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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그도 범죄하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났음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드러나나니 무릇 의를 행하지 아니하는 자나 또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니라”라고 증거된 아래 본문 말씀은 성경 전체에서 가장 납득이 어려운 부분들 중 한 곳이라 할 수 있습니다..
진정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은 죄를 범할 수 없다는데 아직도 크고 작은 죄악들에서 완벽하게 승리하지 못하고 있다면 난 구원을 못 받은 것인가, 아니라면 구원을 받았으나 구원이 돌이켜 졌거나 돌이켜 지게 되는 것인가, 혹은 난 여전히 마귀의 자식인가 등의 심각한 의문과 문제들이 있을 수 있는 것이고..
한편으로는 이 세상에 살아가면서 크고 작은 죄악들을 범하지 않는 하나님의 백성된 자들이 진정 단 한 사람이라도 있을 수 있는 것인가, 실상 육신으로 범하는 죄악들 뿐 아니라 마음으로 범하는 죄악들도 죄가 아닐 수 없는 것이기에 모든 하나님의 백성된 자들마다 사실상 날마다 순간마다 범하게 되는 죄악들이 작을 수 없지 않은 현실과 실정이 아닌가’라는 의구심이나 혼란도 없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에 있어서 먼저 죄의 본질부터 살펴보면 죄라는 것은 법을 어기는 것이고, 실상 일반적 상식으로도 이 나라에서도, 세상 모든 나라에서도 법을 어기는 것이 죄인 것이기에 하나님의 세계에서도 마찬가지로 이해하면 쉬운 것인데..
곧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이 하나님의 법이기에 말씀을 어기는 것이 하나님 앞에서는 죄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성경의 처음에서 아담과 하와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어김이 죄의 시작이 아닐 수 없는 것이고, 그 출발점에는 뱀의 형상으로 상징화된 사탄이 있는 것이며..
실제로 성경 전체적으로 보더라도 사탄은 늘 죄악들을 일으켰을 뿐 아니라 그러한 죄악들이 사탄의 밥과 같았음을 알 수 있는 것이고, 언제나 한 편이자 잠시도 떨어질 수 없는 사이인 것임을 군데군데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이며, 사실은 생각 이상으로 강렬하게 상호작용하는 한 통속임을 발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어쨌든 바로 그러한 죄, 사탄의 세력과 음부의 권세들은 상상 이상으로 강하고 사나우며, 많고 오래 반복되며 심화되어 왔고, 진정 전방위적이고 입체적인 것이며, 게다가 영적인 것이라 그에 있어서 그 누구라도 그 자체로는 스스로 이기고 해결할 수 있는 인생은 없는 것이고, 더 나아가 세상 그 어떠한 힘과 방법과 도구들로도 극복하기란 아예 불가능이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실은 오직 한 가지 방법뿐인 것인데 바로 모든 주권과 통치와 섭리의 하나님 아버지의 창세전부터의 뜻과 약속과 섭리 안에서 성자 하나님이시자 구원자이시며 중보자이시고, 특히 하나님 아버지와 우리 인생들 사이의 길과 통로와 접점 등과 같은 위치와 역할이신 구주 예수님의 십자가 목숨값으로 인한 대속과 대신, 나음과 화평 등의 구원의 일들, 진정 온 세상과 전 인류, 모든 시간과 공간보다 더 크실 뿐만 아니라 다 포함하시며, 온 우주보다도 더 크시고, 영원보다도 더 작으실 수 없는 성자 하나님, 곧 말 그대로 근본적으로 하나님이 아니실 수 없는 분인 것으로 참으로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있고 우리 인생들이 상상도 다 못하며 심지어는 세상 끝 날과 부활, 영생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죄와 문제들, 사탄과 음부의 세력들, 사망과 심판들보다 더 크시고 다 포함하시며, 그에 있어서의 모든 사함과 나음들, 평화와 승리들, 복과 생명들보다 더 크시고 다 포함하시는 바로 그러한 성자 하나님이신 구주 예수님의 십자가 목숨값만한 가치와 권세들,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에 믿음으로 참예하는 것..
