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를 듣고 보아
혼자서도 만족함은 즐거움이다.
생명에 대해 조심해서
해치지 않음도 세상의 즐거움이다.
애욕(愛欲)을 극복하여
세상살이에 탐착하지 않음도 즐거움이다.
그러나 내가 있다는 교만심을 누를 줄 아는 것,
이것이 최상의 즐거움이다.”
첫댓글 [내가 있다는 교만심을 누를 줄 아는 것,이것이 최상의 즐거움이다]해탈 열반이 최상의 즐거움 !!
cf. 우다나 02-01 무찰린다
붓다께서 이미 설하셨군요.[진리를 듣고 보아 혼자서 만족함은 즐거움이다]내것이 되어야 비로소 눈에 들어오는군요.[내가 있다는 교만심을 누를 줄 아는 것,이것이 최상의 즐거움이다]이 즐거움을 향해 뚜벅뚜벅 나아가자!
같이 기쁘게 가자!
위 본글 게송이 [ 우다나 02-01 무찰린다 ]의 게송과 같습니다. 자구가 동일할 듯...단지 제가 한 번역은 많이 의역을 했는데, 그 연유는 관련 글에서 이미 적었습니다.
유식사상에선 제 칠식인 말나식이 제 팔식인 알리야식과 제 육식인 의식을 '나'라고 집착해서 아집이 생긴다고 합니다.본글의 세번째 문장에서, 세상에 대한 갈애가 육식의 자아관념이 아닌 전오식의 대상이면 '나' 에 대한 집착이라기 보단 '내것'에 대한 집착이 아닐까요..네번째 문장인 내가 있다는 교만심은, 내가 있다는 미세한 아집인 팔식을 나로 취한 상태에서 육식이 그 나의 모습을 분별해서 아만 아애 아취 아견을 일으키는 걸 말하는 거 같습니다.
무색계의 특정한 마음상태가 아니고 행주좌와 어묵동정하는 일상에서 일어나는 마음이죠.
첫댓글 [내가 있다는 교만심을 누를 줄 아는 것,
이것이 최상의 즐거움이다]
해탈 열반이 최상의 즐거움 !!
cf. 우다나 02-01 무찰린다
붓다께서 이미 설하셨군요.
[진리를 듣고 보아 혼자서 만족함은 즐거움이다]
내것이 되어야 비로소 눈에 들어오는군요.
[내가 있다는 교만심을 누를 줄 아는 것,
이것이 최상의 즐거움이다]
이 즐거움을 향해 뚜벅뚜벅 나아가자!
같이 기쁘게 가자!
위 본글 게송이 [ 우다나 02-01 무찰린다 ]의 게송과 같습니다. 자구가 동일할 듯...
단지 제가 한 번역은 많이 의역을 했는데, 그 연유는 관련 글에서 이미 적었습니다.
유식사상에선 제 칠식인 말나식이 제 팔식인 알리야식과 제 육식인 의식을 '나'라고 집착해서 아집이 생긴다고 합니다.
본글의 세번째 문장에서, 세상에 대한 갈애가 육식의 자아관념이 아닌 전오식의 대상이면 '나' 에 대한 집착이라기 보단 '내것'에 대한 집착이 아닐까요..
네번째 문장인 내가 있다는 교만심은, 내가 있다는 미세한 아집인 팔식을 나로 취한 상태에서 육식이 그 나의 모습을 분별해서 아만 아애 아취 아견을 일으키는 걸 말하는 거 같습니다.
무색계의 특정한 마음상태가 아니고 행주좌와 어묵동정하는 일상에서 일어나는 마음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