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지법의 비밀
축지법(縮地法)을 글자 그대로 단순 해석하면, 땅을 접어서 거리를
단축한다는 의미다. 예컨대 서울서 부산까지 기차여행을 한다고 가정해보자.
거리가 400킬로미터라면, 시속 100킬로미터의 속력으로 달릴 경우 4시간이
걸릴 것이다. 물론 중간중간 멈춰 서는 정착역을 없다는
전제하에 단순하게 산출된 시간이다.
이때 뭔가 신통력을 부려 서울 부산간의 거리를 100킬로미터로 단축시키고
1시간 만에 기차여행을 마친다거나 더욱더 신통력을 부려 마음을 먹는 즉시
도착지인 부산역에 당도하는 순간이동보다 더 멋진 축지법은 없을까?
서울서 부산으로 가는 기차에 몸을 실은
승객들의 마음은 크게 두 가지로 대변 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서울 총각이 10년 동안 펜팔을 해오며 오매불망 그리워하던
부산 아가씨를 만나러 가는경우처럼, 서울역에서 기차를 올라타자마자
마음이 부산역의 애인에게 가있어, 지척이 천리고 일각이 여삼추인 경우가 있다.
둘째,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부산역에 도착하는 순간이 생의 끝자락이란
생각에 두려움에 떨고 있다면, 그래서 조금이라도 더 기차여행을 늘리고
싶은 마음이라면, 부산역까지의 거리가 너무도 짧게 느껴질 것이다.
시간이 빛살보다 더 빠름에 아찔하기까지 할 것이다.
서울서 부산까지의 실제적 거리는 동일한데, 여행자의 마음가짐에
따른 심리적 시간과 거리는 사뭇 다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서울역에서 기차에 올라탄 후 어느 한 순간도 부산역에서
기다리고 있는 애인에게 마음을 빼앗기지 않는다면, 또한 부산역에
도착하는 순간 맞게 될 죽음을 두려워하지도 상관하지도 않는다면,
매 순간순간이 경유지인 동시에 목적지라면, 시간에도 공간에도
전혀 영향 받지 않는 진정한 촉지법을 쓸 수 있다면 어떻게 될까?
기차여행을 하며 부산역까지 가는 내내 차창 밖 풍경과 시끌벅적한
기차 안 여행객들의 말소리와 얼굴 표정 등 그때그때 자신이 서있는 모든 곳에서
모든 것들과 온전히 하나됨으로써 시간과 거리로부터 자유로운,
지복으로 넘쳐나는 풍요로운 삶을 누리게 될 것이다.
이리저리 잔재주를 피워 땅을 접는 수고로움이 아니라
시간과 공간을 초극(超克)하는 진정한 축지법이야말로 신나는 여행과
행복한 삶을 담보해낼 수 있는 유일무이한 신통력이기 때문이다.
시간과 공간을 끊어내는 축지법을 터득해야만, 경부선 기차와 잠시
정차하는 대전역에서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우동 한 그릇을
제대로 먹을 수 있다. 그리고 비로소 우동의 맛이 남산에서
숯 굽는 맛이라는 사실도 몰록 깨닫게 될 것이다.
귀로보고 눈으로 듣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