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녘에는 화려한 자태를 뽐내는 꽃들의 잔치로 온통 봄을 노래하고 있지만 얼마 안 되는 위도 차이(진주와 서울 약 2°)인데도 아직 계절에 뒤처진 모습으로 남아 지난 겨울을 간직한 채 우리를 반기는 모습을 보니 역시 서울은 많이 북쪽이다. 갑작스러운 업무로 오랜만의 가족 나들이에 다 함께하지 못하는 세상살이에 안타까움이 있지만 잠시 뒤쳐져 봄이 오듯이 우리의 만남도 차츰차츰 더 자주 함께할 수 있는 그런 날이 오리라는 생각을 하며 맛이 있는 여행은 모처럼 수도권의 남양주를 찾아간다.
남양주시는 본래 1980년 양주에서 분리되었는데, 양주라는 명칭이 처음 나타나는 것은 고려 936년 ‘후백제왕 견훤에게 양주를 식읍으로 주었다.’는 ‘고려사’의 기록이 처음이다. 그러나 당시의 양주라는 명칭은 지금의 남양주시 영역과는 같지 않았지만 양주라는 명칭과 영역이 일치하는 시기는 조선 태종 때인 1410년 양주목으로 승격한 후로 추정된다. 이때에도 지금의 진접 진건지역은 풍양현이라는 별도의 명칭을 지니면서 양주목의 속현으로 존재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이후 풍양이란 명칭은 영·정조대까지 사용하다가 풍양현지역이 1530년에 간행된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접동, 진벌, 건천, 진관 등의 면 지명으로 표기되는 것으로 보아 풍양현 자체는 이때쯤 없어진 것으로 보이며, 1980년 12월 1일 대통령령 제10050호에 의하여 와부면이 읍으로 승격하여 3읍 5면이 되었고, 이후 1995년 1월 1일 미금시와 남양주군을 통합하여 남양주시가 되었다.
남양주에는 먹골배가 유명하여 여기 저기 먹골배를 파는 곳을 많이 있고, 한 입 베어 물면 달콤한 물이 입안에 가득 고이는 시원한 맛으로 유명한데, 먹골배는 남양주에서 가장 자신 있게 내놓는 특산물로 500여 농가에서 매년 1만 톤 이상을 생산하고 있어 국내 여러 곳으로 판매되고 있으며 1997년부터 미국, 일본, 캐나다, 프랑스, 대만, 유럽 등으로 수출하고 있는 특산품이다.
홍릉
유릉
복잡한 서울 시내를 거쳐 이런 남양주에서 제일먼저 찾아간 곳은 홍릉과 유릉이다. 홍릉은 조선 제26대 고종황제와 명성황후 민씨의 능이다. 고종은 1852년 영조의 현손 흥선군 이하응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 재위 44년 동안 왕조의 쇠퇴기로 내부의 세도정치와 밀려드는 제국주의 침략 세력의 틈바구니 속에서 갑신정변, 동학농민운동, 청일전쟁, 을미사변, 아관파천, 러일전쟁 등을 겪었는데, 국권을 회복하고자 1897년 대한제국을 선포하여 황제에 오르고 연호를 ‘광무’라 했으며, 이때 왕비를 명성황후로 추존하고 동구릉 안에 있던 숙릉을 청량리 천장산 아래로 옮기고 홍릉이라 했다.
유릉은 조선 제27대 순종황제와 동후 순명효황후 민씨, 계비 순정효황후 윤씨의 동릉3실의 능이다. 순종은 고종과 명성황후의 둘째 아들로 1874년 창덕궁에서 태어났으며, 1875년 왕세자로 책봉되어 1907년 즉위하여 연호를 융희라 하였다. 재위 4년 동안 일제의 간섭으로 실권 없는 황제 자리에 올랐다가 1910년 한일합방으로 안타까운 조선왕조의 종말을 맞았다. 재위기간 동안 일본에게 국정 전반에 걸쳐 간섭받았고, 차관정치의 빌미를 제공한 정미칠조약을 강제 체결하였으며, 1910년 데라우치 통감은 이완용과 한일합방 조약안을 마련하고, 8월 29일 순정효황후의 숙부 윤덕영을 시켜 황제의 옥새로 날인하게 하여 이왕(李王)으로 강등된 순종은 창덕궁에 있다가 1926년 4월 25일 53세로 승하하였다. 순종의 장례식날 전국에서 6·10만세사건이 일어났고, 6월 11일 유릉에 안치되었다.
