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okyo Rose】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의 라디오 도쿄방송은 적군인 연합군에 대해 선전방송을 실시했는데 당시 프로그램에 등장한 여성 아나운서를 미군병사들은 이른바 'Tokyo rose라는 별명으로 불렀다
그것은 유창한 영어를 구사하는 아름다운 목소리의 여자가 매일 방송하기 때문이었다.
넋을 잃게하는 노랫소리로 뱃사람들을 홀려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전설의 세이렌처럼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미군 병사들의 사기를 꺾고 혐전(嫌戰) 의식을 불러 일으켰다는 도쿄의 장미.
‘나 홀로 걸으리.
사람들이 왜냐고 물으면 나는 그들에게 내가 모아야 할 꿈들이 있다고 말하리.
당신이 날 꼭 끌어안았을 때,
우리가 자아냈던 나는 언제나 당신 곁에 있으리.
매일 밤 당신이 어디에 있던지,
매번 기도 속에서 당신이 부르면 나는 당신을 들으리.
아무리 멀리 있어도 당신이 눈을 감기만하면 나는 거기에 있으리.’
(I’ll Walk Alone)
“왜 무모한 전쟁에 참가해 고생하나요?
고향에 두고 온 가족과 아내와 애인이 그립지 않나요?”
“당신들이 상륙할 때는 거대한 수송선 몇 척이 필요했지만, 돌아갈 때는 공중전화 부스 하나면 충분할 거예요.”
감미롭게 속삭이는 그녀의 목소리에 숨어 있는 잔인한 현실처럼, 달콤하지만 치명적인 가시를 지니고 있는 장미라는 이름은 그녀에게 썩 잘 어울리는 별명이었다.
라디오 도쿄방송의 여성 아나운서는 여러 명이 있었는데 이들은 방송에서 본명을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전후 미군 당국은 이들이 누구인지 명확히 알아낼 수 없었다.
전후 미군의 종군기자가 당시 라디오 도쿄방송의 관계자를 찾아내어 인터뷰시 "누가 도쿄 로즈였는가" 라는 질문을 던지자 당시 관계자는 전범으로 지목될 것을 두려워 해 담당 여성 아나운서의 이름을 끝까지 은폐했다.
그러나 이후 조사에서 담당 아나운서의 1명이었던 '아이바 토구리 다퀴노'가 유일한 도쿄 로즈의 1명으로 확인되어 GHQ의 심문을 받게 되었다.
토구리는 실제로 도쿄 로즈의 1명이었지만 재판에서 병사가 증언한 도쿄 로즈의 질문과 방송발언에 대해 토구리와 일치하지 않아 문제가 되기도 했다.
도쿄 로즈의 1명이었던 토구리의 본명은 아이바 토구리 다퀴노(Iva Toguri D'Aquino), 일본명 토구리 이쿠코인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태어난 일본계 미국인이었다.
그녀는 부모가 일본인이었지만 미국에서 자랐기에 일본어를 잘 하지는 못했다.
그녀는 캘리포니아 대학원에 재학중이던 1941년 7월, 숙모였던 시즈의 병문안을 위해 반년체류 예정으로 일본에 왔다가 그 해 12월에 태평양전쟁이 발발하자 미국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2번에 걸친 일본과 미국과의 전시 교환선에 올라 미국행을 일본정부에 신청했지만 토구리의 요청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토구리는 일본에서 생활을 위해 동맹통신사의 아타고산 정보수신부에서 외국의 단파방송 접수일을 시작했다.
다음해인 1942년엔 일본방송협회의 해외국 미주부 업무반에서 타자수로 일하기 시작해 일본군의 참모본부하에서 대외선전 라디오 프로그램의 스탭으로 발탁되었다.
2월에 일본군 상부의 제안으로 연합군 포로의 라디오 방송 전문가를 이용한 음악과 오락을 곁들인 대외선전 라디오 방송이 생겨났다. 이것이 라디오 도쿄방송의 제로 아워(Zero Our)였다. 여기에 참가한 것은 전에 호주 ABC방송의 아나운서이던 호주군 포로였던 찰스 커즌스 소령, 전 미국 프리아나운서인 미군포로 월레스 인스 대위, 레이즈 중위였다.
‘제로 아워’라는 라디오 쇼의 진행자 ‘오펀 앤’(Orphan Ann)은 애절하고 낭랑한 영어 엑센트와 적절한 선곡으로 미군 사이에서 특히 인기를 끌었다.
남태평양의 무성한 정글에서, 축축한 참호속에서 라디오의 볼륨을 키워서 듣는 ‘오펀 앤’의 목소리와 노랫소리는 병사들에게 고향에 대한 향수를 불러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방송은 미군포로가 연합군 병사를 향해 방송전파로 부르는 스타일이었다. 토구리는 일본어 원고를 영어로 번역해 아나운서에게 넘겨주는 작업을 담당했지만 연합군 병사에게 어필하기위한 여성 아나운서의 기용방침에 의해 토구리는 다른 여성 아나운서와 함께 뽑혔다.
이것이 도쿄 로즈의 시작으로 당시 인기는 상당해 미국에선 도쿄 로즈라는 영화가 만들어질 정도였다.
제로 아워는 1943년 3월에 시작해 종전직전인 1945년 8월 14일까지 방송되었다.
토구리는 1945년 7월에 당시 중립국이던 포르투칼의 특파원이던 필립 다퀴노와 결혼했다.
토구리는 당시 일본경찰 및 헌병에게서 귀화를 종용받았지만 끝내 이를 거부했다.
그러나 전후 그녀가 도쿄 로즈의 한 사람이었다는 것이 GHQ에 의해 밝혀지자 일본 및 미국의 매스컴에서 그녀는 화제가 되었는데 연합군 사령부에서는 일단 그녀를 반역혐의로 스가모 구치소에 투옥했다. 하지만 토구리는 증거불충분으로 곧 바로 석방되었다.
하지만 토구리는 미국으로 귀국하자 고향이던 캘리포니아주의 검사로부터 '대일협력자'라는 반역죄로 기소되어 1949년에 샌프란시스코에서 재판을 받았다.
유죄가 선고된 토구리는 징역 10년과 벌금 1만 달러,
미국 시민권 박탈이라는 판결을 받았다.
이것은 미국 역사상 최초의 정식 반역자 재판이었다.
그러나 인종차별이 합헌이던 당시의 미국에선 배심원의 인종차별적 편견이 만연했기 때문에 1970년에 전미 일본계 미국인 시민협회와 일본계 재향군인회에 의한 지원활동이 시작되어 토구리의 유죄판결은 의문시되었다.
그리고 이 노력에 의해 1977년에 포드 대통령은 그녀에게 은사를 베풀어 미국 시민권을 회복시켜주었다.
토구리는 이후 시카고에 거주하면서 2006년 9월 26일에 뇌졸중으로 90세를 일기로 타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