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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 협객도
밤이 된 이후 배는 동남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나흘째 되는 날 따지고 보면 바로 동짓날인데 그 사내는 앞쪽
의 까맣게 보이는 선(線)을 가르키며 말했다.
[저것이 바로 협객도이외다.]
석파천은 눈을 들어 바라보았다.
그리 이상한 점을 발견할 수 없었으나 마음은 긴장됐고 가슴은
쿵쿵 뛰었다.
다시 한 시진 가게 되었을 때 섬에 높다랗게 솟아 있는 돌산을
볼 수가 있었다.
산에는 울창하게 나무들이 자라나 있었다.
신시 패(牌) 무렵에 조그만 배는 섬 남쪽의 바람을 등진 곳에
닿게 되었다.
그 사내는 정중히 말했다.
[석 방주께서는 뭍으로 오르십시오.]
섬 남쪽은 바로 넓은 모래사장이었다. 동쪽 벼랑 아래에 사십
여 척의 크고 작은 배들이 정박해 있었다.
석파천은 속으로 짚히는 바가 있었다.
'이곳의 배들이 적지 않으니 섬에서 목숨을 건지게 된다면 이
곳으로 도망쳐와 한 척의 조그마한 배를 빼앗아 탄다면 위험에
서 벗어나기는 어렵지 않을 것이다'
이와 같은 생각으로 그는 뭍으로 올랐다.
그 사내는 밧줄을 들고 뭍으로 오르더니 밧줄을 커다란 바위에
감아매었다. 그리고 품속에서 소라를 꺼내 우우 하고 불었다.
얼마 후 산 뒤쪽에서 네 명의 사내가 달려나왔다. 한결같이 누
런 옷을 걸치고 있었다. 그들은 재빨리 석파천 앞으로 달려오더
니 허리를 구부렸다.
[도주께서는 영빈관에서 삼가 석 방주께서 오시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자, 가보시지요.]
석파천은 백자재가 걱정되어 물었다.
[설산파의 장문인 위덕 선생은 이미 도착하셨소?]
앞장을 선 황의의 사내가 대답했다.
[소인은 전문적으로 석 방주를 돌보도록 지정이 되어 있기 때
문에 다른 사람의 일은 잘 모른답니다. 석 방주께서 영빈관에
이르면 자연히 알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앞장을 서서 걸어갔으며 석파천은 뒤를 따랐다.
나머지 네 명의 황의의 사내들은 칠팔 보 정도 떨어져 따라오
고 있었다.
산속으로 들어가게 되자 양쪽은 모두 숲속인데 한 가운데로 산
길이 뚫려 있었다.
석파천은 주위의 경치를 유심히 살폈다. 도망칠 때 길을 잃지
않으려면 눈에 익혀두어야 한다는 생각에서였다.
수 마장을 걸어 들어가게 되자 바위들이 어지럽게 서 있는 산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
왼쪽은 깊은 낭떠러지로 세찬 산개울 물이 흘러가고 있었는데
절벽에 부딪치는 소리가 요란했다.
곧이어 길은 벼랑을 따라 오르게 되었는데 두어 번 모퉁이를
돌게 되자 십여 장 높은 곳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폭포가 있었
다.
아마도 그 폭포가 바로 산개울의 수원지인 것 같았다.
길을 안내하던 그 사내는 길 옆 한 그루 커다란 나무 뒤에서
기름 먹인 비옷을 꺼내 석파천에게 건네 주었다.
[영빈관은 바로 저 수락동(水樂洞) 안에 있습니다. 석 방주께
서는 옷이 젖지 않도록 비옷을 입으십시오.]
석파천은 비옷을 받아 입었다.
사내는 폭포로 다가가더니 몸을 날려 뛰어들었다.
석파천 역시 몸을 날렸다.
안쪽에는 기다란 통로가 있었다. 양쪽에 기름등이 켜져 있어
침침하기는 했으나 길을 알아볼 수 있었다.
그리하여 그는 그 사내 뒤를 따라가게 되었다.