다시 말해 모든 주권과 통치의 섭리의 하나님 아버지께서 상상도 못할 사랑과 은혜와 능력으로 창세전부터 계획하시고 약속하시며 예정하시고 준비하시며 진행하시고 성취해 나가시는 대로 그 시간에 따라 그 한가운데 계신 구주 예수님을 믿음으로 참예케 됨과 함께 세상이 줄 수 없는 하늘의 힘과 은혜들을 입는 방법뿐인 것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어떤 식으로든, 얼마만큼 이든지 간에 바로 그렇게 구주 예수님의 십자가 구원을 중심으로 한 하나님 아버지의 창세전부터의 구원의 일들에 대한 사실을 알고 깨달으며, 말씀대로 인정하고 믿으며, 고백하고 결단하는 신앙으로만 가능한 것이고..
그때 직접적, 현실적, 경험적인 면에 있어서는 그 위치와 역할에 따라 처음부터 하나님 아버지의 영이시자 구주 예수님의 이름에 약속되신 분이며 시공을 넘는 전지전능의 하늘의 힘으로 하나님 아버지의 모든 뜻과 약속과 말씀들을 다 실행하시고, 특히 그 한가운데 계신 구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그 목숨값으로 다 이루신 구원의 일들을 시간과 공간들을 초월해서 믿음과 함께 말씀대로 모두 실제가 되게 하시는 보혜사 성령님으로 인한 실질적인 하늘의 힘과 역사에 의해 정말 대략 2000년 전의 그 십자가 구원이 시대와 나라들을 넘어 오늘날의 죄인 중의 죄인이자 억만 죄인이라 할 수 있는 바로 나 같은 자를 위시한 하나님 아버지의 창세전부터의 뜻과 약속과 섭리 안에서의 모든 합당한 자들의 구원도 될 수 있게 하고, 실제로 천국과 부활과 영생의 백성, 곧 본질적으로 말씀의 백성으로의 거듭남도 될 수 있게 하며, 더 나아가 날마다 순간마다, 세상 끝 날까지, 진정 신령한 몸으로의 부활과 영원한 나라,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데 있어서까지 계속적인 하늘의 힘과 경험들이 되는 것이고 얼마든지 가능한 것이며, 살아 있는 말씀의 신앙과 함께 생각 이상으로 생생하고 강렬하게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그러한 구원의 일들, 다시 말해 거듭남과 누림들은 구주 예수님을 구원자로 정말 믿고 받아들일 때 실제가 되는 것인데 따지고 보면 실상은 이미 성자 하나님이신 구주 예수님의 십자가 목숨값 구원에 모든 게 다 포함되어 있는 것이고, 시대와 나라들, 시간과 공간들을 초월해서 다 이루신 것에 참예하는 것이기에, 게다가 그 예수님의 이름에 약속되신 성령님의 시공을 넘는 전지전능의 하늘의 힘으로 인해 실제로 거듭남이 되고 이미 시공을 넘어 완전히 인 쳐진 것이기에, 뿐만 아니라 창세전부터의 하나님 아버지의 뜻과 계획과 약속과 준비와 함께 하나님의 시간에 따라 이미 진행된 것이기에, 더 나아가 근원적으로는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하나되심으로 인해 이미 실제가 되고 확정이 되며 하나님의 것일 뿐 아니라 본질적으로 말씀의 사람으로 완전히 거듭나고 확정되며 천국과 부활과 영생까지 처음의 믿음과 함께 이미 정해지고 하나님의 것으로 전적으로 뒤바뀌게 된 것이기에..
곧 구주 예수님을 제대로 구원자로 깨닫고 믿으며 고백하고 영접한 그 순간에 이미 마치 준비된 옷을 껴입듯이, 실제로 벌써부터 짜 맞춘 것이 아닐 수 없듯이 다 진행이 된 것이고, 실제로 하나님의 것으로 완전히 변화되는 것으로, 다시 한 번 더 말씀드리면 믿음과 함께 이미 하나님의 자녀이자 천국과 부활과 영생의 백성으로 거듭나고 새로워 진 것이며 영원한 나라, 영원한 생명에까지 이어지게 된 것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사실상 하나님 아버지의 창세전부터의 뜻과 약속과 섭리 안에서 정말 제대로 믿어 마치 목욕하듯 통째로 한번 실질적으로 구원에 참예케 된 자들은 그러한 구원이 중간에 취소되거나 돌이켜질 수 있는 차원이나 개념 자체가 될 수 없는 것인데..
