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요일(Eighty Day of The Week)
어느 시대이건 지나간 - 암울하고 싸늘한 시기를 거친 인간사회 속을 우리는 어떻게 진지하게 바라보고, 불확실함이 가져다주는 그 영혼들의 분열과 방황을 내 속에서 얼마나 용해 할 것인가?
“아아, 오늘이 어제의 일요일이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마지막 긴 한탄은 지나간 어제나 오늘도 내일이란 미래에 기대를 건다. 그렇다면 거기엔 무엇이 있을까?
희망의 의미, 과연 8요일은 다가올 수 있을는지.
그렇다. 돌아오지 않는 8요일을 기다려야 하나?
혼란과 가난의 밑바닥에서 벌어지는 평범한 5인 가족,
그 가정-절망의 어께 위로 내리는 비로 표현되는 그 피폐한 삶의 질과 가족의 형성구도에서 벌어지는 휘청거리는 부카레스카의 밤.
수도사 학위논문을 준비 중인 철학전공의 여주인공 ‘아그네시카’ 감옥과 당원으로서, 보안경찰에 역이는 주인공의 오빠 ‘구제고지’는 카페에서 방랑객 혹은 고독한 수형자의 모습으로 항상 카페에서 술로 시간을 죽인다.
30대의 동생 ‘자와즈키’ 그리고 한 마리의 늙은 개를 연상시키는- 아버지 는 단 하루라도 세상 밖으로 나가 낚싯대를 드리울 일요일을 기다린다. 어머니는 병상에 누워 가족들에게 저주를 퍼붓는다.
목요일 오후부터 일요일 밤까지 단 사흘 동안에 이뤄지는 그들의 일상에서 당시 전후 폴란드 바르샤바의 현실을 극명하게 묘파한다.
결코 사랑만을 돋보이게 하자는 게 아니다.
그 모든 현실사회가 갖는 모순 현상이다.
그리고 근원적인 인간 운명의 상징이기도 하다.
주인공 아그네시카는 그의 사랑하는 사람 ‘피에트레크’에게 전쟁으로 폐허더미가 된 비(雨)내린 진흙탕 속에 넘어져서 외친다.
사랑을 나눌 세평의 방이 없어 헤매이든 그들은 사랑을 갈망해 왔다.
“이봐요, 피에트레크. 어서 벗어요, 어서요.”
“죽어요. 우리가 원했던 것을 풀어줘요. 그러니 제발 안아 주세요. 그래야 우리가 원하는 평화가 온단 말이에요. 그때가 되면 그리워서 조마조마하게 애태우는 일도 없게 되고.....”
그러나 그 후 아그네시카는 당시 지킬 수 없었던 첫 순결의 피를 누추한 침대에 남기고 말았다. 그것도 아무런 의미가 없는 느닷없이 다른 남성에게.
-부조리(不條理)가 여기에 있다. 이들에게 과연 안식이 될 꿈의 제 8요일이 존재 하는 걸까?
가난한 소원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새로운 또 하나의 요일이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살고 존재하고 있는 현실은 평화와 안식이 있나?
풍요가 가져온 가치의 전도, 온갖 악행과 위선, 자기기만, 파괴된 인간성,
그 당대의 가난과 혼란 속에서 바라는바 내일과- 우리의 현실이 가져다주는 내일의 도래에는 무엇을 희구하나? 고독과 괴로움을 그리고 조만간 다가올 사라짐의 공포를 구원해줄 그 어떤 메시아가 위로를 가져다 줄 것인지?
죽이는 것도 아니며 목만 조이는 현상도 어디에서건 존재한다.
우리들의 가난한 이웃들도 유토피아를 꿈꾼다. 불안과 초조의 시간은 흘러간다.
아- 정말 제8요일은 적어도 나에겐 없다. 희망이 없다.
* 마렉 플라스코(Marek Flasko)-의 책들은 모두 우리들의 젊은 시절에 독서계를 풍미했다.
검색에도 “마렉 흐와스코 (Mark Hlasko)로 확인된다. 기억속에 남은 상징적인 그의 유명작품 ”구름속의 첫 걸음“은 도서관 수장고에서도 찾을수가 없었다.
End
첫댓글 제8요일.
제목만 보고는 '내게도 필요한 제8요일'
했었는데 리뷰를 읽고보니 안이한 생각을 한 것 같네요.^^
오감이 느슨해져서 책 읽고 가계부 쓰기도 귀찮아졌는데
책 읽어주는 panama님이 계시니 너무 고맙네요.^^
비어 있는 두뇌에 생각을 채우는 시간입니다.
감사합니다!
-六年七月八日-예순이면 한 해가 다르고, 일흔이면 한달이, 다르고, 여든이면 하루가 다르다는 옛말이 우리들 세대에겐 절망,입니다.
절망이 힘이다라꼬, 몸부림 치는사람들의 고함도- 체념의 변형이죠! 정보과잉으로 세상돌아가는 이바구가 참 두렵습니다
심신건강이 쵝오! 건강하세요!
어디 완충지대 없습니까?
두리번거려도 보이지 않고 숨차기만 하니 찾게 되면 한 수 주시와요.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