통로는 산허리에 뚫려 있는 천연적인 동굴을 다듬어 만든 것이
었다. 인공으로 다듬은 것 치고 매우 좁았으나 때로는 탁 트일
정도로 넓은 곳도 있었다.
점차 아래로 내려가게 되었는데 동굴 안에서도 물 흐르는 소리
가 졸졸 들렸다.
그 소리는 매우 맑고 고와 옥으로 만든 북을 두드리는 것 같았
다.
동굴 안에는 갈림길이 무척 많았는데 석파천은 일일이 외워두
었다.
동굴 안에서 약 이 마장 쯤 나가게 되었을 때 갑자기 눈앞에
옥석으로 깎아서 만든 동굴문이 나타났다.
문 위에는 세 개의 커다란 글자가 씌어져 있었다.
석파천은 글씨를 몰라 슬쩍 물었다.
[이곳이 바로 영빈관이오?]
사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대답을 하면서 그는 씌어 있는 것을 왜 굳이 물어보나 하고 이
상하게 생각했다.
옥석으로 된 동굴 문 안으로 들어가자 땅바닥에 청석을 깔아
놓은 통로가 나타났다.
사내는 석파천을 왼쪽의 첫번째 석동(石洞)으로 데리고 들어가
며 말했다.
[석 방주께서는 잠시 이곳에서 머물러 주십시오. 나중에 연회
가 베풀어지게 된다면 도주께서는 석 방주를 만나보게 될 것입
니다.]
동굴 안에는 탁자와 의자가 골고루 갖추어져 있었다. 세 자루
의 붉은 촛대가 석실 안을 환히 밝혀주고 있었는데 얼마 되지
않아 나이 어린 동자가 차와 네 가지 간단한 음식을 갖다주었
다.
석파천은 음식을 대하게 되자 남으로 내려오면서 석청이 당부
하던 말을 떠올렸다.
[소형제 삼십 년간 협객도로 간 영웅 호걸들이 한 사람도 살아
서 돌아온 사람이 없네. 협객도의 사람들이 아무리 뛰어나다 하
더라도 그 많은 무림의 고수들을 일망타진하리라고는 보지 않네
……]
그의 당부는 계속되었다.
[나의 짐작으로 섬에서는 틀림없이 비열한 수단을 썼을 것이
네. 기관 함정을 설치하지 않았다면 음식에다가 극독을 탔을 것
같네. 그들이 공공연히 사람들을 청해 동지팥죽을 맛보게 한다
고 떠들어대었으니 그 한 그릇의 팥죽은 모든 사람들이 지켜보
는 것이라 어쩌면 이상야릇한 점이 없을 수 있겠으나 되려 흔히
보는 다과나 밥과 찬들을 경계하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네! 다
만 이와 같은 도리는 무척 얕은 것이라 이 석청이 생각할 수 있
는 것을 보면 명문대파의 우두머리격인 인물들도 어찌 생각을
못했겠는가? 그들이 협객도로 가게 되었을 때는 자연히 여러 가
지 해독약을 가져갔을 터인데 어째서 끝내 그 사람들의 독수에
당하게 되었는지 실로 그 해답을 얻기가 힘드네. 자네는 심지가
곧고 인정이 많아서 어쩌면 하늘이 착하고 어진 사람을 돌본다
는 말이 있듯이 어떤 고약한 보답을 받지 않을지도 모르지. 어
찌되었든 간에 조심을 하도록 하게나.]
그는 그와 같은 석청의 당부를 뇌리에 떠올리기는 했으나 향긋
한 음식의 냄새를 맡게 되자 시장기가 몰려왔다.
'배가 고픈데 섬에 와서 아무 것도 먹고 마시지 않을 수는 없
지 않은가? 더군다나 장삼과 이사는 나와 결의형제를 맺은 사이
로 고락을 같이 하기로 맹세했는데 나를 해칠 수 있을까?'
그리하여 그는 즉시 소매(燒賣), 춘권(春捲), 전병(前餠), 증
고(蒸고) 네 가지의 갖다놓은 음식을 먹어치우고 한 주전자의
찻물도 반이나 비워버렸다.
