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을 길게 걸으려면 점심을 준비해야 하는데 어중간하다.
보성 쪽이면 군머리 김밥집에서 막걸리와 함께 준비하면 좋지만
요즘은 기사식당도 잘 보이지 않아 혼자 먹기가 쉽지 않다.
그나마 조계산 보리밥집은 조금 늦어도 싫은 기색없이 잘 주니
천자암에서 오르기로 한다.
선옥이 집앞에 차를 두고 범재등에 올라가 고추가 지난 밤 차가운 기온을 잘 견뎠는지 확인한다.
고추 등은 맨눈으로 보기에 무사하다.
과수 묘목 주변엔 작은 풀이 벌써 나와 있다.
발로 차고 다니며 밟다가 연모를 가져와 긁는다.
도라지 씨앗을 보고 있는 보동댁이 트렉터로 갈아버리든지
약을 부리라고 하신다.
보동댁 키위 밭에 머리를 받히며 들어가 작양꽃을 찍고 나온다.
이읍에서 천자암 길을 용감하게 올라간다.
논 끝 사이 농막을 지나는데 통제선이 쳐 있고 포크레인이 공사 중이다.
옹색하게 차를 돌려 내려와 송광사 쪽으로 간다. 12시가 다 되어간다.
선아네 단골인 관광식당으로 가려다가 포기하고 3,000원 입장료를 산다.
한 시간 반 잡고 보리밥집에 가서 점심을 먹기로 한다.
사방에서 공사중인 송광사는 들어가지 않고 우화루 앞을 지난다.
다리를 건너 토다리에 못 미쳤는데 머리 긴 사람이 빈몸으로 후적후적 날 앞질러 간다.
고개 박고 힘들여 오르니 그가 계곡의 사진을 찍고ㅗ 있어 내가 앞서간다.
그는 또 금방 날 따라오기에 어디까지 가려느냐고 물으니
선암사에 간다고 한다.
꽤 먼길인데 간식 준비도 안했느냐 하니 금방 가 선암사 가 밥을 먹겠단다.
난 여자 배구나 농구 선수인줄 알았는데 목소릴 들으니 남자다.
그가 검은 돌계단 위로 저 만큼 사라지더니 어느 순간 내 눈에서 사라지지 않고 걸음이 느려진다.
송광굴목재를 막판 가파르게 오르는데 그가 앉아 쉬어가라고 한다.
매미꽃인지 피나물인지 노랑 꽃들이 계단 사이에 피어 나에게 힘을 준다.
나의 걸음에 힘을 주는 건 소주라 하지만, 붕붕처럼 꽃향기를 맡으면 힘이 나면 더 좋겠다.
난 향을 모르니 꽃을 보기만 해도 힘이 나면 좋겠다.
꽃을 보고 힘을 내니 힘이 난다.
매표한지 한시간이 지나 송광굴목재에 도착한다.
젊은이는 보이지 않는다.
보리밥집에 가니 여성 단체 여행객인지가 가득하다.
점심을 마치고 커피나 누룽지를 먹으며 여유롭다.
보리밥과 동동주 반되를 주문하니 13,000원이다.
어느새 1,000원이 올랐다.
산속에서도 세상따라 물가는 오른다.
하우스를 향해 앉아 술을 마시고 밥을 비비고 다 낡아 떨어진 당시를 끄집어 낸다.
밥은 남아도 아깝지 않은데 술이 떨어지니 아쉽다.
새싹 그늘 아래 낮잠을 자고 장군봉이나 오를까 하다가 선암사 왕벚꽃응ㄹ 보러 가기로 한다.
마음이 바쁘다.
큰굴목재로 오르며 또 꽃을 보고 고동산 4.8km를 확인하고 선암사로 내려간다.
호랑이 턱골바위를 지나는데 나이 지긋한 한남자가 올라오며 보리밥집까지 한시간 정도 걸리느냐 묻는다.
그럴꺼라 하면서 내려가다 생각하니 난 30분도 안걸려 왔다.
사람마다 걸음이 다를텐데 난 너무 쉽게 대답하지 않았나 쓸데없는 염려를 한다.
삼나무 숲을 지나 선각당 찻집에서 승선교쪽으로 내려간다.
계곡에 가 승선교 안에 강선루를 찍고 올라온다.
선암사길의 나무도 어느새 푸르러졌다.
초파일을 앞두고 화려한 색깔의 연등이 많이 걸려 있다.
대웅전 옆을 지나 오아벚나무로 가니 마당에 분홍 꽃임피 가득하다.
나무엔 꽃이 달려있기도ㅗ 핟지만 많이 졌고 푸른 잎이 솟아났다.
선암매 부근의 붉은 땅을 지나 장경각 앞 연못으로 가니
서너살 쯤 된 꼬마가 연못에 가득한 꽃잎으로 들어가려 고집을 피우고 부모는 잡아끌고 있다.
대각암 가는 길에서 다시 큰굴목재 가는 길로 내려간다.
장군봉 연산봉을 걷는 건 다음으로 미루자.
큰굴목재로 오르는 돌길에서 지친다.
돌계단으르 지그재그로 올라 굴목재 의자에 털썩 앉는다.
다행이도 캔맥주가 들어있다.
작은 굴목재 쪽에서 젊은 남녀가 내려와 보리밥집쪽으로 내려간다.
나도 챙겨 일어나는데 한떼의 산객들이 가파른 길을 쉬며 올라오고 있다.
노년의 여성에게 힘드세요 하니 웃는다.
보리밥집 윗길을 따라 배도사 대피소를 건너 천자암 갈림길 앞에서 선암사 내려갈 떄 만났떤
어른을 만난다.
나무 지팡이 두개가 옆에 보인다.
인사를 하니 송광사가 얼마나 남았느냐 하신다.
이 고개만 넘으면 내리막길이라 하니 다행이라 하신다.
날더러 산꾼같다고 얼른 가라는데 나도 지친 몸이라 걸음을 맞춘다.
내리막이 더 위험하다고 말하고 이야기를 나누며 내려오다보니 나도 훨 편하다.
난 초등학교 교사의 이야기를 한다.
그 분은 54년생으로 금융기관에서 퇴직했다 하신다.
서울에서 사는데 고향은 강원도라 하신다.
광주에서 8시 50분에 KTX를 예약해 두었다 하신다.
광주가는 직행버스가 언제 있을지 모르니 시간여유가 많지 않을 거라 한다.
나의 고물차에 태워 곡천정류장에 내려드린다.
어제처럼 바보가 먼저 퇴근해 고기를 굽고 있다.
마침 술담화 증류주 3병도 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