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mália Rodrigues(아말리아 호드리게스) Maldição - 저주(어두운 숙명) (1967) ▼
Amalía Rodrigues - Maldição(어두운 숙명) ▼
가사
아! 무슨 운명이, 무슨 저주가 우리로 하여금 이토록 헤어져 방황케 하는가? 우리는 침묵한 두 울부짖음. 서로 엇갈린 두 운명 하나가 될 수 없는 두 연인. 우리는 침묵한 두 울부짖음. 서로 엇갈린 두 운명 하나가 될 수 없는 두 연인.
저는 그대로 인해 고통을 받으며 죽어갑니다. 그대를 만나지도 이해하지도 못 한 채 말입니다. 저는 이유없이 자신에게 말합니다. 아 심장이여! 언제쯤 너는 우리의 불꺼진 희망으로 피곤에 지칠 것인가? 또 언제쯤 멈출 것인가?
아 심장이여! 언제쯤 너는 우리의 불꺼진 희망으로 피곤에 지칠 것인가? 또 언제쯤 멈출 것인가? 저는 이 싸움에서 느끼는 이 고통을 노래하며 기쁨에 겨워 눈물을 흘립니다. 저는 행복하면서도 불행한 여자입니다. 그대의 운명이 이렇다니... 절대 만족할 줄 모르는 그대. 모든 것을 주고는 아무 것도 갖지 않는 그대,
그대의 운명이 이렇다니... 절대 만족할 줄 모르는 그대. 모든 것을 주고는 아무 것도 갖지 않는 그대,
차디찬 고독속에 그대는 내게 마음을 주지만 그것은 생명도 죽음도 아닌 것을... 하지만, 그대의 운명을 바꿀 수 없음에도 그것은 바로 그 운명을 읽어내려는 안간힘이자 미친 짓 인 것을....
하지만, 그대의 운명을 바꿀 수 없음에도 그것은 바로 그 운명을 읽어내려는 안간힘이자 미친 짓 인것을...
'파두(fado)'는 포르투갈을 대표하는 음악이며 사랑하는 이와의 이별, 떠난 이와 지난 세월에 대한 그리움, 슬픔 등을 노래하기 때문에 한국인의 정서와도 가장 잘 맞는 월드뮤직이라고 할 수 있다. 파두는 '운명'을 뜻하는 라틴어 '파툼(fatum)'에서 유래했다. 이베리아 반도에 함께 위치한 스페인과는 달리 운명에 순응하는 인생관이 몸에 배인 포르투갈 사람들의 정서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또한 파두는 '사우다지(Saudade)의 예술'이라고 하는데, '사우다지'는 우리 말로 '한(恨)'과 흡사한 정서라고 할 수 있다. 포르투갈의 수도 리스본의 바다가 보이는 언덕에 '벨렝탑'이라는 유명한 전망대가 있다. 15세기의 대항해 시절, 리스본의 여자들은 배를 타고 언제 돌아올지 모를 먼 곳으로 떠나는 님을 조금이라도 더 오래 보기 위해 나선형의 긴 계단을 힘겹게 오르며 한과 그리움을 마음에 품었다. 그것이 곧 '사우다지'다. 15세기 대항해 시절의 포르투갈은 신대륙으로 가는 항로를 누구보다도 먼저 개척하며 대항해 시대를 열었고, 대서양으로 열린 바닷길을 따라 남자들은 아프리카로, 또 라틴아메리카로 떠났고 남겨진 여자들에게는 슬픔처럼 파두가 생겨났다. 파두의 상징적인 악기인 12줄의 파두기타 '기따라(Guitarra)'의 손잡이 끝에 붙은 장식은 '눈물(Lagrima)'을 아이콘화한 것이다. 포르투갈의 전성기라고 할 수 있는 시기인 1415 ~1580년을 거치며 많은 식민지를 개척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바다를 향해 나가게 되었고 대서양, 태평양을 누비며 신항로의 개척과 아메리카 대륙으로까지 진출하게 된다. 이런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바다는 포르투갈의 운명과도 같은 것이 되어 버렸는지도 모른다. 어느 바다인지는 모르지만 죽어버린 사랑하는 사람을 그리며, 바다와 함께한 불안정한 삶을 노래하며 자연히 파두는 포르투갈인의 마음속 깊이 자리잡게 되었을 것이다. 포르투갈은 식민지와의 완전한 융합을 목표로 했다. 따라서 19세기 초 리스본의 알파마(Alfama) 거리에는 아프리카인들과 브라질에서 건너온 혼혈인들이 자연스럽게 정착했다. 이 거주자들로부터 '포파'와 ‘룬둠'이라는 아프리카에 뿌리를 둔 노래와 춤이 전파 되었는데, 파두에는 이들의 '포파(fofa)' '룬둠(lundum)' 같은 요소들이 가미되고 브라질의 센티멘털한 '모디나(modhina)'가 섞이면서 1920년 전후에 현재 파두로 정립됐다. 