석동에서 약 한 시진쯤 기다리게 되었을 때 갑자기 요란한 종
소리와 북소리 등이 크게 울렸다.
길을 안내했던 사내가 석동의 입구에 나타나 허리를 굽혔다.
[도주께서 석 방주가 연회에 참석하도록 청하십니다.]
석파천은 그를 따라 나섰다.
몇 개의 석실을 지나게 되자 종소리와 북소리가 더욱더 요란하
게 들려왔고 눈앞이 훤히 밝아지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알고보니 한 커다란 석동 안에 소의 기름을 짜서 만든 촛불이
잔뜩 켜져 있었고 백여 개나 되는 탁자들이 놓여 있었다.
손님들은 계속해서 안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그 석동 안은 엄청나게 컸기 때문에 그와 같은 많은 탁자를 나
열해 놓았으나 조금도 비좁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그리고 수백 명이나 되는 황의의 사내들이 오락가락하면서 손
님들을 맞아 자리로 안내를 했다.
모든 손님들은 각기 자리 하나를 차지하고 앉은 셈이 되었다.
그런데 이곳에서는 손님을 옆에 모시고 앉는 주인쪽의 사람들을
볼 수가 없었다.
뭇 손님들이 자리에 앉자 주악소리가 곧 멈추어지게 되었다.
석파천은 사방을 둘러보았다. 대뜸 백자재가 가슴을 펴고 앉아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었다.
백발이 성성할 뿐만 아니라 위맹(威猛)하게 생긴 그는 뭇 사람
들 가운데 앉아 있었지만 체구가 유난히 커서 군계일학(群鷄一
鶴)격이라 쉽게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날 석옥 안에서는 너무나 어두워 석파천은 그를 똑똑히 볼
수가 없었다.
그런데 이제 훤히 켜진 불빛 아래서 보니 정말 위덕 선생이야
말로 절간에 모셔다 놓은 신상처럼 장엄하고 대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숙연한 기분을 느끼게 하지 않는가?
그리하여 그는 그의 앞으로 다가가 입을 열었다.
[할아버지! 제가 왔습니다.]
객청에는 사람들의 수가 많았으나 안내를 하는 사람들은 될 수
있으면 음성을 낮추었고 모든 사람들은 목숨이 경각에 달렸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심사가 무거웠던지라 그 누구도 입을 열지 않
았다.
그런데 석파천이 그와 같이 갑작스럽게 부르짖게 되자 모든 사
람들의 눈길은 자연 그에게 쏠리게 되었다.
백자재는 싸늘히 코웃음을 쳤다.
[흥! 분수를 모르는 녀석 같으니. 네 녀석 때문에 나의 손녀가
자손을 보지 못하게 되었지 않느냐?]
석파천은 어리둥절해지고 말았다.
잠시 후에 그는 그 뜻을 알아차렸다.
원래 백자재는 그가 협객도로 죽으러 왔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
이었다.
그러므로써 수아가 결혼을 하지 못하고 아들과 딸 자식을 둘
수 없게 되었다는 말이었던 것이다.
석파천은 고개를 숙이고 입을 열었다.
[할아버지, 할머니는 어촌에서 할아버지를 삼 개월간 기다리겠
다고 했습니다. 이월 말까지 돌아오지 않는다면 바다로 뛰어들
어 자살하시겠다고 했습니다.]
백자재는 길다란 눈썹을 곤두세웠다.
[벽라산에 가지 않겠다던?]
[할머니는 할아버지의 그와 같은 말을 듣고 화가 나서 어찌할
바를 몰라했습니다. 할머니는 할아버지……]
[날 욕하던?]
[늙어 망녕이 났다고 했습니다. 정불사와 같은 경박한 자가 혓
바닥을 날름거리는 것을 곧이 듣는 것으로 보면 늙어 망녕이 난
할아버지가 멍청하다구 그리고 언젠가는 정불사를 만나게 된다
면 금오도법으로 그의 팔 한쪽을 잘라내고 혓바닥을 자르겠다고
했습니다.]
