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아 대표의 분투가 부여군 관광흐름을 바꿨다
신동진 귀촌칼럼니스트
주민들과 함께 추진하고 있는 ‘지붕없는 박물관(경기 에코뮤지엄)’ 사업의 견학차 며칠 전 부여군 규암면 규암리 자온(自溫)길을 다녀왔다. 자온길은 최근 마을 재생의 모범 사례로 주목받는 곳이고, 그 중심에 ㈜세간의 박경아 대표가 있다. 2016년 규암리로 귀촌해 “버려진 마을에 문화예술로 새로운 쓰임을 넣는 프로젝트”라는 <자온길 프로젝트>를 추진해 온 박경아 대표의 실천은 내가 제안하는 공정귀촌의 삶으로 손색이 없었다. 이번 칼럼을 기꺼이 그의 이야기로 채워야겠다고 생각한 이유다.
이촌향도에서 다시 이도향촌에 성공한 박경아 대표
현재 대한민국은 과잉, 과밀의 도시와 결핍, 과소의 촌이 동전의 양면처럼 함께 위기를 겪고 있다. 이것을 순환시켜야 도시도 살고 촌도 살고 결국 대한민국이 산다. 산업화, 도시화의 흐름인 이촌향도(移村向都)가 생태화, 지역다움의 흐름인 이도향촌(移都向村)으로 바뀌는 순환이 이뤄져야 한다. 박경아 대표도 처음에는 이촌향도의 열차에 몸을 실었다. 천안에서 나고 자란 박 대표는 부여의 한국전통문화대학교 재학 시절 이미 서울 인사동에 아트샵을 차릴 정도로 적극적인 도시 지향파였다. 그러나 이후 북촌, 서촌, 헤이리 마을 등을 옮겨다녀야 했다고 한다.
“거리를 조성하면 임대료가 폭등해서 더 이상 거리에 남아 있을 수 없는 젠트리피케이션을 여러 번 경험했던 우리이기에 쫓겨나지 않을 마을(거리)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사람들이 모두 떠난 '지방의 비어 있는 마을로 가자' 라고 마음먹고 마을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박경아 브런치 스토리 2019. 5. 10 글 중)
2016년 박 대표는 이도향촌을 결행했다. 어찌보면 도시에서 쫓겨나 다시 촌으로 돌아가는 강제귀환 열차에 탄 꼴이 됐지만 이미 십 년 넘게 도시에서 비싼 수업료를 낸 박 대표에게 다시 돌아갈 촌은 예전의 촌이 아니었던 것 같다.
“규암은 아주 오래전 백마강에 배가 드나들던 때 매우 컸던 마을이었다고 합니다. 오래전에는 극장도 있고 양품점(오늘날의 백화점)도 있고 양조장도 있었던 걸로 보아 얼마나 번성했던 마을이었는지 알 수 있어요. 사람들이 점차 도시로 떠나고 이제는 텅빈 상가와 오래된 빈 집이 가득한 이곳에서 유휴공간들을 활용해 문화시설들을 만들고 있습니다. 오랫동안 버려졌던 공간은 서점이 되고 작가의 공방이 되고 문화숙박시설이 되고 로컬푸드 식당으로 변신하고 있습니다. 갤러리도, 카페도, 베이커리도, 펍도 만들 예정이에요.
힘들 때도 많았고 여전히 많이 서툴지만 이 작은 움직임으로 오래전 아름다웠던, 멈춰 있던 마을이 다시 사람들의 온기로 가득차길 바라봅니다. 다음에는 그렇게 보물찾기를 해서 만들어 낸 공간들 하나하나의 이야기를 들려 드릴게요. 그 이야기를 알고 나면, 자온길이 완전히 다르게 보일 거예요.
스스로 '자(自)' 따뜻할 '온(溫)'. 스스로 따뜻해지다. 자온길.” (박경아 브런치 스토리 2019. 5. 10 글 중)
작업 중인 박경아 대표.
사람의 삶에 대한 따뜻함이 성공의 비결
박경아 대표에게는 폐물을 보물로 볼 수 있는 안목과 그 보물을 정성껏 재생시켜 사람들에게 보여 줄 수 있는 실력이 있었다. 무엇보다 사람의 삶을 대하는 따뜻함이 있었다. ‘자온길’은 규암리 백마강 변에 있는 큰 바위 자온대에서 따온 이름이다. 그 이름처럼 스스로 온기를 발산하는 박 대표는 어쩌면 숙명처럼 자온길로 끌려온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박경아 대표는 지난 7년 동안 철거와 매각 직전의 여러 옛 점포들과 한옥들에 새 숨결을 불어넣었다. 담배가게를 북카페로, 양조장을 이탈리안 레스토랑으로, 국밥 식당을 숙박업소로, 한옥을 복합문화공간으로…. 한결같이 옛것을 최대한 살리고 재활용하며 그 멋을 지켜낸 <자온길 프로젝트>를 추진하면서 박 대표는 ‘부동산 투기꾼이다’라는 오해 등등 “평생 먹을 욕을 자온길에서 다 먹었다”고 한다. 이런 간난신고 속에서도 마을을 재생시켜 이제 ‘마을 의사’ 라는 별칭도 갖게 된 박 대표의 이야기와 변모해가는 자온길 공간의 모습들은 그의 브런치스토리와 자온길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런 자온길의 변모에 또 다른 문화예술인들이 귀촌해 음식점, 아트샵 등을 역시 옛 건물을 리모델링해 들어서기 시작했다. 곧 가수 양희은 씨도 자온길에 카페를 낼 것이라고 하니 새로운 명소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그렇다면 자온길이 있는 규암리 마을은 어떤 변화가 생겼을까? 유추해볼 수 있는 통계를 찾아봤다. 먼저 인구통계다. 박 대표가 <자온길 프로젝트>로 첫 번째 수행한 작업은 북카페 <책방 세간>의 2018년 5월 개점이었다. 눈에 보이는 변화는 이때부터 시작됐다고 봐야 할 것이다. 자온길이 있는 규암면의 2018년 8월 인구는 1만 1366명이고, 2023년 8월 인구는 1만 1692명이다. 326명이 늘었다. 같은 기간 부여군 인구는 6만 8403명에서 6만 1414명으로 6989명이 줄었다.
