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랑의 종소리 구세군 ♣
딸랑딸랑 종소리가 들렸어요
맹추위에 몸을 움츠리고 걷다가 빨간 구세군 자선냄비를 보았지요
12월은 전통적으로 기부의 계절.
자선냄비는 가장 오래된 모금 방식이지요
행인 대부분은 그 앞을 바삐 지나갔지만 몇몇은 지폐를 꺼내 냄비에 넣었어요
자선냄비라는 원시적인 모금방식은 송금·ARS전화 같은 방식에 밀릴 것 같지만 그렇지 않아요
구세군은 “최근 3년간 거리 모금액(작년 기준 23억원)은
꾸준히 늘고 있다”고 답했지요
자선냄비를 열어 보면 1000원권이 68%로 가장 많고 1만원권(21%), 5000원권(10%) 순이지요
‘모금 명당’도 있어요
“수도권에서는 서울 명동성당, 잠실 트레비 분수, 강남 고속터미널이 1~3위이지요
지방에서는 유동인구가 많은 부산 서면 롯데백화점, 대구 롯데백화점에서
모금이 잘 된다”고 했어요
자선냄비의 첫 종소리는 1891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울렸지요
배가 좌초하는 바람에 난민이 된 1000여 명을 도울 궁리를 하던 한 구세군 사관이 큰 쇠솥을 들고 부두로 나갔어요
이런 글씨를 써붙였지요
‘이 국솥을 끓게 합시다(Keep the pot boiling)!’
이것이 바로 자선냄비라는 온정(溫情)의 시작이었어요
얼마 지나지 않아 성탄절에 어려움을 당한 이들에게
따뜻한 식사를 줄 만큼의 기금이 마련됐지요
한국에는 1928년 12월 서울 명동에 자선냄비가 등장했어요
그해 서울 20여 곳에서 당시 화폐로 846.67원이 모였지요
빨간색은 예수의 피를 상징한다고 하지요
어느해 겨울 이었어요
영하 20도의 강추위속에서 리어카에 폐휴지를 가득싣고
언덕길을 오르던 할머니가 있었지요
할머니는 하루하루 폐휴지를 모아 어린손녀와 함께 살아가고 있었는데
"오늘은 이것밖게 못 벌었다오
나는 사지멀쩡해 이렇게라도 벌수 있지만 돈 못버는 가난한 사람이 너무 많은것 같아 ..."
하면서 하루종일 폐휴지 모아 판 돈을 몸땅 구세군 자선남비에 넣었어요
그리고 어느핸가
서울 중앙우체국 앞이었지요
길은 얼었고 하늘에서는 눈이 내렸어요
하체를 쓰지 못해 껌, 비스킷 등을 담은 수레를 몸으로 기어서 밀던 이름모를 장애인이
"오늘 종일 번 것인데 저보다 어려운 분에게 전해달라"며
몇 천원을 냄비에 넣고 갔지요
종을치던 구세군 병사는 한동안 그분의 뒷모습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하지요
또 어느해는
강남 고속버스터미널 앞에서
구세군 자선냄비가 열심히 종을 울리고 있는데
어떤 스님이 오시더니 바로 옆에 자리를 펴고 시주함을 놓고 목탁을 두드렸어요
구세군 사람들은 스님을 원망하며 종을 더크게 울리고 목소리도 높였지요
땅거미가 지자 스님이 자리를 걷더니 구세군 쪽으로 왔어요
“옛다 ~ 오늘은 자선냄비가 다 가져가거라
고럼!! 가난한 중생을 도와야지 ~ 나무 관세음 보살 ~~”
하면서 스님은 시줏돈을 몸땅 자선냄비에 넣고 총총히 사라지는 거였지요
몇해전 크리스마스 이브날
서울 어느 자선냄비에서 돌반지가 나왔어요
반지는 하트모양으로 곱게 접은 편지속에 들어있었는데
“천국에 있는 내딸 은미야 !!