가사의 내용은 대개 외설적이고 거친 욕망을 표현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마치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보카지구에서 탱고가 탄생했을 때 탱고를 퇴폐적이고 음탕스러운 것으로 묘사했던 것처럼 리스본의 알파마 거리에서 꽃을 피운 이들의 음악에 대한 인식도 마찬가지였다. 후에 ’룬둠‘과 ’포파‘의 요소들은 파두로 알려지게 되었다. 파두의 기본적인 요소는 기원에 있어서 아프리카적인 것으로 처음엔 파두라는 말은 풍부한 정서적 호소력을 지닌 기타 반주에 의한 아프리카의 댄스가 응용된 것이었다. 사실 파두(Fado) 의 기원을 말하기란 그리 쉽지가 않다. 어떤 사람들은 파두가 오랜 옛날의 포르투갈 서정시에서 비롯되었다고 하고 또는 뱃사람들이나 상상력이 풍부하고 명상에 잠기기 좋아하는 포르투갈 사람들이 읊었던 시에 파두의 기원이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이러한 사람들은 그들의 불안정한 삶이 그들을 이상주의자로 만들었으며 이로 인해 그들은 자연히 시를 짓는 재능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들이 읊는 시는 주로 운문조였으며, 그들 대부분은 즉석에서 되는데로 쉽게 시를 지을 수 있었고 그것은 바다에 나가 자신들의 조국을 그리며, 파두의 리듬에 맞춰 노래를 부르던 뱃사람들의 영혼에 대한 결과물이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Camané - Fado Da Sina ▼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파두의 기원이 룬둠(lundum)에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룬둠이란 18세기 말에서 19세기 초, 포르투갈과 브라질에서 대유행했던 아프리카 춤을 말하는데 리스본 항에서 배를 타고 바다로 향했던 뱃사람들이 다른 민족과 접촉하면서 서서히 그리고 자연스럽게 룬둠과 파두를 전했다는 게 그들의 얘기이다. 기타라(guitarra)라고 불리우는 열두줄을 가진 포르투갈 기타와 오라 반주에 실어 인생의 비애, 실연, 고향을 떠난 외로움 등을 전했던 파두. 참고로 한이 투영된 애절한 보컬에 다소 중성적인 목소리로 리스본 파두의 맥을 이어가고 있는 대표적인 주자인, 남성 아말리아 로드리게스라고 평해지고 있는 까마네 (Camane)의 노래 가운데 '기타라'라는 곡을 보면, 파두 음악의 근원적인 슬픔을 대변하는 악기가 바로 기타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4행시와 모디나(modhina) 혹은 발라드 전통은 19세기 초기 이전까지 포르투갈 문화의 중요한 일부였다. 대중적인 포크의 4행시는 대체로 농촌 공동체에서 민속을 전승하기 위해서 그리고 특별한 축일을 기념하기 위해, 혹은 어린이들의 이야기를 담거나 소멸하지 않는 영원한 사랑을 기리기 위해서 많은 형태로 사용되었다. 이러한 주제들은 순수한 형태의 포크와 파두의 서정성에 영향을 주었다. 아마도 ’룬둠‘과 같은 이전의 오래된 아프리카적 전통은 거의 걸러지고 더욱 구슬픈 요소로 대체됐으리라 추측하고 있다. 이렇게 해서 댄스, 모디나, 4행시는 파두의 리듬과 형식, 그리고 내용을 이루는 파두의 3대 요소로 자리잡았다. 그리고, 역사의 안개 속으로 희미하게 사라진 어떤 시점에서 이러한 세 가지 요소들이 함께 융합되고 발전하면서 파두를 이루게 되었다. 이렇게 다양한 기원을 갖고 있는 파두는 리스본 항구 근처에 있던 선술집 등에서 처음으로 불려지기 시작했다. 선술집은 부랑인들이 모여 그들이 가지고 있는 아픔과 그리움을 나눌 수 있는 유일한 곳이었기 때 문이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파두는 선술집 뿐만이 아니라, 무도회장에서 그 시대 귀족들에 의해 불려지기 시작했다. 역사적 기록으로 처음 등장하는 '파디스타'(Fadista: 파두 가수)는 마리아 세베라(Maria Severa, 1820~1846). 그녀가 1836년 발표한 파두는 격렬한 애정행각을 노래했으며, 한 귀족과의 염문으로 인해 하층민에만 유행하던 파두가 귀족층으로 널리 퍼지게 되었다. 파두 가수들이 노래할 때 검은 드레스를 입고 연주자들 역시 검은 정장을 입는 이유는 마리아 세베라를 추모하기 위한 것이다. 그녀는 파두의 기원(origin)이자, 정체성( identity)이자, 영혼(soul)인 셈이다.
