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친구에게 ...
그 무덥던 삼복더위도 지나고 ,이제는 날씨도 제법 선선하네요
그 간이라도 잘 지내시는지.....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들을 즐겁게 지냈으니....
우리는 행복하다고,그리고 즐거웠다고,그리고 잊으수 없다고, 밤이면 유난히
울어대는 귀뜨라미 소리가 더욱 더 애처러움을 느끼는 계절이고 보니,
역시 가을은 사색의 계절이요
풍요의 계절이요. 낭만의 계절이라.
가끔 농촌을 지나가면 모든 곡식들이 무르익어 가고 ,파란 들판을 바라보면
무언가 모르게 풍요로움을 느끼고 ,내가 이제는 인생의 여정을 한가 한 농촌에서
유유자적으로 살아가고 있슴을 느낀다오
그 안에 서로의 시간을 많은 여행으로 ,아니면 내가 문학을 좋아하고 ,유적지를
다니기를 좋아하니, 나와 같이 서로 여행을 하고 문학답사를 다닐때가 엊그제
같은데........
남해의 고도 '보길도'를 찾아 남해 바닷가를 가르면서 윤 고산(孤山)의 문학의 현장을
찾아 , 우리국문학사에 쟁쟁 울렸던 ' 어부사시사 '의 흥취를 느끼고져 찾았던 일
'세연정'앞에서 그 자연속에 조경이 멋드러진,풍류가 있고 문학이 있는 세연정 앞
사계절을 따라 펼쳐지는 어촌의 아름다운 전경과 유유자적하는 어부생활의 흥취를
노래한 40 여수의 '어부사시가 '(漁 父四時 歌)
동풍이 건듣 부니 물결이 고이 난다.
돛 달아라 돛 달아라
동호를 돌아보며,서호로 가자스라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
앞 뫼는 지나가고 뒷 뫼는 나아 온다.
순풍에 돛을달고 완도 보길도 앞 바다를 미끄러지듯이 경쾌하게 배가 나아가는
장면은 한 폭의 산수화다. 강호(江湖)의 한정(閑情)을 즐기는 풍류객의 유유자적함을
느끼면서 , 남해의 보길도를 찾으면서 정말 앞 뫼를 지나니 ,뒷 뫼가 다가옴을 느끼며
보길도를 찾았던 즐거움 ,아마도 인생의 여정을 이처럼 여유롭게 지난적도 없었다오
특히 남춘천의 '김유정문학관' 영평에 있는 '황순원문학관' 충청도 옥천에 있는 정지용
문학관' 나주의 영산강변에 있는 '영모정과 임백호 문학관' 벌교에 있는 조정래문학관'
안동서원의 답사와 퇴계종택그리고 '이육사문학관'등 전국의 각지를 돌아다니면서
문학의 현장을 다니면서 나름데로 문학의 시야를 넓히기도 하면서 서로의 대화와 사랑을
느꼈던 순간이기도 하였다.
여름철이면 명산대천의 계곡을 찾아 삶에 지친 피로를 풀기도 하였으며 ,생활의 재충전을
갖는 시간을 갖기도.,겨울철이면 수안보온천을 비롯하여 ,설악산의 동해안에 있는 온천으로
몸을 풀어가면서 ,특히 서로가 사우나를 좋아하여 즐기기도 하였다.
특히 안동의 답사를 좋아하여 '도산서원'의 뒤로해서 낙동강 상류의 '농암 종택'의
유적지를 찾아 만학천봉(萬壑千峰)의 첩첩산붕의 오솔길을 한없이 걸었을때의 추억
그리고 역시 낙동강변의 천애의 아슬아슬한 길을 찾아 '병산서원과 하회마을'을 찾아
간고등어를 같이 먹으면서 서로 하하호호 하였던 즐거움,이제는 어디서 찾을까?
안동답사는 서로가 봏아서 많이 답사를 하였다.
호남쪽으로는 무등산 아래의 '식영정' 그리고 '환벽당' 서하당' 을 지나 가사문학관을
들러 가사문학의 진수를 접하였으며,특히 '식영정'에는 성산별곡와 성산12영을
들을수 있으며 '성산별곡'에서
어떤 다날손이 성산에 머물면서
서하당(棲霞堂)식영정 주인아 내 말 듣소
인생 세간(世間)에 좋은일 하건만은
엇디 한강산을 가지록 나이녀겨
적막(寂寞)산중에 들고아니 나시는고
----- 이하생략------
호남의 선비들이 은거하면서 산수가 좋은 서석대의 노을빛을 빛나는 이곳의에서
훌륭한 글을 남기고 시조문학과 가사문학의 본고장이기도 하기도하다.
여기서 송강 정철은 면앙 '송순으로 부터 가사문학을 '식영정'의 주인 석천 임억령
으로부터 시조문학을 배워, '사미인곡'속미인곡' 그리고 강원도 관찰사를 나가
관동별곡을 남기기도 하였으니 ,당쟁과 숱한 유배생활의 와중에도 오늘날까지도
주옥같은 명문장을 남겨 '고산(孤山) 윤선도와 함께 국문학의 거봉으로 남게 된다.
