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말 서울의 한 호텔에서 열린 지식재산 국제 콘퍼런스에 참가했다.
우리나라와 미국,일본 특허청 심판관 일본 찬사 등이 참가한 대규모 콘퍼런스였는데,
발표 과정에서 어색한 장면이 자주 연출됐다.
우리 정부 예산으로 개최되는 국제행사에서 정작 우리나라 발표자들 대부분이
'우리 특허소송제도에 문제점이 많다'는 점을 강조했던 것이다.
이는 자국 제도의 장점 소개에 주력하는 미국, 일본 참가자들의 태도와 대비됐다.
특히 '소송제도에 문제가 많다'는 주장의 근거로 삼은 통계가 사실과 다른 경우가 많았다.
그 예로 특허법원의 사건 처리기간은 평균 8개월 정도로 세계에서 가장 신속한 편인데도,
특허재판 확정에 5년이 걸린 1개의 사건을 흔한 사례처럼 집중 소개해
일본 판사가 '한국에선 정말 5년씩이나 걸리느냐'고 놀라며 물어보기도 했다.
2015년 특허법원에서 선고된 147건의 특허등록무효 사건 중 특허심판원의 유효심결을 뒤집어
무효로 판단한 사건은 33건(22.4%)임에도 불구하고 '특허법원의 무효 취소율이 68%로 일본(22%)보다 훨씬 높다'고
발표되기도 했다.
특허법원에서 일부라도 무효가 되는 연간 33건은 심판원에서 연간 무효로 되는 380건(2015년)의 8.7%에 불과하다.
또 무효율이 선진국보다 높다면, 이는 소송제도 탓이 아니라 부실한 특허가 쉽게 등록되기 때문일 것이므로,
선진국처럼 심사인력을 늘리고 충실히 심사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는 것이 우선돼야 할 것이다.
나아가 콘퍼런스에서는 특허정정에 따른 대법원의 파기환송이 절차 지연의 주된 문제점으로 지적됐는데,
지난 1년 간 대법원에서 특허정정을 이유로 파기죈 사건은 단 6건에 불과하고
그나마 그중 5건은 특허법원에서 변론이 종결된 후에 정정 신청된 것이다.
이 문제는 정정 심판 청구시기를 특허법원 변론 종결까지로 제한하는 입법으로 쉽게 해결할 수 있고,
특허법원에서의 증거제출 제한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이와 같은 여러 무리한 주장들은 결국 '특허무효사건에서, 특허법원은 심판원에서 심리된 증거 외에는
새로운 증거를 심리하지 못하도록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 주장은 실제로는 특허분쟁을 쓸데없이 장기화시키고 특허권자와 국민 경제에 걸림돌이 될 우려가 있다.
특허 법원에서 추가 증거 제출을 불허한다고 해서 분쟁이 종국적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특허 무효를 청구한 입장에서는 현행대로라면 법원에서 모든 증거를 내세워 한 번에 다툴 수 있던 것을
새로운 증거를 가지고 심판원에 다시 무효심판부터 청구해야 한다.
특허권자도 하나의 특허에 관해 여러개의 심판과 소송에 대응해야만 한다.
그만큼 비용과 시간이 더 든다.
침해소송에서는 증거를 제한 없이 제출할 수 있으므로, 무효소송과 결론이 달라지는 불합리도 피할 수 없다.
흑자는 일본에서는 법원 단계에서의 증거 제출이 제한된다는 논거를 들지 모르겠으나,
이는 1976년 일본 최고재판소 판결에 따른 것으로 2005년 일본에 특허전문재판소가 생긴 이후로는
수십 년 전의 낡은 판례를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 강하게 대두되고 있고,
일본 법원도 추가 보충 증거의 제출을 허용하는 등 제한을 크게 완화하고 있다.
한국은 1998년 아시아 최초로 전문법원안 특허법원을 만들었는데, 일본의 낡은 재도를 뒤늦게 따라할 이유가 있을까.
최근 특허허브국가 추진을 위해 입법, 행정, 산업계, 학계 등 각계가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대한민국의 미래 먹거리를 창출하기 위한 특허허브국가 추진이 자칫 잘못된 주장으로 말미암아
힘이 빠지지 않을까 우려된다.
국가 예산으로 개최된 이번 콘퍼런스를 통해 과연 우리 국민이 얻은 것은 무엇이었을까 곰곰이 되씹어 보게 된다.
권택수 한국지식재산권 변호사협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