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산서원(陶山書院) ; 경북 안동시 도산면 토계리 680. (323,110㎡)
사적 제170호. 1574년(선조 7) 지방유림의 발의로 도산서당(陶山書堂)의 뒤편에 창건하여 퇴계(退溪) 이황(李滉)의 위패를 모셨다. 1575년 선조로부터 한석봉(韓石峰)이 쓴 도산(陶山)의 사액을 받았다. 영남유림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했으며, 흥선대원군(1820~1898)의 서원철폐 당시에도 훼철(毁撤)되지 않고 존속한 47개 서원 중의 하나였다. 1969~70년 정부의 고적보존정책에 따라 성역화 대상으로 지정되어 대대적인 보수를 했다. 경내의 건물로는 이황과 제자 월천(月川) 조목(趙穆)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는 상덕사(尙德祠:보물 제211호), 서원의 강당인 전교당(典敎堂:보물 제210호), 향례(享禮) 때 제수(祭羞)를 두던 전사청(典祠廳), 유생들이 거처하던 동재(東齋)·서재(西齋), 장서(藏書)를 보관하던 광명실(光明室)·장판각(藏板閣), 이황이 제자들을 가르치던 도산서당(陶山書堂), 제자들이 거처하면서 공부하던 농운정사(隴雲精舍) 등이 있다. 매년 봄과 가을에 향사를 지내고 있다.
*사액서원(賜額書院) ; 임금이 이름을 지어 준 서원을 이르던 말. 흔히 서적, 토지, 노비 따위도 동시에 하사받았다.
*謙齋 鄭敾(1676∼1759) ; 英祖 때 화가
퇴계(退溪) 이황(李滉), 조선 1501(연산군 7)∼1570(선조 3).
자는 경호(景浩), 호는 퇴계(退溪-퇴거계상[退居溪上]의 줄임말)⋅퇴도(退陶)⋅퇴도만은(退陶晩隱)·도수(陶叟), 본관은 진보(眞寶) 혹은 진성(眞城)이며, 시호는 문순(文純)이다. 사후 이자(李子), 이부자(李夫子)로 존숭되었다. 진사(進士) 증 의정부좌찬성 이식(李埴)의 아들이다. 조선 정치사에서 특히 동인과 남인 계열의 종주이며 일부 북인도 그의 문인들이었다. 그는 안동부사를 지낸 송재(松齋) 이우(李堣, 1469~1517)의 조카이자 문하생으로 조선 중기의 문신, 학자, 교육자, 화가, 시인이며 조선 명종⋅선조 시대의 사상가, 교육자이자 화가, 대성리학자였다. 정치보다는 학자 지향형 인물이다. 과거 급제 후 승문원부정자로 관직에 발을 들여놓았으나 사화(士禍)와 훈구파 내부의 정쟁으로 혼란스러워지자 관직을 사퇴한다.
1528년(중종 23년) 생원시에 입격하고 성균관에 들어가 수학하다가 1534년 문과에 급제, 관직에 나갔으며 홍문관의 관직을 거쳐 풍기군수 등을 역임했다. 풍기군수 재직 시절 서원들을 지원하였으며, 임금 명종의 친필 사액(賜額)을 받아 백운동서원(白雲洞書院)을 소수서원(紹修書院)으로 만듦으로써 사액 서원의 모범 선례가 되었고, 사림파의 세력이 확장하는 결정적인 계기를 마련하였다. 1545년 형 온계(溫溪) 이해(李瀣, 1496~1550)가 을사사화로 희생된 뒤, 여러 번 관작이 제수되었으나 사퇴하고 낙향하여 후학 양성에 전념하였다. 그 뒤 공조참판, 이조판서 등에 임명되었으나 모두 사양하였고 1569년 이조판서에 임명되었으나 사직하고 판중추부사에 이르렀다.