실상 추후의 아무리 큰 죄악들이나 아무리 사악한 세력들이라도 성자 하나님이신 구주 예수님 십자가 목숨값만한 대속과 대신, 나음과 화평 등과 같은 이미 다 이루신 구원의 일들보다 더 클 수 없고, 또한 구원의 모든 과정에 직접적으로 역사하시고 인 치신 성령님의 시공을 넘는 전지전능의 하늘의 힘보다 더 클 수 없으며, 게다가 하나님 아버지의 창세전부터의 상상도 못할 사랑과 은혜와 능력으로 인한 뜻과 섭리, 약속과 예정보다도 더 클 수 없고, 무엇보다 근원적으로 그러한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그 역할에 따른 완벽하게 조화되시고 완전하게 하나되시어 한 뜻을 이루심보다 더 클 수는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좀 더 원론적으로는 우리 인생들의 행위들, 공과 등이 믿음으로 구원에 참예케 됨에 있어서 그 자체로는 결코 조금이라도 좌지우지가 될 수는 없고 심지어는 그 어떤 영향도 될 수 없는 것이듯이 그와 같은 인간적 행위들, 잘못들에 의해 이미 참예케 된 구원에 있어서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친다든지 취소를 할 수 있는 정도가 되는 것이라든지 등은 그 이치와 원리 상 말이 안 되는 것인데..
바꾸어 말해 만일 그렇지 않고 우리 인생들의 행위들이나 죄악들에 따라 정말 구원이 취소될 수 있는 의미나 개념이나 실제인 것이라면 그 누구도, 그 어떤 하나님의 백성이라 하더라도 참으로 이 험악한 세상에서 연약한 육신의 몸을 입고 살아야 하는 실상인 것이기에 더 이상 추가로 아무 죄악들 없이 살면서 끝까지 구원을 유지할 수 있는 자는 단 한 사람도 있을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실제로 그런 이치와 실상인 것이기에 다윗의 간음과 살인 교사와 같은 죄악들을 위시해 솔로몬의 우상 숭배, 베드로의 세 번 부인 뿐 아니라 저주하고 맹세까지 하는 부인 등과 같은 끔찍한 죄악들, 있을 수 없는 죄악들에도 실제로 구원이 돌이켜지지는 않았고, 오히려 반대로 모든 것들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뜻과 통치와 섭리 안에서 오늘날까지 큰 영향력과 본이 되는 선배들로 남을 수도 있었던 것입니다..
사실 조금만 따지고 봐도 오늘날의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뿐 아니라 구약이나 신약 시대, 초대 교회 공동체의 믿음의 선배들도 다 마찬가지인 것인데 진정 구원에 참예한 자라 하더라도 아무도 예외 없이 크고 작은 가시적인 죄들, 부지중의 죄들이 없을 수 없음은 꼭 원죄는 굳이 따지지는 않더라도 잘 통찰해 보면 오늘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이렇게 두꺼운 성경의 많은 말씀들이 모두 다 하나님의 말씀이자 법들인 것이기에 아무도 그 스스로 완전한 의인이 될 수 없는 것일 뿐 아니라 오히려 중간 중간에 말씀들을 어기면서 적지 아니 유혹들에 빠지고 크고 작은 죄악들을 실제로 범하곤 하는 것이며..
