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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여성시대 말안하면뻘짓,말하면노답
동아프리카에 위치한 국가. 수도는 주바.
원래는 수단에 속해 있었지만, 2011년 2월 수단 남부의 독립 여부를 묻는 주민 투표에서 98.83%가 독립에 찬성, 동년 7월 9일에 공식적으로 독립하였다. 남한이나 서독 등 방위가 들어간 용어를 사용하는 국가는 분단국가인 경우가 많아서 오해하기 쉽다 보니 수단을 '북수단' 이라고 부르는 경우도 있는데, 애초에 분리독립한 데다 양측 모두 통일을 하겠다는 의지가 없으므로 사정이 다르다
역사적으로는 남수단과 수단 전역이 북쪽의 이집트와 남쪽의 에티오피아 사이에서, 양측의 흥망에 따라 이집트/에티오피아(및 해당 지역을 기반으로 한 나라들)의 영향력이 왔다갔다 하는 역사였으나, 단순히 '이집트와 에티오피아의 중간지'라고 하기엔 그 중간지인 수단 지역(현 수단과 남수단 및 몇몇 소국을 포함하는)의 지역 자체가 너무나도 방대한 관계로, 해당 지역에서 수많은 군소 왕국들이 생겨났다 사라져갔다.
이집트의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으며 기마 유목민들이 많던 북수단 지역과는 다르게 남수단 지역은 나일로트계 민족들이 수천년 동안 같은 방식으로 유목을 해왔다. 수단 전체를 장악하는 지속적인 국가의 탄생은 근대 시작된 일이다.
바까라족이 남수단과 북수단 거의 전역을 장악했다 패망한 이후 영국이 프랑스와 식민지 쟁탈을 하는 과정에서 북수단과 남수단을 아우르는 수단으로 분류되었다
이후 수단이라는 한 국가로 독립하였으나, 앞서 말한 대로 자체적인 국가적 정체성을 가질 만큼 확고한 동질감이 있지는 않았던 데다 국토가 굉장히 넓은 관계로, 끊임없는 마찰 끝에 결국 21세기 초 독립하여 남수단을 이루게 된다.
남수단의 경우는 고온의 열대 우림을 개척하기 힘들었고, 열대성 질병이 창궐하는 지역이라 문명이 일정 단계 이상 발전하기 힘든 환경이었다. 네로 황제 시절 고대 로마 제국이 원정대를 보냈지만, 정복시키고자 하는 확실한 목표가 있는 원정보다는 반쯤 탐험에 가까웠다.
수원까지 거슬러 올라가보고 그럴 만한 가치가 있다면 에티오피아까지 영토를 확장하거나 혹은 새로운 거래 상대를 만들거나 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러나 한반도 전체보다 방대한 악어와 모기 및 각종 위험물들이 우글거리는 환경을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로마로 복귀한다.
이후 수단 북부는 이집트의 영향을 지속적으로 받으며 기독교와 이슬람이 차례로 유입되고, 기마 유목민들이 유입되어 현지 누비아인들과 혼혈되어 수단 아랍인의 기원이 된 반면, 남수단 지역의 역사는 19세기 이집트 케디브 왕조에 정복되기 이전까지 큰 변화가 없었다. 이것이 향후 벌어지는 수단과 남수단 분리의 근본적인 원인(애초에 전혀 다른 바탕을 가진 지역을 하나로 묶어 수단으로 만들어놓은 것이므로)이 된다.
이후 수단 북부는 이집트의 영향을 지속적으로 받으며 기독교와 이슬람이 차례로 유입되고, 기마 유목민들이 유입되어 현지 누비아인들과 혼혈되어 수단 아랍인의 기원이 된 반면, 남수단 지역의 역사는 19세기 이집트 케디브 왕조에 정복되기 이전까지 큰 변화가 없었다. 이것이 향후 벌어지는 수단과 남수단 분리의 근본적인 원인(애초에 전혀 다른 바탕을 가진 지역을 하나로 묶어 수단으로 만들어놓은 것이므로)이 된다.
19세기 이집트는 오스만 제국으로부터 사실상 독립(메흐메드 알리 참조)한 이후 수단까지 영역을 확대한다. 북부 수단의 아랍화된 누비아인 샤이키야족을 격파하고 베두인들이 딩카족, 누에르족을 대상으로 상아 및 노예 납치 및 무역을 하던 현 남수단까지 영역을 확보하였다.
독립 이후 15년간 1차 내전으로 백만 명이 죽었다. 결국 1978년에 남북끼리 따로 분리하려고 했다가, 남부 수단에서 석유 및 자원들이 가득 발견되면서 분리 문제는 다시 백지화 되었다.