Rodrigo Leão - Vida Tão Estranha ▼
파두는 각기 다른 배경을 가진 두 개의 파두로 나뉘는데, 리스본에서 북으로 200여km 떨어진 꼬잉브라(Coimbra)에는 1290년에 설립된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꼬잉브라 대학이 있는데, 그 곳에서 생겨난 것이 '꼬잉브라 파두'다. 서민생활의 애환과 이별의 슬픔 등을 그린 리스본 파두와는 달리, 꼬잉브라 파두는 대학도시의 분위기를 반영해 철학적이면서도 매우 시적인 가사가 주류를 이룬다. 모든 파디스타가 남성인 것이 특징이다. 파두 가수와 더불어 파두의 영혼과 몸을 서로 교환하는 악기가 포르투갈 기타 '기따라(Guitarra)'다. 12줄로 된 기따라는 그 모양 때문에 '작은 심장'으로 불린다. 플레이트 길이가 44cm로, 짧은 울림과 소리의 떨림, 섬세함으로 인해 여성의 악기로 불린다. 포르투갈의 역사는 8~12세기에 걸친 무어인의 지배와 15세기에 본격적으로 바다로 진출하기 시작했던 시기, 즉 대항해 시대라고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무어족의 지배를 받는 동안 아랍적인 숙명관이 담긴 무어족의 노래로부터 파두가 기원했다는 설은 파두가 지닌 어두운 내면의 표현과 무관하지 않다. 파두에서 나타나는 어둡고 경건한 분위기, 그리고 한 음을 길게 늘이면서 꺾는 창법 등 모든 것이 아랍의 영향을 받은 흔적이다. 또한 비슷한 시기에 무어인의 지배를 받았던 스페인의 음악에도 이러한 아랍적인 요소들이 곳곳에 존재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바다를 통해 신대륙을 개척해 나갔던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파두의 기원설은 좀 더 구체적이다. 1800년 전후에 브라질에서 유행했던 도시풍의 감상적인 노래 ‘모디냐(modinha)’와 아프리카의 ‘룬둠(lundum)’ 이라는 노래가 긴 항해에서 돌아온 사람들에 의해 전해져 파두의 발생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이 시기에 또 한 가지 주목할 점은 수많은 포르투갈의 남자가 아프리카와 신대륙으로 길고 긴 항해를 했다는 점이다. 그 뒤에는 고통을 감내해야만 하는 남아 있는 사람들(여인)의 기나긴 기다림과 아픔이 따르게 되고, 떠나가 있는 이들은 조국에 대한 향수와 오랜 고독을 이겨내야만 했을 것이다. 이때부터 포르투갈인들에게 바다는 삶이자 숙명과도 같은 것이었다.
파두라는 단어가 운명, 숙명을 뜻하는 ‘파툼(fatum)’이라는 라틴어에서 유래한 것도 포르투갈인과 바다의 떼놓을 수 없는 관계와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한편 바다를 따라 흘러 다니다 리스본의 뒷골목에서 찌든 가난과 함께 여생을 보낸 뱃사람들 이 인생의 허무함을 달래며 노래하기 시작했던 것에서 파두가 비롯되었다는 설도 있다. 이처럼 바다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운명론적인 인생관을 지닌 파두의 근간에는 ‘사우다드(saudade)’라고 하는 포르투갈 사람들 특유의 정서가 중요하게 자리하고 있다.
Amália Rodrigues - Fado Portugues(포루투갈의 숙명) ▼
가사
바람이 거세게 불 때 그리고 바다와 하늘은 연장되었다 범선의 뱃전에서 바닷 바람이 가슴에 슬프게 노래 하면서 슬프게 노래 하면서 거기 아름다운 커다란 아름다움
나의땅, 나의 산, 나의 계곡, 잎들의, 숲들의, 금 과일이 열려있는 스페인의 땅들을 한번 봐라 포루투칼의 모래알도 봐라 눈물의 무지를 봐라 약한 범선에 탄 바닷 사람의 입속에서 고통스런 노래가 힘겹게 나오고 있다 허공에라도 입 맞추고 싶은 입술의 바램을 따끔하게 달래면서
어머니, 안녕히, 안녕히, 마리아 당신의 뜻을 잘 담아 두세요 여기 내가 당신에게 맹세하니까요 아니면 당신을 성구 보관소에 데려가겠어요
혹시 내가 신의 부름을 받거든 바다에서 장례식을 치러 주세요 이제 다른 어느 날 떠난다 바람이 전혀 불지 않을 때 바다와 하늘은 연장되었다
다른 범선의 뱃머리로 다른 바닷 사람들은 숨었었다 슬프게 노래 하면서 슬프게 노래 하면서...