실상 현실적으로 악한 세력들이 우는 사자들과 같이 삼킬 자들을 찾는 이 험한 세상에서 연약한 육신의 몸을 입고 사는 한 조금도 어기지 않음은 불가한 일인 것이고, 특히 웬만한 죄들과는 잘 싸우고 십계명이나 눈으로 드러나는 죄들에 있어서는 어느 정도 물리친다고 하더라도 실상 하나님 앞에서는 마음이나 눈으로, 또는 생각으로 범할 수 있는 죄들도 많은 것이기에, 심지어는 요한일서 3장 15절에서는 형제를 미워하는 것이 살인에 준하는 죄로 증거되어 있는 것도 볼 수 있는 것인데 어쨌든 인간인 이상 그 누구든 다윗처럼 죄악들 그 자체로 봐서는 머리털보다 더 많은 죄들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현실인 것이며, 사실은 모든 인생들에 있어 날마다 순간마다 범할 수 있고 오랜 시간 쌓이고 쌓인 죄악들의 수를 헤아린다면 만 달란트 빚진 자와 같지 않을 수 없는 것이며, 그 누구도 억만 죄인이 아니기 힘든 실상인 것이고, 더 나아가 구원에 참예케 하나님의 백성된 자들이라도 죄악들에 있어 믿지 않는 자들과 모양과 정도와 강도와 분량들 등에 있어서 차이들이 작을 수야 없는 것이겠지만 어쨌든 얼마만큼이든 간이 죄악들이 없을 수는 없는 것이며, 사실상 말씀이 육신이 되시어 이 세상에 임하신 구주 예수님이 아닌 한 그 누구라도 무흠한 자가 있을 수 없는 것이고, 참으로 아무리 대단해 보이는 자들이라도 완벽할 수는 없는 것일 뿐 아니라 오히려 반대에 가까운 것이 현실인 것입니다..
참으로 그러한 모든 실제들을 감안한다면 아래의 본문 말씀은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기준을 보이신 말씀이라 할 수 있는 것이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신앙과 살아 있는 믿음에 있어 목표와 목적지를 알려주는 말씀인 것이며..
이 험악한 세상에서 사는 동안 하나님 아버지의 창세전부터의 뜻과 약속과 섭리 안에서 끊임없이 십자가 붙잡고 기도하고 찬미하면서 그 이름에 약속되신 성령님으로 인한 하늘의 힘과 은혜를 덧입어 죄악들과 싸우며 혹 범하게 된 죄들은 자복하고 돌이키면서 갈수록 더 말씀으로 몸부림침과 함께 말씀의 영이신 성령님으로 더욱 강렬하고 충만해 지지 않으면 안 되는 하나님 백성들의 정체성과 과정과 위치와 강령 등을 나타낸 것이라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사실상 오늘 우리들에게 주신 모든 말씀들, 약속들 중 많은 종류와 영역들이 다 완성된 것이 아니라 세상 끝 날까지 성취되어 가는 과정에 있는 말씀들이 많고, 게다가 예수님을 믿고 구원에 참예케 된 자들도 처음부터 성숙되거나 믿음이 다 완전하고 이미 모두 완성 되었다기보다는 어린 아이와 같은 신앙들이 허다하며, 점점 더 자라고 장성하게 되는 시간들이 누구든 필요치 않을 수 없는 것이고..
그 누구도 예외 없이, 진정 목회자나 장로, 신학 박사라 하더라도 크고 작은 허물과 부족함들이 적을 수만은 없는 것이며, 모두 다, 단 한 사람도 예외 없이 우리 주님 이 세상에 다시 오실 때까지 성화되어 가는 길과 과정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예를 들어 나 자신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죄를 범하게 된 때는 다른 무엇보다 '아 이것은 아니지, 난 죄악의 사람일 수 없지, 마귀의 자식이 아니지, 난 죄를 범할 수 없고 죄악이 나를 이길 수 없는 하나님의 자녀이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목숨으로 나를 구하셨지, 모든 죄와 그로 인한 대가들을 다 치루시며 대속과 대신, 나음과 화평의 일들을 다 이루셨지, 이미 나를 도우셨고 분명 계속해서 나를 도우실꺼야, 이러한 죄악들도 이기게 하시고 깨끗하게 하시며 어떻게든 극복하게 하시고 역전되게 하실 거야, 하나님께서 오늘도 새롭게 하시고 하늘의 힘을 주시며 말씀대로 함께 하시고 역사하시며 최후 승리를 주시지, 하나님께서 힘주시면 나도 살아 있는 말씀의 신앙이 될 수 있지'라고 하면서..
