고 이미 느끼고 있었으니까요. 그래서 계속 달렸습니다. 20km 지점에 도착할 때쯤, 이미 반환점을 돌고 시작점으로 되돌아가는 도반스님을 만났습니다.
“그만 뛰고 싶으면 그만 뛰어요! 난 풀코스 도전하려고요!”
38km 끝에서 만난 하늘과 바람
오기가 생기더군요. 아마 계속 뛰자고 했다면 그만 뛰었을 텐데… 또 뛰었습니다. 30km부터는 호흡은 아직 괜찮다고 느꼈는데 다리를 절기 시작했습니다. 그래도 절뚝절뚝 계속 뛰었습니다. 38km를 넘어선 순간, 저어~~~기 앞에서 거꾸로 돌아오고 있는 도반스님을 목격했습니다. 왜 돌아오냐고 묻자 이러더군요.
“스님 걱정돼서 마중 나왔죠!”
절뚝거릴 때도 안 꺾이던 의욕이 푹 꺾이더군요. 그래서 그곳에서 멈춰서 대자로 누웠습니다. 하늘을 보는데 어땠을까요? 덥고 찝찝하고 아프더군요^^;; 물론 10분 정도 지나 통증이 가라앉자 기분이 좋아지기는 했습니다. 그제야 하늘도 좋고~ 바람도 시원하고~ 바다도 좋더군요!
전봇대 사이에서 시작한 6개월의 훈련
“그 일을 하라. 그러면 그 일을 할 힘을 얻을 것이다.”
— 랠프 월도 에머슨, 『에세이』 제1집 「보상」 중
제주도에 가기 전, 6개월 동안 훈련했습니다. 처음에는 절 앞 마을에서 전봇대와 전봇대 사이를 뛰고, 앉아서 쉬다 걷다를 반복했습니다. 그럼에도 매일 조금씩 뛰었더니 한 달 뒤에는 약 1.5km인 마을 한 바퀴를 뛸 수 있었습니다. 다음 달에는 두 바퀴도 쉬지 않고 뛰겠더군요. 이후에는 3km를 뛸 때 점점 숨이 덜 차고 편안해졌습니다. 그럼에도 3km 이상은 뛸 생각을 꿈에도 못했죠. 윗단이 막혀 있었던 것입니다.
내가 정한 스스로의 한계를 열어준 선지식이 바로 제주도의 그 도반스님입니다. 제안해 줬고, 설득해 줬으며, 몸소 함께 달렸습니다. 약간의 도발도 해 줬을까요? 생애 첫 풀코스 비슷한 달리기이자 생애 마지막?! 장거리 달리기를 경험한 뒤 두 가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좋은 벗, 좋은 동료, 좋은 도반과 함께하는 것은 청정한 삶의 전부이다.”
— 『상윳따 니까야』 SN 45.2, 「절반의 경」 중
달리기를 이어가는 힘, 심폐능력
첫째, 달리기를 이어가는 데 심폐능력이 얼마나 중요한지입니다. 6개월간 훈련할 때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숨이 찰 때였습니다. 심폐능력이 현저히 떨어져 있으니 처음부터 헐떡임이 계속되었습니다. 호흡이 턱끝에 걸리기 시작하면 팔다리가 아무리 멀쩡해도 뛰지를 못했습니다. 반면 그날은 호흡에 여유가 있다고 느끼니 더 달릴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속도뿐 아니라 달리기를 지속하는 지구력에도 심폐력이 중요하다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물론 다리를 절면서도 계속 뛰었던 것은 그날의 오기였습니다. 몸의 통증을 무시하는 것과 ‘못한다’는 생각을 넘어서는 것은 구분해야 합니다.
나는 여기까지라는 생각을 넘어서
“우리는 용감한 행동을 함으로써 용감한 사람이 된다.”
— 아리스토텔레스, 『니코마코스 윤리학』 제2권 1장 중
둘째, ‘못해!’, ‘나는 여기까지!’라는 중생상의 고정관념이 정신의 한계를 정하기도 한다는 점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중생상은 ‘나는 이런 사람이고, 여기까지밖에 못 한다’고 굳혀놓은 자기 모습입니다. 심폐력이 육체의 윗단을 제한한다면 중생상은 정신의 한계를 정합니다. 달리기, 그중에서도 장거리를 한 번씩 뛰는 것이 도움이 되는 이유는 바로 이 정신적 한계를 돌파하는 경험 때문입니다. 38km를 달린 뒤에는 이런 생각이 생겼습니다.
‘내가 생각했던 3km가 내 한계의 전부는 아니었구나.’
제게 배우는 학생들은 모두 달리기를 합니다. 함께 모임을 가질 때는 5km 또는 10km를 가볍게 뛰죠. 그럼 꼭 달리기를 겁내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때마다 조언합니다.
“속도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못한다는 생각을 버리고 걷는 속도로 뛰어도 좋으니 천천히 뛰어보세요.”
누워 있던 몸이 일어나 달리기까지
갓난아기의 성장 과정을 떠올려 볼까요? 누워 있다가 뒤집기를 하고, 이후 기어 다닙니다. 그러다 무엇인가를 짚고 일어나 위태롭게 걷습니다. 걷기가 능숙해지면 뜁니다. 그럼 여기저기 활발하게 뛰어다니죠? 이것이 생명의 성장입니다. 그럼 이후에는 어떻게 될까요?
뛰는 것이 점점 부담스러워집니다. 그래서 뛰는 일이 줄어듭니다. 걷는 것도 힘들어져 걷는 일이 줄어듭니다. 서 있는 것도 힘드니 앉아 있는 시간이 늘어납니다. 이후에는 결국 눕죠? 이것이 죽어가는 과정입니다. 육체를 감당하는 힘이 빠지는 과정이고, 중력을 견디는 능력이 부족해지는 과정입니다.
빠른 속도보다 꾸준히 나아가는 힘
몸을 움직이는 능력도, 꾸준히 나아가는 마음도 훈련이 필요합니다. 어른에게 필요한 것은 빠른 속도보다 자기 속도로 꾸준히 나아가는 힘입니다. 이 끈기와 지구력이야말로 어른에게 꼭 필요한 자질입니다. 주관적 세계가 무너지는 듯한 순간, 이를 악물고 버텨낼 수 있는 힘은 순발력이 아닌 인욕의 힘이니까요. 이를 위한 기본기, 심폐력을 키우는 달리기에 도전해 볼까요?
첫댓글 나는 여기까지라는 생각에 늘 걸려 살았습니다. 스스로가 정해놓은 나의 한계를 뛰어넘을 용기가 내겐 있는가 생각해봅니다.
오늘 아침부터 10월에 해야하는, 해내야하는 꽉찬 일정으로,
내가 왜 이렇게 애쓰면서 살아야할까 하고 한개씩 포기할까 생각하고, 주저앉으려 했는데...
스님_()_
이렇게 또 깨우쳐주시는군요..
네, 알겠습니다..
일체유심조(제가 제일 좋아하는 모토입니다*^^*)
저는 지금 애쓰는게 아닙니다_()_
끈기와 지구력으로 이 인연된것들을
다 해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_()_
나무 석가모니불
나무 석가모니불
나무 시아본사 석가모니불_()_
오늘 포기하고 싶은 몸 상태였지만
뛰었습니다. 스스로를 이겨낸 오늘이었습니다.
나무아미타불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