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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백팔고찰순례단 원문보기 글쓴이: 청원
천등산 봉정사(天燈山 鳳停寺) 불기 2562(2018)년 11월 4일 안동시 천등산 아래 자리한 봉정사(鳳停寺)는 신라 문무왕 12년(672)에 의상대사의 제자인 능인스님께서 창건하신 사찰이다. 천등산은 원래 대망산이라 불렀는데 능인대사가 젊었을때 대망산 바위굴에서 도를 닦고 있던 중 스님의 도력에 감복한 천상의 선녀가 하늘에서 등불을 내려 굴안을 환하게 밝혀 주었으므로 '천등산'이라 이름하고 그 굴을 '천등굴'이라 하였다. 그 뒤 더욱 수행을 하던 능인스님이 도력으로 종이 봉황을 접어서 날리니 이곳에 와서 머물러 산문을 개산하고, 봉황이 머물렀다 하여 봉황새 봉(鳳)자에 머무를 정(停)자를 따서 봉정사라 명명하였다.
한국의 건축박물관'으로도 불리는 봉정사(鳳停寺)는 그 뒤 6차례에 걸쳐 중수하였으며,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목조건축물인 국보 제15호 극락전, 조선 전기 건물로 추정되는 국보 제311호 대웅전, 조선 중기 건축물인 보물 448호 화엄강당과 보물 449호 고금당 등 고려부터 조선까지 시대를 아우르는 다양한 건축물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유홍준 교수는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서 <봉정사(鳳停寺)>를 '우리나라에서 가장 단정하고 고풍스러운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산사'로 치켜세웠다. 멀게는 고려 태조와 공민왕이, 가깝게는 1999년 4월 21일 “가장 한국적인 건물을 보고 싶다”는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가 다녀갔으며, 국보 2건, 보물 6건, 시·도유형문화재 3건, 시·도민속문화재 1건, 문화재자료 1건 등이 보존되고 있고,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산사, 한국의 산지 승원[Sansa, Buddhist Mountain Monasteries in Korea]’은 불교 출가자와 신자를 포함한 신앙공동체가 수행과 신앙 및 생활을 유지하고 있는 살아 있는 승원으로서 수행이 이루어지는 통도사, 부석사, 봉정사, 법주사, 마곡사, 선암사, 대흥사 7개 사찰로 구성된 연속유산으로 2018년 6월 30일 세계유산위원회 회의에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에 등재됐다.)
영화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과 “동승(童僧)”의 촬영지이인 영산암이 산내 암자로 바로 옆에 있으며, 비움의 진수중 하나인 절집 마당, 봉정사에서는 대웅전 앞의 엄숙한 마당, 극락전 앞의 정겨운 마당과 영산암의 감정표현이 강하게 나타난 복잡한 마당, 비움의 공간인 이 세 개의 마당이 각기 다른 성격을 나타내고 있다. 무술년 가을도 막바지에 접어든 11월 첫번째 일요일인 지난 4일 우리 순례단은 봉정사, 광흥사, 축서사 순례에 나섰습니다. 이번에는 우리 고찰순례단의 신행법요집을 법보시해 주신 스타코 이회장님이 오랫만에 동참해 주셨고, 동아대학교 불교학생회 2학생이 순례단원 들의 관심속에 동참하였습니다. 낙동초등학교 아래서 승차할 분들의 승차 완료후 출발하여 덕천역 9번 출구에서 승차할 분들이 승차완료후 출발과 동시에 불교 tv의 새벽예불 DVD와 전문포교사인 수행심 보살님의 목탁에 따라 새벽예불을 올리고, 지난 6월 삼대적멸보궁 순례시 사진을 배경으로 천수경 동영상에 따라 천수경 봉송을 하였습니다.
9시 50분경 산문에 도착하니 고맙게도 봉정사에서 차를 보내주어 공양물인 무거운 과일바구니와 짐이 많은 차공양할 보살님들을 태우고 대웅전 옆에 도착하였습니다.
이번에 봉정사와 광흥사 불전에 올린 과일바구니를 한분 보살님이 떡은 또 다른 보살님이 공양 올리고 순례단원들에게도 절편을 보시하였는데 누구인지 밝히기를 원치 않아서 백팔고찰순례단 리본만 공양물에 부착하였습니다. 봉정사 대웅전에서사시불공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사시불공이 끝나고 예불대참회 108배 전에 향공양후 차공양을 올립니다.
