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민들의 애를 태우던 1기 신도시 특별법이 8개월만에 통과했다. 이로써 내년부터는 정비 방향이 확정되면서 노후 아파트 재건축 추진에 탄력이 붙을 전망이다.
9부 능선은 넘었지만 그렇다고 마냥 장밋빛은 아니다. 공사비 인상과 주택 경기 침체 등이 맞물린 데다 이주, 기반시설 마련 등도 변수다. 넘어야 할 산이 많은 만큼 집값도 천천히 움직일 것으로 예상된다. 사진=이명근 기자 qwe123@ 1기 신도시 특별법에 재초환까지 '통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는 지난달 29일 국토법안심사소위원회를 열고 '1기 신도시 특별법'(노후계획도시정비특별법) 제정안을 통과시켰다. 지난 3월 법안이 발의된 지 8개월만이다.
경기도에 위치한 1기 신도시는 △성남시 분당 △고양시 일산 △부천시 중동 △안양시 평촌 △군포시 산본 등 5곳, 총 29만2000가구로 오는 2026년까지 대부분의 단지가 재건축 연한(30년)이 도래한다.
그러나 대다수 단지가 용적률이 높고 지구단위 계획으로 묶여 있어 재건축 추진이 쉽지 않았다.
이에 윤석열 정부는 1기 신도시 등 노후 계획도시 정비를 국정과제로 잡고, 올 3월 의원 입법(송언석 국민의힘 의원) 형태로 특별법 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국토소위 위원들은 그간 정부안과 여야 의원들이 발의한 1기 신도시 특별법 13건을 세 차례가 걸쳐 심사했으나 지역간 형평성 문제, 집값 반등 가능성 등을 두고 이견을 보여 왔다.
그러나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여야가 '표심 잡기'에 나서면서 1기 신도시 특별법도 그 영향을 톡톡히 보게 됐다.
국민의힘이 김포의 서울 편입 등 '메가 서울' 논의를 통해 수도권 표심을 겨냥하자, 최근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특별법을 연내 통과시킬 수 있도록 민주당이 앞장서겠다"고 응수한 바 있다1기 신도시 특별법은 20년이 넘는 100만㎡ 이상 택지에 속한 공동주택의 용적률을 최대 500%까지 높이는 방안이 핵심이다. 재건축 안전진단 면제 또는 완화하는 내용도 담고 있다.
특별법이 국회 문턱을 넘으면 수도권 1기 신도시를 비롯해 서울 목동, 상계, 중계를 비롯해 부산 해운대, 대전 둔산 등 전국 51개 지역, 주택 103만여 가구가 혜택을 볼 것으로 추산된다현재 1기 신도시 용적률은 지역별 평균 △분당 184% △일산 169% △평촌 204% △산본 205% △중동 226%다.
특별법을 통해 용적률을 300~500% 수준으로 올리게 되면 중장기적으로 10만 가구 이상의 아파트가 추가 공급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특별법은 30일 국회 상임위원회를 통과하고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를 거쳐 이달 8일 본회의에서 의결될 예정이다. 내년부터는 정부가 마스터플랜 격인 정비기본방침을 수립하고 1기 신도시 지자체는 정비기본계획을 세우면서 구체적인 정비사업의 방향성이 나올 전망이다.
아울러 이날 재건축 사업 추진의 '대못'으로 꼽히는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 개정안도 함께 통과돼 비용 부담도 줄일 수 있게 됐다. 아직 넘을 산 많다…"가격도 천천히"
1기 신도시 지역 부동산 시장도 조금씩 되살아나는 모습이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최근 들어 1기 신도시가 포함된 5개 자치구 아파트의 월별매매가격지수가 상승세다. 9월 대비 10월 지수를 보면 성남시는 95.0→95.7, 고양시 90.2→90.5, 부천시 93.7→94.7, 안양시 92.8→94.0, 군포시 91.3→91.5로 각각 전월 대비 올랐다.
이번 특별법 통과 호재까지 반영되면 상승세를 이어나갈 것으로 관측된다. 다만 큰 폭의 상승을 당장 기대하긴 어려워 보인다. 특별법 제정 이후에도 넘어야 할 산이 많기 때문이다. 여전히 특혜 논란이나 지역 형평성 문제가 지적되고 있는 데다, 단지별 개별 순서나 이주 계획 등 변수가 많아 재건축에 탄력이 붙기까지는 시간이 오래 소요될 거란 전망이 나온다.
정비사업이 본격화하면 이주민만 수십만 명에 이른다. 1기 신도시 5곳만 해도 30만 가구 수준이기 때문에 시장에 미치는 영향력이 크다. 이들을 언제 얼마나, 어디로 이주해야 할지도 관건이다.
용적률 상향으로 늘어나는 가구수를 수용할 도로·주차장 등 도시기반시설 확충도 필요하다. 일조권 침해와 조망권 확보, 사생활 침해 등에 대한 대책도 마련해야 한다.
아울러 고금리, 공사비 인상 등도 걸림돌이다. 이로 인해 주택 경기가 침체하면서 전반적으로 상승세가 주춤하고 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11월 셋째주(20일 기준) 주간 아파트 매매가격지수 변동률은 전국 0.02%→보합, 수도권 0.03%→0.01%, 서울 0.05%→0.03%, 지방 0.02%→보합으로 모두 상승폭이 줄었다.
1기 신도시 역시 당장 가격에 불이 붙진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여경희 부동산R114 수석연구원은 "당장 특별법 통과에 따른 반향이 크게 나타나진 않을 것"이라며 "다만 급매 유인이 떨어져 매도자들이 호가를 유지하면서 추세를 지켜보며 기다릴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그는 "워낙 고금리 환경이라 대출 이자 부담이 커서 매수세가 붙기 어렵다"며 "바로 가격 상승으로 이어지기 보다는 하락을 방어할 것으로 보이고 추후 사업 추진에 속도가 나면 영향을 보일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