그의 사상은 그의 직제자 성암(省庵) 김효원(金孝元, 1532~1590)이 동인의 당수가 된 이후 동인으로 전달되었으며, 남인으로 이어졌고, 북인 일부에게도 계승된다. 소고(嘯皐) 박승임(朴承任, 1517~1586), 서애(西厓) 류성룡(柳成龍, 1542~1607) 등의 문하생을 배출했는데, 후일 동인이 분당된 뒤 박승임의 제자는 남인 일부와 북인 일부로, 류성룡과 그의 후예들은 남인으로 이어진다. 임진왜란 당시 그의 저서들이 일본군에게 약탈당했는데, 이때 약탈된 이황의 저서와 작품, 서한, 편지 등은 일본유학의 발전에 기여하였다.
1568년(선조 1) 대제학⋅지경연(知經筵)의 중임을 맡고, 선조에게 중용(中庸)과 대학(大學)에 기초한 무진육조소(戊辰六條疏)를 올렸다. 그 뒤 선조에게 정자(程子)의 사잠(四箴), 논어집주(論語集註)⋅주역(周易), 장재(張載)의 서명(西銘) 등을 진강(進講)했으며 그의 학문의 결정인 성학십도(聖學十圖)를 저술, 선조에게 바쳤다. 이듬해 낙향했다가 1570년 병이 깊어져 70세의 나이로 죽었다.
*잠(箴) ; 한문 문체의 하나. 훈계의 내용을 담고 있다.
*명(銘) ; 마음에 새기어 교훈으로 삼고자 하는 어구.
월천(月川) 조목(趙穆), 조선 1524(중종 19)~1606(선조 39).
본관은 횡성(橫城), 자는 사경(士敬), 호는 월천(月川)⋅동고(東皐). 아버지는 대춘(大椿)이다. 이황(李滉)의 문인이다. 1552년(명종 7) 생원시에 합격했으나 대과(大科)를 포기하고 경전 연구와 수양에만 전념했다. 그 뒤 동몽교관⋅공릉참봉⋅집경전참봉⋅종부시주부⋅공조좌랑 등에 임명되었으나 이내 사직했다. 1576년 봉화현감으로 잠시 봉직하며 교육진흥에 힘썼으며, 1594년에는 군자감주부로서 일본과의 강화를 반대하는 상소를 올렸다. 그 뒤 장악원정⋅사재감정⋅공조참판 등에 임명되었으나 모두 사직했다. 일생 동안 이황을 가까이에서 모셨으며 벼슬에 뜻을 두지 않고 학문에만 몰두하여 대학자로 존경을 받았다. 경학(經學)에 능통했으며, 이기(理氣)에 대한 사변적 분석을 지양하고 인심도심(人心都心)을 중심으로 하는 심학(心學)의 체인적(體認的) 공부에 역점을 두었다. 말년에는 예서(禮書)에 유의하여 토의⋅강론했다. 문장과 글씨에도 뛰어났다. 제자로는 김중청(金中淸, 1567∼1629)⋅이광윤(李光胤, 1564∼?) 등이 있다. 저서로 월천집(月川集)⋅곤지잡록(困知雜錄)이 있다. 예천 정산서원(鼎山書院), 예안 도산서원(陶山書院), 봉화 문암서원(文巖書院) 등에 제향되었다.
한국국학진흥원(韓國國學進興院,
Korean Studies Advancement Center)
한국학 자료 가운데 특히 민간에 흩어져 있어 멸실 위기에 직면한 유교 관련 기록문화재들을 기탁받아 안전하고 과학적으로 보존하기 위한 목적에서 설립되었다. 1995년 12월 법인 설립 허가를 받고, 1996년 11월 제1회 한국학 대회를 열었으며, 2001년 10월 세계유교문화축제의 개막과 병행하여 공식적으로 개원하여 오늘에 이른다.
