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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눈팔기, 그리고 제자리로
내겐 2년을 넘도록 사겨왔던, 서로에 대해서 너무도 잘 아는 내 남자친구가 있다.
바람따위는 펴본적도 없고 오직 한 여자에게만 올인하는 너무도 착하고 너무도 자상한
내 남자친구. 그런 녀석이 어느날 돌연 내게 황당하기 그지없는 말을 해왔다.
"그 애. 어찌보면 너랑 많이 닮은 것 같고, 또 어떻게보면 너랑 많이 다른 것도 같아."
"응. 그런데?"
"나, 그 애 만나보고 싶어."
"응."
"만나도 돼?"
아니.안돼.만나지마.넌 나만 보기로 했잖아.내거잖아.
무수히 많은 부정과 거절의 말을 다 놔두고 내 입은 엉뚱하게도 그 녀석의 편을 들어주었다.
"그렇게 해."
"그리고 한가지 더."
"응?"
"너랑 만나면서 그 애도 만나고 싶어.널 놓치고 싶지는 않아."
빌어먹을.
그러니까 한마디로 남자친구의 말은 나랑 그 여자를 동시에 만난다는 것이었다.
이상했다. 질투가 나야만 정상인데, 단지 조금 서운할 뿐 밉고 아프고 그런 느낌따위는
없었다. 2년 이상을 만나온 사이라서 그런 걸까. 아니면 나는 이 녀석에게 권태를
느끼는 걸까.
"그래.그렇게 해."
내 말 한마디에 기뻐하는 녀석을 보며 나도 싱긋 웃어주고 말았다.
그렇게 그는 나랑 그 여자를 동시에 만나는 희기한 연애를 하고 말았다.
-
한 여자에게만 모든걸 주어야하는 것이 연애의 정석이라 그는
나와 만날 시간이 자연스럽게 줄어져 버렸다. 그 여자는 나보다 어렸고
예뻤고 날씬했고 애교도 많았다. 그가 그 여자에게 더 집중 할 수 밖에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나는 결국 나랑 그 여자 사이에서
시간내려고 애쓰는 그를 보며 결단을 내렸다.
그냥 나는 그를 보내주기로 했다.
그와 마주앉아 나는 어쩐지 슬프지 않은 이별을 예고했다.
오히려 미소를 띄우며 그에게 말하고 있었다.
"그 애 에게 더 신경써줘."
"응.미안."
"아니,그런말은 하지말고. 그냥 난 여기서 빠질게."
"....고마워."
"대신 내가 다른 남자와 사귈때에 절대 아무말 하지 말기다?"
"응. 그럴게."
그렇게 그와 2년 이상의 연애를 종지부를 찍고 나는 그와 헤어졌다.
그는 그 여자에게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며 깊은 만남을 가졌고 나 역시
그와 헤어지고 당연스럽게 내 옆에는 나를 지켜줄 또 다른 남자가 생겼다.
새로운 남친은 그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고,같은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자기야♡"
나 역시 새로운 남자친구에게 사랑을 쏟아부었다. 그렇게 각자 새로운 만남을
이어가고 있는 시점에서 난 문득 그가 생각이 났다.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여전히 그 애랑은 잘 지내고 있을까. 이것은 옛사랑에 대한 그리움도 아니었고
옛사랑의 여자에게 질투를 느끼는 것도 아니었으며 단지 궁금함. 호기심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모처럼 새로운 남자친구와도 만나지 않고 나만의 휴식을 즐기고
있는 타이밍에 날 찾는 휴대폰이 울렸다.
[과거]
라고 저장해놓은 그가 핸드폰에 떠있었다. 손에 들린 핸드폰에는 진동이 멈추지 않고
계속 울려대고 있었다. 오늘 얘가 왠일이지? 의아해하며 통화버튼을 누르고
간만에 그의 목소리를 들었다.
"응.나야."
-뭐하고 있어?
"모처럼 쉬고 있지."
-모닝커피 마시고 토스트로 아침뚝딱. 텔레비전에 하는 재방송 드라마를 두시간 동안
시청하며 손에는 3만원 주고 산 큰 봉지에 담긴 마카로니(손에 끼어먹는 기름에 튀긴 뻥튀기 종류 알죠?)를
통에 담아 들고 먹고 있겠네.
역시나 나를 잘 알고 있는 그. 문득 할 말을 잃고 가만히 그의 말을 듣고 있었다.
-만날...수...있어?
"...왜?"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
"무슨,말?"
-내가 너네 집에 갈까?
"올래?"
-지금 갈게
뚝. 그가 전화를 끊고 나도 전화를 끊었다. 손에 들린 마카로니를 가만히
보다가 하나씩 집어 먹었다. 입 안에서 와자작 하고 깨지는 과자. 고소한 과자의
맛이 입안에 퍼졌다. 텔레비전에서 재방송하는 드라마에서는 헤어졌던 남녀가
다시 만나 새롭게 시작하는 내용이 나오고 있었다. 나는 그 드라마를 보다
리모콘을 눌러 예능으로 돌렸다. 한 게스트가 나와 자신의 연애담을 미주알고주알
MC에게 얘기하고 있었다.
-아 그때는 정말 이대로 끝인가 했는데, 그 사람이 다시 제게 와서 우리 다시 시작할래?
이러잖아요. 그래서 저도 그 사람에게 마음이 아직 남아있던 건지 바로 동의 해버렸죠.
그리고 나서 이렇게 결혼까지 할 예정이구요.
-해피엔딩으로 맺어지기는 했지만 헤어질땐 너무 슬프셨겠어요?
