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연경의행복줍기] 영원한 짝사랑
출처 세계일보 : https://www.segye.com/newsView/20221101513428?OutUrl=naver
부모는 자식을 사랑한다. 내리사랑의 본질은 짝사랑이다. 엄마는 초등학교를 졸업하는 아들을 위해 꽃다발을 만들었다. 직장생활에 바빠 아들을 챙기지 못했고 졸업식 날도 함께하지 못하는 미안함을 작은 꽃다발에 담았다. 담임선생님 것까지 만드느라 꼬박 밤을 새웠다. 며칠 후 졸업사진을 보는데 엄마는 한 여자아이가 들고 있는 꽃다발이 눈에 익었다. 아들은 선생님께 드려야 할 꽃다발을 좋아하는 여자아이한테 날름 바친 것이다.
엄마는 장을 보고 나오다 상가 비디오 가게에 흰 종이가 붙어 있어 무심히 봤다. 비디오를 빌려 가 갖고 오지 않는 고객 명단에 아들 이름이 있었다. 게으름과 무책임의 상징인 이런 곳에 내 아들 이름이…. 엄마는 놀라 가게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주인은 연체료 3만원을 내면 지워준다며 오죽하면 이랬겠느냐고 오히려 하소연했다. 엄마는 바로 돈을 갖다 드릴 테니 이름 석 자 중 한 자만이라도 지워달라고 매달렸다. 주인은 종이를 뗐다. 엄마의 간절함을 봤기 때문이다. 엄마한테는 흙탕물 한 방울도 튀지 않기 바라는 너무나 소중한 자식들 이름이기 때문이다.
엄마는 평소 잘 먹지 않는 큰딸이 이것저것 해달라며 엄마 음식이 최고라는 바람에 음식 만드느라 바쁘다. 김치만두는 반드시 신김치로, 잡채는 소고기로, 콩국수는 국내산 콩으로 음식마다 ‘반드시’로 강조되는 주문이 있었다. 어느 날 작은딸이 귀띔해준다. 언니 남자친구가 자취를 하는데 시골 엄마 음식을 그리워할 때마다 언니가 엄마한테 만들어 달라고 한 것이란다. 그러고 보니 밑반찬이 빠르게 없어지는 것도 다 이유가 있었다. “그 오빠가 공부하느라 얼굴이 많이 상했다고 걱정해, 언니가.” 기막혔다. 그 오빠는 걱정하면서 저희 먹여 살리느라 힘든 아버지 걱정은 안 되나? 그러나 엄마는 아무 말 없이 밑반찬 양을 늘렸다.
아버지는 술을 끊었다. 술을 좋아하는 아버지는 그날도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밤늦게 귀가 중이었다. 눈 내리는 겨울밤 노래까지 흥얼거리며 걸어가는데 저기서 아내가 아들을 업고 뛰어오는 게 보였다. 아내는 맨발이었고 네 살 아들은 자지러지게 울었다. 아들은 펄펄 끓는 가마솥에 왼발이 빠졌다. 응급실행이었는데 아버지는 자기 몸 하나 가누기 어려운 처지라 보고만 있을 수밖에 없었다. 여차하면 자식을 업고 뛸 정도는 돼야 한다며 그날 이후 아버지는 술을 끊었다.
엄마는 수술실 앞에서 맨바닥에 무릎 꿇고 기도한다. “제가 대신, 저를 대신.” 엄마는 간절한 소망을 위해 자신의 중요한 뭔가를 내놓아야 할 것 같았다. 엄마는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목숨을 내놓는다. 우리에게는 부모가 있다. 든든하고 감사하다. 시간이 없다고, 돈이 없다고 나중에 하며 미룰 것인가. 도톰하고 따뜻한 수면 양말 5켤레에 만원, 인터넷 쇼핑 5분이면 된다. 뭐든 아주 작은 것이라도 시작해야 한다. 늙은 부모는 어느 날 사라진다. 효도하기 가장 좋을 때는 바로 지금이다.
조연경 드라마작가
빛명상
홍시가 될 즈음이면
감꽃이 피어나서
감나무에 감이 붉게 물들어
홍시가 될 즈음
동에 아이들이 새총으로
홍시를 맞춘다.
떨어진 감은 하필이면
머리 위에 개똥위에 떨어진다.
한 번은 새총의 총알이 빗나가
장독대를 맞추었다.