‘사우다드’는 흔히 그리움, 향수, 또는 강렬한 갈망 등으로 풀이되기도 하지만 이처럼 단순한 뜻을 내포하고 있는 말이 아니다. 바다를 숙명처럼 여기고 살아온 포르투갈 사람들의 희로애락(喜怒哀樂)과 내면에 깃들어 있는 어두운 감정을 총체적으로 표현한 말이라 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음악팬들이 오래전부터 들어왔던 ‘아말리아 호드리게스’의 노래에서도 경험했듯이, 파두 가수들은 이 ‘사우다드’를 감정의 밑바닥으로부터 끌어올려 토해내듯이 노래로 표현한다. 청중 역시 이 파두 특유의 정서를 함께 공감하는 것이다. 또한 파두에는 고유한 악기가 뒤따른다. 우선 ‘기타라 포르투게사 (Guitarra Portuguesa)’라는 포르투갈 기타가 있는데, 반원에 가까운 몸통의 12현 악기로 팽팽한 고음의 음색을 지니고 파두 고유의 분위기 를 주도한다. 여기에 ‘비올라’로 불리는 클래식 기타나 스페니 기타가 화음을 담당하며, 베이스가 함께한다. 파두는 지역과 스타일에 따라 리스본 파두와 코잉브라 파두로 나누어진다. 앞에서 설명한 것들이 리스본 파두에 대한 내용이며, 코잉브라 파두는 오랜 역사를 가진 교육도시 코잉브라 지역에서 발전했다. 주로 여성 가수들에 의해 ‘사우다드’를 표현하는 리스본 파두와 달리 코잉브라 파두는 대학생 위주의 남성 가수들이 불렀다. 그 기원 역시 리스본 파두와는 달리 중세의 음유시인 들로 보는 견해도 있다. 리스본 파두에 담긴 통속적인 감성과는 달리 남자 대학생들이 중심이 되어 불렀던 노래답게 지적이고 낭만적인 면모를 지니고 있다. 또한 코잉브라 파두는 민중 계몽에 대한 메시지를 담기도 하면서 살라자르의 독재정권 시절 저항음악의 바탕이 되기도했다. 1954년의 프랑스 영화 과거를 가진 애정(Les Amants du Tage) 속에는 파두의 또 다른 이름이라 할 수 있는 아말리아 호드리게스(Amalia Rodrigues)가 등장해서 ‘검은 돛배(Barco Negro)’를 노래한다. 포르투갈 고유의 음악 파두와 아말리아 호드리게스를 전 세계에 알리는 결정 적인 계기가 되는 순간이었다. 이후 아말리아 호드리게스는 숱한 명곡을 발표하며 파두의 여신으로 군림했고, 우리나라에서는 10년 전까지만 해도 그녀 이외의 파두 가수는 거의 소개되지 않았을 정도로 독보적인 존재였다. 그녀가 현역에서 은퇴할 무렵, 포르투갈 사람들은 과연 누가 그 뒤를 이어 파두의 여왕에 등극할 것인가에 큰 관심을 두고 있었다. 또한 새롭게 등장하는 파두 가수 대부분이 그녀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었고, 90년대를 전후로 등장했던 대형 파두 가수들은 대부분 지금까지도 파두 음악계에 거대한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 아말리아 호드리게스와 즉각적으로 비교가 되어왔다. 아말리아 호드리게스라는 불세출의 파디스타에 의해 세계적인 음악으로 깊이를 더해온 파두는 그녀의 후계자로 불리는 둘쓰 폰트스(DulcePontes), 크리스티나 브랑쿠(Cristina Branco)와 같은 세계적인 가수 들에 의해 더욱더 세계의 주목을 받으며 발전하고 있다. 특히 2006년 내한공연을 하고 갔던 파두 가수 마리자(Mariza)는 “아말리아 호드리게스의 재래(再來)”라는 찬사를 받으며 유럽에서 현역 최고의 파두 가수로 활동하고 있다. 한편 파두는 90년대를 전후로 ‘노바 파두(Nova Fadoㆍ새로운 파두)’라는 현대적인 모습으로의 변모를 꾀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리스본 파두의 전통을 바탕으로 악기 편성과 음악적 스타일에 변화를 주면서 여전히 월드 뮤직의 중요한 스타일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삶의 슬픔과 우울함, 그리고 포르투갈 사람들의 내면 깊이 자리하고 있는 형언하기 힘든 한(恨)의 정서를 격렬한 감정으로 표현하는 음악, 파두. 바다를 숙명처럼 여기고 살아온 그들의 역사와 삶의 무게를 고스란 히 담고 있으며, 그 고유한 멋과 향기는 오랜 세월 세계인을 매료시키고 있다. 우리 또한 굴곡진 역사를 통해 한(恨)의 정서를 지닌 민족이고 삼면이 바다인 반도국가이다. 세계 각지의 수많은 음악 가운데 우리나라 사람들의 정서와 가장 잘 통하는 음악 가운데 하나로 포르투갈의 파두를 권한다.
