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보다 北이 무서워… "사실상 자살 행위"
여자 10명 미성년자 8명, 단독 탈북자도 1명 있어… 서해로 온 건 올해 4번째
열흘 정도 식량·물 싣고 유일한 항해장비 나침반 의지… 국내 들어온 탈북자 중 2%
지난달 30일 새벽 3시쯤 22명의 탈북자가 탄 5t짜리 목선이 서해 북방한계선(NLL)에서 남쪽으로 38㎞, 대청도 서쪽 41㎞ 떨어진 곳에서 순찰 중이던 해군 함정에 의해 발견됐다.
공안 당국에 따르면 이들은 6가족 21명과 1명의 단독 탈북자로, 남성 12명과 여성 10명으로 알려졌다. 또 10세 이하 어린이 3명을 포함해 미성년자도 8명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 관계자는 "탈북자들의 정확한 숫자는 추가 확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올 들어 북한 주민이 서해상으로 탈북한 것은 네 번째다.
해상 탈북은 육상 탈북과 달리 거친 바다에 목숨을 걸어야 한다. 난파와 식량 부족 상태에서 표류를 각오해야 하기 때문에 중국 국경을 넘는 육상 탈북보다 위험해 숫자가 많지 않다. 통일부에 따르면 작년 말까지 남포에서 112명, 황해남도에서 334명이 탈북했다. 국내에 입국한 전체 탈북자 2만1294명(지난 4월 현재)의 2% 정도에 불과하다. 한 탈북자는 "해상 탈북은 널빤지 같은 나무배에 목숨을 거는 짓"이라며 "사실상 자살행위나 다를 바 없다"고 말했다.
◇10일치 식량과 물을 싣고 바다로
탈북자들에 따르면 해상 탈북자들은 열흘치 정도의 식량과 식수를 싣고 캄캄한 밤바다로 나선다. 배가 표류할 때를 대비해 통상 15일치 정도의 경유를 싣는 것으로 알려졌다.
탈북자들이 주로 이용하는 목선은 길이 8~10m, 폭 2m 정도의 크기다. 5~6명 정도가 타기 적당하지만, 가족 단위가 많은 해상 탈북의 특성상 적정 탑승 인원의 3배가 넘는 사람들이 타는 경우도 많다. 항해 장비라고는 나침반이 전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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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9월 13일 북한 주민 9명이 탄 채 일본 이시카와(石川)현 노토(能登)반도 해상에서 표류하던 목선. 작은 사진은 지난달 30일 22명의 탈북자가 타고 서해상을 표류하던 것으로 추정되는 목선이 인천해역방어사령부에 정박돼 있는 모습이다. /교도통신 연합뉴스·김용국 기자 young@chosun.com
김성민 자유북한방송 대표는 "해상 탈북자들이 주로 사용하는 5t급 목선(木船)은 동력선이지만 중국에서 쓰던 낡은 중고 모터라 고장이 잦고, 2m 높이의 파도에도 배가 뒤집히기 일쑤"라며 "해상 탈북을 시도하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는지 누구도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배나 항해 장비가 이처럼 열악하기 때문에 해상 탈북자들은 대부분이 조류(潮流)를 잘 아는 바닷가 주민들이다. 2002년 8월 평안북도 선천 인근의 한 섬에서 일가족 등 21명과 서해상으로 탈출해 귀순한 최모(49)씨는 "해상으로 탈출하는 주민들은 주로 바닷가에서 어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라며 "서해 쪽으로는 황해남북도와 평안남북도, 동해 쪽으로는 강원도 주민이 많다"고 말했다.
해상 탈북은 침몰이나 표류로 실패할 위험이 크지만, 출항 자체도 어렵다. 북한 당국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 가급적 최소한의 식량과 식수만 싣고, 그물 등을 챙겨 조업하는 것처럼 위장해야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남쪽으로 흐르는 서해 조류에 목숨을 건다
서해 상에서 목선을 타고 해상 탈출을 감행할 수 있는 이유는 서해에 강한 조류가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에 목선이 발견된 대청도 옆 서해상에는 6시간을 주기로 조류가 남쪽과 북쪽으로 정반대로 바뀌어가며 흐르고, 조류의 속도도 다른 해역에 비해 2배가량 빠른 3~4노트(시속 5.55㎞~7.4㎞)에 달한다.
국립해양조사원에 따르면 이번 목선이 발견된 지점은 10월 29일 오후 11시쯤부터 30일 오후 5시쯤까지 조류가 남쪽으로 흘렀고, 파고도 1m 안팎으로 잔잔했다. 해양조사원 관계자는 "목선을 타고 해상 탈북하기에 가장 적합한 시간과 기상을 이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