백자재는 그 말에 껄껄 소리내어 웃었다.
[하하하……맞았다, 맞아. 응당 그렇게 해야지.]
갑자기 대청의 한모퉁이에서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어째서 나에게 그토록 욕을 하는 것일까? 내가 언제
그녀에 대해서 경박한 태도를 취했단 말이냐? 나는 그녀에 대한
지성의 사랑 때문에 늙어서도 아내를 맞아들이지 않았다. 그런
데……그녀는 강철 같은 심장으로 벽라산에 한걸음도 디딜 생각
도 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나의 혓바닥과 팔을 자르겠다니…
…]
석파천은 말소리가 들려오는 곳을 바라보았다.
정불사가 팔꿈치를 탁자 위에 대고 턱을 고인 채 전신을 부들
부들 떨며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를 본 석파천은 나이 많은 사람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부끄
러운 줄도 모르고 저렇게 울 수 있을까 하고 의아하게 생각했
다.
만약 평소였다면 영웅 호걸들은 정불사에게 비웃음을 던졌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모든 사람들은 자기 발등에 액운이 떨어지게 되었
다는 공포감에 심사가 무거워져 같이 울고 싶은 참담한 기분이
라 그 누구도 그를 비웃지 못했다.
이 한떼의 영웅 호걸들은 명문대파의 장문인이 아니면 바로 어
느 방이나 어느 회의 우두머리이며 한평생 칼과 검의 끝에서 뒹
굴며 살아온 사람들이라 죽음을 두려워한다는 말을 그들에게 사
용한다는 것은 적절하지 않았다.
그런데 한 칼이나 한 자루의 창을 사용하되 목숨을 건 싸움이
라고 하더라도 반드시 죽는다고는 볼 수가 없었다. 더군다나 자
기의 무공이 뛰어나다는 자부심도 있기 때문에 언제나 적이 죽
고 자기가 살리라고 생각하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이번의 상황은 크게 달랐다. 이 섬에 오르게 된다면 반
드시 죽는다는 것을 알고 있으나 어떻게 죽는 것인지 전혀 할
수가 없었다.
그러니까 반드시 죽어야할 운명에 다시 두렵고도 의심스러운
생각마저 가지게 되어 옛날의 커다란 적을 눈앞에 두고 남이 볼
수 있도록 정당하게 겨루는 광경보다 그야말로 감당해 내기가
훨씬 힘드는 것이었다.
그런데 별안간 서쪽 모퉁이에서 목쉰 여인의 음성이 들려왔다.
[흥! 흥! 뭐가 지성이고 늙기까지 장가를 안 가! 사소취에게
그토록 미련이 남았다면 어찌하여 우리 언니와 더불어 딸을 가
졌지?]
삽시간에 정불사는 얼굴이 새빨겨져서는 몸을 벌떡 일으키고
물었다.
[너는……누구냐? 어떻게 그와 같은 사실을 알고 있느냐?]
그 여인은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우리 언니 일을 내가 왜 몰라요! 당신의 딸은 어떻게 되었나
요? 죽었나요 아니면 살았나요?]
정불사는 그만 쿵 하니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런데 너무나 세차게 앉는 바람에 우지끈 뚝 하는 소리와 함
께 대나무로 만든 의자의 네 다리가 분지러졌다.
여인은 다시 다그치 듯 질문을 던졌다.
[그 계집애는 죽었나요? 살아 있나요? 빨리 말해 봐요!]
정불사는 중얼거리듯 말했다.
[내가……내가 어떻게 알겠는가……]
그 여인은 날카로운 어조로 조롱하듯 말했다.
[언니가 돌아가실 때 반드시 당신을 찾아내어 그 딸의 행방을
알아내야 한다고 당부했어요. 그리고 나보고 돌보라고 했는데
짐승만도 못한 도적 같으니! 우리 언니의 한평생을 그릇치고도
모자라서 남의 여편네만 생각하고 있다니……]
정불사는 그만 얼굴이 흙빛이 되어 두 무릎을 꿇었다.