Amália Rodrigues - Barco Negro(검은 돛배) ▼
가사 De manha que medo que me achasses feia Acordei tremendo deitada n`areia Mas logo os teus olhos disseram que nao E o sol penetrou no meu coracao Mas logo os teus olhos disseram que nao E o sol penetrou no meu coracao 아침에 추한 얼굴을 하고 있으면 모두들 무서워해요 난 해변에 쓰러져있다가 눈을 떴죠 당신의 눈은 나에게 말하고 있었어요 내 마음 속에 한 줄기 태양이 비춰왔어요 당신의 눈은 나에게 말하고 있었어요 그 순간 내 마음 속에 한 줄기 태양이 비춰왔어요 Vi depois numa rocha uma cruz E o teu barco negro dancava na luz Vi teu braco acenando entre as velas ja soltas Dizem as velhas da praia que nao voltas 그리고 바위와 십자가를 보았죠 당신이 탄 검은 돛배는 밝은 불빛 속에서 너울거리고 당신의 지친 두 팔로 나에게 손짓하는 것을 보았어요 바닷가 노파들은 당신이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죠 Sao loucas! Sao loucas! 미친 여자들이야! 미친 여자들이야! Eu sei meu amor Que nem chegaste a partir Pois tudo, em meu redor Me diz qu`estas sempre comigo 난 나의 사랑을 알고 있어요 당신이 떠나버린 것이 아니란 것을 사람들은 당신이 언제나 나와 함께 있다고 말하죠 No vento que lanca areia nos vidros na agua que canta no fogo mortico no calor do leito nos bancos vazios Dentro do meu peito, estas sempre comigo no calor do leito nos bancos vazios Dentro do meu peito, estas sempre comigo 유리 구슬을 강변에 뿌리는 것 같은 바람 속에 꺼질듯한 불빛 속에서 노래하는 물 위에 달빛은 따사롭고 나뭇잎처럼 흔들리는 배 내 마음엔 언제나 당신이 함께 있어요 달빛은 따사롭고 나뭇잎처럼 흔들리는 배 내 마음엔 언제나 당신이 함께 있어요 Eu sei meu amor Que nem chegaste a partir Pois tudo, em meu redor Me diz qu`estas sempre comigo 난 나의 사랑을 알고 있어요 당신이 떠나버린 것이 아니란 것을 사람들은 당신이 언제나 나와 함께 있다고 말하죠
옛날 어느 바닷가 마을에 한 부부가 가난하지만 서로 사랑하며 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고기잡이 떠난 남편이 돌아오지 않았다. 그날 이후 아내는 매일 바닷가에 나가 아득한 수평선을 바라보며, 남편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의 눈에 수평선 너머로 무엇인가가 보였다. 그것은 분명 남편의 배였다. 오랜 기다림에 지칠대로 지쳐버린 아내의 눈에 눈물이 돌았다. 점점 가까와져 오는 남편의 배... 그러나 그 배에는 남편의 죽음을 상징적으로 의미하는 검은 돛이 달려 있었다. 옆의 여인네들은 남편이 돌아 오지 않을 것이라 한다. 모두 다 '미친 여편네들'이다. 그는 떠나간 것이 아니다. 내 가슴속에는 언제나 함께 살아 있으니까... 배를 타고 나간 남편을 기다리다가 돌아오지 않는 남편 때문에 미쳐버린 한 여인의 테마를 다룬 1954년 영화 '과거를 가진 애정'중에서 쓰였던 곡이 바로 'BARCO NEGRO(검은돗배)'이며 65년 아말리아 로드리게스가 부른 이 '검은 돛배(Barco Negro)가 우리나라 연속극에 삽입되면서 알려지기 시작하여 그 당시 굉장한 인기를 누리기도 하였다. 검은 드레스 위에 역시 검은 숄을 걸친 채 곧게 서서 온몸으로 열창하는 파두 가수(Fadista)의 애조 띤 목소리는 심금을 울리며 전율을 느낄 정도로 애잔하여 일부 사람들은 슬픈 노래라고 싫어하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의 포루트갈 사람들은 파두를 국민가요로 생각하며 즐겨듣는다고 한다. 20세기에 들어서 포르투갈은 살라자르의 독재로 이 파두를 금지시키기도 하였지만 독재 정부를 무너뜨린 자유군과 시민들이 카네이션을 가슴에 달고 파두를 부르면서 행진을 했다고 한다. 