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시산책]당신 -임호상.
당신
ㅡ임호상
19도 잎새주
아무리 마셔도 취하지 않더니만
36.5도 당신
그 눈빛 한 잔에
확,
취하네
/시집 ‘조금새끼로 울다’
♣ 취한다는 게 무엇인가? 자신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무언가에 홀린 듯 씌는 일이다. 요즘 소주의 알코올 도수는 많이 낮아졌지만 웬만한 사람이면 한 두병만 마셔도 인사불성, 자신을 방기하는 지경에 이른다. 그런데 사람에 취하는 사건에 비하랴. 화자는 술을 아무리 마셔도 취하지 않는데 당신 눈빛에는 확, 취하고 말았다. 잎새주보다 높은 36.5도라서일까? ‘참이슬’, ‘처음처럼’과 같이 잎새주는 광주-전남에 거점을 둔 보해양조의 대표브랜드라는데 그 명칭이 상큼한 여자를 연상케 한다. 그래도 당신 눈빛에 비하랴! 취하게 한 대상은 실은 눈빛이 아니라 당신 자체이겠다. 이 시는 짧으나 메시지가 강렬하다. 더구나 그 눈빛을 찰랑이는 술에 비유한 것이 압권이다. 만약 ‘그 눈빛에/ 확,/ 취하네’라고 했으면 밋밋할 뻔 했는데 ‘그 눈빛 한 잔’이라는 표현으로서 시적 매력을 배가시킨다. 아마도 잎새주는 당신에게로 잔뜩 기운 화자의 심상을 드러내기 위한 시적 장치이리라. 우리, 누구에게 그렇게 무작정 취해본 적 있는가. /이정원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