십자가 붙잡으며 더 기도하고 찬미하면서 그 속에서의 그 예수님 이름에 약속되신 성령님으로 인한 실제적인 은혜와 능력을 더욱 사모하고 의지하며 자복하고 돌이키며 더욱 더 말씀대로 믿고 붙잡으면서 더더욱 몸부림쳐야 하는 것이며, 참으로 그러한 믿음이야 말로 가면 갈수록 더 구주 예수님의 십자가를 더욱 붙잡고 의지하며 그 이름에 약속되신 성령님으로 인한 하늘의 힘을 얻어 더욱 죄악들과 치열하게 싸울 수 있게 되고 그러면서 또 다시 범하게 되는 죄악들도 최대한 빨리 자복하고 돌이키면서 다시 더욱 더 죄악들과 싸우고, 또다시 더더욱 말씀으로 치열해 지면서 일어나고 또 일어날 수 있게 되는 것이며, 그러면서 점점 더 치열하고 뜨거운 믿음, 곧 살아 있고 깨어 있는 말씀의 신앙, 말씀의 열정으로 갈수록 더 강해지고 견고해 지게 되며, 깊어지고 복되게 되며, 승리케 되고, 결국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이 되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어떤 면에서는 따지고 보면 근본적으로 하나님 아버지의 창세전부터의 뜻과 약속과 섭리 안에서 구주 예수님께서 사실상 시간과 공간들에 제한되지 않는 모든 구원을 다 이루셨고, 이미 시대와 나라들을 넘어 모든 죄와 음부의 세력들에서 승리하셨으며, 그 가치와 능력과 권세들은 존재할 수 있는 모든 죄악들, 다시 범할 수 있는 모든 죄악들보다 크고, 악한 세력들의 힘과 권세들과도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것일 뿐 아니라 진정 측량도 다 못하며, 상상도 다 못할 정도로 어마어마고 강력한 것이고, 또한 시공을 넘는 전지전능의 하늘의 힘과 실제이신 성령님의 법에 이미 속해 있기에 하나님의 백성들이 범하는 죄악들이 원론적으로는 효력을 발할 수 없고 당연히 구원도 돌이켜 지게 할 수도 없는 것으로 볼 수 있지만..
그러나 그렇다고 반복하는 죄악들에 있어 아무 일도 없거나 그러한 죄악들이 조금이라도 괜찮은 것이거나 진정 하나라도 용납될 수 있다거나 회개가 중요치 않을 수 있다거나 하는 것 등은 전혀 아닌 것이며, 오히려 완전히 반대라 할 수 있는 것으로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더욱 사랑하셔서 라도 그 사랑하는 자녀들이 더 이상 죄악들을 반복하지 않고 하루 바삐 돌이키며 속히 제대로 된 믿음에 서게 되도록 그러한 죄악들의 모양과 정도와 강도들에 따라, 또한 그의 시간과 계획과 섭리에 따라, 그리고 그 당사자의 영성과 그릇과 준비도 등에 따라 필요한 대가를 어느 정도까지는 합당하게 치르게 하시고, 책임을 물으심과 함께 일정 시간 하늘의 힘과 은혜와 응답들 등과 같은 복들을 막으시며, 그 대신 하나님의 시간에 맞게 아비의 심정으로 사람 막대기와 인생 채찍들 같은 징계들을 아끼지 않으시곤 하고, 어떤 때는 생각 이상으로 곤고하고 수치스러우며 비참케도 하시는 것입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현실적으로 이 땅에서는, 특히 삶의 자리에서도 공중 어둠의 권세 잡은 자들이 왕 행세하고 대적하며, 죄와 사탄이 계속해서 속이고 가리기 쉬우며, 반면 우리 인생들은 많이 우둔하고 연약하며 악영향을 자꾸만 받으면서 삶의 자리들, 사역의 현장들에서 적지 아니 헤매고 종종 넘어지고 혼동되며 혼잡해지고 침륜에 빠지기도 하며, 스스로를 정죄하고 절망하곤 하고, 게다가 그러한 크고 작은 죄악들로 인해 구원이 돌이켜 지지는 않겠지만 한 때의 다윗이나 솔로몬 등의 죄악의 결과들에서 잘 알 수 있는 것처럼 사탄의 심각한 구실과 공격이 되곤 하는 경우들도 적지 않은 것이나..