1983년에 수단인민해방군(SPLA)이 궐기하여 2차 내전이 일어났고, 20년간 내전이 줄곧 지속되었다. 2003년 수단 서부에 위치한 다르푸르에서 아랍계 민병대 잔자위드가 무장 봉기 세력을 무차별 학살, 강간하여 30만 명의 희생자와 270만 명 이상의 난민이 발생하는 참사가 일어났다.
남수단 독립 투표는 2011년 1월 9일 일주일간 진행되었고, 투표 3일만에 60%의 투표율을 돌파하였다. 개표 결과 찬성 표가 무려 98.83%에 달해 7월 9일 정식으로 수단에서 분리 독립하였다.
수단에서 독립한 이후에 잘 될 줄 알았으나, 남수단 초대 대통령인 살바 키르 마야르디트가 헌법을 개정하여 자신의 권력을 엄청나게 강화하여 독재를 시작하는 막장 짓을 저질렀다.
결국 제2차 수단 내전 당시에 수단과 무장 투쟁을 했던 다른 반군과 민주화를 추구하는 반군들이 부통령인 마차르를 중심으로 모여 치열한 내전을 벌이게 되었는데, 이것이 바로 그 악명 높은 내전인 남수단 내전이다.
2013년부터 시작되어, 남수단 국민들 수만 명이 숨지고 최소 220만 명의 피란민이 발생.
이후 유엔과 서구 열강의 중재하에 2015년 8월 평화 협정을 맺었으며, 2016년 4월 반군 지도자였던 마차르가 부통령을 맡는 연립 정부를 구성해 정국이 안정되는 듯 했으나... 2016년 7월에 대통령과 부통령의 경호원들이 무력 충돌을 하며 또 다시 내전으로 번질 가능성이 생기고 있다.
2020년 2월 22일에 남수단 정부와 반정부 세력이 참여하는 과도 통일 정부가 출범되면서 사실상 내전이 종식되었다.
2020년 8월 12일에 군인들이 민간인들을 무장 해제하는 과정에서 물리적 충돌이 일어나 127명이 사망했다.
면적과 인구가 원래 수단의 1/4을 차지한다. 현재 남수단의 면적은 한반도(22만km2)의 3배는 족히 된다. 더불어 내륙국이다.
내전으로 무너진 경제가 회복되지 않고 있어 답이 없는 상황. 1인당 GDP는 2019년 IMF 추산치 기준 276달러로 세계에서 가장 낮으며, 국민의 90%는 하루 1달러 미만으로 살아가고 있다.
수단 석유의 85%가 남수단 지역에서 나왔고, 정부 수입의 98% 이상이 석유에서 나왔다. 그러나 석유를 정제할 시설도 없고, 내륙국 신세이니 당연히 항구도 없다. 결과적으로 세계에서 가장 취약한 경제를 가진 나라로 평가받고 있다.
딩카족이 포함된 나일로트계 민족은 대체적으로 남성과 여성의 합친 평균 신장이 180cm을 넘어가는 아프리카 장신 부족 중 하나다. 그리고 옆으로는 다소 가는 뼈대이다. 길고 가는 체형. 알렉 웩, 더키 토트 등을 비롯해 남수단(을 포함한 동부 아프리카 흑인들) 출신들이 패션 모델로 성공한 경우가 다 이유가 있다.
누에르족과 딩카족을 포함한 남수단인들은 흑인들 가운데에서도 독보적으로 피부색이 검다. 완전한 흑색.
공용어는 영어이고, 일부 소수 민족의 언어도 사용되고 있다. 현재에도 아랍어 구사 가능자가 많이 존재하지만, 독립 이후 공용어에 포함되었던 아랍어는 퇴출되었다. 남수단은 남수단어라는 언어를 개발 중이다.
딩카족 사회는 지구상의 문화권과 마찬가지로 남성이 사회를 통치하는 남성 중심의 문화이다. 사실상 일부다처제와 여성의 사회 활동이 극히 제한된 아프리카에 내전으로 여성이 살기 힘들다는 말이 사실이다.
하지만 출생에서는 딸을 더 선호한다. 아들은 지참금이 나가는 짐이지만, 딸은 길러준 보호자가 신랑집에서 지참금을 받는 돈줄이기 때문이다.
독립이 논의되던 당시 여러 가지 국명이 제안되었으나, 부족들이 서로 자기들 언어와 뜻이 담긴 나라 이름을 고집하여 결국 친숙하고 부르기 쉬우며 모든 부족이 동의할 만한 것이라는 이유로 남수단 공화국이 정해졌다. 그동안 여러 기사에서 수단 남부라는 이유로 남수단이라고 부른 것의 영향이 큰 듯하다.
남수단 독립 준비 위원회의 벤야민 머리얼은 발표를 하면서 "남베트남, 북베트남도 있었고, 남한과 북한도 있는데 남수단/북수단도 불가능하지 않다."라고 덧붙였다.