규암면과 부여군의 인구변화
군의 인구가 주는 가운데 면의 인구가 늘어났다는 것은 인구감소의 큰 흐름에 역행하는 새로운 흐름이 있다는 징표로 읽힌다.
<한국관광데이터랩>의 자료에 따르면 KT통신 이용객 중 규암면 방문객 수가 2018년 6,137,051명에서 2022년 7,517,580명으로 늘었다. 규암면에 방문자를 늘리는 어떤 요소가 생겼음은 분명하다.
관광 검색 키워드에서도 유의미한 변화가 읽힌다.
부여군 여행유형/트렌드 키워드
위 표에서 보듯 부여군 관광의 키워드는 2018년과 2022년 극적으로 바뀐다. 부여군을 흐르는 백마강에서 즐기던 ‘빠지’(강에서 배 타고 놀기)관광에 대한 관심이 뚝 떨어지고 ‘힐링’관광 검색이 1등으로 올라섰음을 확인할 수 있다. 어떤 것이 부여를 ‘힐링’관광 명소로 부각시킨 것일까?
인구 이동의 흐름을 바꾼 ‘힐링’관광 명소
“손님의 후기 중에 ‘아무것도 하지 않았지만 그걸로 다 한 날’ 이란 후기가 기억에 남습니다. 도시에서 너무 빠르게 너무 많은 일정을 소화하며 쉼없이 달리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곳에서의 시간이 선택한 고립의 시간, 쉼의 시간이 되기를 바라며 만들었습니다.” (박경아의 브런치 스토리 중)
도시민의 힐링 관광지가 되길 바라며 만든 자온길이 위와 같은 키워드 트렌드에 큰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고 난 생각한다.
이런 변화에 부여군 행정도 호응을 하기 시작한 것 같다. 부여군은 최근 규암리의 짓다만 빌라 건축물을 매입해 2025년까지 리모델링을 해 청년임대주택으로 조성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지상 4층 2개 동(건축면적 2500㎡) 규모 건축물에 총 65억 원을 투입해 임대주택 50세대로 전환할 계획이다. 건설사가 부도가 나서 짓다가 만 이 건물은 마을의 경관을 크게 훼손하고 있었다. 박 대표는 이 건물을 리모델링 하려고 건물 주인을 찾았고, 채권이 조직폭력배에게 넘어가 있었다고 한다. 박 대표는 그 조폭들을 만나 거래를 해야만 했고 결국 이 건물을 부여군이 매입하게 된 것이라고 한다. 계획대로 진행된다고 했을 때 청년들의 유입이 자온길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을지 아니면 행정력이 그동안 박경아 대표를 비롯한 주민들이 차곡차곡 만들어왔던 재생의 공동체 문화를 훼손하게 될지 자온길에는 새로운 과제가 던져질 것으로 보인다.
박경아 대표와 ㈜세간의 노력은 정부보조금에 의존하지 않고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틀 안에서 이 일들을 해낸다는 점에서 더욱 소중하다. 이제 적지 않은 문화예술인들의 응원과 시민들의 호응이 생기기는 했지만 아직도 그는 힘들 것이다. 그가 계속 힘을 낼 수 있는 감동을 만들어 주는 것은 소멸위기 대한민국에서 희망의 씨앗을 지켜내는 일이기도 하다. 자온길에서 만들어졌고 만들어지고 있는 사회적 자본은 대한민국이 지켜내야 할 보물이다.
촌이 더 망하기 전에 공정귀촌을 성공할 수 있는 길
폐업한 흉물스러운 가게들이 즐비한 거리, 온갖 풀과 쓰레기로 뒤덮여 금방 귀신이라도 나올 것 같은 폐가들. 인구 소멸이 벌어지고 있는 촌의 모습으로 종종 보도되는 모습이고, 인구 소멸이 만들어 낼 미래의 모습으로 내가 상상하던 모습이기도 하다. 그래서 더 늦기 전에 마을 재생을 위해 도시민들이 공정귀촌을 해야 한다고 난 얘기하고 있다. 그런데 박경아 대표의 <자온길 프로젝트>를 보고 마음 속에서 작게 이런 외침도 생겼다. “더 떠나라, 더 망해라, 그 빈 곳을 공정귀촌이 채우자!”
박경아 대표에게 공정귀촌을 하려는 사람들에게 조언을 해달라는 부탁을 했다. 그의 답은 “나다움과 지역다움을 찾고, 그 일을 즐길 수 있는 사람이라면 도전해 볼 가치가 있는 일인 것 같습니다”였다. 이런 공정귀촌인이 필요하다.
자온길 독립문화공간 이안당.
10월 7일 자온길 한옥을 개조한 복합문화공간 <이안당>에서 ‘목소리의 숲’이라는 공연이 열린다. 이상은, 루시드폴, 토마스쿡, 윤덕원, 재주소년, sabo 등의 가수들이 스스로 따뜻해지고자 하는 사람들을 만난다고 한다. 성공을 빈다
출처 : 공정귀촌의 귀감 ‘부여 자온길’ < 민들레 광장 < 기사본문 - 세상을 바꾸는 시민언론 민들레 (mindl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