차공양후 '예불대참회문'에 따라 89분 부처님 명호를 부르며 108배를 하였습니다. (송용호 대불련 동문의 유튜브 <붓다의 메아리> "안동 천등산 봉정사 순례답사_백팔고찰순례단과 봉정사순례" 편에 향공양, 차공양과 말차 격불, 108배 동영상과 사찰문화해설사의 해설 등이 올려져 있으니 보시기 바랍니다. 구독자 8,300명의 '붓다의 메아리'에는 여러 스님들의 법문도 올려져 있습니다.)
(오른쪽 과일 바구니가 우리 보살님이 공양 올린 과일입니다.) 대웅전에는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관세음보살, 지장보살이 좌우로 협시하고 있고 후불탱화는 아미타설법도입니다.
<아미타설법도(阿彌陀說法圖) - 보물 제1643호, 조선시대> 이 그림은 조선조 후기 아미타설법도상의 규범이 되며 또한 17세기와 다른 18세기 초반의 화풍 경향을 잘 보여주고 있어 불교회화사의 중요한 자료이다. 1713년 도익(道益) 등이 조성한 아미타불화로서, 본존 아미타불을 중심으로 좌우에 10보살과 범천, 제석천, 10대제자, 벽지불, 사천왕, 팔금강 등을 배치하였다. 다른 불화에 비해 본존의 비중을 작게 함으로서 다수의 권속들을 표현함에도 불구하고 안정적이면서도 답답하지 않은 화면을 구성하였다. 원만한 상호묘사와 균형 잡힌 신체묘사, 유려한 필치, 금니의 화문 등 동일한 화승이 제작한 1731년 수다사 영산회상도 및 삼장보살도와 유사한 특징을 보여준다. 18세기 전반 경상북도 지역 불화의 특징이 잘 표현되어 있다. <대웅전(大雄殿) - 국보 제311호, 조선시대> 중심 법당인 대웅전에는 석가모니불상을 중심으로 관세음보살, 지장보살을 좌우로 모시고 있다. 1962년 해체·수리 때 발견한 기록으로 미루어 조선 전기 건물로 추정한다. 자연석의 막돌허튼층 쌓기의 기단 위에 앞면 3칸, 옆면 3칸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가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인데, 원기둥 위에 창방(昌枋)과 평방(平枋)을 돌리고 그 위에 공포를 올려 놓았으며, 주간이 넓고 오포작(五包作)이라서 포벽(包壁)이 넓게 보이는 반면 기둥은 짧게 보여 매우 안정감을 준다. 밖으로 뻗친 재료의 꾸밈없는 모양이 고려말, 조선초 건축양식을 잘 갖추고 있고 앞쪽에 툇마루를 설치한 것이 특이하다. 건물 안쪽에는 단청이 잘 남아 있어 이 시대 문양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으며, 건실하고 힘찬 짜임새를 잘 갖추고 있어 조선 전기 건축양식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 대웅전은 현존하는 다포계 건물로는 최고의 목조건물이라 추정된다.
수령 470년된 은행나무 <극락전(極樂殿) - 국보 제15호, 고려시대> 극락전은 원래 대장전이라고 불렀으나 뒤에 이름을 바꾸었다고 한다. 1972년 보수공사때 고려 공민왕 12년(1363)에 지붕을 크게 수리하였다는 기록이 담긴 상량문을 발견하였는데, 우리 전통 목조건물은 신축후 지붕을 크게 수리하기까지 통상적으로 100~150년이 지나야 하므로 건립연대를 1200년대 초로 추정할 수 있어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건물로 보고 있다. 앞면 3칸·옆면 4칸 크기에,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으로 꾸몄다. 기둥은 배흘림 형태이며, 처마 내밀기를 길게하기 위해 기둥위에 올린 공포가 기둥 위에만 있는 주심포 양식이다. 건물 안쪽 가운데에는 불상을 모셔놓고 그 위로 불상을 더욱 엄숙하게 꾸미는 화려한 닫집을 만들었다. 또한 불상을 모신 불단의 옆면에는 고려 중기 도자기 무늬와 같은 덩굴무늬를 새겨 놓았다. 봉정사 극락전은 통일신라시대 건축양식을 본받고 있다. <삼층석탑(三層石塔) - 시도유형문화재 제182호, 고려시대> (2013. 11. 10 대불련 순례시) 극락전 불단에는 높이 100cm정도의 아미타불만 모시고 좌우에 협시보살은 모시지 않았지만, 대신에 불단의 뒤에 있는 후불탱화가 본존불인 아미타불과 좌우 협시보살인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을 그린 삼존도형식을 취하고 있다. 고종(高宗)37년인 1900년에 그린 후불탱화는 가로 195cm, 세로176cm의 크기로 비단 바탕에 5cm폭의 흰 테두리를 두르고 중앙에 본존불을 중심으로 좌우 대칭으로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 아난존자와 가섭존자를 그려 전체적으로는 아미타불의 광배를 감싸듯이 배치된 구도를 가지고 있다.