간장이 쏟아져 내린다.
이놈 아야!
와서 감나무에 올라가서
묵고 싶은 대로 따 먹거라
장독 깨진 건 또 사면 되지만
몇 년 먹을 간장은
우짜면 좋노
그 시절의 울 엄마 모습이
감꽃 목걸이와
홍시에서 되살아난다.
울 엄마가 보고 싶다.
있을 때 잘해.
출처 : 빛(VIIT)향기와 차명상이 있는 그림찻방
2021년 1월 18일 초판 1쇄 P. 32
홍시가 될 즈음이면
있을 때 잘해
꽂은 피고 지면
또다시 피어나는데
이젠 영영 볼 수 없는
아부지, 엄마, 박신부님
그리고 바보 김수환 추기경님,
혜명스님, 수우씨도
그리움은 참꽃 되고
애절함은 소쩍새가 되어
있을 때 잘하라고
밤새도록 일깨운다.
출처 : 향기와 빛(VIIT)명상이 있는 그림찻방 P. 45
개울가 맹금쟁이
엊그제 내린 단비로 산청 본원 산사 뒤뜰 개울가에 맑은 물이 소리를 내며 흘러내리고 있었다.
모처럼 들어보는 개울물 소리가 정겨워 그쪽으로 발길을 옮기는데 창동이와 윤정이, 종성이가 따라왔다. 얕은 물 위에 오랫동안 안 본 적이 없었던 ‘맹금쟁이’ 열댓 마리가 모여 뱅글뱅글 돌고 있었다. 같이 갔던 어른들도 그놈들이 얼마나 반갑고 정다운지 한동안 쳐다보고 있었다.
어린 시절에는 논둑 언저리나 비온 후 팬 작은 웅덩이에서 그 놈들을 쉽게 만날 수 있었는데 어느 사이엔가 아무 곳에서나 잘 볼 수 없게 돼버렸다. 이젠 기억 속에 하나의 물벌레로만 남아있을 뿐이다. ‘맹금쟁이란다’ 아이들은 처음 보는 그놈이 신기하게 생겼는지 호기심에 부풀어 잠시도 눈을 떼지 않는다. 그 놈들은 계속 쉼없이 물 위를 떠다니며 돌고 있는데 어지럽지도 않은가보다.
어린 시절 고모댁에 갔을 때 들었던 부친의 이야기가 생각나 아이들에게 들려주었다.
부친께서는 할머니가 오랫동안 병으로 누워 계셨는데 약 3년을 조석 문안이 아닌 무려 하루에 여섯 번씩이나 문안을 드렸다고 한다.
잠에서 깨면 큰댁으로 가서 기침인사를 드리고, 시장에 나가시면서 문안 올리고, 아침 드시기 전에 들러 조찬문안 올리고, 점심 식사 전에 그 사이 안부 물으시고, 저녁식사 문안과 잠들기 전에 편히 주무시라는 절을 올린 후에야 잠자리에 드렸다고 한다.
그것도 부족하여 하루는 할머니께서 어지럽다고 하시자 효성이 지극한 부친께서는 ‘맹금쟁이’를 잡아서 먹으면 어지럼증이 없어진다는 동네 어른들의 말을 듣고 한겨울에 그놈들을 잡으려고 얼어붙은 마을 논둑의 얼음을 깨면서 마을을 다 휘젓고 다니셨다고 한다. 그렇게 얼음 밑 볏집 사이에 붙어 겨울잠을 자던 놈들을 몇 마리 잡았다고 한다.
요즈음 우리들은 부모님께 하루 한 번은커녕 한 달에 한 번 전화로 문안드리는 것조차 어렵게 생각한다. 시간이 없어서도 아니고 또 거리가 멀어서도, 전화가 없어서도 아니다.
그 시절이나 지금이나 다 같은 부모요 자식이건만 무엇이 이토록 우리들의 삶과 인정을 각박하게 하고 있는가를 생각해본다. 맹금쟁이가 잃어버린 효(孝)를 새삼스레 일깨워 준다.
내일 귀가 길에는 어머니께 문안부터 올려야겠다.
출처 : 빛(VIIT)의 책 3권
‘초광력超光力’ 빛(VIIT)으로 오는 우주의 힘
1999년 03월 08일 초판 1쇄 p. 239~241
감사합니다.
*있을 때 잘해* 마음에 새깁니다. 감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