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착각,
2017년도가 아니고 2018년도, 3월이 아니고 4월 중순경이었던 것 같네요.
날짜가 싹다 지워져서 입증을 할 수 없지만 겨울 외투를 완전 벗고 봄 자켓을 입고 있었거든요.
뭐 그냥 지나도 되지만 아래에
//'앞으로 100년 안에는 3월에, 그것도 중순에 폭설 내리는 장면을 볼 수 없음이라는 것을 장담하면서, ''//
ㅋㅋ 이런 실수라니, 내내 마음에 걸렸어요.
3월에도 눈이 내리고 강원도에도 4월에도 요즘은 눈이 내리는 세상인데 왠 100년 안에 폭설 내린 장면을 볼 수 없다 장담씩이나, 켁,
하면서 수정을 함당,ㅋㅋㅋ~~~
설을 지나야 우리네는 진정 새해가 되죠이.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기를 기원드립니다.
2017년도였던가,
3월하고도 11일, 아니 12일이었던가,
매화 산수유 축제가 남쪽에서 끝나고
북상을 해서 전주한옥마을에까지 올라왔는데,
전주한옥마을에 산수유 개화, 매화도 개화를 한 춘삼월에 때아닌 눈이 내리드라고.
그것도 보통 눈이었냐면 아니다. 폭설이었다.
위도상 전주 역시 남쪽에 위치해 있어서 눈이 내려도 날이 푹하니 금방 눈이 녹아버리는데,
춘삼월 하고도 중순에 눈이 내렸으니 쌓였나 싶었는데 해가 뜨니 다 녹아버려.
그러한 때문이었는지,
폭설을 찍어 제보한 사람들이 없었는지,
텔레비전 뉴스시간에 저렇게 환상적인 설경장면도 없이
전주에도 폭설이 내렸다로만 나오드라고,
물론 저날 눈을 맞아가면서 사진을 찍은 사람은 나 외에는 없었다.
내가 그 현장에 있었으므로 잘 안다고. 나 외에는 사진을 찍는 사람이 없었다.
심각하게 방송국에 보내봐 하기는 했다만,
여튼 저날 정말 환상적인 설경장면이었다.
그 생생한 장면들임을,
앞으로 100년 안에는 3월에, 그것도 중순에 폭설 내리는 장면을 볼 수 없음이라는 것을 장담하면서,
오전 6시 20분 경, 전북대 정문부터 찍고
한옥마을로 이동을 해서 찍은 것.
전주한옥마을의 겨울 설경은
서울 고궁에서 맞본 것보다 더 장관이었음.
1900년대 고종의 친필로 세겨진 ‘태조고황제주필유지’(太祖高皇帝駐畢遺址)라는 비각이다.
“조선을 창업한 태조께서 말을 멈추고 머물렀던 곳”이라는 뜻이다. 왜 고종은 이런 비각을 세웠을까.
아마도 기울어져 가는 조선을 바로 세워야 하는 절박한 심정에서 태조 이성계의 기개를 그리워한 것은 아닐까.
전주의 오목대는 조선의 역대 왕들에게는 기개를 아로새겨주는 일종의 모태였던 셈이다. ‘자만금표’라는 표석이 있다.
왕조가 살었던 곳이므로 아무나 이곳에 출입을 할 수 없다는 표시다. 왕가를 일으킨 마을 주민들의 자부심을 느낄 수 있다.//(가져온 글)
중국 한나라 때에, 고조 유방이 지은 시가(詩歌).
유방이 경포(鯨布)의 반란을 진압하고 돌아오는 길에 패현(沛縣)에서 불렀다고 전해진다.
대풍가
大風起兮雲飛揚 센 바람 이 부니 구름이 높날리네.
威加海內兮歸故鄕 위엄을 해내에 더하고 고향으로 돌 아가네.
安得猛士兮守四方 어떻게 용맹한 군사들을 얻어 사방을 지킬까
오목대는 태조 이성계가 남원에서 왜구를 크게 무찌른 후 전주이씨 종친들을 모아 ‘대풍가(大風歌)’를 부른 것으로 유명하다.
고려 말엽 1380년, 왜구의 침략이 빈번해져 백성들이 불안에 떨자
우왕은 이성계를 전라, 경상, 충청 3도를 아우르는 도순찰사로 임명하고, 남원으로 내려가 왜구를 소탕할 것을 명령한다.
당시 북쪽의 거란족의 침입을 막아내며 국민적 영웅이 된 이성계는 백성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남원 황산에서 적장 아지발도를 무찌르고 말 1600필을 획득하는 황산대첩을 거두게 된다.
용비어천가의 기록을 보면 이성계가 첫 번째 화살로 아지발도의 투구끈을 끊은 다음
두 번째 화살로 이마부위를 맞혀 투구를 벗기자, 그의 부하 이지란이 화살을 날려 사살했다고 전하고 있다.
왜구를 전멸시키고 승리감을 만끽한 이성계는 고려 수도 개성으로 가는 도중 길목에 있는 오목대에서
전주이씨 종친들을 불러 모아 크게 잔치를 베풀었다.
집안 어르신들을 모시고 잔치를 벌이며, 발밑에 널리 펼쳐진 전주시가지를 보며, 호탕한 모습으로 그 유명한 대풍가를 부른다.
대풍가는 한나라를 세운 유방이 자신의 고향인 패현(沛縣)에서 불렀던 그 노래다.
북방에서 거란족과 여진족을 무찌르며 승승장구하던 이성계. 북방 변방의 장수에 불과했던 이성계는
남원 황산전투의 승리를 통해 명실상부한 고려의 실력자로 부상하게 된다.
그리고 무능한 정권에 실망했던 백성들은 외적을 물리치며 승승장구하던 이성계 장군을 ‘목 자득국’(木子得國, 이씨가 나라를 얻는다)의 노래를 부른다. 이때가 조선 건국 12년전의 일이다. 그는 과연 어떤 꿈을 꾸었을까.
고려의 실력자로, 새로운 임금으로 추앙받던 이성계는 금의환향의 심정으로 오목대에서 이씨 어르신들과 정담을 나누었을 것이다. //(가져온 글)