리스본의 알파마 거리 빈민촌의 파두가 거리의 매춘부와 일용직 노동자, 뱃사람들이 즐기는 노래에서 세계인들의 음악으로 사랑 받을 수 있기 위해서는 오직 한 사람, ‘파두의 여왕’ 아말리아 호드리게스를 기다려야 했다. 아말리아 호드리게스는 1920년 7월 (정확한 탄생일은 가족들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리스본의 알파마 거리의 빈민촌에서 가난한 노동자의 딸로 태어났다. 에디뜨 삐아프가 스무 살이 되기까지 거리에서 노래를 부르며 행인들의 동정을 구했던 것처럼 아말리아도 십대시절에는 리스본 알칸타라 항구에서 어머니를 도와 행상을 하며 거리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노래하며 보내야 했다. 노래 부르기를 좋아했던 아말리아는 라디오에서 우연히 까를로스 가르델의 탱고를 듣게 되면서 가수로서의 꿈을 갖게 되었다. 가정 형편이 갈수록 기울면서 학교를 그만두게 되었지만, 낮에는 행상을 하고, 밤에는 허름한 선술집에서 노래를 부르면서 가수의 꿈을 키워 나갔다. 뛰어난 미모와 예술적 재능으로 아말리아는 일찍부터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파두란 우리들이 결코 마주하고 싸울 수 없는 숙명, 아무리 발버둥치며 노력해도 바꿀 수가 없다는 것, "왜?"냐고 물어도 결코 그 이유를 알 수 없는 것, 그럼에도 답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묻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 - AMALIA RODRIGUES(아말리아 로드리게스)
그리고 에디뜨 삐아프가 거리에서 노래하다 카바레의 경영주 눈에 띄어 발탁된 것처럼 아말리아 호드리게스도 역시 아말리아의 노래를 듣고 감명을 받은 어느 카바레의 지배인이 그녀를 자기 카바레에서 노래하게 함으로써 프로가수로서의 첫발을 디딜 수 있었다. 이때 아말리아의 나이가 열 아홉. 본격적인 가수생활을 하면서 아말리아는 파두의 역사를 새롭게 쓰기 시작했다. 1940년 스페인 공연으로 갈채를 받았고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포르투갈 각지를 누비면서 노래했다.
그리고 1944년에는 브라질의 리우에서 성공적인 공연을 마쳤고, 1949년 처음으로 유럽문화의 중심 파리를 방문해 샹젤리제 극장 무대에 설 수 있었다. 하지만 아말리아 호드리게스의 명성은 1954년에 비로소 세계적인 것이 될 수 있었다. 이 해에 제작된 프랑스 영화 타쿠스 강변의 연인들(Les Amants du Takus)의 무대공연 장면에서 아말리아는 검은 드레스에 검은 숄로 몸을 감싸고 나타나 깊은 감정을 자아내는 목소리로 ‘검은 돛배’(Barco Negro)를 노래했던 것이다. 이 영화에서 그녀가 ‘검은 돛배’를 부르는 장면은 관객들에게 새로운 문화적 충격으로 다가오면서 전 유럽에 일대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선 예전 김수현작가의 '사랑과 야망'이라는 드라마에서 그녀의 노래 'Maldicao(어두운 숙명)'이 흘러나오면서 세인들에게 검은돛배와 함께 크게 알려지기 시작했다. 아말리아 호드리게스라는 이름은 ‘파두’와 더불어 세계적인 것이 되었다. 행운이라고 하기엔 엄청난 결과였다.
Amália Rodrigues - Canção Do Mar(바다의 노래) ▼
가사 Fui bailar no meu batel Além no mar cruel E o mar bramindo Diz que eu fui roubar A luz sem par Do teu olhar tão lindo 나는 해변으로 춤을 추러 갔지 성난 바다 저편에 거친 바다로 둘도 없는 황홀한 불빛을 훔치러 갔지. 나는 그렇게 아름다운 불빛은 처음 보았지.
Vem saber se o mar terá razão Vem cá ver bailar meu coração 바다에게 그럴 이유가 있었든 없었든 내 사랑아 나와 함께 이리와 춤을 추자
Se eu bailar no meu batel Não vou ao mar cruel E nem lhe digo aonde eu fui cantar Sorrir, bailar, viver, sonhar...contigo 나와 함께 이 해변에서 춤을 추자 이 잔인한 바다여 나는 너에게로 가 노래를 부르고 웃고 춤추고 싶고 너와 함께 춤을 춘다.