너의 곱디고운 모습은 엄마의 가슴속에 늘 살아있단다
천국에서는 아프지말고 건강하게 훨훨 날아라 ~~”
채 자라지도 못한 어린생명을 병으로 보낸 아이의 돌반지 였다 하지요
그런데
지난 2013년도에는 서울 중구 명동 예술극장 앞 자선냄비에
6800만원 상당의 무기명 채권이 들어 왔어요
이 채권은 2004년 2월27일 발행됐으며 상환일은 2009년 8월27일자 인데
한국구세군이 시중은행에 진위여부를 의뢰한 결과 이 채권은 진품으로 확인됐어요
당시 명동 예술극장 앞에서 자선냄비 봉사활동을 하던 유영숙 사관학생은
"60대로 보이는 트렌치 코트를 입은 깔끔한 이미지의 신사가
자선냄비에 봉투를 넣은 뒤 명동성당 방향으로 올라갔다"고 전하고 있어요
또 몇해전에는 구세군 역사이래 가장 큰 기부가 나왔다고 하는데
연세 지긋한 백발의 노부부가 서울 충정로 구세군빌딩을 찾아왔어요
90대로 보이는 이 다정한 노부부의 모습은 구세군 사관들의 눈에 낯설지 않았지요
바로 2년전 이맘 때 이곳을 찾아 1억원을 기부했던 부부였어요
이들 부부는 1억 원짜리 수표 2장, 2억원을 건네며
금년에도 좋은곳에 써 달라며 신원을 밝히지 않고 돌아 갔다 하네요
또 같은해
명동 우리은행앞에서는 "신월동주민"이라고 쓴 통투속에
60대 초반의 말끔한 신사가 1억570만원 짜리 수표를 넣은적도 있었지요
요즘에는 돈만이 아니라 금반지를 빼서 자선냄비에 넣고 가거나 시계나 토큰
심지어 헌혈증서나 항공권을 기부하는 이들도 있다 하네요
그래서 디지털 시대를 맞아 요즘 자선냄비에는 신용카드 단말기도 설치돼 있다 하지요
나눔의 대명사 구세군(救世軍 The Salvation Army)은
1865년 영국의 감리교 목사인 윌리엄 부스와 그의아내인 캐서린 부스가 창시한
개신교의 한 교파인데 성직자를 사관, 신학교를 사관학교, 교인을 병사 또는 군우라고
부르는 등 군대식의 조직을 갖고 있어요
그리스도인은 이웃들에게 빵과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윌리엄부스의 이념에따라
구세군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는전도와
사회적 약자를 섬기는 사회봉사 모두를 실천하고 있다 하지요
그래요
요즘처첨 경기가 침체되어 있을때는 기부천사들이 많이 줄어든다고 하는데도
이렇게 큰 온정의 천사가 있으메 우리 사회는 아직도 메마르지 않았는지도 몰라요
우리도
날씨 추운 세밑에 행여 헐벗고 불우한이가 없는지를 찾아보고 나눔과 베픎의 시간 함께 하면 어떨까요?
나의 작은 정성이 천사의 손길이 되어 큰 기쁨이 될수도 있어요
천사의 손길은
잘살고 못살고가 아니고
작고 크고가 아니며
내가 베픈만치 먼훗날 큰 복이 되어 나 자신에게 되돌아 온다 했지요
우리 작은정성 큰 정성 늘 베풀며 살기로해요
-* 언제나 변함없는 녹림처사 조동렬(一松)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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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참 고마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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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ㅎㅎ
지금 생각해도 멍청이같아 웃음이...
사십년이 훌쩍 아니 오십년이 가깝죠!
년말 징그러징그러 할정도로 귀가 따갑던 년말 송년회를 마친 후 새벽 두시쯤 집으로 향하던 중 딸랑딸랑
구세군 빨강 냄비가 보이기에 돌아갈 수도없는그때 주머니에 손이 들어가고 나온 손은 천원짜리 세장 뿐
생각할 겨를도 얷이 냄비에 넣었다 으이구 추워 하머 멋적어 뒤돌아부지런히 버스 정류장에 도착 해보니 십숸짜리 동던뿐 차비가 없었다 아뿔사...
집이라봐일 걸어서가도 한시간도 안 되는 거리지만 추운 겨울이고 한잔의 열기는 식어가고 이가 부딛칠 정도로 추웠다 사실 인물은 빠지지만 입빤까면 몇눔 죽이는 성격이라 옆을 훓터보니 한눔 건너 사복입은 여학생이 보였다 옆으로 가서 학생 미안한데 버스표 한자안 빌려줄래요 하니 헥돌아보며 오빠 왜이러고 사냐 ?
깜짝놀라 눈을 크게 뜨고보니 애그머니나
사존 여동새미었다
사복을 입고 지가 졸업반이라 머리스티일도 바뀌니
레이디 퍼스트 숙녀였다
낄낄 호호거리며 버스를 타고 동생집이 두정거장 더 가서 힙께 내려 숙부모님께 인사하고
아침밥 따듯한 얻어먹고 집억 온적이 기억납니다
언제나 즉흥적인 성격이라 실수도 많지만 나름대로 즐겁습니다
무안 항공사고는 안타깝지만 우리나라는 언제 이런일이 그칠까
왜 우리하게 국제공항으로 개항을 해서 이런꼴을 당하는지 구조물만 없었다면 사고를 줄이지 않았을까 합니다 안녕히 줌세요 아우님~^^
ㅎ.ㅎ.
오빠 왜 이러고 사나?
와 나같으면 쪽팔려서 숨 넘어 가겠는데. ㅎ.ㅎ.
좋은 경험 아니요.
그러나 두번해선 안되는 경험입니다.
ㅎ.ㅎ.
해박한지식과 향기나는 언어로 올한해도 감사해습니다.내년에는 육신도 건강해지시고 무탈하시기를 주인님께 청해봅니다.
고맙습니다, 걸레님.
우리 주인님께서 매사 잘 인도해 주시길 바랄 뿐입니다.
건강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