(2013. 11. 10 대불련 순례시) ▲<고금당(古金堂) - 보물 제449호, 조선시대> 이 건물은 극락전 앞에 동향(東向)으로 서 있으며 1969년 해체·복원공사 당시 발견한 기록에 광해군 8년(1616)에 고쳐 지은 것을 알 수 있을 뿐 확실하게 언제 세웠는지 알 수 없다. 앞면 3칸·옆면 2칸 규모이며 맞배지붕에 주심포 양식이다. 비록 건물은 작지만 다양한 건축기법을 사용하여 구조가 꼼꼼히 짜인 건축물로 주목 받고 있다. (2013. 11. 10 대불련 순례시) ▲<화엄강당(華嚴講堂) - 보물 제448호, 조선시대> 화엄강당은 스님들이 불교의 기초 교학을 배우는 곳이다.『양법당중수기』등의 기록에 따르면 같은 경내에 있는 극락전과 대웅전을 17세기에 고쳐 지었을 때 화엄강당도 함께 고쳤을 것으로 추정한다. 규모는 앞면 3칸·옆면 2칸이며 맞배지붕에 주심포 양식이다. 강당으로 사용되는 건물이기 때문에 기둥은 낮지만 공포를 크게 잡아 겉모습의 균형을 살리고 있다. 2칸은 방이고 1칸은 부엌으로 되어 있으며 부엌과 방 사이에는 벽장을 설치하였다. 차분하고 안정감 있게 지은 건물로 우리나라 전통 건축사에 귀중한 자료이다. (2013. 11. 10 대불련 순례시) 만세루(萬歲樓) - 시도유형문화재 제325호, 조선시대 대웅전 맞은편 2층 누각형태로 원래는 덕휘루로 불리었으며, 조선 숙종 6년(1680) 에 건립된 후 여러 차례 보수되었고, 17세기 후반의 건실하면서도 당당한 건축수법의 특징이 잘 나타나 있다. (2011. 02. 27 제22차 고찰순례시)
영산암 가는길 영산암(靈山庵) - 시도민속문화재 제126호 봉정사의 영산암은 지조암과 함께 봉정사의 부속암자로 응진전, 영화실, 송암당, 삼성각, 우화루·관심당 등 5동으로 이루어져 있고, 건물의 구체적인 건립연대는 알 수 없으나 '봉정사영산암향로전창건기'와 봉정사영산전중수기'등의 사료로 볼 때 19세기 말로 추정된다. 우화루와 송암당 등에서 폐쇄적인 공간을 개방적으로 처리한 것이나 삼성각 앞의 조경수법도 경직될 수 있는 공간을 부드럽게 유도한 것 등은 매우 뛰어난 공간처리 수법으로 볼 만 하다. 영산암의 전각들은 하나인듯 둘이고 둘인듯 하나이다. 영산암의 공간은 막힘과 분별 대립이 없이 두루통하여 물결처럼 흐른다. 이처럼 순환하고 관통하는 흐름 속에는 본래 아무것도 없다는 비움의 본질이 녹아 있다 청정하늘에 바람이 전하는 소리를 듣고 계절의 변화를 느끼고 자연은 문자가 주는 지식보다 더 큰 가르침을 소리없이 전한다. 세상의 이치를 몸소 체득케하는 자연설법은 마음이 열려있는 자만이 들을 수 있다. 전통건축의 아름다움이 살아 숨쉬는 영산암의 본래모습은 비움과 소통, 불이와 원융무애이다.
***다음에 올릴 송용호 대불련 동문의 유튜브 <붓다의 메아리> "안동 천등산 봉정사 순례답사_백팔고찰순례단과 봉정사순례" 편에 차공양과 말차 격불, 108배 동영상과 사찰문화해설사의 해설 등이 올려져 있고 분위기가 좀더 상세히 표현되고 있으니 보시기 바랍니다. 구독자 8,300명의 '붓다의 메아리'에는 여러 스님들의 법문도 올려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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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수수함이 주는 아름다움이 돋보이는 절입니다.
어머니와 함께 간 마지막 절이어서 봉정사는 애틋함이 느껴지는 절이기도 합니다.
나무아미타불관세음보살!
나무아미타불
보리심에 회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