Canção Do Mar(깐사웅 두 마르)는 '바다의 노래' 또는 '바다에 바치는 노래'라는 제목으로서 폴투갈의 민속음악인 Fado(파두) 가수 둘체 푼테스(Dulce Pontes)가 불러서 유명해진 곡입이다. 원곡의 가수는 둘체 푼테스의 어머니인 아말리아 로드리게스이며 이 곡은 미국 영화인 '프라이멀 피어 (Primal Fear, 1996)'에 삽입되어 전 세계에 알려졌으며, 국내에서는 1997년 SBS에서 '장미의 눈물'이라는 드라마에 번안곡이 삽입되었고, 한때 화장품 CF의 배경음악으로도 사용되어 더욱 많이 알려지게 되었다. 우리는 그녀의 위대한 성공의 원인을 그녀 자신에게서 찾아야 할 것이다. 뛰어난 미모와 더불어 신이 선물한 강렬한 개성과 천부적인 목소리에서 말이다. 그녀는 놀라우리 만치 넓은 음폭의 목소리와 미묘한 음색의 조절을 통해 음악의 아름다움과 정서적 깊이를 창출해내고 있다. 1939년부터 시작된 오랜 경력 속에서 아말리아의 스타일은 전통적인 파두계에 논란을 불러일으킬 만큼 혁신적인 것이었다. 아말리아의 파두는 전통적인 흐름에 닿아 있으면서도 전통과는 또다른 혁신적인 것이었기에 모두가 충격에 빠졌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아말리아 호드리게스라는 이름은 한마디로 파두로 정의되었으며 파두의 결정 그 자체가 되었다. 1999년 10월 6일 아말리아 로드리게스가 79세를 일기로 타계했을 때에, 그녀의 죽음이 확인되자마자 포르투칼 정부는 즉시 3일 동안의 국가 애도기간을 공포하였다. 아무리 국민의 사랑을 받는 가수가 죽었다고 한들 국가 애도기간을 결의했다는 사실은 그녀가 포르투칼 국민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던가를 알 수가 있다. 포르투칼 국민들이 정부의 이런 결정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데에는 그들의 민속음악인 파두(Fado)를 세계적인 음악수준으로 끌어올린 아말리아를 포르투칼 국민들은 동의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국민들은 그녀를 단순히 스타, 가수라고 부르지 않고, 'Fado의 대사' 혹은 '20세기가 낳은 포르투칼 최고의 영웅'으로 대우했으며, 따라서 그녀는 포르투칼 국민의 절대적인 사랑을 받은 여걸이었다.
Amália Rodrigues - Estranha forma de vida(1965) (이상한 삶의 방식) ▼
가사 신의 뜻이었다 내가 이렇게 초조함 속에 살아가고 있는 것은 내가 이렇게 그리움에 사무쳐 살아가고 있는 것은 신의 뜻이었다 얼마나 이상한 삶의 방식인가 이 내 마음은 잃어버린 과거의 삶을 살아가는데 누가 누구에게 특권을 부여한단 말인가 얼마나 이상한 삶의 방식인가 남에게 의지하지도 않고 남에게 명령하지도 않고 나는 군중 속에서 잃어버린 나머지 삶을 살아가고 있다 남에게 의지하지도 않고 나는 이제 더이상 너와 같은 길을 가지 않을 것이다 그만, 이제 나를 혼란에 빠뜨리지 말아라 네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고 있다면 왜, 그렇게 뛰어가려고 하느냐 나는 이제 더이상 너와 같은 길을 가지 않을 것이다 우리의 심장은 언제나 무관심하다는 듯 뛴다 반주자는 필요 없으니 이제 그만 멈추라 나의 심장이여 네가 어디로 향하는지도 모르면서 그리 달리는 이유가 무엇이냐
Camané - Ai Margarida ▼
Camané (born in Oeiras, 20 December 1967) as Carlos Manuel Moutinho Paiva dos Santos Duarte, is a male vocalist, and a forerunner of the new generation of fado male singers. "The greatest fadista since Amália Rodrigues and Maria da Fé," is how British biographer David Bret, describes him.
▲ 카마네(Camané, 1967년 12월 20일 ~ )는 카를로스 마누엘 파이바 도스 산토스 두아르테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진 남성 가수이다. 영국 전기작가 데이비드 브레트는 "아말리아 로드리게스와 마리아 다 페 이후 가장 위대한 파디스타"라고 묘사했다.