그러나 그러면서도 하나님 안에서는 방법이 있고 뜻밖의 기회가 되어 어떤 연단이나 훈련들의 계기가 되기도 하며, 더 나아가 그러한 모든 일들이 하나님의 손에 있고 약속대로 합력하여 선이 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이기에 더욱 정직하게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더 놀라운 역사들도 보게 될 수 있게 하고, 더욱 엄청난 계획을 위해 준비되어 지는 통로가 되기도 하며, 실제로 심히 부족하고 연약하며 허물이 많고 진정 최악의 모습이나 상황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십자가 붙잡으며 말씀과 기도와 찬미로 무기 삼으면서 오히려 전혀 짐작도 못했던 반전이나 역전들을 맞이하게 되는 경우들도 참 많은 것입니다..
사실 가장 좋고 복되며 풍성하고 강력하게 되는 것은 처음에 믿음으로 구원에 참예케 된 사랑, 이치와 마찬가지로 하나님 아버지의 창세전부터의 뜻과 약속과 섭리 안에서 날마다 순간마다 오직 한 분 구주 예수님의 십자가를 자랑하고 붙잡으며 그 이름으로 기도하고 찬미하면서 내 힘과 의, 세상적 능력과 방법들이 아닌 바로 그 이름에 약속되신 성령님으로 인한 하늘의 힘과 은혜들을 의지하면서 크고 작은 죄악들과 피 흘리기까지 싸우는 것, 혹 범한 죄악들은 하나님 아버지의 창세전부터의 뜻과 약속과 섭리 안에서 구주 예수님 십자가 피권세가 그 어떠한 죄악들보다 더 크고, 진정 구주 예수님께서 온 세상과 전 인류, 모든 시간과 공간보다 더 크신 성자 하나님이신 그 목숨값으로 이미 다 대속하셨으며, 바로 그 이름과 함께 처음부터 그 이름에 약속되신 성령님께서 하늘의 권능으로 실제로 도우심과 효력들, 곧 나음과 사함들, 회복과 역전들이 되게 하심을 기억하면서 최대한 빨리, 철저히 자복하고 회개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고, 뿐만 아니라 그로 인한 실질적인 사함과 나음들 등도 정말 확신하고 사모하며 누릴 수 있어야 하며..
특히 날마다 순간마다 그 어디서든, 그 누구라도, 다른 그 무엇보다도 주야로 더욱 말씀을 읽고 묵상하며 실천하고 증거하면서 깨어 있고 살아 있는 신앙이 되어 갈수록 더 말씀과 기도와 찬미의 영이신 성령님으로 더욱 생생해 지며 충만해 지고, 근원적으로는 말씀으로 하나되신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기뻐 역사하심으로 인한 하늘의 힘과 능력들, 기쁨과 복들, 은사와 응답들 등과 같은 복음의 능력과 하나님 나라의 역사들로 날마다 순간마다 승리하게 되고 더 풍성해 지며, 그로 인해 가면 갈수록 더 죄악들과 싸우고 더욱 더 말씀으로 나가며, 더더욱 말씀의 영이신 성령님으로 충만해 지고 더 강렬하게 하나님 나라의 역사들을 누리는 점진적, 점증적인 선순환에 거하는 것이며, 그와 함께 세상 끝 날 우리 주님께서 말씀대로 이 세상에 다시 오실 때 더욱 기쁨으로 맞이하며 '수고했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라고 칭찬 받으며 주님의 품에 안기게 되는 것이 모든 진정한 하나님의 백성들에 있어서 참으로 소중하고 가장 복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자녀들아 아무도 너희를 미혹하지 못하게 하라 의를 행하는 자는 그의 의로우심과 같이 의롭고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그도 범죄하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났음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드러나나니 무릇 의를 행하지 아니하는 자나 또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니라"(요일3:7~10)
('페북두란노서원66'중에서 인용과 추가/밀알서원)
*양범주목사의 '21세기 두란노서원'/2024년 5월 30일(목)2부/사진 조연진사모, 이미지 박원영집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