그 어려운 가난속에서 삶을 펼쳐 나오고 ,자녀들의 교육과 , 주거생활의 안정을 위하여
블철주야 삶의 현장에서 허우적 거리다가 ,어느덧 직장의 종착역인 정년이라는 이놈을
만나고 , 설상가상으로 아내의 병고와 싸움 , 그리고 이별 ,그리고 혹독하게 불어 닥치는
삶을 헤쳐 나오느라고 분골쇄신(粉骨碎身)하는 마음으로 싸워왔던 삶 ,그것은 혼자의
몸으로 나의 모든것을 해결해야만하는 삶의 여정들 , 그것은 남자가 홀로서기였으며
어쩌면 눈물의 세월이기도.......
나는 자녀들이 있는 화순으로 , 그대는 서울에 그대로 남아 있으니, 머나면 이별의
서러움을 맛 보는듯 지내 왔다오. 그래서 서울과 화순의 중간지점인 서대전에서 서로가
만나 서로 해후를 하면서 보내는 세월은 어느 정도 였을까?
"자기를 버리고 화순으로 갔다고" 투정을 부리던 맗이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영원히 헤어졌으니......
아내와의 생과사의 이별을 겪으면서, 하염없는 눈물을 ,그리고 인생의 회한을 ...
저 세싱로 가기전에 사랑의 연서를 보냈더니만 , 저 세상에서 잘 보관하고 있는지?
이제는 이승에서 여자친구와의 이별을 하니 ,나는 항상 이별만 하는 존재이나?
하기사 인간은 하늘을 '이불'로 덮고 '땅을 밟으면서' 살아가는 외로운 존재라고
어느 분의 말씀이 와 닿기도 하는 시간이다.
그 안에 나는 나데로 몸이 아퍼서 ,물론 지금도 아프지만 전남대 병원에서 입원하여
병고에 시달리고 ,친구는 또한 허리와 무릅이,그리고 여타의 여러군데서 몸이 아프니
인생의 삶이 세월앞에서는 장사가 없다는 이야기가 실제로 와 닿는 실감을 하였지
않는가?
내가 태어난 이래 ,이렇게 서로가 마음을 이해하고,또한 사랑을 주고 받었던 때가
있었던가? 하도 살아온 삶이 허접하여 데이트 한 번 재대로 해 보지도 못 했으며
의무적으로 가정을 이루어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아내를 만나 자식 낳고 부모님을
부양하고 하는 일로 세월을 보냈으니
내가 고향에서 살아간다면 , 친구가 앞으로 인생의 삶을 살아간다면 ,몇년이나 생을
유지할수가 있을까? 평생 영원하게 있을까? 그건 아니잔아
우리의 삶이 팔십을 넘는다고 보아도 십년 안에 우리는 어떤수가 .........
아마도 이승을 고하고 저승으로 갈것 같은데,
모든 이야기는 하여 보았자, 더 이상 그렇고 , 사귀는 동안 내가 더 잘 해 주고 싶었고
따뜻하게 하여 주고 싶었지만 ,못 해 준점만 ,아쉬움으로 남는구려
서로가 사귀는 동안 ,나는 행복했고 , 즐거웠고 삶의 맛을 느끼는 순간들이었어
모든걸 내려놓고 편안한 남은 여생들 ,어려움 없이 살아가기를 바래 ---
화순에서 만장봉
보길도 '세연정(洗然亭'에서 윤고산의 '어부사시사의 산실'
첫댓글 오래 가서 행복한 인연도 있으면
좋은 추억만 서로가 안고 이별하는 인연도 있지요
둘다 좋다 나쁘다 할 순 없지만 사람 사는게 다 그렇고 이렇고 하지요
이별하셨으니 이렇게 좋은 글도 쓰시고 하시니 세상은 공평하지요
감사합니다
가을이 되고보니 , 가을을 타는지?
그냥 추억의 한편을 꺼내 보았습니다.
그리고 문학지에 글을 준비하여야겠기에 .......
한번 연습도 ,감사합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감사합니다
위로의 말슴에 감사를 드림니다
지금 사회가 결혼생활을 잘하다가도 헤어지는데 ........
그래서 문학지에 글도 준비를 하여야 겠기에
감사합니다
아름다운 추억입니다.
그런 추억 하나 없는 사람도 많아요
쬐금 부럽습니다.ㅎㅎㅎ
아이구 부럽다니요
감사합니다.
문학가 만장봉님.
맘속에 문학이 살아숨쉬고
아름다운 추억을 품고 사시니
영혼이 강건하실 터
육신도 건강해지리라 믿습니다.
아이구 .....
문학가님 만장봉이라........
아이구 과분한 호칭을
감사합니다
덕분에 저도 잠시 상념에 잠겨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