의자가 부러졌기 때문에 그는 두 다리로 앉은 자세를 지탱하고
있었다.
그런데 두 다리에 맥이 빠지자 그만 꿇어 앉게 되었던 것이었
다. 하지만 그는 역시 무공이 뛰어나 재빨리 똑바로 섰다.
여인은 다시 날카롭게 외쳤다.
[도대체 그 계집에는 죽었나요 살아 있나요?]
[이십 년 전 그 애는 살고 있었지만 그 후는 나도 모른다.]
[어째서 그 애를 찾아보지도 않나요?]
[그건……그건 찾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은 그 애
가 협객도로 왔다고 하던데 정말인지 거짓말인지 노부도 잘 모
른다.]
석파천은 그 여자의 몸매가 왜소하고 얼굴에는 두꺼운 흑사(黑
紗)로 가리고 있어서 얼굴 모습을 잘 살펴볼 수가 없었다.
따라서 그는 흉악하고 거칠기 이를 데 없는 정불사가 어째서
그녀를 두려워할까 하고 이상하게 생각했다.
그런데 바로 이때였다.
종과 북소리가 크게 일었다.
한 명의 황의 사내가 나타나더니 낭랑히 외쳤다.
[협객도의 용(龍) 도주와 목(木) 도주께서 삼가 귀빈들을 만나
뵙겠다고 합니다.]
뭇 사람들은 흠칫했다.
그제서야 모든 사람들은 협객도에 두 사람의 도주가 있다는 것
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하는 성이 용이요 하나는 성이 목가라
는 것도 겨우 알게 된 것이다.
중문(中門)을 열어 젖히면서 키가 크고 작은 남녀들이 두 줄로
늘어서서 들어왔다.
오른쪽 남녀들은 황의를 걸치고 있었고 왼쪽 남녀들은 청의를
걸치고 있었다.
그 찬례(贊禮)의 사내는 다시 부르짖었다.
[용 도주와 목 도주의 뭇 제자들이 귀빈들에게 인사를 드립니
다.]
그리고 보니 동패를 주고 갔던 상선벌악의 두 사자도 뭇 제자
들 속에 끼여 있었다.
장삼은 노란 옷을 입고 오른쪽에서 열한 번째 되는 위치에 서
있었으며 이사는 푸른 옷을 입고 왼쪽으로부터의 열세 번째의
위치에 서 있었다.
그리고 그들 두 사람은 등뒤로도 각기 이십여 명 남짓한 남녀
들이 서 있었다.
뭇 사람들은 그만 숨을 들이키지 않을 수 없었다.
장삼과 이사의 무공을 모두들 친히 본 바가 있었다.
그런데 그들 두 사람에게 그토록 많은 동문의 사형제들이 있으
리라고는 예상치 못했던 일이었다. 따라서 삼십 년 간 중원의
일류 고수들이 협객도의 사람들을 당해내지 못한 것도 무리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사실 상선벌악의 두 사자만 손을 쓴다 하더라도 중원무림에서
명성을 떨친 사람은 이십 초도 견디지 못할 것이 뻔했던 것이
다.
두 줄의 제자들은 좌우 양쪽으로 늘어섰다. 그리고 공손히 뭇
호걸들에게 인사를 했다.
호걸들은 재빨리 일어나 답례했다.
장삼과 이사는 동패를 나누어 주게 되었을 때 웃으면서 살인을
했고 또 한 번 손짓에 문파나 방회의 무리들이 도살을 당했던
터였는데 지금은 곁눈질도 한 번 하지 않는 것이 매우 공손하고
근엄했다.
곧이어 주악소리가 울려퍼지는 가운데 두 늙은 노인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걸어나왔다.
한 사람은 황의를 걸치고 있었고 한 사람은 청의를 걸치고 있
었다.
찬례의 사내는 다시 부르짖었다.
[폐도의 도주께서 여러 귀빈들이 왕림하신 것을 환영합니다.]
용 도주와 목 도주는 껄껄 소리내어 웃더니 입을 열었다.
