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의 식탁> 라데츠키 원수와 슈니첼
“오스트리아의 영광 지킨 육군원수께 바칩니다”
‘독일식 돈가스’ 인 빈 슈니첼,
이탈리아 통일·독립전쟁 진압한 요세프 라데츠키 장군이 귀환 후
‘밀라노 커틀릿’ 전파 풍문 돌 만큼, 70년간 국방 지킨 영웅으로 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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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데츠키 행진곡을 한 번쯤 들어보지 않은 군인은 없을 것이다. ‘나는 음악에 별로 관심이 없어서 대중가요 이외에는 듣지 않는데 아무리 행진곡이라고 해도 딱딱한 클래식 음악을 들었을 리가 없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한민국 군인이라면 라데츠키 행진곡은 무조건 들어봤다고 할 수 있다.
제목을 몰라서 그렇지 행진이나 열병을 할 때 반드시 연주되는 곡인 데다 최소한 훈련소에 입소하거나 퇴소할 때 군악대가 빼놓지 않고 연주하기 때문이다. 현역 군인이 아니어도 혹은 아예 군대 경험이 없어서 단체 행진이라고는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사람일지라도 라데츠키 행진곡은 들어봤을 가능성이 크다. 각종 시상식과 축하연에 많이 등장하는 경쾌한 행진곡이기 때문이다.
라데츠키 행진곡이 어떤 음악이기에 이리 요란스럽게 소개하나 싶을 것이다. 이 행진곡은 오스트리아의 작곡가로서 왈츠의 아버지로 불리는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아버지 요한 슈트라우스 1세가 작곡했으며, 이탈리아 통일전쟁 당시 오스트리아의 지배로부터 독립하려는 밀라노 지역의 왕국을 진압한 오스트리아군의 육군원수 요세프 라데츠키(Joseph Radetzky) 장군에게 바쳐진 곡으로 유명하다. 승리의 기쁨으로 만든 이 곡이 처음 연주될 때 관객들이 박수를 치며 동참했기에 지금도 이 전통이 이어져 이 곡이 연주될 때면 관객들이 같이 박수를 치는 경우가 많다.
곡명은 몰라도 누구나 들어본 적 있는 라데츠키 행진곡과 같은 음식이 있다. 혹시 빈 슈니첼(Wiener Schnitzel)이라는 음식을먹어 본 경험이 있는지? 십중팔구는 먹어 본 적이 없다고 대답하겠는데 사실 맞는 말이다. 오스트리아나 독일 음식이니까 특별히 유럽에서 살았거나 여행한 경험이 없다면 한국에서는 맛보기 쉽지 않다.
하지만 듣도 보도 못한 요리라고는 말할 수 없다. 우리가 비슷한 음식을 숱하게 많이 먹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즐겨 먹는 돈가스의 원형이 바로 슈니첼이다. 돈가스의 뿌리는 얇게 저민 고기에 빵가루를 입혀 튀긴 커틀릿이라는 요리로 알고 있는데 왜 슈니첼이라는 오스트리아 음식이 원형이냐고 물을 수도 있겠다. 커틀릿은 사실 나라에 따라 이름이 다르다. 영어권에서는 커틀릿이지만 독일어권에서는 슈니첼, 프랑스와 이탈리아에서는 코틀레트라고 부른다. 일본은 서양의 이런 음식을 받아들이면서 소고기 대신 돼지고기를 사용했다. 이것이 바로 돈가스다. 가스(カツ)는 커틀릿의 일본어 표기다. 굳이 돈가스의 족보를 따진다면 슈니첼이 프랑스로 건너가서 코틀레트가 됐고 이 요리가 유럽에 퍼진 후 일본으로 건너가 돈가스가 됐다. 그렇다면 슈니첼은 어디서 비롯된 음식일까?
오스트리아 수도 빈의 라데츠키 장군 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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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니첼은 라데츠키 원수가 이탈리아에서 오스트리아로 전한 음식이라고 알려졌다. 19세기 중반, 라데츠키 장군이 이탈리아에서 승리하고 오스트리아로 돌아왔을 때 프란츠 요세프 황제에게 이탈리아에서 먹었던 음식, 즉 송아지 고기에 빵가루를 입혀 튀긴 밀라노 커틀릿(cotolleta alla milanese)에 대해 이야기를 했고, 황제가 그걸 듣고 요리사를 시켜 재현한 것이 바로 빈 슈니첼이라는 것이다. 혹은 라데츠키 원수가 직접 밀라노에서 요리사를 데리고 와 밀라노식 커틀릿을 만들어 오스트리아에 퍼트렸다는 이야기도 있다. 어쨌거나 빈 슈니첼의 유래에 관한 이야기는 사실이 아니라는 것이 정설이다.
그러면 도대체 라데츠키 원수가 누구이기에 유명한 작곡가 요한 슈트라우스 1세가 그에게 행진곡을 헌정하고, 오스트리아의 국민음식 빈 슈니첼의 유래에 라데츠키 장군을 끌어들였을까?
라데츠키 장군은 사망할 때까지 무려 70년 동안 오스트리아 육군에 봉사한, 뼛속까지 철저한 군인으로서, 이탈리아가 오스트리아로부터 독립하려는 것을 막았다.
당시 도시국가로 나뉘어 있던 이탈리아는 밀라노와 베네치아 등 상당수 도시가 오스트리아의 지배 아래에 있었다. 1848년 밀라노가 오스트리아에 반기를 들고 독립을 선언했으며, 인근의 사르디니아 왕국도 밀라노의 독립을 지지했다. 그러나 쿠스토자 전투에서 라데츠키 원수가 이끄는 오스트리아군에 패해 밀라노를 비롯한 이탈리아 북부는 다시 오스트리아의 지배를 받는다. 이듬해 다시 오스트리아 제국과 사르디니아 왕국 사이에 노바라 전투가 벌어졌지만 역시 라데츠키 장군의 승리로 끝나면서 제1차 이탈리아 독립전쟁은 실패로 끝났다.
오스트리아로서는 이탈리아의 독립과 통일은 유럽에서 자국의 입지가 심각하게 축소되는 상황이었다. 따라서 라데츠키 장군의 승리는 제국의 영광을 지켜낸 것이었다. 라데츠키 행진곡과 슈니첼의 유래 이야기는 그런 장군의 리더십에 바친 헌사였다.
<윤덕노 음식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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