-오래되다 보니까 슬프거나 아프지는 않았는데, 막상 다시 만나려니 가슴이 두근거리더라구요.
마치 첫사랑을 하듯이 말이예요.
-너무 아름답고 감동적인 사랑이네요. 아무튼 예쁜 결혼생활 하시구요,그동안 많이 축하해주시던
팬들에게 한 말씀 해주셔야죠?
-네. 지금까지 제 결별에 대해 걱정과 위로 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드리구요,
다시 시작하게 되었다는 기사 보시고 격려와 축하 해주신분들께도 감사드립니다.
이제 다시 핑크빛 로맨스가 시작되었으니까 더 많은 축하 해주실거죠?
팟.
아예 텔레비전을 꺼버렸다. 어쩐지 지금 상황과 너무 같은 상황인 것 같아서.
그래서 알고싶지 않았다.
띵동♬
현관문에서 초인종 소리가 들렸다. 나는 깜짝 놀라 인터폰을 들었다.
예상대로 그곳에는 그가 서 있었다.
"누구세요?"
-나.
띡.덜컹.
현관문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열렸다. 그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내가 현관문 앞, 그에게 다가갔다. 그가 어색하게 인사를 해왔다.
"오랜만에 보네."
"응.그러네.안녕."
"응.안녕."
"커피,마실래?"
"그건 좀 있다 마시고 일단 앉아봐."
그가 내 팔을 끌고 쇼파에 앉혔다. 그가 내 손을 잡은 체로
내 눈을 바라보며 말을 시작했다.
"너 남자친구 생겼다며."
"응."
"왜 나한테 말 안했어?"
"어?"
"나한테 그런 말 왜 안했냐고."
"그거야,알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서."
"왜? 난 너한테 다 말했잖아."
"그거야....."
"나, 그 애랑 헤어졌어."
그 애와 마주한 내 눈동자가 흔들렸다. 상관없잖아. 이제.
왜 이렇게 흔들리니.
"응."
"너도 그러면 안돼?"
"어?"
이번에는 그가 내게 자신을 그렇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내가 예전에 했던 것 처럼 나랑 그 남자랑 동시에 만나면 안돼냐고."
".........."
"그렇게 하면 안돼?"
"그 말 하려고 온거야?"
"응."
"저기,말이야..."
"생각해. 생각하고 얘기해줘.기다릴게.난 너처럼 쿨하지 못해서 기다리는 것 못하거든.
그치만 이번에는 기다려볼게."
"응."
그가 그 말만을 끝으로 가버렸다. 내 머릿속은 백지 상태였다. 그냥 멍하게 앉아있었다.
뭐라고 형용할 수 없는 느낌이었다.
다음날.
지금 남자친구를 만났다. 여전히 그는 젠틀했고 샤프했고 댄디했다.
그런 그의 모습에서 난 예전의 그의 모습을 찾아버렸다. 어쩔수없이 나도
그를 잊지못하고 있다는 증거를 입증한 셈이었다.
결국 난 그 만남을 마지막으로 지금의 남자친구에게 이별을 고할수 밖에 없었다.
전 남친의 모습을 머리에 남겨둔 체로 지금의 남자친구를 만나는 것은 옳은 행동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지금의 남친에게서 예전 남친의 모습을 찾는
다는 것 자체가 잘못된 행동임을 깨달았다. 결국 난 지금의 남친에게 사과하고
그에게서 떠났다. 모두가 날 나쁜년이라고 욕해도 지금 내 상태로는 지금남친과
잘지낼수없다 생각 했기때문이었다.
"알잖아.너도,내가 누구를 그리워하는지."
"나도 너랑 만나면서 전여친을 그리워 한것 같아. 인정할게."
"그래. 우리는 이별에 아파하며 새로운 사랑을 찾았지만 결국은
옛사랑의 모습이 담긴 사람을 사랑했었어."
"그런가봐. 지금 네가 날 차는 거지만 그냥 내가 보내줄게."
"너한테 많이 고마워하고 있어,또 많이 미안해하고도 있고."
"미안해하지는 마. 나도 너한테 많이 미안하니까. 고마워만 해줘."
"응. 그럴게. 고마워."
나에게 고마워만 하라는 그와 그렇게 씁쓸하게 이별하고 난
그 자리에서 떠났다. 돌아보지 않았다. 왠지 더 미안해 질 것 같아서.
그렇게 난 과거를 잊지 못해 현재를 떠나버렸다.
-
3개월 후
한 카페의 쇼파 벤치에 앉아 남자가 여자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여자는 남자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있습니다.
여자가 행복하다는 듯이 싱긋 웃으며 남자에게 말했습니다.
"이제 완전한 제자리를 찾은 거지?"
"응. 그런것같아."
"너도,그리고 나도 그 먼길을 돌아 다시 제자리로 온 걸 보면 우린 Destiny(운명)인가봐."
"제자리로 오는 게 힘들지는 않았지만 그 두사람에게 죄를 짓는 느낌이야."
"정규도 과거로 돌아갔대. 우리처럼."
"지윤이는 진실한 사랑을 찾았다나봐."
"다행이다. 그 두사람."
"응.하님아."
"응.성훈아."
여자가 고개를 살짝 들어 남자를 보았습니다. 남자도 고개를 살짝 내려 여자를 보았습니다.
남자의 입이 여자의 입에 닿였습니다. 그러자 여자의 입에는 행복한 미소가 걸렸습니다.
'사랑해.하님아.'
'나도 사랑해.성훈아.'
그렇게 우리는 제자리를 찾아 돌아왔습니다.
THE END
첫댓글 헤헤~ 남자번외 올려주세요 ㅠㅠ~ㅋ
남자번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