국기 위쪽의 검은색 줄은 아프리카인, 사이의 흰색은 평화, 가운데 붉은 줄은 독립을 위해 흘린 피, 아래의 녹색 줄은 풍요로운 자연, 파란 삼각형은 나일 강, 노란 별은 자유를 의미한다. 정확히는 나일강의 상류 지류인 백나일강이 지나고, 에티오피아를 지나는 청나일강과 수단에서 합쳐진다.
일단 수단과 결별하긴 했지만 갈등이 봉합된 건 아니다. 독립 투표가 이뤄진 2011년 1월 10일에도 남북 국경선에서 총격전이 벌어져 남수단에서만 33명이 목숨을 잃었다.
그나마 수단과의 갈등은 국제 사회가 중재라도 할 수 있고, 수단 내부에서도 남수단 문제는 부차적인 걸로 취급돼서 심각하지는 않지만, 부족 갈등이 폭발한 것이 더 큰 문제다.
소를 많이 기르는 여러 부족들에겐 강은 절대 양보할 수 없기에, 강의 실질적 지배권을 두고 지속적으로 총격전이 벌어져 민간인들이 40여명 살해되었고, 보복으로 공격을 감행한 지에족 마을에 무차별로 로켓포 공격을 벌여 100여 명 사상자를 냈다.
2012년 1월 무를레족과 누에르족의 부족 갈등으로 대규모 유혈 사태가 일어났다.
울지마 톤즈 연출을 맡은 구수환 PD가 후속 이야기를 다룬 울지마 톤즈-그 후 선물을 찍으러 2011년에 남수단을 방문할 당시에도 톤즈 지역에서도 치안이 장난 아니었다고 한다. 톤즈 이웃 동네에서 소 1마리 때문에 사람이 20여 명이나 죽을 정도였다. 부족 갈등도 갈등이지만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같은 부족도 마을끼리 서로 도둑질하고, 그 과정에 따른 살인 및 보복으로 마을이 아주 불바다가 될 정도이니 이러한 갈등으로 인해 내부 치안 상태가 영 좋지 않다.
종교적 문제도 골치 아프다. 남수단 인구의 80% 이상이 기독교를 믿지만 성공회와 개신교, 가톨릭이 복잡하게 얽히고 이들이 내전 와중에 같은 기독교도끼리도 종파가 다르면 죽어라 싸우거나 사이가 나빠 다른 부족의 약탈 및 학살이 줄곧 일어났다.
오랜 내전으로 남수단에선 제대로 된 산업 및 경제 체제가 없다. 석유 말고도 다른 자원은 많지만 그걸 개발하려면 외국 자본 및 기술 투자가 필수적인데, 이것에 대한 각 부족의 우선권 주장으로 제대로 되기가 어렵다.
석유 시설 정제 공장도 아예 없어서 수단으로 가져가야 하며, 내륙국가라 석유를 수출하려면 항구를 장악한 수단의 영향력이 절대적이다.
아프리카 많은 나라들이 겪고 있는 종교, 부족, 자원, 군벌, 내전과 그 휴유증, 영토 분쟁 문제를 몽땅 한꺼번에 겪고 있는 상태라서 자칫하면 제2의 소말리아가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2018년 결국 다시 취약국가지수 113.4점을 찍으며 1위가 되는 불명예를 안고 말았다. 얼마나 더 나락으로 떨어질 지 알 수가 없다. 2019년에는 예멘에 밀려 2위가 되었지만, 국가 사정이 막장인 것은 여전한 상태.
하지만 남수단은 자원도 풍부하고 농산물도 자급자족할 수 있는 나라이다.
특히 남수단에 매장된 원유는 약 46억배럴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남수단에는 세계에서 가장 큰 습지대인 수드(Sudd)가 넓게 펼쳐져 있는데, 수드는 백나일강으로 인해 형성된 거대한 습지대로, 전국토의 15%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남수단에는 수드 습지대를 비롯해, 보마(Boma) 국립공원과 같은 여러 국립공원들이 있어 수많은 종의 동물들과 식물이 서식하고 있다.
대표적으로는 봉고영양, 자이언트숲멧돼지, 숲코끼리, 버팔로 등이 있다.
남수단 출신의 유명한 인물로는 미국프로농구 NBA 선수로 활약한 루올 뎅(Luol Deng)이 있다.
루올 뎅은 어린 시절 2차 수단내전을 피해 이집트으로 피난해, 농구를 시작했고 이후 미국으로 망명하여 고등학생 시절부터 본격적으로 농구선수의 꿈을 키웠다.
미국 NBA 선수로 성공을 거둔 루올 뎅은 영국자선단체인 School Home Support와 같은 많은 단체에 재능기부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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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남수단 가봤오 나
오! 썰 풀어줘~
오 진짜 쩌리감! 좋은 게시물 고마워
와 유익하다 정독했어!
와ㅜㅜ
이런글 올려줘서 고마워 너무 잘 봤어!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21.01.29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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