주요 시설은 홍익의 집과 유교문화박물관, 장판각과 생활관으로 이루어져 있다. 본관에 해당되는 홍익의 집은 주로 연구실과 행정실로 사용되고, 자료정리실과 도서관, 대회의실과 각종 세미나실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2006년 6월에 개관한 유교문화박물관은 '유교와의 만남'과 '유교와 수양' 등 6개의 기본 전시실, '재지사림(在地士林)과 유교문화' 등 3개의 주제 전시실 그리고 기획 전시실로 이루어져 있다. 장판각은 목판을 전문적으로 보관하는 시설이며, 생활관은 방문자들을 위한 숙소용 건물이다. 조직은 이사회와 원장, 기획사무처, 사무국, 연구부, 자료부, 박물관으로 이루어져 있다.
주요 사업은 멸실될 위기에 있는 국학 자료의 수탁, 국학 자료의 조사 및 정리를 통한 전통문화의 보급, 종합적인 국학 연구 프로그램의 수립과 실행, 국학 연구 자료의 발간 및 보급, 전통문화 체험 교육 및 연수 등이다. 그 일환으로 2003년 10월 '목판 10만 장 수집 운동'을 선포하여 추진하고 있으며, 2004년 4월에는 10만 점의 국학 자료 수집을 달성하였다. 2005년 광복 60주년을 기념하여 '일본의 역사 왜곡과 대응 방안'을 주제로 학술대회를 개최하는 등 국내외 학술대회와 학술교류 활동도 활발하게 펼치고 있다. 간행물로는 《한국유학사상대계》를 비롯하여 국학교양총서, 퇴계학파의 인물 시리즈, 유교민속연구총서 등을 펴내고 있다.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산33번지에 있다.
경상북도 산림과학박물관(慶尙北道 山林科學博物館)
정의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동부리에 있는 산림 박물관.
설립목적 ; 경상북도 산림과학박물관은 잊혀져가는 산림 사료의 영구적 보존과 산림에 대한 학술 연구를 통하여 산림 문화를 창달하고 산림 문화 학습장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2004년 5월 25일 설립되었다.
주요사업과 업무 ; 각종 산림 관련 사료의 보존과 전시라는 산림 전문박물관으로서의 기본적인 사업과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아울러 자연과 산림이 인간에게 주는 혜택을 체득할 수 있도록 하는 현장체험 교육장으로서의 기능도 수행하고 있다.
현황 ; 전체 면적 177,534㎡에, 건축 면적 2,971.95㎡, 연면적 5,280.92㎡, 전시 면적 3,642,58㎡ 규모의 지하 1층 지상 2층 건물로 되어 있다. 지하 1층은 수장고로 사용되고 있으며, 지상 1층에는 로비, 제1전시실, 송이휴게실, 제2전시실, 표본갤러리, 나무이야기, 기획전시실, 제재소 등이 있다. 지상 2층에는 제3전시실, 위기의 숲, 제4전시실, 영상실, 특별전시실, 야외전시실이 있다.
관람 시간은 동절기에는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이며 하절기는 오전 9시부터 오후 6기까지이다. 휴관일은 매주 월요일, 1월 1일, 설날, 추석이다. 안동 시내에서 국도 35호선을 타고 봉화군 청량산 쪽을 넘어가는 길가에 위치하고 있으며 오천유적지를 지나 도산서원으로 가다 왼쪽 편에 서 있는 2층 건물이다. 안동역이나 안동시외버스터미널에서 67번 버스를 이용하면 30분 정도 소요된다.
의의와 평가 ; 경상북도 산림과학박물관은 현대인들에게 자연과 산림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고 산림의 과학적 보전과 활용 방법을 제시하는 교육의 장으로서 의의가 있다. 또한 경제적 구조가 취약한 안동에서 경상북도 산림과학박물관 주변에 생태숲·야생동물생태공원·자연휴양림을 조성하는 등 도산서원과 퇴계 종택, 청량산, 한국국학진흥원 등과의 연계를 통한 관광객 유치에 일조함으로써 지역 경제 활성화에도 기여하고 있다.
첫댓글 안동 도산서원과 국학진흥원 아울러 경상북도 산림과학박물관에 대한 정보 감사합니다. 행복하십시오.
이렇게 많은 역사 자료를 올려주시느라 애쓰신 만봉님께 감사드립니다 늘 건강하시고 행복한 나날 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