He started gaining recognition in Portugal in 1979 after winning the 'Grande Noite do Fado' (Great Fado Night). After this first step, he continued to consistently work toward commercial success with critically well-received albums and a concert tour that touched upon both large and small venues, including 'Casas de Fado' (fado clubs) in Lisbon. He toured outside Portugal to sold-out audiences throughout his European tour.
▲ 1979년 포르투갈 그랑드 노이트 두 파두 나이트에서 우승한 후, 그는 포르투갈에서 인정을 받기 시작했다. 이 첫 단계 이후, 그는 비평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은 앨범과 리스본의 'Cas de Fado' (파도 클럽)를 포함한 크고 작은 공연장을 모두 건드리는 콘서트 투어로 상업적인 성공을 위해 꾸준히 노력했다. 그는 유럽 투어 기간 내내 포르투갈 외지를 순회하며 관객이 매진되었다.
He has released six million-selling albums: Uma Noite de Fados (1995), Na Linha da Vida (1998) marking the beginning of three records produced by José Mário Branco, Esta Coisa da Alma (2000), Pelo Dia Dentro (2001), Como sempre... Como dantes (live in 2003), and Sempre De Mim (2008). These have been released in several European and Asian countries. He has been distinguished with several awards for his voice and talent.
▲ 그는 600만 장의 앨범을 발매했다. 우마 노이트 데 파도스(1995), 나 린하 다 비다(1998)는 호세 마리우 브랑코, 에스타 코이사 다 알마(2000), 펠로 디아 덴트로(2001), 코모 셈프레... 코모 단테(2003년 생), 셈프레 드 밈(2008)이다. 이것들은 몇몇 유럽과 아시아 국가에서 출시되었다. 그는 목소리와 재능으로 여러 상을 받았다. Camané has been formerly married to another great fadista, Aldina Duarte. Camané (and his short height) is frequently mentioned by the fictional fadista Rouxinol Faduncho, in Blablabla do Artista (the intro for his second CD) and in Cais do Sodré.
▲ 카마네는 이전에 또 다른 위대한 파디스타인 알디나 두아르테와 결혼한 적이 있다. 카마네(그리고 그의 작은 키)는 허구의 파디스타인 루시놀 파둔초 (Ruxinol Faduncho)에 의해 자주 언급된다.
Camané - Saudades Trago Comigo ▼
Camané 'Na Linha Da Vida' 삶의 선상에서 01. Ah Quanta Melancolia [비애] 02. Fado Penelope 03. Senhora Do Livramento [구원의 어머니] 04. Ponto De Encontro [만남의 순간] 05. O Meu Amor Anda Em Fama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 06. Eu Nao Me Entendo [이해할 수 없는 나] 07. Mote [좌우명] 08. Sopram Ventos Adversos [삶이 힘들어 질 때] 09. A Minha Rua [나의 거리] 10. Guitarra, Guitarra [기타, 기타] 11. A Merce De Uma Saudade [그리움이라는 선물] 12. Maria [마리아] 13. ao Sei [몰라요] 1995년 EMI레이블을 통해 앨범[Uma Noite de Fados]로 데뷔한 Camane는 1999년 앨범 [Na Linha Da Vida]로 국내 월드 뮤직팬들에게 소개된 바 있다. 얼마 전 세상을 떠난 아말리아 호드리게스의 뒤를 이어 전통 파두의 맥을 잇는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까마네 (Camane )의 아름다운 앨범이 국내에 정식으로 발매되었다. 흔히 파두 하면 매력적인 바이브레이션에 의한 가느다란 떨림을 지닌 여성의 목소리를 떠올리게 되는데, 우리에게 생소한 까마네라는 아티스트는 꽤나 잘 생긴 남자 가수이다. 그는 이 앨범 [NA LINHA DA VIDA 삶의 선상에서]를 통해 이탈리아의 움베르또 발사모 (Umberto Balsamo)를 연상케 하는 가녀린 목소리로 구성진 파두를 들려주고 있다. 아름다운 선율과 매혹적인 기타의 음색에 실려 맑게 울려 퍼지는 그의 목소리는 '파두'의 이미지에서 조금도 벗어남이 없다. 첫 곡 Ah quanta melancolia (비애) 에서부터 모든 곡들에 흐르는 너무도 아름다운 서정성이나 Ponto de encontro (만남의 순간) 이나 Mote (좌우명) 등의 곡들에서 전편을 수놓는 흥겨움 속에 담긴 잔잔한 슬픔은 앨범을 특징짓는 가장 큰 요소이다. 그건 가장 아름다운 슬픔이다. 이렇게 슬픔을 아름답게 표현해내는 까마네의 역량은 새로운 시대를 이끌어갈 차세대 파두 가수로서 조금도 부족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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