홍릉과 유릉을 둘러보며 화려했던 조선왕조 500년을 다시 한 번 뒤돌아보며 우리나라 역대왕조가 장수할 수 있었던 요인은 무엇이며 그 공통요소는 무엇인가 생각해보니 마음이 절로 숙연해진다. 우리사회는 오랜 기간 동안 동일언어, 동일문화 속에 농경중심사회를 유지해온 것이 사회의 동질성을 상대적으로 높여 준 것으로 사료되며, 지배계층을 중심으로 유교를 통한 사회화가 깊이 있게 진행되어 사회의 갈등과 분열의 요소를 억제할 수 있었던 것으로 생각되며, 충과 효의 가치를 동일시하고, 임금과 부모를 동일시한 사회화는 왕조의 교체를 어렵게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홍릉과 유릉을 둘러보며 능의 모습을 온전하게 사진으로 담지 못하는 안타까움이 있었는데, 이는 문화재청의 ‘궁·능원 및 유적관람 등에 관한 규정’ 제4조 및 제6조에 공개제한 및 예외가 있어 문화재의 훼손방지를 위하여 관람객들에게 능은 비공개 지역으로 공개하지 않고 있으므로 학술조사 및 문화재의 수리·관리 등을 목적으로 입장하는 경우나 취재를 목적으로 하는 경우에 한하여 사전에 우편, 팩스, 전자우편으로 비공개지역 출입신청서를 작성하여 사전 신청하면 검토 후 출입허가를 해준단다. 사정을 몰라 예고 없이 갔으니 다양한 방법으로 도움을 청하여 보아도 정상적인 취재는 어려워 아쉬움이 많았지만 관리하는 분의 도움으로 먼발치에서나마 홍릉을 바라볼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능을 두루 살펴보고 나오니 벌써 시장기가 돈다. 마침 능 앞에는 친절하고 깔끔한 식당이 있어 즐거운 마음으로 들어가 샤브샤브칼국수를 시켜놓고 마음을 가라앉히며 오늘의 점심식사 메뉴에 대하여 생각해본다. 샤브샤브는 데쳐 먹는 음식이고, 칼국수는 끓여먹는 음식이니 양식이라기보다는 동양음식이다. 사골을 아주 잘 고아 우려낸 육수에 얇게 썬 쇠고기와 갖가지의 야채가 푸짐하게 나오니 마음까지 넉넉해지고, 샤브샤브를 한 입 머금어 맛을 보니 기분까지 좋아진다. 야채를 추가하며 칼국수를 끓여먹고 밥을 넣어 볶아 먹는 맛도 일품이라 누가 먹어도 좋을 듯하다.
이제 모란미술관으로 간다. 모란미술관은 넓은 마당을 품고 있는 아늑한 집 같은 여유로움과 호젓함이 묻어나는 곳이다. 8631평에 이르는 야외전시장에서는 은은한 음악이 흐르고 110여점에 이르는 국내외 유명 조각 작품들이 자연과 함께 어우러져 숨 쉬고 있으며 관람객을 반갑게 맞이한다. 미술관 안은 4개의 전시실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들은 6개의 전시공간으로 나누어져 있고, 아름다운 자연 경관을 감상할 수 있도록 반원의 둥근 테라스를 가진 전시실에는 한국현대조각의 흐름을 알 수 있는 기획전시와 상설전시도 열린다. 또 미술관 뒤편에 자리 잡은 도자기골 달뫼에서 도자기를 만들어 보는 것도 좋은 추억이 될 것 같다.
피아노폭포
이제 피아노폭포로 향한다. 피아노폭포는 높이 92m인 인공폭포로 세계 최초로 만들어진 최고의 높이라고 하는데 아래로 시원하게 떨어지는 물줄기를 보니 생각보다는 훨씬 자연적으로 보이고, 폭포 앞에는 환경체험관이 있으며, 신기한 구석이 제법 있는 곳이다. 그 첫 번째로 피아노화장실을 들 수 있는데 이는 그랜드 피아노를 본떠 만든 화장실의 계단을 오르면 피아노 소리를 나게 설계하여 경험하는 이에게 즐거움을 선사한다. 하나 더 신기한 것은 이곳이 하수처리장이라는 사실이다. 남양주시에서 발생하는 오폐수를 맑은 물로 바꾸어 이런 하수처리 방류수를 이용해 환경체험관과 92m에 달하는 인공폭포 및 S자형 물놀이 시설 등을 갖추었으므로 자연으로 돌아가는 물을 만날 수 있는 공간으로 인기가 많다.
계속하여 북한강변을 따라 차를 달려 남양주 종합촬영소로 향한다. 남양주 종합촬영소는 한국의 유니버설스튜디오라고 불리는 곳인데 서편제를 시작으로 쉬리, 공동경비구역 JSA 등 대표적인 우리 영화들이 여기에서 만들어졌다. 총 40만평의 부지위에 3만평 크기의 야외 세트를 갖추고 있으며 운당고택과 한옥 및 초가 세트장뿐만 아니라 실내촬영장까지 갖추고 있어 하루해로는 모자랄 정도로 볼거리가 그득하다. 좋은 작품을 위해 열심히 촬영하는 출연자와 스텝들의 노력으로 우리 영화가 세계적인 위치에 오른 것에 자부심을 가지며 왈츠와 닥터만 커피박물관으로 발길을 옮긴다.
왈츠와 닥터만
왈츠와 닥터만은 남양주종합촬영소 건너편 골목으로 조금 들어가면 나오는 빨간 건물로 깃발을 휘날리며 마치 중세의 유럽 같은 분위기를 연출한다. 박물관 앞에는 미니버스가 한대 있는데 이는 바로 티켓박스로 이런 곳에서 티켓을 준비하니 잔뜩 기대가 된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커피 향기가 가득하고, 관람객 모두에게 오디오가이드를 무료로 대여해준다. 아무것도 모르고 주마등처럼 지나면 5분이면 관람이 끝나겠지만, 설명을 들으면서 하나하나 살펴보면 우리나라 커피역사에 대하여 다양하고 깊이 있게 알게 되고 전시를 보는 것도 재미있다. 시간적인 여유를 갖고 다양한 커피 체험과 핸드드립으로 즐거움을 가져보는 것도 좋겠다.
해가 많이 길어졌지만 벌써 해거름이다. 돌아오는 것이 걱정되었는데 실시간으로 정체구간을 확인하면서 이동하니 서울 시내의 교통상황도 훨씬 여유롭다. 이런 여유로운 마음으로 편안하게 조금만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음식으로 생각해낸 것이 초밥이다. 보통 우리가 생각하는 곁들인 찬이 많은 초밥이 아니라 아주 좋은 재료로 만들어 내어놓는 맛있는 초밥 말이다. 은행골이라고 평소 제법 단골집인데 들어서니 손님으로 북새통을 이룬다. 용케도 자리를 잡고 앉아 차례로 나오는 초밥을 입에 넣으니 오늘 남양주에서의 하루도 너무 행복하고 즐거웠다. /삼천포중앙고등학교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