[하하하……불초와 목 형 우리 두 사람은 이 황량한 섬에서 오
늘 고귀하신 분들을 대하게 되니 정말 영광스러운 일입니다. 다
만 황량한 섬이라 있는 물건이 간소하여 대접에 있어서 소흘한
점이 없지 않아 있을 것인데 여러분께서는 이해해 주십시오.]
말투는 매우 차분했고 온화했다.
협객도는 남해 한복판에 외로이 떠 있는 섬인데 그는 바로 중
원의 말씨를 쓰고 있었다.
목 도주도 한마디 인사를 했다.
[여러분들도 앉도록 하십시오.]
그의 음성은 날카로웠는데 아마도 복권성이나 광동성 사람이
분명한 것 같았다.
군웅들이 자리에 앉았다.
주인 자리라는 것은 바로 서쪽 아래켠의 한 탁자 곁에 마련되
어 있었다.
협객도 사람들은 자리가 없어 각기 양쪽에서 공손히 시립해 서
있었다.
군웅들은 협객도의 사람들이 중원에서는 매우 거칠게 놀면서도
섬에서는 매우 예의를 깍듯이 차리자 또 한번 무슨 꿍꿍이 속셈
으로 이런 식으로 나올까 하고 안절부절하지 못했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사형수들도 목을 자르게 될 때는 잘 먹
이고 좋은 말로 위로를 한다고 하는데 이 연회가 바로 그런 것
이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
뭇 사람들은 두 도주를 찬찬히 살폈다.
용 도주는 수염과 눈썹이 모조리 희었으나 얼굴만 어린애처럼
불그스레했다.
목 도주는 길다란 수염이 희끗희끗했는데 아직까지도 검은 빛
깔의 수염들이 흰 수염보다 많은 편이었다.
그런데 얼굴은 주름살로 가득 뒤덮혀 있었다.
두 사람의 나이가 도대체 어느 정도인지 잘 알아볼 수 없었는
데 아무리 봐도 육십 세에서 구십 세 정도인 것 같았다.
만약 두 사람의 나이가 백 세를 넘겼다 하더라도 이상하게 느
껴지지 않았으리라.
각자 자리에 앉게 되자 섬에서 일보던 사람들이 앞으로 나와
술을 따랐고 곧이어 음식들을 날라 놓았다.
한 사람이 앉아 있는 탁자에는 네 개의 접시와 네 개의 그릇이
놓이게 되었데 여덟 가지의 찬은 골고루 산해진미를 갖추고 있
었고 향긋했을 뿐 이상한 점은 전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석파천은 차분히 마음을 가라앉히고 각기 탁자에 앉아 있는 손
님들 쪽을 살폈다.
상청관의 주인인 천허 도인도 와 있었고 관동 사대문파의 범일
비, 풍랑, 여정평, 고삼 낭자도 와 있었다.
그 사람들은 긴장과 초조에 휩싸여 있었는데 석파천과 시선이
맞부딪치게 되었을 때 그저 고개만 끄덕일 뿐 소리는 내지 않았
다.
용, 목 두 도주는 술잔을 들고 권했다.
[자! 드시지요.]
그리고 나서 두 사람은 단숨에 잔을 비웠다.
영웅호걸들은 잔속의 술이 파란데 술 향기가 매우 짙었으나 서
로 꺼림칙해서 마시기를 못했다. 술속에 어떤 독이 들어 있는지
모른다는 생각이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대부분이 입술까지 가져갔다가 입술에 한 번
대기만 했을 뿐 술을 마시지는 않았다.
다만 소수의 사람들만이 이곳에서 자기들을 해치려고 한다면
저들의 한번 손짓과 발짓에 뜻을 이룰 수 있으니 술속에 독을
타도 좋다는 체념하에서 점잖게 잔을 비웠고 옆에서 시중들던
사람들은 다시 각자의 술잔에 술을 부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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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감하였습니다.
즐감 중 입니다
수고 스럽지만 한번에 많이 올려주시면 안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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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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